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213
사상 최강의 오빠 215화
42장 강림(1)
이그드라실의 잔뿌리가 고름이 들 어찬 혈관처럼 팽창했고, 별의 바다 를 누비고 있는 이그드라실의 가지 들이 태풍을 맞이한 것처럼 떨기 시 작했다.
마치 폭풍전야를 알리는 전조현상 과 같은 이그드라실의 태동에, 까마 귀가 말했다.
-이제 모든 건 너에게 달렸다.
까마귀가 날갯짓과 함께 자신의 어 깨 위를 박차고 오르자, 김세훈이 물었다.
“어딜 가려는 거지?”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도망가는 건가?”
까마귀가 자조 섞인 웃음소리를 홀 리며 말했다.
-사실, 그게 맞다. 하지만 내가 있 다면 네가 아버지를 설득하기 힘들 테니 당연한 행동이기도 하지. 지금 이 순간, 내가 옆에 없어야 아버지 는 네가 나에게 속아 자의가 아닌 타의로 행동했다 여길 테니.
“나 혼자서 주신을 상대하라는 건 가?”
까마귀가 김세훈을 대놓고 비웃었 다.
-상대? 베히모스. 착각하지 마라. 네가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은 전투 도, 전쟁도 아니다. 그래, 아량을 구 걸해 얻은 방심으로 뒤통수를 치는 것.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 라.
“…그러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있는 김세 훈을 보며 까마귀가 말했다.
-사도가 된다고 해라.
김세훈이 눈이 반개하며 검은 눈동 자가 드러났다.
“사도라… 나는 이미 그 제안을 거 절했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아버지는 널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틈을 내 어주지 않겠지.
“사도는 계약자와 다르다. 육신, 영 혼. 그리고 기억마저도 모두 종속되 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꼭두각시가 된다는 소리다. 뿐이던가? 잊지 마 라. 까마귀. 내 기억이 주신에게 넘 어가면….”
김세훈의 말에서 풍기는 불길한 뉘 앙스에 까마귀가 즉답했다.
-알고 있다. 하나, 이대로라면 분 명 아버지는 널 보자마자 전후 사정 을 알기 위해 네 뇌를 열어보겠지. 알겠나?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 네가 사도를 자처하면 당장 훑어보진 않을 것이다. 천계에 가서 사도 의식을 치르기 전에 네 심기를 자칫 거스르기라도 하면 일을 그르 칠 거라 생각할 테니.
“일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글 쎄… 주신은 이미 나를 배신자라 생 각할 텐데… 그런데도 과연 그가 그 런 쓸데없는 배려를 해줄까?”
까마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중분히. 쯧, 너는 모르는구나. 아 버지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베 히모스. 너는 딸과 아들. 그리고 친 구에게서 버림받은 아버지가 늪 속 에서 헤맬 때. 그 속에서 아버지를 꺼내준 유일한 동아줄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할 초라한 시기에 계약자를 자처한 공신(功臣) 이지.
“…공신이라….”
-천계에 자리 잡은 만신들. 그리고 나. 그 모든 이가 너를 배신자라 부 르짖어도, 아버지만은 너를 믿을 것 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분명 너를 의심하기보다 나를 원망하고 있을 터… 넌 그 틈을 노려야 한다.
아들을 믿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 를 죽이려는 아들.
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이 무엇일 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김세 훈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치웠다. 이제 와서 이런 의문을 떠올려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주신이 나에게 틈을 내줄까?”
김세훈의 당연한 의문. 하지만, 까 마귀는 칠흑빛 날개를 펄럭거리며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너라면 발밑을 기어 다니는 개미 가 무서워 발을 치우겠는가? 베히모 스. 기우에 놀아나지 마라. 아버지가 너의 뇌를 뜯고, 너의 의중을 계속 해서 떠보는 것은 네가 두려워서가 아니니까. 그저, 나와 누이에게 배신 당한 후… 치유할 수 없는 의심증에 걸린 것일 뿐….
말을 잠시 멈춘 까마귀가 머뭇거리 다,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항상 너를 확인 했던 것은 진정 너를 의심했다기보 다는, 습관에 불과한 행위였단 소리 다. 그리고, 아버지는 최강의 사도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자신의 습관 하나 통제 못 할 정도로 어리 석은 분이 아니지.
“사도가 된다 하면, 당장 나의 뇌 를 뜯어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어차피 네가 사도가 되는 순간, 너의 기억은 물론, 모든 것이 자신에게 종속될 터인데 왜 그런 짓 을 하겠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도가 타의가 아닌 오직 자의로만 될 수 있기 때문이기에 가능한 것이 나… 우리에겐 다행인 일이지.
크르르릉.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천둥소리. 동시에, 별의 바다가 바람에 떠밀린 것처럼 점차 빨리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지구의 자전이 빨라 졌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그러나 그 맹렬한 자전속에서도 이 그드라실은 기둥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켰다. 물리법칙을 명백하게 위배하는 그 이상 현상에 김세훈이 침음성을 홀 렸다.
“…오는가.”
지진을 직감한 쥐 떼처럼 급히 자 리를 뜨려던 까마귀는 문득, 떠오른 바가 있는지 김세훈을 돌아보았다.
-너는 계약 당시, 아버지의 본신을 목도한 바 있을 것이다.
“그래, 본 적 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을 지워라.
“어째서?”
-지금부터 알게 될 테니까. 어째서 신들이 오만한지. 그리고 너희들이 왜 벌레인지. 베히모스, 아니, 김세 훈. 명심해라. 신이 진체(眞體)를 드 러내는 순간은… 강림밖에 없느니. 너는 지금에야 비로소 그의 진면모 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 조언을 끝으로 까마귀는 김세훈 을 홀로 내버려 둔 채, 자리를 떠났 다. 마치, 태풍을 피해 도망가는 철 새처럼 다급한 날갯짓으로.
그것은 처음엔 하늘의 점과 같았 다. 별의 바닷속에서 흘러나온 티끌. 혹은 하늘에서 묻어나온 가루같이.
하나, 그것이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깨 달았다.
자신들의 주인이 왕림했음을.
처음은, 인외종이였다.
– 오셨다.
-우리의 어버이가.
하늘제의 기능이 올 스톱됐다는 것 을 모른 채, 헌터들과 격전을 벌이 던 인외종들이 모두 그 자리에 무릎 을 꿇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심장과 정수리에 검과 창이 꽂혀도 아랑곳하지 않았 다.
마치 무릎을 꿇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는 것처럼, 그들은 죽으면 서도 무릎을 꿇고 엎드렸으며, 오체 투지를 했다.
그것은 자신들을 창조한 어버이를 맞이하는 그들의 숭배였고, 경배였 다.
“뭐야, 인외종들이 다 왜 이러 는…”
두 번째는, 인간이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멈추고, 손에 든
쇠붙이를 길게 늘어뜨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야에 잡히는 하늘의 점.
그것은 너무 멀다 못해, 모니터에 묻은 먼지처럼 인지하기조차 쉽지 않았으나.
그들은 그것의 숨소리가 자신의 볼 을 간지럽힐 정도로 지척에 있는 것 처럼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세월이 묻어나오는 새하얀 모발.
바람에 휘말려 국기처럼 나부끼는 순백의 턱수염.
노회한 소나무처럼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체구.
일견, 그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노인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모두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그들의 근원(根源)의 일각임을.
그리고, 깨달은 인간 모두가 천천 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것이 그에게서 비롯된 생명으로 서 해야 할 당연한 행위라 여겼기 에.
스르륵.
세 번째는, 천지 만물이었다.
고고히 높게 서 있던 고목이 기역 자로 꺾이고, 넘실거리던 파도가 그 자리에 멈췄다.
지구의 자전이 멈췄고, 해가 눈을 감고 밤이 내려앉았다.
어두워진 세계.
밤하늘의 융단이 깔린 대지에 노인 이 내려섰다.
노인의 하얗게 부르튼 입술을 열리 며, 쇠심줄이 서로 비비는 듯한 탁 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녹슨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기능하지 않았던 성대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 같았다.
“베히모스. 나의 계약자.” 흔들리는 동공으로 노인을 마주한 김세훈의 뇌리에 스승, 시리우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는 지성 있는 가축이 백정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본 적 있느냐?
과거, 계약 당시에는 몰랐다. 그 말의 의미를.
대단한 존재감이긴 했으나, 그 정 도로 위압적이진 않았기에.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알게 될 거다. 네가 꿈꾸는 게 얼 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그리고 네 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이 앞에 있는 노인이 자신의 근원 이었으며, 창조주이며. 신이라는 것 을.
씻은 듯이 사라지는 적의.
심장과 세포 사이에 스며 있던 중 오와 원한이 사그라들며, 그 자리를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경애심이 차 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세훈의 뇌리에 떠오르는 의문.
‘내가 감히… 이것을 범할 수 있을 까?’
김세훈의 무릎이 서서히 굽혀지더 니, 바닥에 꿇었다. 노인의 체구는 작디작아, 허리를 펴봤자 김세훈의 가슴 편에 자리 잡 을까 말까였으나, 김세훈이 무릎을 꿇자 노인의 단전이 김세훈의 눈앞 에 있었으며, 바닥에 상체를 내리깔 고 오체투지를 하자 그의 이마에 노 인의 발치가 닿았다.
“…계약 신을 뵙습니다.”
“까마귀에게 흘렸다 들었느니. 일 단… 보자꾸나.”
노인이 앙상하다 못해 비틀어진 가 지 같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김세훈이 자신의 목소리가 다급해 보이지 않도록 안 간힘을 쓰며 말했다.
“사도가 되길 청합니다.”
우뚝.
멈춰선 노인의 손. 이내, 노인이 말했다.
“마음이 바뀐 이유. 말해 보아라.”
“까마귀에게 흘리고 나서야 알았습 니다. 제 본의와 다르게, 당신께 제 가 누를 끼칠 수도 있음을.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사도가 되기로.”
노인이 말없이 턱수염을 쓰다듬었 다. 그리고 김세훈의 쓰다듬으려 하 길 수차례. 끝내, 손끝을 거둔 노인 이 말했다.
“사도가 되면, 너의 육신과 영혼은 내 것이 된다. 이것은 신노와도 다 르다. 그것이 노예라면 이제부터 너 는 나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 결정은 너라 는 존재가 나를 이루는 세포의 일부 분이 되길 청하는 것이나 다름없 다.”
노인의 눈구덩이를 커튼처럼 덮고 있는 눈썹 사이로 퍼런 안광이 비쳐 나왔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청이 있습니다.”
청이라고 하나, 조건이나 다름없는 말. 하지만, 노인은 기꺼이 받아들이 겠다는 듯, 뒷짐을 지며 차분한 어 투로 답했다.
“얼마든지, 무엇이든.”
“제 동생이 라플레시아로 가길 청 합니다.”
“허한다.”
노인의 윤허가 떨어짐과 동시에, 지구 반대편의 오지에 숨어 있던 앨 리스와 김세정은 용유도에 나타났 다. 말 한마디로 김세정을 하늘제에 통과시킨 것이다.
“저의 친구. 최강혁이 신노의 굴레 를 벗고, 제 동생을 돕길 청합니다.” 노인이 하얀 눈썹을 씰룩거리더니,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말했다.
“최강혁은 죽었다.”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도 규정이 있느니, 비록 내가 주신이라 하나, 죽은 것을 살 리지 말라는 선조신의 방침은 어길 수 없다.”
숫자로 단위를 매기기조차 힘든 숫 자의 생명을 필요에 의해 학살해왔 던 이의 말이라곤 믿기지 않았으나, 신들의 이러한 이중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김세훈은 담담히 답했다.
“한번 신노가 된 이는 신들에게 영 원히 봉사해야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 의무는 죽음조차 막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렇다면, 최 강혁은 아직 죽지 않은 게 아닌지 요?”
노인이 혀를 찼다. 김세훈이 신노 에 관한 깊은 지식마저 꿰고 있을지 는 몰랐기 때문이다.
“쯧… 내 너의 영악함을 평소엔 기 특히 여겼으나… 지금은 마뜩잖구 나. 하나, 들어주도록 하마. 네 말대 로 최강혁은 신노. 그렇기에 진정한 죽음엔 이르지 않았음이니… 선조신 들도 나를 용서하시겠지.” 노인의 윤허가 떨어지자, 탐무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최강혁이 용유 도에 있는 김세정의 곁에 생전의 모 습 그대로 살아났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히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김세훈은 노 인을 의심치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로 자신을 기만할 주신이 아니었 기 때문이다.
‘이걸로 빚은 없다. 최강혁.’
그의 남동생은 진즉에 용유도에 도 착한 터. 그러니 이걸로 빚은 전부 청산했다 봐도 무방하리라.
그래, 받은 것은 갚아야 하는 법.
하나, 사실 이유는 그런 마음의 빚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는 나중에 여건이 되면 묻 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그가 왜 자 신을 위해 행동했는지.
‘넌… 왜 그랬지? 차라리… 이춘수 처럼 당연한 결정을 내렸다면, 내 생각대로 움직였다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너의 죽음은 모순투성이기에, 살릴 수밖에 없었 다.’
원래는 최강혁이 자신의 협박에 넘 어가지 않았을 때, 김세훈은 그를 겁박해 강제할 수단도 마련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내민 협박이라는 카드에 그는 기꺼이 응했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대체 왜?
김세훈은 궁금했다. 그래서 살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래 만일이지만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에 대 한 답을 듣고 싶었기에.
노인이 사막의 모래처럼 메마른 목 소리로 물었다.
“더 있느냐?”
“없습니다.”
노인이 자신의 앞에 오체투지를 한 채 엎드려 있는 김세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전에 나는 물었다. 사도가 되면, 네 동생과 어미. 모두를 살려주겠노 라고. 하지만, 그때 너는 내 제안을 거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받아들 이는구나. 왜지?”
“그들이 원치 않았으니까요.”
“그들?”
“제가 죽인 이들. 그리고, 제 이기 심에 희생된 이들. 그들 전부가 제 발목을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습니 다. 그 제안에 응해, 제가 저의 의 무로부터. 그리고 저의 죄로부터 도 망가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 다.”
“…그런데 지금은 왜?”
“수십 년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에게는 평생일 수도 있는 오십. 아 니 칠십 년에 가까운 세월. 저는 그 들을 위해 괴로워해야 했고. 불행해 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이 정 도면 충분한 것 같다고.” 아니었다. 아직도 부족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고작 이런 거짓 참회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죽음.
죽음만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으리 라.
노인이 말했다.
“…나는 진작에 너의 그 자학심과 자괴감이 너를 망칠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구나. 그딴 무가치한 감정 따위에 놀아나… 우 리가 이토록 돌아와야 했다니….”
하지만, 그들을 위해 죽어줄 수조 차 없었다.
그는 죽음조차 제 마음대로 결정지 못하는 몸이었으니까.
하나, 죽을 수 있어도 그러지 않았 을 것이다.
죄에 매몰돼 죽음을 택하는 것.
그런 방식은 자신의 방식이 아니었 기에.
그래, 이 모든 원인.
자신이 불행해져야 했고.
그들이 그렇게 스러졌어야만 했던 원인.
그것을 없애주는 것.
참회 대신 복수.
그것만이 자신도, 그들도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고 결말이 었다.
“됐다. 그래도… 다행히 제자리를 찾았구나. 허허… 버텍스를 사도로 받아들인다? 그 긴 시간. 그 어떤 신도 이루지 못했던 원을 내 너를 통해 이루게 됐느니….”
수많은 버텍스가 신들을 거쳐 가는 동안, 어떤 겁박과 회유 앞에서도 버텍스들은 넘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태어나길 그렇게 태 어난 것처럼, 자신들을 적대하고, 증 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돌연변이는 있는 법. 결국 돌고 돌아 버텍스를 사도 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에, 노인이 흡족한 웃음과 함께 뒤 돌더니, 그답지 않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음, 이제 와서 이런 하계 따위 어 찌 되든 상관없는 일. 너 하나를 얻 은 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좋다! 가자, 천계로 가서… 사도 의식을 치르자. 그 뒤에, 베히모스의 굴레를 벗겨 너를 제대로….”
등, 노인의 등이 김세훈의 시야에 들어왔다.
틈, 단 하나의 틈.
수십 년을 꿈꿔왔고 갈망했던 순 간. 그리고 기회.
김세훈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치아에 짓눌린 혀끝이 잘려나 가며 핏물이 흘러나왔다.
뇌리를 찌르르 울리는 격통. 그리 고, 번쩍 드는 정신.
‘움직여라.’
독기에 찬 그 소리 없는 기합에 신위에 짓눌린 그의 무릎이 서서히 들고 일어섰다.
‘이정협-!’ 울분에 찬 소리 없는 비명에 연옥 에 거하고 있는 그의 친우가 움직였 다. 그리고, 그의 손아귀 안에 볼품 없는 나무창 하나가 들어왔다.
신살의 창 롱기누스가 억겁의 시간 을 지나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할 수 있다.’
온몸의 세포가 애원했다.
너의 어버이를 범하지 말라고.
뇌가 전해왔다.
이것은 잘못됐다고.
영혼이 속삭였다.
그래선 안 된다고.
이것은 아마도, 그가 태어났을 때 부터 유전자, 혹은 영혼 속에 새겨 져 있던 어떤 것.
신들이 그의 영혼에 새겨놓은 천륜 (天倫)의 각인. 혹은 명령.
김세훈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초승달을 덮어놓은 듯한 눈웃음과 함께 그의 손에 들린 나무창의 끝이 노인의 등을 겨눴다.
뇌 속을 헤집어 높을 것처럼 쉴 새 없이 울리는 경고음을 김세훈이 비웃었다.
‘짖어봐야 소용없다. 미안하지만 나는 태생이 개새끼인지라… 이제 와서 어떤 죄를 짓든 개의치 않으니 까. 그래, 나와 같은 금수 새끼 정 도가 아니라면야, 어찌 감히 신을 범하겠는가?’
비명을 닮은 포효가 김세훈의 입에 서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손끝 을 벗어난 나무창이 노인의 등을 향 해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