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A급 랭킹전 (1)
리에트는 곧장 대기하고 있던 힐러에게로 향했다. 포션을 썼다곤 해도 몸 어딘가 자기도 모르는 피해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치유 스킬까지 받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자기 몸을 제대로 관리하는 건 전투계 헌터의 기본이니까. 물론 일반인도 몸 관리야 하는 편이 좋고.
나도 운동 좀 해야 하는데.
하늘 위의 드론들이 철수하고 우리도 경기장… 이라기보단 지진이 수차례쯤 지나간 황무지를 벗어나려는데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내 휴대폰이었다. 전화를 받아 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 받았다, 받았어!] [유진아! 별문제 없었어?] [주님, 노아 씨 근처에 있어요?] [방금 봤어요, 이긴 거! 노아 씨 완전 최고!]도하민에 명우, 석하얀, 김민의까지.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편집 관계상 송출은 조금 늦게 되다 보니 티브이에서는 방금 경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우선 명우에게 당연히 아무 문제 없었다고, 완벽했고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석하얀 씨네는 웬일로 일어나 있네요?”
[내일을 당겨 오늘을 살게 해 주는 특제 조합 에너지 드링크 덕분이죠!] [노아 씨는요? 다친 덴 다 치료했어요?]석하얀의 팀원 중 하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다고 대답하며 휴대폰을 노아에게 건네주었다. 축하한다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노아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빌딩 쪽 사람들이랑 여전히 사이좋구나.’
하네스 부탁하러 간 날 이후로 명우와도 빠르게 가까워졌다. 정확히는 리에트와의 가족사를 들은 명우가 안쓰럽게 여기며 챙겨 준 쪽이었지만, 노아도 싫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약간 우러러보는 기색이랄까. 하네스에 이어 발톱씌우개까지 뚝딱 만들어 주자 존경의 눈빛이 짙어졌었지.
전화 소리를 대충 듣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난리였던 모양이었다. S급 헌터의 전투가 티브이로 처음 중계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축제분위기였던 듯했다. 국제가 아닌 국내 규모니 원래의 랭킹전 때보다는 반응이 덜할 줄 알았는데. 하기야 회귀 전 랭킹전이 시작되었을 땐 헌터의 개인적인 전투나 공략이 이미 방송을 여러 번 탄 뒤였으니 최초는 아니었다.
‘윤윤도 있었으면 꽤나 좋아했을 텐데.’
문득 도깨비왕이 떠올랐다. 소식도 없고 SNS 업뎃이 끊긴지도 제법 되었고. 괜찮은 건가 걱정이 들었지만, 이쪽으로선 찾아볼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도하민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고 찾아 달라 했지만 사용한 지 1년 미만인 번호라 하였다. 심지어 신출귀몰한 스킬 탓에 국내에서 있어도 종적을 잡기 힘들건만 갈수록 고립되어 가고 있는 중국에 가 있다.
‘S급에 공간이동과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윤윤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 모르는 일이다. 해파리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을 거고. 윤윤도 종족은 다르지만, 태생 S급이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접촉하려 들지 않았을까. 스킬만 봐도 쓸모가 많잖아.
‘쉽게 넘어갈 성격은 아니다만 걱정되네.’
일단 계약서는 멀쩡하니 살아는 있을 거고. 목 빼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꾸준히 올라오던 SNS가 멈춘 것이 최석원이 사망하기 전 즈음이다. 내가 성현제 집에서 해파리와 만난 다음 날부터였으니 더욱 신경 쓰였다.
“형, 다친 덴 없어? 어지럽진 않고?”
“아저씨! 괜찮아요?”
그때 유현이와 예림이가 다가와 물었다. 아주 멀쩡한 건 아니지만 멀미약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마나가 반 이상 소모되고 리에트에게 선생님 스킬을 억지로 쓴 것 때문에 두통이 좀 생긴 정도다.
마나포션 꺼내 들고 독 저항 끈 김에 진통제도 먹을까 하다가 관뒀다. 괜히 애들 걱정할라.
“약간 피곤할 뿐이야. 도와줘서 고맙다, 유현아. 예림이 너도 수고 많았어.”
“저도 중계 말고 시합으로 방송 나가고 싶어요! S급 랭킹전도 열리겠죠?”
“열려도 넌 못 나가.”
내 말에 예림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다.
“왜요?”
“미성년자잖아. 애들 싸우는 걸 어떻게 중계하겠냐.”
“노아 오빠도 아직 열아홉 살인데!”
“생일 지났어. 그리고 노아 씨 현 국적상으론 성인이야.”
“그, 그래도 헌터는 법 다르게 적용된다 그러지 않았어요?”
“그건 일부분이고 랭킹전 같은 경기에도 해당되는 건 아니지. 헌터라 해도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단다.”
던전 공략도 목숨 걸고 싸우는 건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변명이 궁색해지지만, 그래도 그건 생존을 위한 일이다. 반면에 랭킹전은 어디까지나 오락이며 스포츠의 일종이었다. 크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싸움판에 각성자라고 해서 미성년자를 밀어 넣는 건 당연히 안 될 짓이었다. 심지어 그런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되기까지 하니 반대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랭킹전은 회귀 전에도 만 18세 이상만이 참가 가능했고 이번 A급 랭킹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소영 씨 생일 아직 안 지났던가. 던전에서 일찍 나왔어도 참가 못 했겠는걸.
“억울해! 내가 5년만 빨리 태어났어도!”
“4년이 아니라?”
“이왕 빨리 태어날 거 길드장이랑 맞먹으면 좋잖아요. 내 생일이 더 빠르니까 내가 누나겠네.”
예림이가 유현이보다 누나라니, 상상이 잘 안 간다. 유현이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비슷한이 아니라 비웃는인가.
그때 통화를 마친 노아가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유진 씨, 예전에 저는 누님이 무서워지지 않을 때까지 곁에 있게 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아, 네. 그랬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냥, 다른 이유 없이 계속 곁에 머물고 싶어요.”
“저야 환영이죠. 노아 씨로부터는 많이 도움받고 있으니까요.”
내가 승낙할 줄 알았다는 듯이 노아가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는 괜찮지만, 누님이 한국에 있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혹시 가능하다면 저도 유진 씨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될까요?”
“네? 그야…….”
“…저 망할 도마뱀이 기껏 도와줬더니.”
된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유현이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원래의 내 귀에는 닿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직 노아에게 선생님 스킬을 쓴 상태였다. 덕분에 그 으르렁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를 뚜렷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당황하자 노아가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한유현 헌터, 부탁할게요!”
…아니 왜 유현이한테? 심지어 아예 유현이 앞으로 다가가 간절히 호소하기 시작했다.
“거슬리지 않도록 사람 모습 말고 전용화하고 있겠습니다!”
“…뭐라고?”
“소형화나 유체화 스킬 어떻게든 구해 볼게요! 지금도 최대한 줄이면 사람일 때와 큰 차이 안 나요. 구석에서 얌전히 있을 테니까요.”
설마 소형화 스킬을 가지고 싶다는 게 저것 때문이었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나서려는데 예림이가 내 팔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 오빠가 해결하게 놔둬요.”
“하지만.”
“노아 오빠는 잘하고 있는 거예요. 한유현 물리치지 않으면 아저씨가 허락해 봤자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날걸요? 밤중에 납치당해 해외 어딘가로 버려질지도 몰라요.”
노아야 비행에 은신 스킬까지 있으니 어디 버려지든 잘 찾아오겠지만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지.
“…유현이가 그렇게까지 할까?”
“하고도 남아요. 저도 홍콩 때 콧대 확 눌러 놓지 않았더라면 아저씨 집에 들어가기 힘들었을걸요.”
“박예림, 헛소리하지 마.”
유현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어 노아를 돌아보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소형화 상태라면 허락받아야 할 상대가 따로 있습니다.”
“네? 누군데요?”
“피스입니다. 피스가 받아들이면 저도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소형화 스킬부터 얻어야 하겠지만.”
…피스라니. 노아 씨, 정말로 그런 식으로 제 집에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바로 조금 전에 리에트로부터 당당히 독립 선언했건만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어졌지만.
‘노아 씨가 스스로 원하는 거니까.’
게다가 그는 어쨌든 아직 어리다. 방식이 좀 당황스럽긴 해도 새로 있을 곳을 스스로 원하고 노력해 들어오는 건 긍정적인 일일 터다. 한 번의 계기로 허물이라도 벗은 양 곧장 홀로 서는 어른이 될 수는 없으니까.
애초에 사람이 단숨에 세상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그건 그냥 인간을 뛰어넘어 득도하는 거고. 좀 더 좋은 곳으로, 나은 방향으로 평생에 걸쳐 하나하나 발전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노아는 아직 어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도 주위에 있다. 느리게 성장해도 괜찮다. 전에 그가 말한 것처럼 귀여움 받으며 보호 속에 안주해도 괜찮다.
어차피 영원히 그대로이진 않을 테니까. 언젠가는 전용화가 아닌 인간 상태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그 전에 새로운 둥지를 찾아 당당히 떠나갈 수도 있다.
‘…소형화 스킬은, 역시 패륜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피스는 착하니까 받아들여 주겠지. 여태까지도 다 넘어가 줬으니까. 노아 씨가 소형화되면 진짜 귀엽겠다.
“노아 오빠 소형화하면 엄청 귀여울 거 같아요.”
예림이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인걸.
“소영 언니가 훔쳐가지 않게 조심해야겠는걸요. 아직 포털 키 그대로잖아요. 세성 길드장 거 빼돌려서 밤중에 침입하고도 남을 거예요, 틀림없이.”
설마, 싶었지만 그럴 듯도 했다. 참고로 포털 키는 협회 측의 반대 탓에 아직 교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성도 시큰둥했고 브레이커는 길드장 부재라고 답변을 미뤘고.
예전이야 내가 집안에서 뭔 일 당하면 포털 키 없인 집 벽 뚫고 들어와야 하니 필요했다 쳐도, 지금은 S급 동거인이 둘이나 생겼잖아. 유현이와 예림이가 둘 다 공략 들어가면 그때나 잠깐 세성이나 협회… 보다는 송태원에게 열쇠 맡기면 되는데 왜 자꾸 안전 타령인 건지.
“다른 헌터들은 돌려보냈으니 은신 풀어도 되네.”
어느새 다가온 성현제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힐러와 A급 헌터들이 장비들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새로 정비도 해야 할 테니 훈련소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리에트도 같이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이봐요, 세성 길드장님.”
은신 스킬을 해제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구경 잘 하셨을 텐데, 어때요? 생일 파티 초대장 한 장 더 추가하실 생각 드셨습니까.”
우리 노아 무시하지 마라. 스킬만 먹히면 댁도 순식간에 노아보다 약해질 수 있다고. 제아무리 잘나 봤자 스탯 반토막 나면 A급 수준 되지 않겠냐.
내 말에 성현제가 유현이에게 받아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어… 지금 모습은 좀 그런가. 유현이 쟤도 노아한테 잘 말해 주지 그런 적 없다고 벽을 치네. 그래도 피스 허락받으면 된댔으니 반쯤 받아 준 거 아니냐.
“나쁘진 않았지.”
“너무 짠데요.”
“지금의 노아에게 내 인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나.”
“그건, 아니군요.”
평생을 묶여 있던 리에트로부터도 벗어났는데 이제 와서 성현제를 신경 쓸 리 없겠지. 능숙해진 날갯짓으로 날아오른 이상 새장이 아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둥지에 내려앉을 것이다. 한때 잠깐 발목 잡혔던 세성 길드장이라 해도 이제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할 터였다. 노아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확실하게 손해 본 겁니다, 세성 길드장님. 우리 노아 씨가 얼마나 다양하게 능력이 좋은데.”
“더 손해 보지 않도록 앞으로 잘해야겠군.”
노력하시라고 대답하려다가 노아가 아닌 나를 향한 시선을 눈치채곤 입을 다물었다. 아니, 나는 됐고. 성현제로부터 한 걸음 크게 떨어지며 노아에게 말했다.
“노아 씨, 축하하는 뜻으로 저녁 제가 살게요! 다 같이요, 식당 하나 전세 내죠!”
빌딩 쪽 사람들도 다 함께 말이다. 역시 축하하는 자리는 떠들썩해야지.
상급 각성자 전용 훈련소로 돌아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협회 사람이 A급 랭킹전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이어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경기장 상태도 엉망이거니와 바로 A급 경기를 시작하기에는 스케일의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었다.
A급 헌터의 전투가 시시한 건 절대 아니지만 산을 부수고 땅을 뒤집다 못해 공중에 날릴 정도는 안 되지. 애초에 그래서 협회도 개막전이 아닌 폐막전을 원했지만 리에트가 첫 경기를 요구해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시청률이며 반응은 대박이라 빛바래게 된 A급들을 제외하면 다들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저녁의 축하파티에는 피로를 회복한 강소영과 리에트도 참석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세성 길드장도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내가 자기 있는 자리에서 다 같이 저녁 먹자고 말하긴 했는데 그래도 진짜 오냐.
덕분에 오랜만에 내 카드 쓰려다가 이번에도 그냥 성현제 카드로 긁었다. 좋은 데 잡았더니 왕창 나왔지만 긁힌 자국도 안 나겠지.
그리고 다음 날, 어제에 이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랭킹전 본게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