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716)
716 – 내가 말했지? (4)
716화 내가 말했지? (4)
지셀의 협박에 후작군은 이도 저도 못 했다.
이 군대는 팔켄하임 후작의 명령으로 모인 군대다. 후작의 안위를 무시한다면 존재하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복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항복한다면 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불 게 뻔했다.
토벌군의 영주들과 왕은 후환을 남겨 두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고디프 백작은 당장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가 없었다.
후작군이 가만히 있자 토벌군 측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항복해라! 후작도 잡혔는데 무슨 전쟁이냐!”
“더 이상 싸워 봤자 의미도 없다!”
“항복해! 항복해!”
토벌군은 신이 났다. 지셀 덕분에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후작군의 지휘관들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내리눌렀다.
“저 하찮은 놈들이…….”
“배신자 새끼들까지 신이 났구나.”
“진작에 밀어 버리고 협상을 해야 했는데.”
싸우면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쪽에는 고디프 백작과 그로지안 백작이라는 두 명의 초인이 있었다.
6서클 마스터를 필두로 한 마법사들의 수준도 훨씬 높았다.
그뿐인가. 병사들의 수준도, 훈련 상태도 토벌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데 팔켄하임 후작이 잡혀 버리니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토벌군이 조롱과 야유를 던져도 손쓸 방도가 없었다.
후작군 지휘관들이 급하게 고디프 백작 주변으로 모였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협상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 싸울 순 없지 않습니까?”
“저놈들이 후작님을 풀어 주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항복하면 우리가 다 죽을 겁니다. 항복은 안 됩니다.”
다들 처지가 난감했다. 팔켄하임 후작을 무시하고 싸울 수도 없고, 항복해서 목숨을 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디프 백작이 고개를 숙이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저 미친놈이 기어코…….”
토벌군은 분명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놈은 이미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 과감하게 토벌군을 미끼로 던지고 따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이겼다며 기뻐했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저 창의성 넘치는 미친놈이라면 더 이상한 수도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 했는데 말이다.
치욕적이고 분했다. 하지만 이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숨을 고른 그가 지셀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
“항복.”
“……그럴 순 없다.”
항복하면 정말 다 죽는다. 허무하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에는 싸우는 게 나았다.
하지만 싸우자니 후작군이 얼마나 자신의 말을 따를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후작이 죽었으면 당장 복수를 외치며 싸우련만, 아직 인질로 잡혀 있으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여유 있게 후작군의 상황을 지켜보던 지셀이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지금 양측이 싸우면 왕국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본 사령관은 절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왕국의 평화뿐이다!”
“…….”
그 말에 토벌군과 후작군 양쪽 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혼란을 만든 장본인이 저딴 말을 하다니. 너무 당당해서 자신들이 뭔가 착각한 거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지셀은 계속 말을 이었다.
“팔켄하임 후작만 법에 따라 처벌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면해 주겠다! 이대로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도록! 토벌군도 마찬가지로 해체한다!”
그 말에 토벌군과 후작군 모두 술렁이기 시작했다.
서로 끝장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대로 서로 물러난다면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셀이 고디프 백작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어때? 이쯤에서 끝내는 게. 후작이 잡혔는데 끝장을 볼 필요는 없지 않나?”
“…….”
“물론 끝까지 하겠다면 나도 사양하진 않지. 후작 목부터 그쪽에 던져 주고 시작하겠지만 말이야.”
고디프 백작이 한참 동안 지셀을 노려보았다. 저 말은 후작을 배신하라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유일한 숨구멍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수락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후작을 배신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 책임도 자신이 지게 되니까.
후작군 지휘부는 모두 고디프 백작만 바라보았다. 당장 후작을 구할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게 상책이었다.
어쨌든 후작의 목숨은 아직 붙어 있지 않은가.
으드득.
고디프 백작이 이를 갈았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자신의 명예는 땅바닥에 처박히는 꼴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저 건방진 용병 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때 후작군의 또 다른 초인, 그로지안 백작이 입을 열었다.
“내가 책임을 함께 나누도록 하지. 그렇게 합시다.”
“…….”
고디프 백작이 그로지안 백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로지안 백작은 나른한 표정으로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후작의 봉신이기도 하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서로의 존재를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로지안 백작은 이번 전쟁에도 고디프 백작이 총사령관이 된 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고디프 백작은 그로지안 백작의 속셈을 금세 눈치챘다.
‘이 기회에 자유를 찾겠다는 건가.’
팔켄하임 후작이 어이없이 몰락했다. 그 거대한 세력을 거느릴 사람이 없어졌다.
애초부터 충성심이 옅었던 그로지안 백작은 최대한 봉신들을 끌어모아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려 할 것이다.
또 다른 팔켄하임 후작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혹시 저 용병 놈은 이런 상황까지 다 예상한 걸까?’
고디프 백작은 갑자기 든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지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엉망이 된 판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토벌군을 없애고 다음 일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다들 병력을 아끼려고 몸을 사리지 않겠어? 여기서 병력을 잃으면 다음 권력자한테 먹힐 테니까 말이야.”
“…….”
“어차피 후작한테 진심으로 충성 바치는 놈들 없잖아. 다 알면서 왜 그래?”
“…….”
“그런 놈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이 작전을 시작하지도 않았어. 목숨을 걸고 팔켄하임 후작을 구하려고 할 테니까.”
“…….”
“그리고…… 정말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내가 오기 전하고 상황이 많이 달라진 거 같은데?”
“…….”
고디프 후작은 눈을 감았다. 반박할 말이 전혀 없었다.
후작이 잡히는 바람에 사기도 떨어진 데다, 봉신들은 최대한 자기 병력을 아끼려 할 터다. 그런 상황에서 토벌군과 맞붙으면 이기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다.
군사학을 모른다는 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저놈은 전쟁에 도가 튼 놈이 분명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고디프 백작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다른 초인이 책임을 나눠서 진다면 부담감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살기 위해 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했다.
그건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이 왕국은 수많은 세력이 싸우는 각축장이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한낱 용병단이 일으켰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고디프 백작이 힘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토벌군이 해체되지 않으면 우리도 다시 뭉치겠다.”
지셀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약속대로 토벌군도 해체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 후작령은 토벌군의 보상을 위해 왕실로 귀속될 거니까 그쪽은 건들지 말도록.”
지셀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된다. 어차피 앞으로는 다들 서로 견제하느라 뭉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고디프 백작은 착잡한 표정으로 팔켄하임 후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후작님이 안 계신다면…… 이 군대도, 토벌군과의 싸움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
팔켄하임 후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어떠한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눈빛으로 고디프 백작을 노려볼 뿐이었다.
만약 재갈이 없었다면 자신은 죽어도 되니 싸우라고 명했을 것이다.
사실 고디프 백작도 후작이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가 아는 후작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고디프 백작은 후작을 살려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안위를 꾀했다. 결국 그도 따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왕국의 절대 권력자가 없어졌다는 건…… 야심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으니까.
후작군이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머릿속에는 누구와 어떻게 손을 잡을지만 가득했다.
지셀이 예상했던 대로, 저들 중에 팔켄하임 후작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충성을 바치는 자는 없었다.
후작군이 멀어지자 곧 토벌군 사이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으하하하! 이렇게 이길 줄이야!”
“율리엔 용병단 만세!”
토벌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보급도 떨어져서 정말 죽다 살아난 중립 영주들이 모두 지셀의 곁으로 달려왔다.
특히 임시로 토벌군을 이끌었던 허비스 백작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해! 이 미친 작전을 성공시키다니!”
“뭐, 자주 해 본 거라서. 하하.”
지셀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이런 큰일을 하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에 앤드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비스 백작은 발레상트 백작을 보고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작이 우리 편이었을 줄은 몰랐소. 언제 율리엔 용병단과 친분을 맺고 이런 계획을 짰다는 말이오?”
“뭐…… 옛날부터 좀 알던 사이였달까요?”
“허어! 내 전혀 몰랐소이다. 이렇게 모두를 감쪽같이 속일 줄이야.”
“뭐…… 비밀 유지를 위해? 크흠흠.”
“왕실을 위해 역적의 밑에서 굴욕을 감내하고 있었다니! 백작이야말로 만고의 충신이었구려!”
“아이참……. 너무 그러면 좀…….”
발레상트 백작이 발그레 얼굴을 붉히고 괜히 땅바닥을 발로 툭툭 쳤다.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속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나 이러다가 왕국 영웅 되는 거 아니야? 진짜 완전 나 미쳤어!’
토벌군은 그렇게 한참 동안 싸우지도 않고 거둔 승리를 기뻐했다. 지휘부도 언제 싸웠냐는 듯 다들 웃고 떠들기 바빴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지셀이 말 위에 올라타 모두에게 외쳤다.
“이제 돌아가자! 우리의 승리를 모두에게 알릴 시간이다!”
“와아아아아!”
토벌군은 당당하게 철군하기 시작했다. 보급이 부족한 건 여전했기에 쫄쫄 굶어야 했지만 다들 그 정도는 웃으며 넘겼다.
그렇다고 계속 굶으면서 갈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거쳐 가는 영지에 약간의 도움을 청했다.
이번 일로 기분이 무척 좋아진 발레상트 백작이 그 일을 맡았다.
“아휴, 우리 애들이 착한데 굶으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조금만 주시면 돼요. 나중에 다 갚을게요.”
“어머, 우리 영주님 손이 너무 작으시다. 이걸 어느 코에 붙여요.”
이런 식으로 토벌군은 구걸 아닌 구걸을 하며 배를 채웠다.
그렇게 겨우 밥을 먹은 토벌군은 하나둘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제로 끌려온 병력이 계속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중립 영주들 또한 자신들의 군대를 돌려보냈다. 그들은 일부 호위 병력만 데리고 수도로 향했다.
딱히 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목숨을 걸고 참여했다.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작군을 돌려보냈기에 보상이 그리 크진 않겠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팔켄하임 후작이 몰락하고,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수도에 도착하자.
“와아아아아!”
“토벌군이 돌아왔다!”
“역적 팔켄하임 후작이 잡혀 왔다!”
“율리엔 용병단이 왕국을 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간 고위 귀족들이 수도에 머물며 수많은 패악질을 저질렀다. 당연히 그들은 모두 팔켄하임 후작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셀이 날뛰며 고위 귀족들을 전부 잡아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팔켄하임 후작까지 잡아 왔으니 수도에 살던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토벌군이 돌아오자 알렉스는 정말 헐레벌떡 마중 나왔다. 그의 옆에서 리오도 살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렉스를 보고 지셀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폐하! 신 아스티온! 역적의 무리를 물리치고 그들의 수괴인 팔켄하임 후작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사옵니다!”
그러자 지셀의 뒤를 따라온 영주들까지 모두 알렉스 앞에서 예를 취했다.
이런 예를 처음 받아 보는 알렉스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오오……. 다, 다들 수고했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알렉스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드디어 목숨의 위협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왕권을 되찾았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지셀이 팔켄하임 후작보다 더 괴물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같은 편이니 괜찮다고 믿을 수밖에.
“자자, 어서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를 나눕시다.”
지셀이 방긋 웃었다. 이제 논공행상을 할 차례다.
물론 항상 하던 대로, 대가는 야무지게 받아 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