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123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1123화(1123/1124)
제1123화
후우우우우.
라온은 별빛이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곳에 있었군.’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항상 검과 연관된 장소에 안배를 준비해 놓았었다.
석검, 만화공, 지그하르트의 수련동, 성검련, 검 문양이 새겨진 해저 동굴 등 검과 관련 있는 곳에 갈 때마다 발견할 수 있도록 본인의 과거를 새겨두었기에, 무검각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이 시검각이라고 생각해서 꼭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여기는 어디….’
주변을 둘러보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보인다. 익숙한 형태의 봉우리들을 보니, 검무산인 것 같았다.
‘다만 지금의 검무산은 아니야.’
무검각이 세워지기 전의 검무산.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오직 바위산만 존재하던 시기였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주려는 거지?’
라온이 지그하르트의 선조를 찾아서 시선을 돌릴 때 하늘에서 거대한 불꽃이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우웅!
금색 불꽃 속에서 지그하르트의 선조와 언제나 그를 따라다니는 여성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다만 두 사람은 언제나 멀끔하던 이전의
모습과 달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를 헤치고 온 듯 심각한 상처도 많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 것 같았다.
‘저 두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는 괴물이 있나?’
지금까지 본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를 따라다니는 동료 마법사 역시 초월을 한참 넘어섰을 정도의 강자인데, 왜 저런 상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후우우….”
보라색 로브를 두른 마법사가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지독한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난리가 났네.”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무언가를 계산하기라도 하는 듯 별빛이 출렁이는 검무산의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끝난 거지?”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는 제발 끝났다고 말하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래. 지금은.”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아직 무언가가 남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낮게 골랐다.
“지금은?”
보라색 로브의 선조가 눈매를 찌푸렸다.
“그럼 나중에 다시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녀는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발을 굴렀다. 마나가 담긴 발구름에 검무산이 뒤흔들리고, 바위들이 떨어져 내렸다.
“놈들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꼭 미래가 보이기라도 하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가 지팡이를 내리쳤다.
“지금 당장 다 지워버리자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녀는 같은 일을 반복하게 둘 수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후대의 아이들은 절대로 막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이곳에 온 거잖아. 대륙에서 가장 정기가 짙게 녹아내린 검무산에.”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품에서 새까맣게 타오르는 보석을 꺼냈다. 아니, 그건 보석이 아니라, 꼭 무언가의 비늘 같았다.
화아아아아아!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금색의 불꽃이 솟아나 비늘 위로 타오르는 흑염을 집어삼켰다.
찌지지지지직!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금빛 열기에 익어버린 비늘을 본인이 밟고 있는 땅에 쑤셔 넣었다.
바닥이 두꺼운 바위로 되어 있음에도 비늘은 칼날처럼 대지를 뚫고 들어갔다.
후우우욱.
다만 비늘에서 나오는 사이함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인지 미약한 악기가 검무산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부탁할게.”
지그하르트의 선조는 옅은 미소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참 시키는 것도 많다니까.”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가 짤막한 한숨을 내쉰 후 두 손을 교차했다.
그녀가 영창을 시작하자, 푸른빛의 마나가 솟아나더니, 비늘 때문에 갈라진 바위가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고
주변에 은은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검은 비늘에서 피어나던 악의도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후우.”
그녀는 무리를 한 듯, 처음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마워.”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를 부축하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하여튼!”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그의 부축이 싫지만은 않은 듯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저기… 이런 때 말해서 미안한데,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조금 더 있거든.”
“아, 진짜!”
지그하르트의 선조와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가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뚜우욱!
떨어지는 꽃잎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이 기억 속의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과거로 불려 온 자신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오오오오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초대 지그하르트 가주가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눈빛을 세웠다.
불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 그건 글렌을 아니,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듯 자신을 똑 닮아 있었다.
“이제 머지않았다.”
지그하르트 선조는 보라색 로브의 마법사가 아닌, 자신을 똑바로 인지하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믿는다.”
가슴을 울리는 듯한 지그하르트 선조의 청아한 목소리를 끝으로 라온이 두 눈을 떴다.
손에 들고 있었던 무명의 책자에 본래 존재하던 글자들이 지워지고 새로운 글귀가 돋아난다.
검술서가 되찾은 본래의 이름.
그것은 무량시검이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검술이야?”
잊고 있던 마르타의 목소리가 현실감을 깨운다. 기억의 재생이 끝나고, 다시 시검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네놈, 또 무얼 보고 온 것이냐!
라스는 왜 맨날 육체를 두고 영혼만 나가냐며 미간을 찌푸렸다.
-본왕은 네놈의 몸을 지키는 개가 아니라고!
녀석은 이상한 짓 좀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미안.’
라스에게 두 손을 모아서 사과한 후 시검각의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비늘은 찾아서 꺼내야 하는 게 아니야.’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봉인이다.’
*
*
*
라온은 시검각에 있는 책을 모두 독파하여 훗날 만검의 경지를 올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시검각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악검후 브리지트가 피식 웃었다.
“찾던 무학서가 없었던 모양이지?”
그녀는 말했듯이 시검각에는 특이한 것들만 있다며 턱을 까딱였다. 시검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뇨. 찾았습니다.”
라온이 선조의 기억과 그가 남긴 무량시검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시검각에 들어간 김에 다른 책들도 모두 읽고 나와서 오래 걸린 거죠.”
시검각에 존재하는 모든 무학서를 전부 다 읽고 나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뭐, 뭐…?”
브리지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다, 다 읽었다고? 그 안에 있는 무학서를 전부?”
그녀는 자신이 강해져서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예. 다 읽어보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외웠습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브리지트는 그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빠르게 나온 거라며 격하게 숨을 들이켰다.
“라온 님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희극제가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이 대가리 괴물들은….”
브리지트는 머리가 나쁜 본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악검후님. 혹시 이 무검각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서 무검각의 대지를 가리켰다.
“이 밑? 밑은 검무산이지 뭘 물어.”
브리지트는 뭐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라온은 말없이 브리지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뜻이 아닌 것 같네요.”
희극제가 라온의 기파를 느끼고,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 무검각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 물어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녀가 가느다랗게 조인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너, 시검각에서 무얼 보고 왔지?”
브리지트가 손끝에 힘을 준 채 라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늘까지는 몰라도 무검각 아래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꼭 지켜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선조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기에 두리뭉실한 말을 꺼냈다.
“너는 참으로 특이한 놈이야. 시검각보다도 더.”
브리지트가 눈매를 깊게 찌푸렸다가 손을 내렸다.
“네 말대로야. 검무산에는 무검각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게 존재해. 그게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무검각이 다른 이름이었을 때부터 전해 내려왔지.”
그녀는 언제부터 그런 의무가 전해져 내려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며 책상을 툭툭 쳤다.
“의외네요. 악검후님은 그런 전통을 지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라온이 인상을 구긴 악검후를 보며 옅게 웃었다.
“원래는 안 지켰어. 어느 문파에나 한두 개씩
내려오는 고리타분한 전설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브리지트가 희극제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리엘이 정말 무검각 아래에 괴기스러운 무언가가 묻혀 있다는 걸 알려줬거든.”
그녀는 전설이 사실일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도 말씀하셨고, 선조들의 유언이니 나름 지켜주려고 하는 거지.”
브리지트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라온이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받으세요.”
지그하르트의 선조가 시검각에 남기고 간 무량시검을 브리지트에게 내밀었다. 이미 다 외웠기에 넘겨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게 뭐… 어?”
브리지트는 제 손으로 한 장씩 책을 넘기다가 눈을 부릅떴다.
“이게 시검각에서 나온 거야?”
그녀는 아예 처음 보는 검술서라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예. 검무산을 지키라는 지시를 내린 사람이 남겨둔 선물 같습니다.”
라온은 무량시검을 통해서 검무산에 무언가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브리지트가 무학서를 넘기다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거 정말 나한테 줘도 돼? 보통 검술서가 아닌데?”
그녀는 최상승 이상의 검술서 같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신 이곳을 잘 지켜주세요.”
라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브리지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지니고 있던 호감이 급격할 정도로 커지는 게 느껴졌다.
“좋아.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지켜줄게!”
브리지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녀에게 계속 얻어맞는 책상이 조금 불쌍했다.
“자, 그럼 우리 이야기도 해야죠.”
희극제가 옅은 미소를 그리며 라온과 브리지트의 옆으로 다가왔다.
“신주오령. 아니, 이제는 둘만 남은 백경과 무검각은 동맹 세력의 자격으로 라온 지그하르트를 지그하르트의 후계자 후보로 지지하겠습니다.”
그녀는 라온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하얀 고래의 표식을 내밀었다.
“자, 여기.”
브리지트도 미리 준비했다는 듯 책상 위에 있던 목검의 표식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백경과 무검각의 표식을 두 손으로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만난 곳 중 가장 큰 세력의 지지였기에 손에 납덩이를 들고 있는 것처럼 묵직함이 느껴졌다.
“두 분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조만간….”
라온이 몸을 돌려서 정면에서 희극제를 바라보았다.
“벌어질 전쟁에 참여해달라는 말씀이시겠죠?”
희극제는 자신의 의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함께해야죠. 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당연히 전쟁에 참여하겠다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미래를 말하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 심마를 전부 다 떨쳐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브리지트와 브리아나에게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희극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심마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이전의 얻은 깨달음을 모두 체화시킨 것 같았다. 그녀를 제대로 인식하자 확연한 강함이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 내가 전쟁터에 가서 다 쓸어버릴 테니까.”
브리지트는 본인에게 맡기라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아뇨.”
라온이 브리지트에게 손을 저었다.
“브리지트 님은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왜?”
브리지트가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라온이 무검각 아래의 검무산을 보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이곳도 전쟁터가 될 것 같으니까요.”
*
*
*
라온은 희극제와 브리지트의 표식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한두 곳 정도만 더 가면 시험에는 통과할 수 있겠군.’
하분 성, 세이피아, 아리안 가문 그리고 백경과 무검각의 지지까지 얻었기에 이제 두어 곳 정도의 지지만 받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두 번째 후계자 후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망나니 성녀가 있는 신성 왕국이 가장 좋겠지.
오황에게도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발카르, 오웬, 야수연맹 어디로 가도 괜찮지만, 그들은 이번 시험에 끼어들 수 없기에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남아 있는 곳 중에서는 신성 왕국이 가장 세력도 크고, 무력으로도 강할 것 같았다.
라온이 다음 목적지를 결정하고 표식을 품에 집어넣을 때였다.
타다닥!
숙소의 창문 위로 어린 제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렉타르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보낸 제비였는데, 녀석의 날개와 이마에 붉은 피가 굳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라온이 다급하게 창문을 열고 제비를 손에 받았다.
“괜찮은 거냐?”
피이.
제비는 본인의 피가 아니라는 듯 멀쩡하게 날개와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럼….”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제비의 다리에 묶여 있는 편지를 펼쳐보았다.
렉타르의 답장이다. 그는 자신에게 대견하다는 칭찬을 해주었고, 본인은 지금도 성검련에 있고, 다른 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편지의 겉에도 붉은 핏물이 튀어 있었다. 암살자로 평생을 살아온 자신은 알 수 있다.
이건 제비와 싸운 몬스터나, 짐승이 아니라 사람의 피였다.
“지금….”
라온이 어린 제비를 보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