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40
338화 처음 뵙겠습니다 (2)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한 장소로 가고 싶었지만, 서경훈과 마주 앉은 곳은 다름 아닌 옥상 휴식공간이었다. 근처에는 조용히 대화를 나눌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고 멀리 나가기에는 경훈이 형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짙었다. 너무 난데없는 일이긴 하니까.
건물 옥상 구석의 휴식처에는 나름 화단에 나무도 몇 그루 심어 놓았다. 날이 많이 선선해지긴 했지만, 아직 에어컨 실외기 몇 개가 윙윙 돌아간다. 주로 담배타임용으로 쓰이는지 테이블 옆의 재떨이가 반쯤 찼다.
노아는 S급인 만큼 기세를 줄인다 해도 비각성자로서는 부담되는 상대이기에 옥상 입구에서 타인의 출입을 막아 달라 부탁했다. 내 안전을 걱정하긴 했지만 가까운 거리인 데다가 비각성자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 서경훈은 나보다 스탯 등급이 더 높긴 했지만, 지금은 각성 전이니까.
“기승수 사육소 소장 한유진입니다.”
정식으로 다시 소개하며 명함을 건넸다. 형과 처음 만난 건 비정기 던전 공략팀에서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이라 결국 싸움까지 났었다. 얼굴에 멍 달고 같이 술 마셨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명함을 건네자니 기분이 묘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 여기까지 저를 찾아오셨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서경훈이 당혹감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별달리 특별한 것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혹시나 싶어 떡잎 스킬을 사용해 보았지만, 아직 시스템 정상화 전인지 상태창이 제대로 뜨지 않았다.
“추천을 받은 것부터가 의문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솔직히 대답드리자면 뛰어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그쪽이 잘나서 찾아온 거 아니라는 소리에 서경훈이 오히려 안심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비어 있는 자리는 단순한 사무직이니까요. 상대하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을 뿐 기본적인 업무는 어렵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냥 동물 사육&훈련소 같은 거다. 그것도 소규모지. 오가는 금액이 클 뿐 거래 수 자체는 적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내로라하는 인재보다도 더 구하기 힘든 조건이죠. 가시화된 능력이 아니니까요.”
단순히 일 잘하는 사람이야 사실 구하기 어렵지 않다. 원하는 조건을 얼마든지 맞춰 줄 수 있으니까. 반면에 내가 믿을 수 있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은 대체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답은 시간뿐이었다. 오랜 시간 직접 겪고 함께 지내 봐야 감이 잡히는 장점인 것이다.
“…저를 믿으실 수 있다는 겁니까?”
“서경훈 대리님을 추천해 준 사람을 믿는 거지요.”
서경훈이 대체 누가 자신을 추천한 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게 바로 접니다. 제가 추천했어요.
“어쨌든 저는 서경훈 대리님을 채용하고 싶으니 조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기본급은 월 200입니다.”
서경훈이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었다. 이렇게 찾아와서 월 이백이라니 어이없을 만도 할 것이다. 그것도 상급 헌터 관련이면 돈 잘 벌기로 유명한데 말이다.
“그리고 위험수당이 월 천입니다.”
“…예?”
“좀 적지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서경훈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상급 몬스터와 상급 헌터가 상주하고 드나드는 곳이니만큼 부족하다 싶을 수 있겠지만 일반 직원에 대한 안전은 최대한 신경 쓸 생각입니다. 상급 몬스터는 일대일로 대면할 일 자체가 없을 테고 상급 헌터는 철저히 주의를 해두겠습니다.”
어차피 사무실은 사육소 건물이 아닌 빌딩 쪽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마주치는 건 상급 헌터들뿐이다.
“그래도 사고가 없기는 힘드니, 그에 따른 보상도 물론 있습니다. 상급 헌터에게 부당한 위협을 당하셨을 경우 A급은 오백, S급은 이천의 위로금을 지급해 드립니다. 단순한 위협을 넘어 부상을 입으셨을 경우 치료비 전액 지원은 물론이고 A급은 오천, S급은 이억의 위로금을 지급해 드립니다. 물론 상대 헌터에게도 제재가 들어갑니다. 사망 시에는, 음.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당연히 철저한 보상을 해드릴 거고요.”
A급이고 S급이고 내 직원은 못 건드린다. 확확 뛰는 돈의 단위에 서경훈이 뭐라 말을 못 잇고 나를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사대보험이야 뭐 기본이고요. 아, 상급 헌터와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일이 잦은 직장을 다니게 되면 보험가입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비도 전액 지원해 드립니다. 덧붙여 식대는 따로 나가며 하루 10만 원입니다.”
“하루, 요? 일주일이 아니라요?”
“먹고살려고 일하는 건데 잘 먹어야지요. 뭣보다 식사의 질이 높아야 건강해지고 건강하면 일의 능률도 올라가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식대 남으면 영양제나 보약 같은 거 챙겨도 좋고요. 아무튼 먹는 게 남는 겁니다.”
또 뭐가 있지. 아, 그거.
“다만 교통비는 지급이 안 됩니다.”
“그 정도야…….”
“대신 사택을 제공해 드립니다. 직장에서 집이 멀면 출퇴근하기 힘들잖습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집에서 가까운 직장이 최고죠. 근처 한번 돌아보시고 마음에 드는 매물로 고르시면 바로 처리해 드립니다. 그렇다고 펜트하우스, 뭐 이런 것까진 안 되고요 세대원 수에 따라 20평형에서 40평형대까지 가능합니다.”
“예? 그게, 그, 러니까…….”
“전세나 월세는 이사 다니기 귀찮으니까 이왕이면 매매로 찾아보세요.”
대충 이런 조건이랍니다.
“기본급도 당연히 오릅니다. 기본급과 사택 제공 외의 조건은 비밀유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기본급은 일부러 낮게 책정했다. 사택을 무료로 주니 적은 금액은 아니다, 싶을 정도로만. 일반 사무직이라 해도 직장이 직장이니만큼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연봉을 궁금해들 하겠지. 얼마 받아요, 하는 물음에 월 이백이요, 하면 애매하다. 서경훈 입장에서는 적은 편이기도 했다. 거기에 금방 오른대요, 와 사택 무료가 붙으면 어, 괜찮은데? 가 된다.
그 정도가 적당했다. 대형길드 근처 집값이 비싸긴 하지만 돈으로 직접 주는 게 아니면 아무래도 평가 절하되니까. 별다른 능력도 없는데 갑자기 억대 연봉 받게 되었다, 하면 백 퍼센트 이상한 인간들이 꼬이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많이 받으면 그만큼 중요한 자리겠거니 싶어져서 더 귀찮아질 테고.
또한 위험수당이나 위로금은 알려진다 해도 설명만 잘하면 그렇게 받을 만하네, 싶기도 한 명목이었다. 길 덜 든 몬스터도 돌아다니잖아, 그러니 많이 받을 만하지. 목숨이 걸렸는데! 하면 어 그런가 싶을 테니까. 실제로야 그런 위험 없지만.
“거절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이로군요.”
서경훈이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말했다.
“얼핏 좋아 보여도 의외로 버티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상급 헌터들과 자주 마주친다는 게 비각성자에게는 제법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거든요. 거기에 특수한 직장이다 보니 처음엔 관심도 많이 받을 테고요.”
물론 경훈이 형은 문제없을 것이었다. 헌터 일에도 비교적 쉽게 적응한 데다가, 무엇보다도 내 편을 들어 준 사람이니까. 같이 다니다가 괜한 위협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중급 헌터는 물론 상급 헌터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 셈이었다.
“잘리지만 않는다면 못 버틸 거야 없지요.”
긴장이 좀 풀렸는지 서경훈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조였지만 그가 실제로 잘렸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웃기 힘들었다. 정확히는 회사가 반쯤 망한 탓이긴 했지만.
서경훈에게는 모친과 나이 차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었다. 집안의 가장으로 갑자기 직업을 잃게 되자 구직 도중 혹시나 싶어 각성센터를 찾아갔다가 E급 각성자 판정을 받았다. F급도 아닌 E급이니 헌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리고.
“사택은… 꼭 사육소 근처여야 합니까? 제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늦둥이라 아직 고등학생이거든요. 내년에 대학을 갑니다. 가능하면 동생 학교 근처로 이사했으면 싶어서요. 대학교도 그렇고요.”
“네, 물론 괜찮습니다. 하지만 대학교는 통학 거리가 좀 멀더라도 대형길드 근처로 이사하는 게 좋아요. 던전이 안전해졌다 해도 혹 모를 일이니까요. 물론 사육소 근처가 가장 좋고요. 아무래도 관계가 있으면 만약의 사태 때 더 잘 챙겨 주지 않겠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겠군요.”
“동생분과 사이가 좋으신 모양이에요.”
“예.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탓에 더 그렇죠.”
서경훈이 조금 멋쩍어하며 말했다. 그의 동생 경하는 나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한 소장님께서도 형제간의 우애가 무척이나 돈독하시다 들었습니다.”
“…네? 그, 그렇죠.”
무심코 더듬거려졌다. 목 안쪽이 울컥 뜨거워졌다. 그렇게 고생해가며 키워 줬는데, 진짜 너무하다고 내 편 들어주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유현이한테 미련 버리지 못하는 내게 그냥 잊으라 말하면서도 이해한다고 말해 줬었다. 자기도 그랬을 거라고.
“…사이좋아요, 정말로.”
동생 걱정하거나 아닌 척 감싸기라도 하면 네 처지를 생각하라며 화내면서도 안타까워해 줬었는데. 그랬던 형 앞에서 사이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눈시울도 괜히 붉어졌다.
“제 동생이, 제게 피해가 갈까 봐 3년 넘게 떨어져 지냈거든요. 아마 들으셨겠지만요.”
“예, TV에서 봤습니다.”
“전 까맣게 몰라서 원망도 좀 했었는데, 진짜 소중하게 키운 동생이라서요. 헌터가 된다고 했을 땐 정말로, 힘들었어요. 아직 어린데, 성인도 아닌데,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니 정말로…….”
“…저도 그랬을 겁니다. 동생이 성인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말렸을 거고요.”
그에게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일 텐데도, 그런데도 회귀 전과 똑같이 말해 주었다. 초면인 사람 앞에서 신세 한탄하며 눈물까지 보이는 거 진짜 이상한 꼴일 거 아는데도. 그럼에도 참기가 힘들었다. 회귀 전에 사실 다 오해였고 동생과 화해했다고 말해 줬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겠지.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면서 술잔을 채워 줬을 것이다.
“마음고생 정말 많이 하셨겠습니다.”
“…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점점이 얼룩이 생겼다. 웃기는 꼴인데, 뭐 하는 건가 싶을 텐데. 민망하고 당황스러울 텐데.
“…여기.”
손수건이 건네졌다. 익숙했다. 경하가 처음 알바하고 사준 선물이라고 했었다. 내가 빨아서 돌려주겠다고 했다가, 형이 아니라 동생에게 돌려주게 되었던 손수건이다. 장례식장에서.
“…감사합니다. 씻어서 돌려드릴 테니까, 꼭 직접 받아가세요.”
“사육소로 출근하라는 말씀이시네요.”
웃으며 받는 말에 어떻게든 마주 웃었다. 목 안쪽은 여전히 꽉 막히고 화끈거렸지만 속은 묶이고 꼬여 있던 매듭 하나가 풀린 것처럼 편안해졌다.
“이거 되게 민망하네요. 채용하러 와선 못난 꼴이나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러실 수도 있죠.”
“그, 자세한 건 해연길드 인사팀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지금 사육소 업무도 해연길드에서 맡아 주고 있어서 기초 교육도 그쪽에서 받게 되실 거예요. 여기 인사팀 번호입니다. 언제든지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예.”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하고 싶은걸요.”
그러면야 환영이라며 미소 지었다. 준비한 선물도 전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아직 만날 사람 여럿인데 눈물 자국 남았나. 어디 들어가서 세수라도 할까.
“…괜찮아요?”
차로 돌아가자 노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들렸겠구나. 악, 쪽팔려!
“괘, 괜찮아요. 집안 사정이 비슷하다 보니 좀 울컥해진 것뿐이에요.”
어린 동생 돌본 거 외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말이다. 부끄러워져서 괜히 피스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아무튼 시작은 좋았다. 그렇게 많이 이상했던 거 같진 않고. …이상하긴 했겠지만.
두 번째로 향한 곳도 작은 회사였다. 이유신은 신입도 데려와도 된다는 내 제의를 듣곤 플라스틱 파일에 매직으로 커다랗게 사표라고 쓰곤 사장 면상을 향해 내던졌다. 구린 꼴 보기 질려 진작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애 두고 가기 걱정되었던 거라며 가운뎃손가락도 올려 줬다.
헌터일 때도 저 신입, 김혜원과 같이 다녔었다. 그 밖의 사람들도 잘 챙겨 줬었고. 나한테 이름도 비슷한데 너 버린 동생 잊고 우리끼리 남매 하자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애견카페였다. 알바생인 최수련은 내 말을 듣고 무척이나 당황하면서도 그럼 피스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스를 보여 주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최수련은 군대 다녀와서 휴학 중이었다.
F급 보조계로 나와 같이 바닥에서 구르다가 C급 치유 스킬 얻고 소형 길드 정도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형을 두고 어떻게 가냐던 녀석이었다. C급 치유 스킬 하나로는 하급 힐러도 못 되지만, 하급 던전에서는 무척이나 환영받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억지로 떼어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떠날 생각을 안 해서, 좋게는 헤어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럴 일 없으니까.
“여기 맞네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근처에 차를 세웠다. 계속 차에서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피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곤 내렸다. 처음에는 눈물바람이었지만 한 명, 두 명 아는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4층이에요. 여기도 엘리베이터가 없네요.”
오늘 많이 걷는다. 운동 안 해도 되겠다. 원룸에 가까운 작은 평수 아파트에 평일 대낮이라 주위는 조용했다. 수업 없다곤 들었는데 집에 있는지 모르겠네.
“유진 씨.”
호수가 떨어져 나간 문이 많아 복도에 서서 세고 있는데 노아가 말을 걸어왔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얼굴에 그늘이 짙었다.
“왜 그러세요?”
망설이던 노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따라오지 말걸, 그랬어요.”
“…네?”
어, 뭐지. 좀 걷긴 했지만 힘들었을 리는 없는데. 노아 씨한테만 너무 운전을 시켰나. 하지만 내겐 운전면허가 없었다. 있었으면 당연히 교대해 줬지. 아니면 뭐 다른 문제가…….
“명우 형 말대로 계속 피하기만 할 순 없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온 건데.”
반쯤 울먹거리며 노아가 말을 이었다.
“자꾸만 제가 더, 초라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