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18
416화 달이 떠오릅니다 (4)
“그래, 이러면 내가 자해할 이유가 없어지지.”
한유진이 식은땀에 살짝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은색 눈이 느릿하게 움직여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세 명을 바라보았다.
“방향도 보지 못했고, 시간도 충분히 지나 버렸고. 서울에서 김서방, 아니 성서방 찾기네. 김 씨보다는 드물긴 하겠다만.”
“시간 내로는 힘들걸요. 포기하세요, 아저씨!”
“모르지. 의외로 쉽게 발견될지도. 소리 없이 조용한 도시잖아. 성현제 씨와 합류 가능성이 있으니 송 실장님이 그리 멀리까진 가지 않으셨을 테고, 일단 내가 있는 방향은 아니지. 그리고.”
고개를 작게 까닥거리며 한유진이 말을 이었다.
“강 근처로도 가지 않았을 거야. 내겐 예림이네 스킬도 있으니까.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물이 많은 곳은 피하겠지. 강을 아예 넘어가면 너무 멀어져 버리니, 결국 역삼, 논현, 멀어야 서초에서 방배 정도?”
“그, 그래도 넓잖아요.”
“응. 맞아.”
한유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일견 부드럽고 상냥했다.
“그러니 순순히 보내 주고 호텔로 돌아가 있지 않을래? 애써 시간 끌 필요 없잖냐.”
하지만 박예림은 물론 한유현과 노아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꼬리를 달고 다닌다면 성현제와 송태원의 도주를 도와주는 꼴이었다. 따돌린다 해도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결국 쫓아와 방해하게 될 것이다.
“스킬은 최대한 아끼려고 했는데.”
S급 스탯을 지닌 화신체는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격 스킬은 체인질링의 힘이 사라지면 쓸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일부러 스킬 사용은 가급적 줄이고 몸과 아이템으로 대응하려고 했었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송태원, 심지어 지금은 성현제와 송태원의 조합이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뻐근해져올 정도였다. 한유진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는 수 없지.”
준비동작도 없이, 그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한유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세워 들었다. 차분히 늘어져 있던 예장 자락이 크게 흔들리고, 순간 가속의 힘을 더해 자신의 형과 맞부딪쳤다.
콰아앙!
아스팔트 바닥이 움푹 패며, 휘몰아치는 불길 아래 검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진득하게 흐르는 타르가 두 사람의 신발 바닥에 달라붙었다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 간다. 검을 맞부딪친 채 동생의 힘을 버텨내며 한유진이 거침없이 독기를 흩뿌렸다. 동시에 한유현의 검푸른 불이 독을 모조리 삼키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잘랑, 은빛 사슬들이 울리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한유현이 순간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사슬은 그가 아닌 박예림을 향해 날아들었다. 박예림이 순간이동으로 회피했지만 사슬은 달빛을 타고 흐르며 순식간에 그녀의 뒤를 쫓았다.
차디찬 안개가 흩뿌려지고 큼직한 물방울들이 박예림의 주위에 떠올랐다. 참방, 참방! 사슬이 물방울을 꿰뚫기가 무섭게 짜자작─ 물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얼음 구슬들을 매단 사슬의 둔중한 움직임은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박예림과 노아의 거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기민하게 알아챈 한유현이 한유진을 자신에게 붙잡아두기 위해 더욱 바싹 다가붙었다. 순간이동은 공간이동과 다르게 도중에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한유진을 건물 쪽으로 밀어붙여 이동 경로를 최대한 줄이려드는 그의 눈앞에,
“……!”
버들잎이 나타났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잎의 물결에 한유현의 공격이 일순 빗겨나갔다.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한유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이동, 그리고 상대적으로 느린 비행 스킬 대신 잎을 밟고 달려 무시무시한 속도로 노아를 향해 치닫는다.
물론 노아도 멍하니 보고만 있진 않았다. 그의 손과 팔에 빠르게 비늘과 깃털이 돋아났다. 전보다 더 선명한 금빛을 띠는 날카로운 손톱이 빛을 번뜩이고, 회피하는 대신 치명적인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보조 스킬로 부분 강화를 덧씌웠다.
상처를 입는다면 또다시 돌려줄 수 있다. 날개든 어디든.
하지만 한유진은,
턱!
노아를 공격하는 대신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자신의 어깨를 향해 힘껏 당겼다. 보조계에 적합한 스탯을 지닌 노아로서는 한유진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의 손톱이 한유진의 어깨를 깊게 파고들었다.
“아으, 윽!”
한유진의 비명이 아니었다. 노아가 이를 악물며 신음성을 토해냈다. 노아의 스킬, 소리 없는 비명. 단순히 어깨 부상 통증의 두 배 정도라면 고통에 익숙한 노아로선 참아내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 스킬 두 배에 저주독룡종의 천적 효과까지 더해지자, 일순 의식이 흐려져 갔다.
휘리릭─ 와이어가 뻗어 나오며 아래로 떨어지는 노아의 몸을 휘감아 묶었다. 꽁꽁 묶인 노아를 품에 안으며 한유진의 그의 등을 다정스럽게 토닥였다.
“사랑하는 노아 씨, 잘 자요.”
좋은 꿈 꾸고요. 토닥토닥, 자장자장. 역시나 저주독룡종 대상으로는 두 배의 효과가 나타났다. 거기에 의식이 흐려지고 심한 통증을 겪은 직후라 더욱 잘 들기도 했다. 쓰거나 짠 것을 먹고 나면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노아가 잠에 빠져들었다.
“괜히 깨우려고 들지 마. 스킬 효과가 강해서 웬만해선 못 일어날 테니까.”
건물 옥상에 노아를 내려놓으며 한유진이 말했다. 카드득, 까득, 사슬들이 자신을 얽매는 얼음을 파헤치고 깨부수며 다시금 박예림을 묶어 놓으려 덤벼들었다. 옥상 난간 위에 올라선 한유진을 한유현이 올려다보았다.
달빛만 흐를 뿐 별 하나 없이 검은 하늘 아래 은색 눈이, 마치 한 쌍의 작은 달처럼 비쳤다.
“노아 씨 데리고 호텔로 돌아갈래?”
“싫어. 그보다 형 분명 푸른 버들잎 스킬 쓴 적 없지 않아?”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는 스킬은 스킬 명을 말해야 사용하기 쉽다, 라지만. 말하지 않아도 못 쓰는 건 아니니까.”
한유진의 손이 자신의 뒷덜미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마력 조절 능력이 뛰어나다면 의지만으로도 쓸 수가 있지. 초월자들만 봐도 그렇잖냐. 어르신 빼고. 어르신은 그런데 약하시다지.”
탓, 한유진이 난간을 가볍게 박차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인도 위로 사뿐히 내려서는 그를 주시하며 한유현이 다시 전투태세를 취했다.
“귀여운 동생을 이 이상 상처 입히고 싶진 않은데. 몸은 그렇다 쳐도 마음은 말이야.”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말해 줘. 더 알고 싶어. 형에 대해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전부 다.”
“사람은 적당히 감추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거야.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두운 부분이 아예 없기란 힘드니까. 섣불리 다 알고 싶다고 했다간 서로 상처받고 끝나기 쉽다더라.”
“나는 어떤 형이라도 사랑해. 그리고 형도 나를 전부 받아주고 싶어 하잖아.”
“유현아.”
물과 얼음으로 사슬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사슬이 한유현을 노리지 못하도록 묶어 두고 있는 박예림을 힐끗 올려다보곤 한유진이 길을 따라 달려 나갔다. 한유현이 곧장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넌 아무런 잘못이 없어.”
콰르르, 한유진의 발길질 아래 보도블록들이 도미노처럼 일어나 한유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유현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보도블록을 튕겨냈다. 챙강! 빗맞은 쇼윈도가 박살 나며 유리 파편이 치솟는다.
“잘못이 있다면.”
와이어가 둥글게 휘둘러졌다. 꽃집의 진열대가 휩쓸리고 유리창이 깨져 나가며 꽃잎이 훅 흩날린다. 파지직, 독기와 전류가 뒤섞여 타고 흐르는 와이어를 상체를 젖혀 피하며 한유현이 미끄러지듯 한유진의 앞으로 다다랐다. 그의 발아래 꽃망울이 짓이겨지며 향을 풍긴다.
“내게 있겠지.”
몸을 낮춘 한유현이 검을 위로 강하게 올려 그었다. 한유진의 양손이 새카만 창의 양 끝을 잡고 검날을 내리찍듯 막았다. 카강! 요란한 소리 직후, 군림자의 검이 채찍처럼 늘어나며 한유진의 목을 향해 치솟았다.
한유진이 즉시 목을 꺾었다. 살갗을 할퀴고 지나간 칼날에 흰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스물아홉 살의 내가 산 케이크.”
한유진의 발이 몸을 낮춘 채인 한유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한유현이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빙글, 땅에 미끄러지듯 회피한다. 진열대에서 쏟아져 나온 꽃더미가 그 서슬에 휘말리며 두 사람의 사이로 흐트러졌다.
콰득! 바닥을 강하게 찍고, 그대로 내리친 발을 축으로 삼아 한유진이 반대쪽 다리를 동생에게 휘둘렀다. 휘잉, 검은 머리카락이 발끝에 스치며 거칠게 흩날렸다.
“그건, 스물네 살의 한유현을 위한 거야.”
가여운 내 동생. 한유진의 나직한 속삭임이 한유현의 귀를 파고들었다.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지.”
“하지만, 형은!”
“미안해, 유현아.”
한유현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유진이 한유현의 팔을 낚아채며 거의 끌어안다시피 잡아당겼다. 날카로운 손톱이 한유현의 어깨를 긁고, 본능적인 반격이 한유진의 허리를 찢어 놓았다. 동시에 한유진이 소리 없는 비명을 썼다.
“큭…….”
한유현의 손이 한유진의 등을, 옷자락을 잔뜩 움켜잡았다.
“나한테, 사과하지 마. 내가 잘못했다고, 해줘.”
미안하다는 말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한유진이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내 동생. 형은 널 가장 사랑하니까. 어떤 동생이든.”
어깨의 상처 안쪽으로 직접적으로 마비 독이 스며들었다. 그에 더해 고요한 상처, 상대의 스탯을 1분 간격으로 하락시키는 스킬 또한 발동되었다.
한유현은 형을 단단히 끌어안은 채 숨을 헐떡였다. 피비린내와 뒤섞인 꽃향기가 지독할 정도로 짙었다. 한유진이 동생을 다정하게 토닥였다.
“자자, 유현아. 방금 일은 잊고서. 형은 금방 네게 돌아갈 테니까.”
그리 오래지 않아 한유현의 몸이 한유진의 품 안에 축 늘어졌다. 은색 눈이 공중을 향했다. 사슬이 거두어지고 자유로워진 박예림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아저씨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아요.”
“예림아.”
“하지만 다치는 건 아저씨잖아요.”
“아직 돌아다니는 헌터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둘 다 안전하게 호텔로 데리고 가줘. 그럴 거지?”
박예림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실패한다고 해도요. 그래도 우리는 아저씨 편이에요.”
설사 송태원이 그의 손에 죽게 된다 하더라도.
“송 실장님한텐 미안하지만, 아저씨 잘못이 아니라고 할 거니까.”
“그러면 안 되지.”
“그럼 우리가 그러면 안 되는 일 하게 하지 마세요. 우린 무조건 아저씨를 보호하고, 괜찮다고 할 거고, 한유현이라면 가짜 증거라도 만들어 내서 무죄로 만들걸요.”
한유진이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휘며 한유현의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내가 부족해서 미안해.”
“뭐가 부족해요! 좀 짜증 나려고 하거든요? 한유현보다 아저씨가 백배는 나은데! 한유현도 동의할걸요!”
“우리 예림이가 착해서─”
“안 착해요. 아저씨가 멀쩡한 정신으로 사람 죽여도 감싸고 돌 건데, 뭐가 착해요.”
한유진이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쓰러져 있는 한유현을 내려다보고, 노아가 잠들어 있는 건물 옥상으로 눈길을 올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가 다시 다문 한유진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박예림은 미간을 좁히며 의식을 잃은 한유현을 들어 올렸다.
금색 날개가 어두운 밤하늘 아래 펼쳐졌다. 한유진은 아이템 상점에서 추적 아이템을 구매했다. 이어 그의 앞으로 작은 얼음 구슬이 나타났다. 구슬 안쪽에 붉은색 핏방울이 담겨 있었다.
성현제의 코트 깃을 매만지며 빼돌려 두었던 그의 피였다.
“…솔직히 손해야. 계약서도 아닌 신체 일부로 추적하는 아이템, 비싸다고. 반경도 넓어야 하고.”
한유진이 중얼거렸다.
“송 실장님 죽여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잖아? 포인트 너무 많이 쓰고 있다고. 벌써 아이템을 몇 개나 썼는데. 와이어도 새로 샀잖아.”
스스로에게 재차 주장하듯 말했다.
“난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리고 송 실장님에 성현제잖아? 아이템 쓸 시간도 없을걸? 꺼내자마자 바로 빼앗으려 들 텐데, 자칫하면 자승자박 꼴 나겠지.”
얼음 구슬 안의 핏방울을 추적 아이템에 떨어뜨리며 한유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러니 괜한 짓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진짜 괜한 짓 맞으니까. 신입아! 내 포인트 상점 일시적으로 닫아 줄 수 있냐?”
단순히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간섭 불가능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혹시나 싶은 물음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포인트 상점이 일출까지 닫힙니다!>︿<b]이제 포인트 상점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게 되었다. 한유진은 길게 한숨을 내뱉곤 추적 아이템을 사용했다. 푸른색 빛을 흘리는 나비가 나타나 팔랑팔랑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