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88
586화 완성
성현제는 피하지 않았다. 내가 접근해 주는 것이 그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군림자의 검으로 겨우 커버할 뿐 힘의 차이는 여전히 확실했으니까. 나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카라락─
완전히 붙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새카맣게 매끄럽던 검날에 균열이 일어나며 파충류의 꼬리처럼 길게 굽어진다. 맹렬하게 공기를 가르는 연검의 날을 성현제가 가볍게 뒤로 뛰어 피하고 수색자의 사슬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내 공격도 성현제에게 닿지 않았지만 성현제의 공격도 내겐 별 소용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은혜를 찾아 떼어 내거나 시간을 들여 숨통을 조이는 방법뿐이다. 그러니 사슬이 목을 휘감아 온다더라도 검으로 잘라내면 그만, 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슬의 방향이 조금 달랐다.
차르르.
내 목이 아닌, 눈높이에 맞추어 날아든 사슬을 향해 전류가 튀었다. 어차피 이것도 은혜에, 잠깐.
“젠장!”
성현제의 의도를 파악하자마자 급히 눈을 감았지만 그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강력한 빛이 터져 나갔다. 눈앞에서 태양이 폭발한 것만 같았다. 감겨진 눈앞마저 시뻘겋게 물들다 못해 하얀 섬광이 비칠 정도였다.
일순 두통까지 일었지만 얼른 뒤로 물러나며 선생님 스킬이 전해 주는 시야에 집중했다. 비틀거리는 내가 화악, 가까워진다. 성현제가 바로 코앞까지 다다랐다. 눈을 감은 채로 휘두르는 검에 사슬이 휘감기고 하나 남은 손이 뻗어져 온다. 땅바닥에 쓰러지듯 해 성현제의 손길을 간신히 피했다.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콱, 구둣발이 내 발목을 밟았다.
카가가각! 사슬에 감긴 군림자의 검을 당기며 반원으로 휘게 하여 내 목 위를 감쌌다. 검붉은 불길이 화르륵, 검을 휘감아 타고 오른다. 간신히 뜬 눈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현제의 얼굴이 들어왔다.
“남의 눈멀게 했으면 그 틈에 해독제라도 먹지 그러셨습니까.”
“지금 먹으려 하고 있지 않나.”
…독 저항 확 꺼버릴까. 세상에 있는 그 어떤 해독제보다 내가 더 효과 좋긴 하겠지.
하지만 성현제도 이 이상 내게 쉽게 손 뻗진 못하였다. 내게 그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반면에 군림자의 검은 적이 공격 범위 내에 들어오기를 서슬 퍼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성현제의 시선이 내 전신을 훑어 내렸다. 은혜가 있는 곳을 찾는 눈치였다.
지익, 발목을 누르는 구두가 옷 위를 비벼 왔다. 아래에 아무것도 없는 맨살임을 확인하고는 조금 더 위로 발을 끈다. 짜증스럽게 자유로운 발로 성현제의 다리를 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을 쓰기에는, 군림자의 검이 성현제의 다리를 노리는 즉시 그의 손이 내 목을 움켜잡아 올 것이다.
구두 끝이 정강이를 눌렀다. 발목을 약간 틀면서 걸리는 것이 없나 재차 확인한다. 겨우 발이 내 몸에 닿았을 뿐인데도 해독 효과가 조금은 나타났는지 성현제의 안색이 살짝 나아졌다. 피는 전신을 도니까 이대로라면 느리게나마 완전히 해독될 터였다.
오래 끌면 불리하다. 숨을 들이마시며 군림자의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검에 담긴 힘을 단번에 쏟아냈다.
카강! 캉!
내뻗어진 검에 금빛 사슬이 걸린다. 하지만 흑검은 사슬을 가르며 그 주인에게로까지 단번에 뻗어 나갔다. 독기와 열기를 머금은 검붉은 불이 용의 숨결처럼 퍼져 나가고 성현제의 앞으로 펄럭, 흑적색 옷자락이 펼쳐졌다.
“안 쓴다며!”
몰려드는 불길을 막은 실레키아의 날개가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사라졌다. 뒤로 훌쩍 물러나 선 성현제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르륵, 부서진 사슬이 다시 이어지며 그의 곁으로 되돌아간다. 몸을 일으키며 뻔뻔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조금쯤은 타격이 갈 줄 알았는데.’
성현제의 마력 소모도 컸지만 군림자의 검에 남아 있는 힘도 거의 동이 났다. 유현이가 제 피를… 쏟아부어 남겨 준 힘을 모두 써버린다면 나로서는 검을 제대로 쥐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성현제도 그것을 눈치챈 듯했다.
‘지금으로선,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
유현이의 능력이 깃든 군림자의 검을 완전히 소모하게 된다면 나로서는 성현제를 공격할 방법이 없어진다. SS급이 아닌, SSS급 무기를 얻어 힘껏 휘둘러 봐야 사용자가 F급이니 가볍게 턱, 막히고 말겠지.
심지어 지금 남은 힘 정도로는 앞으로 몇 분쯤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끝이었다. 검신을 휘감던 불길도 이미 사라졌다. 숨을 길게 내쉬고 하나 남은 손으로 검을 다잡았다. 내 상태를 파악한 성현제가 여유롭게 내가 덤벼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발끝에 힘을 주었다. 선생님 스킬의 감각에 집중하며 땅을 박찼다. 이번 공격이 무산되면 끝이다. 달려드는 나를 향해 사슬이 마주 날아들었다.
금빛 사슬이 머릿속에서 느리게 움직였다. 그 방향을 확인하고, 몸을 조금 틀었다. 검으로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사슬이 막힘없이 내 가슴 쪽으로 파고들고, 성현제가 사슬의 힘을 약하게 했다. 전격도 쓰지 않았다. 은혜에게 막혀도 나를 충분히 밀쳐낼 수 있을 정도의 힘으로.
사슬 끝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콱!
은혜를 껐다. 사슬이 가슴을 꿰뚫고 등까지 파고든다. 피가 치솟으며 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 피, 내 동생의 피, 흑룡의 심장 조각. 마력을 움직였다. 그 모든 것을 침식하는 군림자의 검에 쏟아부었다.
검이 탐욕스럽게 피를, 마력을 삼킨다. 원래 제 것이었던 힘을 머금고서.
콰드득-!
날카롭게 휘어져 성현제의 가슴을 꿰뚫었다. 순간적으로 상승한 검의 능력치를, 전투예지조차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예지한다더라도 피할 능력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상대적으로 가는 사슬에 당한 나와 달리 성현제의 가슴은 거칠게 찢어졌다. 즉사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상처였다. 피를 토해내는 입술 끝이 올라가 있다. 나와 성현제의 무릎이 동시에 꺾어졌다. 힘이 완전히 소모된 군림자의 검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예 손바닥이 화끈 달아오르기까지 해 검을 놓치고 말았다.
성현제의 상체가 먼저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니, 일부러 몸을 숙여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웃음소리가 작게 귓가를 간지럽혔다.
“뭘… 좋다고, 웃습니까. 쿨럭. 생방송으로, F급한테… 당했는데.”
“즐거웠, …니까.”
뭐, 두 번은 경험하기 힘들 일이긴 했다. 나도 진짜 몸이었으면 절대 못 쓸 방법이기도 하고. 마석의 힘이 폭주라도 하는지 등이 녹아내릴 듯했다. 실제로 지장이 가는 건 아니겠지. 흑룡이 잘못되면 군림자의 검은 SS급에서 더 성장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여태까진 다, 죽은 사람도 멀쩡히 회복되었으니까…….
“그, 윽…. 성현제, 씨도…….”
숨이 찼다. 그쪽이 마음먹었으면 진작 끝났을 거라고, 아무튼 참 대단하시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성현제가 아닌 다른 헌터였으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은혜 때문에 공격은 안 통하지, 군림자의 검 때문에 S급 헌터 이상의 공격력도 갖췄지. 몸뚱이는 느리지만 선생님 스킬로 전투예지 비슷하게 움직일 수도 있지.
“…생각해, 보니. 저도 좀… 대단하네요.”
장난 아니잖아. 마나 각인은 채터박스가 보조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성현제 말대로 어쨌든 내가 얻은 것이기도 하고. 내 중얼거림에 성현제가 또 작게 웃었다. 어깨 위의 숨소리가 옅어져 갔다. 그리고 결국, 성현제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유진 승리!]멍하게 메시지 창을 바라보았다.
[파티가 종료되었습니다.]메시지가 이어지고 동시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던 내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가슴과 팔의 통증도 깨끗이 사라져간다. 옷은 그대로 피투성이였지만 상처는 원래 없었던 듯이 완벽하게 아물었다.
‘검은, 남아 있네.’
원래라면 손상된 무기나 아이템도 복구되어야 할 텐데 군림자의 검은 유현이가 직접 주고 간 것이라서인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검을 주워 들려다가 멈추고 검집부터 꺼냈다. 함부로 만지면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검집에 살살 넣은 뒤에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런데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는 그때.
사아아아─
하얀 안개가 밀려들었다. 무해의 왕의 안개였다. 파티가 끝났으니 받은 아이템도 전부 수거 되었을 텐데?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
“윽! 뭐야!”
팔에 검붉은 줄이 얽혔다. 이어 휘릭, 남은 팔과 두 다리에도 휘감겨 온다. 저항할 새도 없이 잡아당기는 힘에 군림자의 검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을 굴렀다. 하얗게 깔린 안개 사이로 부서졌던 무해의 왕의 지팡이가 보였다. 지팡이로부터 뻗어 나온 줄이 나를 묶어 들어 올리고 있었다.
“…….”
점점 더 짙어져 가는 안개에 마른침이 삼켜졌다.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따라 저릿하게 흐르고.
[위압감이 일부 무효화됩니다!]공포 저항 스킬 메시지가 나타났다.
TV 속의 한유진이 숨을 헐떡였다. 유명우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그 위로 희미한 안도가 깃들었다. 황림이 놀랍다는 듯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우리 진이라니까. 아주 화끈해. 그날 밤에도 뜨겁게 불타올랐었지.”
좋은 추억이라는 황림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유명우가 채터박스를 돌아보았다. 한유진은 한유진으로서 승리했다. 비록 중간까지 잡힌 이미지가 남아 있었지만, 안개도 지팡이도 버렸다. 무엇보다도 한유진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끝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채터박스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하였지만.
“아쉽군요. 더욱 완벽해질 수 있었는데.”
가면 아래의 입술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였다. 의자 팔걸이에 얹혀 있던 채터박스의 손이 위로 들렸다. 유명우가 움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자신의 목을 겨눈 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채터박스가 자신의 가면 끝을 잡았다.
“하지만 이것으로.”
가면이 벗겨졌다. 뚜렷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드러난다.
“채터박스는 완성됩니다.”
유명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불길함은 느꼈지만 그 의미를 알아듣지는 못했다. 채터박스의 눈이 감겼다.
파티가 끝났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흥분에 휘감겨 있었다. 이 세계의, 거의 모든 인간이 채터박스를 인지했다. S급 헌터들을 거느리고, 이제껏 없었던 성대한 파티를 열어, 비밀스럽던 던전의 내부를 전 세계에 드러내어 공개하고, 가장 약한, F급 헌터를 가장 위에 올린 파티의 주최자.
“끊어진 미로의 막내, 새장을 든 마법사, 기 오스 사누스는 지금 이 순간 사라진다.”
채터박스가 선언했다. 유명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초월자로서의 자신을 포기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유명우의 팔이 뻗어지고,
스걱─
칼날이 채터박스의 목을 파고들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장신의 몸이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목에 검이 박힌 채로 채터박스가 일어났다. 급히 물러선 유명우가 당혹스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채터박스. 있을 수 없는 파티의 주최자! 사랑스런 안개를 위한 광대!”
기 오스 사누스, 초월자의 존재가 사라졌다. 그를 대신하여, 채터박스가 자리했다. 채터박스의 웃음이 더욱 환하게 짙어진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아치고.
“대장장이 씨!”
텅! 황림이 두꺼운 원목 탁자를 걷어찼다. 유명우 앞으로 날아간 탁자가 콰직, 단숨에 일그러지고 황림이 유명우의 팔을 잡고 뒤로 빼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위험한 거 같은데?”
유명우가 이를 악물었다. 채터박스의 육신으로 강력한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금이 가기 시작한 TV를 향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막을 방법이 없었다. 초월자의 일은 초월자에게. 최대한 빨리 신입과 어린 혼돈에게 연락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분노로 인해 주먹을 틀어쥐면서도 유명우는 황림을 데리고 황금 대장간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에 아랑곳없이 채터박스는 흥분에 찬 눈으로 TV를 바라보았다.
“나의 안개를 위하여.”
초월자 기 오스 사누스는 이 세계에 발들일 수 없다. 이 세계에 깃든 채터박스가 초월자가 될 수도 없었다.
오래된 초월자와, 새로이 만들어진 파티 주최자. 그 둘은 같지만 확연히 다른 존재였기에 패륜아들도 채터박스가 이 세계에 영향력을 뻗는 행동을 용납하였다.
그 누구도 초월자가 스스로를 포기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에.
그러나 미로의 마법사는 채터박스를 선택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수다쟁이, 사랑하는 이가 불러 준 이름. 그의 사랑을 위한 성대한 연회의 주최자.
쩌저저적─ 모여드는 마력의 여파만으로 벽이 갈라졌다. 금이 간 TV가 완전히 부서진다. 초월자를 제물로 바치고 이 세계 지성체들의 인식이 모여 자리 잡은 채터박스가 완성되어 간다. 목을 꿰뚫은 검이 흐린 빛을 뿌리다가 사라졌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상처가 아물었다.
초월자는 아니다. 격은 훨씬 낮았다. 그러나 S급은 물론 그 이상의 각성자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이 채터박스의 전신에 모여들었다.
투두둑, 조각난 벽과 가구의 파편이 바닥을 구르고 잠잠해진 폐허 가운데서 채터박스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럼 이제, 맞이하러 가 볼까요.”
파티는 끝났다. 하지만 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장례식의 마지막을 위하여. 채터박스의 시선이 부서진 TV를 향했다. 갈라진 화면이 시간을 되돌린 듯 복구되고, 안개 속에 묶여 있는 한유진의 모습이 비춰졌다.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채터박스가 방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