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망한 조별 과제
다짜고짜 걸 그룹 춤을 추라니.
김 대표 이 자식, 아직도 걸 그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건가.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문지호와 나는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설마?
“대표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희 둘, 태국으로 보낼 생각이세요?”
“어.”
“끼아아악!”
우리는 다급히 몸을 사렸다.
내가 외쳤다.
“저, 저는 남자인 게 좋아요!”
지호 또한 거세게 반발했다.
“저도 수술은 싫어요!”
김 대표는 픽 웃었다.
“농담이고, 《가요축제》 제작진한테서 연락이 왔어.”
《가요축제》라면 지상파 방송국 B 본부의 연말 가요제가 아니던가.
“신인 보이 그룹 멤버를 모아서 스페셜 스테이지 특별 유닛을 만든다더라.”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말고, 뒤늦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저예요? 지호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는 영 안 어울리는데요.”
걸 그룹 무대 커버라면 적임자가 따로 있었다.
“저보다는 하준이가 훨씬 잘 살릴 텐데, 이미 확정된 거예요?”
“내가 정한 게 아니야. 피디가 직접 골랐다니까, 보고 싶은 그림이 있나 보지.”
불친절한 대답이었다.
나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떤 곡인데요? 또 특별 유닛 멤버들은 누구누구인지 아세요?”
“자세한 사항은 김민수 매니저한테 인계했으니, 가서 물어봐.”
“……네.”
썩 내키진 않았으나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
사무실 지하에 있는 연습실로 내려가는 길.
김민수 매니저가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희가 커버할 곡은 베리즈의 《내게 줘(Give Me All Your Love)》야.”
“아, 베리즈 미니 2집 타이틀 곡이던가요?”
하필이면 또 사랑스러움을 농축한 곡이라니.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연습실 문을 열어젖히자, 발목을 풀던 하준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물었다.
“어? 하준이 너는 왜 여기 있어?”
“좀팽이가 《IDENTITY》 댄스 브레이크 만들라고 해서요. 연말 가요제에 쓴다나 뭐라나.”
“……너도 노동 착취당하고 있었구나.”
“그러는 형들은요?”
“그게, 《가요축제》 스페셜 스테이지로 걸 그룹 무대를 커버한다나 봐. 지호랑 내가 하게 됐어.”
괜스레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걸 그룹 댄스 커버에 진심인 하준이니까, 섭섭해할 만도 했다.
“그건 제가 전문가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제가 알려 줄게요! 말만 해요!”
우려와는 달리, 하준이는 우리를 가르친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했다.
지난 7년간 쭉 지켜봤던 ‘그 최하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하준이를 쳐다봤다.
“그럼, 안무 좀 알려 줄 수 있어? 베리즈의 《내게 줘(Give Me All Your Love)》인데.”
“그 말 안 했으면 진짜 서운할 뻔했어요.”
“알잖아. 지호랑 나, 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완전 나무토막이야.”
내 말에 하준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후 하준이의 지도 아래 맹연습에 돌입했다.
“자세 잡아요!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기분 탓인가.
늘 박자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는데.
“원, 투, 쓰리 앤 포! 쿵! 발 찍고 툭툭 탁!”
오늘따라 몸이 가볍다.
돌아서면 동작을 까먹던 금붕어 본능도 잠잠했다.
“원, 투! 여기서 웨이브! 오케이?”
“있잖아. 나 오늘 뭔가 좀 이상해. 감이 잡히면 안 되는데, 감이 잡혀.”
“그렇지 않아도 걱정하던 참이었어요. 갑자기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잖아요.”
“어떡하지. 나 죽으려나 봐.”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자, 하준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가 형 진짜 죽으면 어떡해요?”
“묻어야지. 양지바른 곳에.”
“흐어엉, 싫어! 다시 나무토막으로 돌아와요!”
“포기해. 난 이미 틀렸어.”
하준이는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오열했다.
……진짜로 믿는 거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문지호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 나 렉 걸렸어. 어떻게 좀 해 봐.”
문지호의 상체와 하체가 따로 움직인다.
기묘한 춤사위에 하준이의 울음이 뚝 멎었다.
이내 질색하며 문지호의 등짝을 찰싹 내리쳤다.
“건달이냐고! 머리는 왜 흔들어요!”
“사람이 흥이 나면 좀 흔들 수도 있지! 왜 때리고 그래!”
“그게 어딜 봐서 걸 그룹인데요! 그냥 만취한 아저씨잖아요! 곤드레만드레!”
음, 오늘도 사이가 좋군.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평화를 만끽했다.
* * *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소재의 밀리언 엔터테인먼트.
《가요축제》 특별 유닛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속이 메스꺼워…….”
추레한 몰골의 매니저가 숙취를 호소했다.
나는 팔꿈치를 세워 매니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언제는 정장 쫙 빼입고, 이력서까지 옆구리에 끼고 왔으면서.”
“우욱, 구우욱…….”
매니저는 건물 기둥을 붙잡고서 연신 헛구역질을 해 댔다.
그러곤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업어 키운 아이돌이 신인상까지 받았는데, 이직을 왜 해?”
“뭐야, 기억 날조하지 마요. 업어 키운 적 없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아주 조금 감동했다.
그 탈주 닌자가 우리 때문에 자진해서 좋소기업에 남겠다니.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신인상도 받았겠다, 당분간 회사가 망하진 않겠지. 게다가 골치 아픈 일은 김민수가 알아서 한단 말이야. 나는 이대로 개꿀 빨다가 실장직까지 치고 올라가련다.”
“…….”
응, 방금 했던 말 취소.
문지호와 나는 경멸 어린 눈으로 매니저를 흘겨보았다.
“진짜 싫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밀리언 엔터테인먼트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연습실에는 윈 혼자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선우!”
인기척에 벌떡 일어선 윈이 단걸음에 달려왔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
“저희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빈손으로 오기에는 좀 그래서, 이거…….”
나는 마트에서 산 뒤지몬 껌을 꺼내 들었다.
“잠 깨려고 샀는데요. 안에 이런 게 들어 있더라고요.”
뒤지몬 껌 안에 들어 있던 종이를 펼쳤다.
뒤지몬 판박이 스티커 216종
윈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습실을 서성거렸다.
그러더니만 손으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이렇게 귀한 걸 나한테 줘도 돼? 확률상 적어도 수백 개는 샀을 거 아니야.”
“우리 둘, 뒤지몬 파트너잖아요.”
“선우 넌 정말…….”
윈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윈 씨, 사실 그거 한 번에 당첨됐어요.
“맹세할게. 죽을 때까지 선우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아하하…….”
드라마 남자 주인공 뺨치는 대사였다.
멋있는데, 하나도 안 멋있어.
나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나머지 한 사람은요? 아직이에요?”
특별 유닛 멤버는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었다.
나, 지호, 윈 그리고…….
“몰랐어? 이미 와 있잖아.”
윈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무언가가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다.
미동이 전혀 없어서 커다란 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름 아닌, 어나더 수하였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어요?”
“도착은 30분 전에 했는데, 그때부터 쭉 저러고 있었어.”
“쓰읍…….”
초면도 아니고, 윈과는 《아이돌 쉐프》까지 함께 촬영한 사이가 아니던가.
저쪽도 참 어지간히 숫기가 없구나.
“Yo, 수하 씨!”
내가 이름을 부르자, 수하는 그제야 뻣뻣하게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 줘서 크게 기뻐하는 눈치였다.
“……세요.”
윈이 물었다.
“선우, 저 사람 뭐라고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느낌상 인사가 아닐까요?”
특별 유닛 멤버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가요축제》 피디가 보고자 했던 그림이 무엇인지 말이다.
문지호는 연습실에 들어온 후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고.
윈은 뒤지몬을 모르는 사람과는 5초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리고 수하는…… 말을 말자.
‘이건 확실히…… 망한 조별 과제군.’
《가요축제》 피디가 보고자 했던 그림.
그것은 바로 망한 조별 과제였다.
그게 아닌 이상, 이 터무니없는 조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띄워 보고자 운을 뗐다.
“저희 유닛 이름 정해졌어요? ‘부끄즈’ 어때요?”
“…….”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다. 그냥 ‘절간’이 낫겠네요.”
나는 체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들 안무 숙지는 했어요? 일단 지호하고 저는 외워 왔어요.”
“당연하지.”
“……했어요.”
대답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네.
여하튼 안무는 모두 숙지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러면 대형부터 맞춰 볼까요? 윈 씨가 메인 댄서니까 잘 좀 봐주세요.”
“알겠어.”
“음, 기존 안무는 둘씩 등을 맞댄 상태로 시작하네요.”
대형을 잡기도 전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저기요. 왜 셋 다 나한테 들러붙냐고요. 자석이세요?”
졸지에 유닛 멤버들이 나를 등으로 누르는 꼴이 됐다.
세 사람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그야…….”
“그나마…….”
“친근하니까……?”
무슨 이런 돌아이들이 다 있어.
나는 텅 빈 눈으로 거울을 응시하다가, 유닛 멤버들의 등짝을 매섭게 쳐냈다.
“저리 가! 가!”
이게 바로 망한 조별 과제를 끌고 가야 하는 조장의 서러움인가.
다가오는 스페셜 스테이지가 몹시 두려웠다.
* * *
B 본부 연말 가요제 《가요축제》 방송 당일.
우리는 김창식 씨 부부가 공들여 제작한 무대 의상을 갖춰 입었다.
얼마 전 《KAKA AWARDS》에서 입은 새까만 제복도 반응이 좋았는데.
오늘은 새하얀 시폰 의상을 입었다.
걸을 때마다 등에 달린 시폰 장식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근데 말이야. 내 얼굴에 혹시 뭐 묻었어?”
대기석으로 향하는 길,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시선에 뺨이 후끈해졌다.
앞서 걷던 병철이가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형, 정말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재수 없다고 욕먹어.”
“억울해. 내가 뭘 했다고.”
대기석에 당도하자, 더엠페러 멤버들 사이에 앉아 있던 진혁이 격하게 환호했다.
“내 동생, 천사인 줄 알았어! 옷이 날개라더니 진짜 등에 날개가 달렸네!”
진혁은 주변에 앉아 있는 아이돌 멤버들에게 일렀다.
“쟤가 제 동생이에요. 예쁘죠.”
“동생이요?”
“네, 블랙시즌 선우예요. 제가 마음으로 키웠어요. 완전 천사.”
어떡하지.
저 사람, 너무 창피해서 모른 척하고 싶어.
한동안 주접을 떨던 진혁이 헤실헤실 웃으며 외쳤다.
“아, 맞다! 큐시트 봤어! 스페셜 스테이지 기대할게!”
혼자 알고 있긴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진혁은 대기석 순회에 나섰다.
“우리 선우가요. 오늘 《내게 줘(Give Me All Your Love)》 커버할 거예요. 기대 많이 해 주세요.”
……제발 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