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69
667화 수성전 (3)
새빨간 눈을 가로지르는 금색과 검은색의 동공이 나를 향했다. 돌로 된 바닥에 비늘 스치는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왔다.
포식의 왕. 효도중독자 측이자 동시에 내 담당이기도 하니 경계해야 할지 반겨야 할지 여전히 헷갈렸다. 패륜아도 온전히 내 편이 아닌 마당이라 더더욱. 판 한번 참 더럽게 짜놨다니까.
“이런, 식으로…….”
와도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대신 새액거리는 쉰 숨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물고기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도움을 주었는지는 전해진다.”
“…도움.”
이라면, 성현제에게 말이겠지. 그 인간 성격에 대놓고 거들어주는 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그보다 일단은 내가 패륜아 쪽 대표 아니냐고. 뱀의 두 눈이 비웃음을 띠며 가늘어졌다.
“맡은 각성자에게 일정 이하의 도움을 줄 수 있다. 담당 초월자가 희생을 감수한다면 제한된 것 이상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평을 가하기 위해 담당을 서로 바꾼 것이건만, 우스운 일이로구나.”
기다란 손톱 끝이 내 머리카락을 감 듯이 쿡 건드렸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꼴이다.”
그러잖아도 낮게 쉰 목소리가 더욱 음산하게 내리깔린다. 포식의 왕이 뚜렷한 불쾌감을 나타내자 절로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이러하여서야 나 또한 물고기의 꿍꿍이에 이용당하는 셈이니.”
세상의 조각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다른 초월자에게 휘둘리는 걸 달갑게 생각할 성미는 아닐 것이다. 포식의 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태도를 보면 그랬다.
열 받으면 엎어 버리는 게 최곤데. 그럴 힘도 있으시잖습니까. 확 엎죠.
“조그만 것아. 담당자로서 네게 소소한 도움을 주겠다.”
짜아악- 포식의 왕의 손등을 옅게 덮은 비늘이 갈라졌다. 그 틈에서 붉은 핏방울이 솟아오른다.
“마시거라.”
“…뭐.”
아니 대뜸 뭐라시는 거야.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도 남이 주는 거 덥석 받아먹으면 탈나는 세상입니다만. 무척이나 꺼림칙해하는 내 눈빛에 포식의 왕이 귀찮다는 듯 설명해 주었다.
“독을 다루는 것이 극에 달하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내 피는 더없는 극독이니 동시에 영약 또한 될 수 있다.”
…그게 말이 되나? 보약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는 소리는 들어 봤지만.
“포션이나 스킬에 의지하기엔 지금 네 몸뚱이는 마나에 절여져 있으니. 육신 자체를 보강해줘야 버틸 것이다.”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찬물 더운물 가릴 형편도 아니고. 최소한 내기 끝날 때까지 버텨야만 이기든 말든 할 테니까.
‘뱀이 보양식이라고는 하지.’
몸보신용 괴식이 얼마나 진짜겠냐마는 상대는 무려 초월자 뱀이니 다르긴 다르겠지. 입을 벌려 떨어지는 피를 받아먹었다. 의외로 달았다. 약간 석류향이 나는 듯도 했다. 이내 식었던 몸에 따스히 온기가 감돌았다. 멍하게 흐려져 가던 머릿속도 맑아지고 마력이 과하게 돌아 뻑적지근하던 몸도 개운해졌다.
“욕심내지 마라.”
포식의 왕의 웃음기 섞인 말에 눈을 깜박였다. 어느 샌가 그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사라져가는 상처와 핏방울을. 군침이 절로 꼴깍 삼켜졌다.
“과욕을 부리는 것들은 전부 내게 삼켜졌으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 그가 말했다. 처음의 거부감은 온데간데없이 능력만 되면 더 마시고 싶어졌다. 이래서 보약, 보약 하는 건가.
“…아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아서요.”
“그렇다 하여도 정상으로 돌아간 것 이상은 아니니. 지금보다 더욱 무리하여 명줄 자체를 갉아먹게 되면 내 피 정도로는 회복할 수 없다.”
“줄어 든 수명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타인의 생명을 넘겨받거나 몸뚱이의 시간 자체를 되돌리거나 격 높은 이에게 명줄을 맡기는 법 등이 있다.”
역시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수명이 그럭저럭 멀쩡해졌다고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몰까지 충분히 버티고도 남겠다. 밖의 전황은 여전했다. 선생님 스킬로 협력이 가능하고 노아가 뒤에서 지원까지 해주는 한 위험해질 일은 거의 없었다. 간혹 까다로운 SS급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구워어!]두 개의 머리를 가진 용종이 헌터의 뒤를 쫓는다. 질주 스킬을 지닌 헌터가 속도를 올리고 SS급 용종 또한 무시무시한 움직임으로 따라잡는 순간.
[-구륵!]용종의 발이 헛디뎌졌다. 노아의 강제적인 축복이었다. 갑작스런 버프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용종이 땅에 처박히고 기다렸다는 듯이 헌터들이 무기를 내찔렀다.
영역에 들어오는 몬스터마다 죄다 30분간 스킬 사용이 막히니 SS급이라 해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스킬 없이도 강력한 힘을 지닌 몬스터 상대로는.
피스의 불길 버프를 받은 시시오가 나섰다. 우리 애 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럼에도 S급을 넘어서는 방어력은 여전했다.
‘이젠 정말로 안심해도 되겠지.’
성안 곳곳을 떠다니는 빛구슬이 아름다웠다. 성현제가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모든 몬스터를 완벽하게 처리할 순 없을 것이다. 용종이 등장한 뒤로는 서브 팀의 피해가 분명 생겨났겠지.
채터박스의 힘을 받은 초화운 일당이 만만하진 않겠지만 걔들은 선생님 스킬도 없으니 십중팔구 우리 쪽 점수가 더 높을 것이다. 사망자 수 0. 이대로 곧 해가 완전히 저물면.
– 그르르.
“……!!”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이 바싹 세워졌다. 몬스터의 으르렁거림이.
“지저분하구나.”
스킬을 통하지 않고, 직접 들려왔다. 포식의 왕이 눈썹을 찌푸린다. 너른 방의 구석,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 몬스터의 안광이 번득였다. 짧게 숨을 삼켰다.
“전부, 살아 있는데.”
내 소속 헌터들 중 아무도,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는데. 그런데 몬스터가 들어왔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나도 내키지는 않아.”
누군가가 말했다. 낯선 목소리였다.
“미안해, 허니.”
“…이건 반칙이잖아.”
“대가를 지불한 약간의 비틀림이지. 몬스터 등급도 높지 않아. 그리고 포식의 왕.”
그림자 속의 누군가가 뱀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담당자니까 내기에 개입할 수 없어.”
“내가 개입하게 되면 즉시 패배하겠지. 그러나 조그만 것아.”
포식의 왕이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살아 나갈 수 있겠느냐.”
타닥, 몬스터의 발톱이 돌바닥을 두들겼다. 재빠르게 새싹 스킬을 썼다. 늑대형 몬스터, 세 마리. A급. 높지 않기는 개뿔이. 은혜는 없다. 쓸데없이 넓은 방이라 문까지의 거리는 100미터 남짓. 다행히 살쾡이 세트는 장착하고 있으니 델로우즈로 변한다면 5초 안팎이면 다다를 수 있다.
‘성체 델로우즈는 너무 크고.’
스탯은 그대로니 천장에 머리 박고 기절해 버릴지도. 포식의 왕을 경계해서인지 몬스터들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고양이화는 물리면 바로 끝나겠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독을 지닌 몬스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독 저항을 끄고 헌터용 진통제를 꺼내 삼켰다.
“여기서 질 수는 없죠.”
나 혼자라면 모를까, 밖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절대로. 뱀의 입술 끝이 느슨히 올라갔다. 이내 다시 날카로워진 색이 다른 동공이 어둠에 잠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이 이상의 헛수작은 부리지 못할 것이다.”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문은 정면이다. 의자 손잡이의 끝을 쥐었다. 밖의 상황을 살폈다.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해는 아주 조금, 끄트머리만 넘실거린다.
탁!
힘껏 왕좌를 박찼다. 동시에 선생님 스킬을 거두고 세 마리의 몬스터를 향해 재사용했다.
– 캬르륵!
반발이 훅 밀려들었지만 A급 셋 정도는 버틸 만했다. 이젠 무려 SSS급입니다! 늑대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렇다 해도 내가 피할 정도는 아니다. 놈들이 나를 향해 뛰어드는 순간.
– 크릉?
은신 스킬을 쓰며 길게 슬라이딩했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전투 중에는 S급은 물론 A급도 속이기 힘든 등급이지만 살쾡이 템 버프를 받았다. 허공을 깨문 늑대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엎어진 몸을 일으키며 문을 향해 뛰었다.
– 크륵!
늑대들의 귀가 쫑긋 선다. 하필 감각도 더럽게 예민한 종류의 몬스터들이다. 은신 스킬이 다 감추지 못한 희미한 발소리를 놈들이 이내 쫓아오기 시작했다.
카각, 등 뒤에서 발톱이 바닥을 긁고 문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내가 문에 다다르는 것보다 몬스터의 공격이 먼저였다. 순식간에 쫓아온 늑대가 보이지 않는 나를 향해 뛰어오른다. 몸을 홱 돌리며 드러누웠다. 동시에 꺼내어 충전해 두었던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퍽!
– 캐갱!
S급 마탄에 늑대 머리가 터져 나간다. 하지만 아직 두 마리가 남았다. 한 놈이 내 다리를 정확히 물어 챘다. 힘으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은신 스킬을 풀었다. 다른 한 놈이 모습을 드러낸 나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송곳니와 그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침.
“안녕.”
놈을 향해 웃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유독 향도 좋고 맛있어졌답니다.
싱싱한 잎(F)
잘 익은 열매(F)
그 두 스킬을 왼쪽 팔 팔꿈치 아래로 집중했다. 마나 각인에 관리자 권한도 지녔다. 그간 마력을 다루는 것도 능숙해졌다. F급 스킬 정도는 충분히 이런 식으로 다룰 수 있었다.
늑대도 과일은 먹지. 게다가 몬스터라면 마력이 가득한 특별한 열매를 싫어할 리 없잖아?
– 킁!
늑대가 이내 반응했다. 망설임 없이 덥석 내 왼쪽 손을 문다. 다리를 물고 있던 놈도 유혹적인 냄새를 참지 못하고 얼른 다리를 놓고 왼손을 문 동료에게 제 몸을 들이받았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총을 겨누었다.
탕!
피가 튀었다. 충전 시간이 짧은 총으로는 A급 몬스터를 즉사시킬 수 없다. 하지만.
“…큭.”
F급의 팔을 잘라내는 건 가능했다. 팔꿈치 부분이 찢기며 그 아래가 뚝 떨어져 나갔다. 두 몬스터가 먹이를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진통제 약효가 돌고 있음에도 눈앞이 어질했다. 하지만 팔 한쪽은 순식간에 삼켜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몸을 일으켰다. 물린 다리가 바닥을 헛디뎠다. 그러나 문을 향해 뛰었다. 다리 한쪽이 멀쩡하지 않은 거야 익숙한 일이니까 헤매지도 않았다.
손이 문에 닿고 그대로 밖으로 튕겨지듯 나갔다. 어두운 하늘 아래의 서늘해진 공기가 훅 전신을 덮쳐들고.
– 끄우웅!
“유진 씨!”
“한 소장!”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선생님 스킬이 끊긴 탓일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힐러!”
노아가 급히 외치며 나를 부축했다. 노아의 치유 스킬이 팔과 다리에 전해져왔다.
– 켕!
나를 뒤따라 나온 늑대를 피스가 단숨에 물어 죽였다. 다른 한 놈도 시시오의 손에 으깨진다.
“제 스킬로는 신체 재생은 불가능해요!”
“저도 재생은…….”
“부위가 멀쩡하다면 가능하지만요.”
아예 사라진 신체를 재생시키는 건 S급 힐러쯤 되어야 했다. 그리고 S급 힐러가 공략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이곳에도 없다.
“노아, 씨.”
“네, 유진 씨. 최상급 포션이면-.”
“아뇨. 전 포션 함부로 쓰면 안 되거든요.”
출혈도 멎었고 상처도 아물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이대로 두는 편이 낫겠지. 인어여왕에게 청구해서 치료받는 편이 나을 듯했다. 포션 쓰기 아깝기도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더 있을지 알 수 없는데.
노아에게 기대어 일어섰다. 태양 대신 떠오른 달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졌습니다.]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이제는 포인트 없이 성의 복구가 가능했기에 불을 켰다. 빛구슬들 사이로 횃불들이 주르륵 나타난다. 무너진 성벽과 탑 사이로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무사하다. 몸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점수가 정산됩니다.] [1,000점]헌터들 앞에도 나와 같은 메시지 창이 떠오른 듯했다. 모두가 침묵했다.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분명 우리가 유리했지만, 내가 부상을 입었다. 왕의 부상이 소속 헌터들의 부상보다 더 많은 점수를 앗아간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르고 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391점 : 391점] [결과: 무승부]막혔던 숨이 탁 트였다.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가 지켜냈습니다.”
단순한 성만이 아니라, 이 몬스터들이 덮쳐들었을 우리 세상을. 그리고 내기에 걸린 세상의 조각을. 몇몇이 눈을 깜박이고 그리고 몇몇이 환호성을 질렀다. 미소가 번지고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쌓인 긴장감을 떨쳐 버리며 이야기꽃이 핀다.
“용종을 이렇게 많이 죽여 본 건 처음이야.”
“두꺼비 진짜 크더라. 그런 게 도시에 나타날 수도 있었다는 거지.”
“SS급도 상대할 만하네.”
“상대할 만하긴, 혼자면 일찌감치 카론과 인사했어.”
상급 헌터들답게 내 팔 잘려 나간 건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던전 공략하다 보면 팔다리 하나 날려먹을 수도 있지 뭐. 상급 헌터야 목숨만 붙어 있으면 S급 힐러 쉽게 만나러 가니까. 하지만.
“몬스터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시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상황판단 빠른 헌터 몇도 어두운 표정이었다.
“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승리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떠들던 헌터들이 다시 나를 바라봐왔다. 인상이 찌푸려지고 욕설도 튀어나온다.
“앞으로도 규칙을 어기고 방해해 올 겁니다. 그러니 더더욱 쉽지는 않겠지요.”
상대는 초월자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도 저는 살아 나왔습니다.”
그 잘난 분들이 방해를 해도. 다시 웃었다.
“던전은 뭐 우리 의견 물어보고 터졌던가요. 그러라고 하세요. 그래도 살아남을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까지. 쉽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그대로 죽어 허무하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도리어 속은 시원해졌다.
방해 없이 이겼다더라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방해를 받고도 지지 않았다. 막막하기만 하던 벽에 난 아주 작은 틈을 본 기분이었다.
작지만 그래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