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715)
715 – 내가 말했지? (3)
715화 내가 말했지? (3)
토벌군의 분열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각지에서 강제로 모인 병사들 사이에는 이렇다 할 소속감이 없었다. 그 와중에 보급이 줄어 굶기까지 하니 사기도 급격히 떨어져 갔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총사령관인 지셀이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지셀뿐만 아니라 율리엔 용병단까지 며칠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이제는 다들 알게 된 것이다.
“진짜 미친놈이야. 일을 이렇게 벌여 놓고 도대체 어디를 간 거야?”
“항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도망간 거면 우리는 뭐 어떻게 되는 거야?”
병사들은 불안한 기색으로 매일같이 수군거렸다. 그들을 다독여야 할 지휘부는 서로 싸우기 바빴다.
“이제는 협상을 해야 합니다!”
“무슨 협상을 한다는 거요! 이미 역적을 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러면 뭐 군량도 떨어졌는데 어찌하겠다는 거요?”
“그러니까 일단 영주들에게 다시 군량을 보내라고 연락을…….”
“참 잘도 주겠소이다! 그 미친놈이 이미 다 털어 오지 않았소! 더 달라고 하면 오히려 잘됐구나 하고 뺏긴 병력을 돌려 달라 할 거요!”
“그러면 다른 영지라도 다시 약탈해야지!”
하는 말만 들어서는 이들이 토벌군인지 약탈자들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들은 정신적으로 몰린 상태였다.
중립 영주들이 고성을 지르며 서로 다투기만 하자, 지셀 대신 토벌군을 이끌고 있던 허비스 백작은 이마를 짚었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지고 수습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이 군세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가 왕국군 군단장들에게 물었다.
“왕국군의 보급을 더 끌어올 방도가 없소? 분명 전쟁에 대비해 쌓아 둔 게 있을 거 아니오.”
“이미 각 군단이 비축한 분량은 전부 가지고 온 상태입니다. 나머지는 팔켄하임 후작의 관리하에 있습니다.”
“끄응…….”
왕국군까지 손에 넣었던 팔켄하임 후작이다. 그는 왕국군에서도 함부로 꺼내 쓸 수 없도록 모든 군수물자를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왕국군도 실상은 팔켄하임 후작에게 받아 쓰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물자들은 전부 후작군이 차지한 상태였다.
이쯤 되니 지휘부도 언제 발을 뺄지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토벌군의 절반 정도는 본래 팔켄하임 후작 쪽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지셀이 영주는 내버려두고 병력만 뺏어 오긴 했지만, 지휘관들도 결국은 자신들의 주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허비스 백작에게 청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병사들의 불만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 상태로라면 통제가 힘들 것입니다.”
물론 허비스 백작이 그 청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여기서 병력이 줄어들면 남은 영주들은 진짜로 끝장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억지로 끌려온 병력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워낙 대군이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누군가 불씨를 댕기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다.
“결국 승부를 봐야 하는가…….”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이 군대로 사기 높은 후작군과 맞서 싸우면 필패다. 이곳에는 초인도 없었다.
“으으으……. 율리엔 용병단…… 이 미친 새끼들…….”
허비스 백작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일을 이 정도로 키우고 사라진 율리엔 용병단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애꿎은 앤드류에게 화를 내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소? 진짜 그냥 도망간 거 아니오?”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저도 모르거든요…….”
“젠장! 그러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오!”
“……오, 올 때까지?”
“아아아악! 그딴 소리 좀 그만하시오!”
결국 율리엔 용병단이 성공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기도 쉽지 않았다.
“후, 후작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찰조가 전해 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토벌군은 허둥지둥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후작군은 질서정연하게 토벌군을 포위하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걸 본 허비스 백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우리 상태를 눈치챘구나.”
그의 생각대로, 후작군은 토벌군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매일 토벌군 진영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차단하고 있지만 워낙 대군이라 진영 전체를 가릴 수는 없었다. 거기에 후작군의 마법 병력이 더 뛰어나기도 했다.
후작군의 총사령관 고디프 후작은 저 멀리서 진형을 갖추는 토벌군을 보며 웃었다.
“며칠만 더 몰아붙이면 알아서 자멸하겠군.”
토벌군은 배급 상황도, 병사들의 대열 배치도 엉망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상대를 더 압박하기 위해 지금 움직인 것이다.
당장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다. 이 상태로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기만 해도 상대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실제로 전투 준비를 한 토벌군의 진형은 엉망진창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디프 백작이 잔뜩 비웃음을 흘렸다.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지. 그 미치광이 놈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허를 찌르는 과감한 행동은 과연 창의적이라 할 만했다. 그렇게 해서 병력을 잔뜩 모은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은 병력을 제대로 유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군대는 수만 많다고 돌아가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결국 천한 용병 놈의 한계겠지. 그런 놈이 군사학을 알 리가 없으니.”
토벌군은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 상태라면 며칠 내로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면 토벌군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단 하나.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것이다.
“모두 확실하게 대비해라. 언제 미쳐서 덤빌지 모르니까 말이다.”
고디프 백작은 그 발악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계속 상대를 압박하며 방어 태세만 취하면 된다.
그러다가 완전히 무너진 토벌군을 몰살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다.
“이후에는 후작님이 이 왕국을 다스리는 거지.”
아무도 대항하지 못하는 절대 권력을 쥐고서 말이다.
고디프 후작의 예상대로 토벌군은 더 빠르게 지쳐갔다. 배급도 하루 한 번, 그것도 멀건 수프에 빵 쪼가리 조금 든 게 전부였다.
지휘부의 싸움은 더 격해졌다. 매일 고성이 오갔지만 의견은 통일되지 못했다.
“싸울 거면 지금 싸워야 합니다!”
“이미 망가졌는데 싸우긴 뭘 싸워!”
“그러면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죽자는 겁니까?”
직접 참여한 영주들마저 이 모양이니, 강제로 끌려온 지휘관들은 더욱 심각했다.
“전원 잘 들어라. 우리는 기회를 봐서 여기서 벗어날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바로 항복하고 저쪽에 붙는다.”
“지금부터 도망갈 계획을 짜자.”
지휘관들 대부분이 다른 생각을 품었다. 어차피 진심으로 항복한 것도 아니었으니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상황은 토벌군에게 최악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도망칠 수도, 항복할 수도 없는 허비스 백작은 결국 마지막 결전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를 단속하며 병력의 대열을 점검했다. 그걸 눈치챈 후작군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측의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갔다. 언제든 신호만 나면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그때, 후작군의 정찰조가 새로운 소식을 알려 왔다.
“측면에서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수는 약 천 명! 전원 기마병입니다!”
“무슨 군대?”
“복장과 깃발을 보니 발레상트 백작군입니다! 빠르게 달려오다가 지금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고디프 백작이 눈을 찌푸렸다.
“소식도 없더니 이제야 나타난 건가?”
늑장을 부린 군대가 몇몇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도 발레상트군은 소식조차 전해 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면 벌을 내리려 했는데 아슬아슬한 시기에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이런 대치 상황에 느릿하게 속도를 줄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뭣도 아닌 것들이 왜 갑자기 거드럭거리냔 말이다.
고디프 백작의 입장에서는 별 도움도 안 되는 군대가 나타난 셈이었다. 하지만 토벌군이 보기에는 전혀 달랐다.
토벌군의 허비스 백작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지원군이라니…….”
수가 적다 해도 적군에 새로운 군대가 합류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적의 사기는 올라가고 아군의 사기는 더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발레상트군은 후작군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치하고 있는 양쪽 군대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무슨 연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당당했다.
어느새 중앙까지 이동한 그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토벌군 중 눈썰미가 좋은 몇몇 사람들은 발레상트군에 아는 얼굴들이 끼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어? 임시 총사령관이다! 임시 총사령관이 저기에 있다!”
“율리엔 용병단원들도 있어!”
“그런데 왜 발레상트군 옷을 입고 있어?”
“저, 저 새끼들 배신한 거 아니야?”
토벌군은 난리가 났다. 없어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적군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후작군의 고디프 백작도 눈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도착했으면 빨리 구석으로 가 합류할 것이지, 왜 저렇게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다는 말인가.
황당해서 다들 보고만 있는데 가장 앞에 선 발레상트 백작이 말에서 내렸다.
그가 옆에 있는 지셀을 보며 물었다.
“저, 정말 제가 먼저 합니까?”
“그럼요, 이 기회에 멋지게 이름을 날리십시오.”
지셀은 보상이 확실한 사람이다. 어쨌든 이번 작전에 도움을 주었으니 그를 한번 띄워 줄 생각이었다.
곧 마법사가 옆에 와서 음성 증폭 마법을 시전했다.
심호흡을 몇 번 하던 발레상트 백작이 갑자기 부관을 붙잡고 말했다.
“아, 어떡하지? 나 너무 떨려. 다들 나만 보고 있잖아.”
“……영주님, 음성 증폭 마법이 시전된 상태입니다.”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아휴, 부끄러워. 어떡해, 다 들었겠다.”
“…….”
양측 군대는 말없이 그 괴상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발레상트 백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에…… 모두 들으시오? 에…… 그간 팔켄하임 후작은 왕실을 핍박하고…… 봉신들의 권리를 지켜 주지 않았으며…… 권력을 탐하여 부도덕한 짓을 일삼고…….”
발레상트 백작은 팔켄하임 후작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구구절절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게 어쨌냐는 표정이었다. 이 왕국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에 다들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본 백작은 팔켄하임 후작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율리엔 용병단과 함께 후작성을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아무튼 팔켄하임 후작을 사로잡았소이다!”
“…….”
전장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후작군이고 토벌군이고 할 것 없이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디프 백작은 얼굴이 벌게진 채 소리를 질렀다.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그딴 헛소리로 우리의 사기를 꺾으려는 것이냐!”
왜 발레상트 백작이 갑자기 저런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놈이 배신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당장 저놈부터 죽여라! 아니, 그냥 이대로 다 쓸어버려라!”
명령이 떨어지자 후작군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지셀이 말 등에 실려 있던 한 사람을 끄집어 내렸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재갈까지 묶여 있어 누가 봐도 포로로 보였다.
지셀이 그를 바로 세우며 크게 외쳤다.
“나는 왕국군 임시 총사령관 아스티온이다! 발레상트 백작과 함께 팔켄하임 후작을 사로잡았으니 확인해라!”
고디프 백작의 눈빛이 떨렸다. 거리가 있긴 했지만 초인인 그는 포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크게 외치고 말았다.
“후, 후작님!”
고디프 백작의 외침에 후작군은 모두 얼어붙었다. 지휘관들이 앞다투어 나와 포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저, 정말 후작님이다.”
“후작님이 포로로 잡히다니…….”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후작군의 지휘부는 혼란에 빠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토벌군 측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뿜어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팔켄하임 후작이 잡혔다!”
“총사령관이 후작을 잡아 왔다!”
허비스 백작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 미친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왜 뜬금없이 발레상트 백작이 함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앤드류가 허비스 백작을 붙잡고 외쳤다.
“우하하하하! 봤죠? 봤죠? 된다고 했잖아요! 와씨! 진짜 안 오면 오리 새끼라고 욕하려고 했는데! 으하하하!”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벌군 쪽에서는 이미 승리를 자축하는 환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를 깨문 고디프 백작의 얼굴에 힘줄이 돋아났다. 분노한 그가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전군…….”
하지만 그는 차마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팔켄하임 후작이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고디프 백작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셀이 여유로운 걸음으로 후작군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한 발이라도 움직이면…….”
그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후작 목은 바로 꺾이는 거야.”
“…….”
고디프 백작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