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95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김현성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가득 찼다. 김현성은 급히 레이크가 보낸 쪽지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사칭인가? 그런 의심으로 아이디를 클릭, 레이크 아이디의 채널에 들어가 본다.
“..진짜네.”
김현성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김현성의 아스가르드 아이디인 HS1123에게 쪽지를 보낸 레이크는 진짜였다. 채널 구독자 수가 몇 백 만 명이 넘어가고, 개재한 동영상은 파라곤 길드의 레이드 영상들. 김현성은 꿀꺽 침을 삼키고서 뒤로가기 버튼을 눌렀다.
“뭐야? 어떻게 안 거야?”
별로 티를 냈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이 우습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동영상에서는 스타일이 묻어 나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김현성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레이크의 쪽지를 클릭했다. 쪽지 전문이 화면을 채웠다.
제목: 당신은 라덴입니까?
내용:
보하미르에서 보았던 PVP는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당신이 라덴이라고 확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상을 보니 알겠군요. 당신이 라덴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5년만이지요? 발할라를 시작하면서 내심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5년 전에는 그리 유쾌한 만남과 이별이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휘광 루드베라. 그 아이템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것 같아서 기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루드베라의 레벨 제한이 너무 높아서, 지금의 당신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 괜찮다면 발할라 내에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신에게 몇 가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카웃 제의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언제라도 괜찮으니, 만날 의사가 있다면 답장을 해 주십시오.
당신의 팬이었던 레이크가.
김현성은 잠자코 모니터를 노려 보았다. 라덴입니까? 라고 질문한 주제에, 레이크의 쪽지는 HS1123이 라덴이라고 결론을 이미 지었다는 뉘앙스였다.
“거참, 대단한 자신감이야.”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은 아예 안하고 있잖아. 김현성은 투덜거리면서 컵에 담긴 물을 들이켰다. 입 안으로 들어 온 얼음을 와작와작 씹으면서, 김현성은 생각에 잠겼다.
레이크와의 만남. 5년 전에 레이크와는 그런 식으로 악연을 맺기는 했지만, 레이크 본인이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지 메이킹이 있기는 하겠지만.. 판타지아와 발할라에서의 레이크는 호인이었다. 당장 김현성도 팔면 부르는 대로 값을 받을 수 있는 휘광 루드베라를 거저 받지 않았던가.
‘이걸..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김현성은 잘 알 수가 없었다. 길드 스카웃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에 도움은 줄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설마 스폰서라도 되어주겠다는 것일까. 그것으로 레이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김현성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입 안에서 바스러진 얼음을 삼켰다.
“거참,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니까.”
김현성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다른 쪽지를 확인해 보았다. 루벡에게도 쪽지가 와 있었다. 루벡은 여태까지 몇 번이나 김현성에게 쪽지를 보내 왔었다.
‘일단 루벡을 만나야겠어.’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현성은 그것을 확신했다. 이번 투기장 영상이 이렇게나 이슈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조회수가 오르는 추이를 보니 24시간 이내에 어렵지 않게 투데이 베스트 10위 안으로 진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물이 들어왔다면 노를 저어야지.’
이미 광고 제의는 몇 개나 받았다. 하지만 덥썩 수락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았다. 우선, 김현성은 방송 경험이 전무하다. 예전부터 동영상을 올리기는 했지만 영세 목적으로 동영상을 올린 적은 없다. 덕분에 김현성은 이쪽에 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이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경험자다. 김현성이 알고 지내는 랭커 중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루아노스였지만, 그녀는 인터넷 방송보다는 모델 쪽으로 활동하고 있다.
‘루아노스보다는 루벡이 낫지. 그리고 기왕이면 발을 넓혀두는 것이 좋아.’
루아노스와는 언제 척을 질 지도 모르는 사이다. 김현성은 고민을 끝냈다. 혼자 이러쿵 저러쿵 저울대를 기울여서 얻을 것은 없다.
일단 지른다. 김현성은 루벡의 쪽지에 보낼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알제른, 화조풍월. 요리 계열 스킬에서 유명한 NPC가 운영하는 고급 중화 음식점이다. 요리 스킬을 익히는 플레이어들이 어떻게든 제자가 되어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는 알제른의 명물.
물론, 라덴은 화조풍월 주인 NPC의 요리 스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늘의 그는 화조풍월의 손님으로서 이곳에 방문했다. 알제른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지만, 라덴은 단 한 번도 화조풍월에 온 적이 없었다. 명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맛이 훌륭하다고는 하지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돈도 많으셔.’
제 돈을 낸다면 절대로 오지 않았겠지만, 다행히도 돈을 부담하기로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루벡.
루벡과 만나기로 하고서, 라덴이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수요일 오후 1시의 알제른. 알제른이라고 하자 구체적인 장소를 정했던 것은 루벡이다. 화조풍월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예약과 가격 부담은 자신이 하겠다고. 공짜로 밥을 먹여주겠다 하니 사양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라덴은 화조풍월에 오게 되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화사한 미소를 흘리면서 라덴을 안내했다. 라덴은 과감하게 파인 치파오의 라인을 보면서 꿀꺽 침을 삼켰다.
‘틀림없어. 요리 맛이 아니라 저거 보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라덴은 그런 확신을 가지면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치파오 걸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루벡이 예약한 곳은 3층의 별실이었다. 닫힌 문 앞에서 치파오 걸이 몸을 돌렸다.
“이 방입니다. 그러면,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네.. 네.”
커다랗게 솟은 가슴은 시각적인 폭력이었다. 라덴은 차마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고서 머리를 꾸벅 숙였다. 치파오 걸이 떠나고서 라덴은 닫힌 문 앞에 서서 낮게 헛기침을 했다.
남자 만나는 것인데 긴장하게 되다니. 생각해 보면 루벡과 독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타지아 투기장에서 마주친 적이야 많았지만, 그때의 라덴은 루벡이 말을 거는 것에 제대로 대답해 준 적은 없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라덴은 숨을 삼키고서 닫힌 문을 열었다. 널찍한 원형 테이블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라덴이 문을 열자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꾸벅 머리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벡이라고 합니다.”
“아, 예.”
라데은 마주 머리를 숙이면서 루벡의 인사를 받았다. 방 안은 넓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인테리어에, 널찍한 테이블 위에는 아직 비어 있었다.
“코스 형식이라서. 일단 앉으시지요. 조금 있으면 요리가 나올 겁니다.”
“네.”
루벡은 라덴보다 키가 머리 반 개쯤은 더 컸다. 라덴도 어디서 작다 소리를 들을 키는 아니었지만, 루벡은 확실한 장신이었다. 게다가 얼굴은 깔끔하고 잘생겼다.
“아스가르드에 투고했던 영상은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목소리. 인터넷 방송 BJ에게 있어서 듣기 좋은 목소리는 강력한 무기다. 아무리 말을 재미있게 한다고 해도 목소리가 비호감이라면 처음부터 마이너스 점수를 끌어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루벡은 타고난 플러스 요인이 많았다. 큰 키. 훈훈한 외모. 듣기 좋은 목소리. 게다가 체격도 건장하고 비율도 좋다. 라덴은 그런 루벡의 앞에 마주 앉으면서 낮게 헛기침을 했다.
“..저도 루벡님의 영상은 많이 봤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바타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젊으시네요.”
“그런가요?”
“예. 영상에서 노련미가 묻어 나오길래, 꽤 나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례가 아니라면, 나이가 몇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스물 둘입니다.”
“스물 둘. 동안이시네요?”
이건 립 서비스인가. 남자한테 받는 립 서비스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라덴은 어깨를 으쓱거렸고, 그러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치파오 걸이 들어와 루벡과 김현성의 앞에 찻잔을 놓았다.
“몇 번이나 쪽지를 보냈었죠. 제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달라고 말입니다. 줄곧 답장이 없었는데.. 이번에 답장을 하신 것은, 제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할 의사가 있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일단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죠. 저로서도 큰 마음 먹고 한 결정이라서요.”
“당신에게 절대로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아스가르드에 영상을 계속해서 투고하는 것을 보면, 당신도 인터넷 방송 BJ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관심이야 있죠.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게임 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들. 나도 뭐, 솔직히 말해서.. 그런 쪽이기는 해요. 게임은 잘하니까.”
조금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말했다. 루벡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말에 루벡은 빙긋 웃기만 할뿐, 비웃음은 흘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게임 아이디도 모르네요.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라덴.”
라덴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루벡의 표정이 잠깐 동안 굳었다.
“..예?”
“라덴이라구요.”
치파오 걸이 따라 준 차는 맑은 녹색이었다. 라덴은 유성이 따라 주었던 차를 떠올리면서 찻잔을 들었다.
“..본인입니까?”
“네.”
“맙소사.”
루벡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라덴을 바라보았다. 라덴은 그의 시선을 받으면서 찻잔을 입술로 물었다. 입 안으로 넘긴 찻물은 유성의 쓴 찻물보다는 마시기 편했다.
“이건.. 정말.. 대박이로군요. 설마 당신이 라덴일 것이라고는.. 설마 사칭은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제야 납득이 갑니다. 라덴이라면 가능해. 판타지아에서 투왕이라 불렸던 라덴이라면, 발할라 투기장에서 80연승을 기록하는 것이야 어려운 일은 아니죠.”
“정확히 말하자면 83연승이죠.”
현재 라덴이 발할라 투기장에서 세운 연승 기록이다. 라덴은 루벡의 말을 수정해 주면서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제 레벨이 아직 낮다 보니까요. 연승을 기록해도 어려운 상대는 아직 만나지 않았어요.”
“그건 당신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영상에서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플레이어가 레벨 88이었잖습니까. 레벨 차이가 20이 넘게 나는데, 보통은 승부도 되지 않아요.”
“운이 좋았죠.”
“어울리지 않게 겸손을 보이시는 군요. 판타지아의 라덴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야 5년 전이니까요.”
라덴은 그렇게 말하면서 루벡의 말을 끊어냈다. 루벡에게 자신이 라덴이라는 것을 알린 것은, 그를 확실히 붙잡기 위해서였다. 판타지아 시절에 루벡은 라덴에게 넘치는 호의를 갖고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자신이 라덴의 팬임을 강조했었고, 라덴이 레이크와 했던 마지막 PVP에서도 라덴을 지지했었다.
‘나름대로 승부수야.’
이것은 라덴에게도 상당한 모험이기도 했다. 루벡이 만약 떠벌리기라도 한다면 아스가르드에 동영상을 올리는 HS1123이 라덴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라덴은 아주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루벡이 그런 짓을 하지 않고서, 라덴을 지지해 준다면.
“왜 영상 내에서 자신이 라덴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겁니까?”
“일부러 얼굴까지 가렸어요. 왜 그랬을 것 같아요?”
“당신이 라덴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많은 길드들이 움직일 겁니다. 랭커들도 움직이겠죠. 발할라 이전에 가상현실게임의 탑은 판타지아였고, 발할라의 상위 랭커들은 대부분이 판타지아 출신이에요. 그들은 투왕 라덴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 좋은데, 그 투왕이라는 것 좀 빼면 안 되나요? 나 그 별명 진짜 안 좋아하는데..”
라덴의 말에 루벡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싫어하는 겁니까? 명예로운 별명이잖아요.”
“쪽팔린 별명이죠.”
“..어.. 음. 알겠습니다. 정 그렇다면 투왕이라고는 안 부르죠. 그래서..”
루벡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였다.
“저에게 뭘 바라시는 겁니까?”
루벡이 물었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