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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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떠나서 과거 공작령에 소속이었던 마을과 도시를 방문하기 전,
우리는 성에 있을 인원을 먼저 차출해야만 했다.
성에는 고용인들도 있었고, 또 산맥을 임대한 상단에서 수시로 오는 연락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레안드로스는 꼭 필요한 전투 인원이라 제외.
나는 레안드로스가 미치지 않게끔 보조하는 역할로 제외.
남은 건 아른트와 아멜리아, 두 사람이었다.
“당연히 제가 가야겠죠? 공작님을 보좌할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신자. 인간 남성 또 나댄다. 한마디 해라. 시끄럽다. 다물라.”
다 함께 모인 집무실.
아른트는 눈사람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엣흠, 하며 제 가슴을 탁탁 쳤다.
아멜리아는 그걸 흘금 보고 읽고 있던 성벽 보수지출 예산안만 마저 볼 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른트는 신이 났는지 열심히 떠들었다.
“공작령을 순찰하는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 레안드로스 경과 제가 있으니 공작님은 안심하실 일만 남았네요.”
“이러다가 혼자서 마수를 잡겠다는 소리도 나오겠어.”
물론 아른트가 기대하는 것처럼 이번 일이 쉽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 세계관에서 방심하는 건 금물이었다.
나는 자신만만한 아른트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어쩐지 들뜬 것 같아 보이는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더 좋잖아요. 저기 보이는 경처럼 우중충하게 앉아만 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누가 우중충하다고?”
레안드로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른트는 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보셨죠, 공작님. 경은 늘 우중충하다니까요.”
레안드로스가 표정이 딱딱하긴 하지만 그런 걸로 놀리는 건 좀.
능청스러운 아른트 때문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올 때.
아멜리아가 조용히 일어나 예산안만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방을 나섰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눈사람을 아른트에게 떠맡기고 그녀를 따라 나갔다.
“잠시만,”
집무실을 빠져나오자, 아멜리아는 벌써 집무실과 이어진 복도를 절반이나 넘어가고 있었다.
“아놀드 영애!”
“고, 공작님.”
차분한 회색 숄을 두르고 있던 그녀가 돌아봤다.
여전히 깡말랐지만, 공작가에 막 왔을 때보다는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제가, 호, 혹시, 들어야 하는 주, 중요한 이야기라도?”
“아뇨, 그게 아니라. 공작령의 순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그, 그건 와, 왕세자 전하의 제, 제안이니까. 무, 무조건 반환을 거, 거부하, 하,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요. 어, 그, 어, 떻게 될지는 모, 모르겠지만, 마, 만일 마, 마수가 넘어왔다, 는 소문을 뿌, 뿌린다면…….”
“그게 아니라 아놀드 영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함께 둘러보고 싶다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아멜리아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희미하게 착잡한 기색이 엿보였다.
잠시 말을 고르던 그녀는 살짝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저, 저는, 소, 손님일 뿐이고. 저 같은 여, 여자가 동행해봤자……. 지, 짐이라.”
“그런 말씀은 마세요. 본인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전 공작부인께서, 그, 그렇게 마, 말씀하셨나요?”
정확히 말하면 북부에서 본 거지만.
나를 피신시키고 혼자서 날개 달린 마수와 일대일로 싸우고 이겼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았다.
아멜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백했다.
“고, 공작부인께서, 궈, 권유해주시고, 또 교사도 붙여 주, 주셔서……. 그런데, 흥미가 생겨, 생겨서 잘 배워서.”
“병이 깊어지면서 일어나지 못하셨을 때는 힘드셨겠습니다.”
“그, 그런 건 아니고. 어, 어쨌든 지금은 그, 그때만큼 잘하지 못해서. 그래서 민폐가 될까, 봐서.”
“그렇군요.”
아멜리아는 어디까지나 성에 손님의 신분으로 온 거다.
여기서 같이 가 달라 떼를 쓰는 것도 이상하겠지.
완강하게 거부하는 말에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겠습니다. 아놀드 영애께서는 제 어머니와 공작가를 잘 지탱해주셨어요. 지금도 많이 도와주고 계시죠.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인데, 제가 너무 무리한 것을 기대했나 봅니다.”
“그, 그건.”
“어렸을 때 저는 성 밖으로 나가지 못했잖아요. 그때 어머니께서는 제게 하르트만 영지의 풍경을 설명해 주셨답니다.”
“풍경, 이요?”
“넓고 푸른 하늘. 풍요로운 황금색 밀밭이 너울거리는 땅. 완만한 언덕의 초록색 곡선 같은 것들이요.”
물론 공작부인에게 직접 이런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이미 죽은 공작부인에게서 어떻게 그런 말을 듣겠나.
공작부인의 일기에나 그렇게 쓰여 있었지.
나는 계속해서 뻔뻔스럽게 훔쳐 읽은 일기의 묘사를 인용했다.
“지금은 전부 잃어버린 땅이지만, 그래도 그걸 꼭 제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일까요?”
“그…… 렇군요.”
“아른트는 영지를 둘러본 경험이 없습니다. 레안드로스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요. 영애께서라면 혹시 지리를 자세히 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부담스러운 권유가 되었군요.”
짙은 죄의식이 아멜리아를 덮쳤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얼굴과 어쩔 줄 몰라 하는 시선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번 회차를 시작하면서, 나는 몇 가지 변주를 더했다.
그 예시 중 하나.
현재의 아멜리아는 내가 그녀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각을 회수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른 약점을 잡겠다거나 하는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다.
내가 그녀의 죄책감을 이용해서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그녀가 죄책감을 가지고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회차를 좀 봐라.
슈첸페스트에서 아른트에게 홀딱 빠지고, 북부에서 아른트와 관련한 편집증까지 발현한 덕분에 이후로 어디 써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뭐만 시키면 아른트를 부르짖는 사람에게 대체 뭘 부탁하겠냐고.
아멜리아를 이번 회차에서도 만날 거라면, 그녀가 품고 있는 계기와 중심을 내가 확실히 고정해줘야만 했다.
물론 이것도 아멜리아가 공작가를 배반한 네 명의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만.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 숄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며주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께서 믿으시던 분이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제가 기대를 해버렸네요. 제가 이런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아셔서 실망하셨겠습니다.”
“아, 아, 아니에요! 그, 그렇게 자, 자책을 하시지 아, 않으셔도.”
“하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기는 합니다만. 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도와준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고요.”
“그, 그건.”
“그런 면에서 제 어머니는 참 행운이셨던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의 발끝만큼이라도 따라가야 할 텐데. 때때로 그러지 못할까 봐…….”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한숨처럼 뱉었다.
“무섭네요.”
아멜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기보다 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애가,
자기의 잘못으로 쫄딱 망해버린 성에 돌아와서 아등바등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열심히 성을 꾸려나가고 있다가,
지금 혼자 슬쩍 찾아와서 연약한 모습을 내비치는 상황이잖아.
여기서 양심이 안 찔리면 사람도 아니다.
아멜리아의 숄에서 내 손이 살짝 떨어지자마자 이번에는 그녀의 마른 손이 떨어지는 손을 덥석 잡아 왔다.
“아놀드 영애?”
“고, 고, 공작님, 제, 제, 제가 정말로 무례한, 마, 마, 말씀을 드리는 거, 걸지도 모, 모르지만요. 호, 혹시, 제, 제, 제 도움이 피, 필요하시다면. 그, 제가, 정말로, 옛날의 이, 일이라서 자, 잘은 모,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말씀은…… 그러니까 저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그,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서, 성을 도와 드리겠다고, 야, 야, 약속을 드, 드린 상태, 라서, 그, 약속을 했으니까!”
“와아.”
나는 아멜리아의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영애.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제가 오히려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아, 아, 아니에요.”
“그럼 돌아가서 아른트에게는 제가 말하죠. 영애가 대신 가시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아놀드 영애는 가기 전에 체력 비축을 해둬야 하니까 식사도 많이 드셔야 합니다.”
“그으, 그럴게요.”
비틀비틀하며 악수를 당하는 아멜리아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았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본인이 스스로 문 미끼인데 누굴 탓해?
아른트는 제가 빠지고 아멜리아가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그게 하루 이틀이 되니까 아무리 나라도 약간 신경에 거슬렸다.
처음에는 왜 자기가 아니냐고 엉엉 우는 아른트에게 이번 일의 중요성, 전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하나하나 설명해줬지만…….
나중에는 말하기 지쳐서 그냥 대놓고 레안드로스와 붙어보면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본인 몸 하나는 지킬 줄 알아야 짐이 안 되겠지? 아놀드 영애는 영지의 지리도 알고 있고, 호신술은 충분히 배웠어.
-하지만 공작님!
-레안드로스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지킬 여유가 없을 거야. 정 가고 싶다면 레안드로스와 한 판 붙고 와.
-네에?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진심이시냐고요! 제가 어떻게 이겨요!
-누가 이기랬어? 붙어보랬지. 네 몸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라니까?
결국 아른트는 레안드로스에게 두들겨 맞기보다 성에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물론 아른트의 입은 툭 튀어나와 있었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좀 풀려 있겠지.
왕실 직할령을 방문하는 거라 별다른 허가 절차는 없었다.
대신 나와 아멜리아는 성을 떠나기 전에 최대한 성 내부의 일은 처리하고 가야만 했다.
특히 나는 마수 사업 관련으로도 볼 게 많았고.
며칠 후, 우리가 성을 떠날 때쯤.
“검사. 내 신도 죽었다?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산다. 조치를 취한다.”
“안 죽었으니까 공작님 등에서 내려오지 그래.”
마중을 위해 성 밖까지 따라 나온 고용인과 아른트는 밤샘 업무로 파김치가 된 아멜리아와 나를 말 위에 얹고 끌고 가는 레안드로스와 눈사람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르트만 공작가에 다시는 없을 희한한 장관이었다.
* * *
“이렇게 피곤하신 줄 알았더라면 마차를 가지고 오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하, 하지만 마, 마차는 너무 누, 누, 눈에 띄니, 까요. 가, 가능하면 소, 소박한 인상을 주, 주는 게 좋아요.”
“그건 그렇죠.”
평범하게 말을 타고 이동하는 여행길의 도중.
우리는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칙칙한 색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내 망토의 후드 안에는 눈사람이 들어가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성을 떠나오기 전, 아른트는 험한 길이 될 거라며 질 좋고 포근한 옷을 권했지만, 아멜리아가 극구 말렸다.
이제부터 만나야 하는 사람은 전부 작위가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비싼 옷을 입고 구제 활동을 벌여봤자 좋을 게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 그리고 평민들에게, 어, 어떻게 대하는지, 아, 아시고 있으시죠? 공작가에서, 고, 고용인 대하듯 하시면, 아, 안 돼요!”
“잘 알고 있다니까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보다 먼저 처리할 문제가 있지 않아요?”
“무, 뭔데요?”
“호칭 문제 말입니다. 두 사람이서 저를 공작이라 부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요. 거리감도 느끼겠죠.”
“그, 그건 그렇지만요. 그, 그럼 이제부터 어, 어떻게……?”
아멜리아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물었다.
어라, 그렇네.
보통은 가족이라고 위장하는 게 편하겠지만 여기 있는 셋은 머리카락 색부터 인상까지 닮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영애는 제 사촌누이고, 레안드로스 경은 제 조카인 걸로.”
음, 이만하면 훌륭하다.
사촌이라면 생김새가 많이 달라 보여도 문제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제안을 들은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뭡니까?”
“그, 고, 공작님. 그게.”
“공작님께서 그 얼굴로 저와 영애를 조카나 누이라고 부른다면 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아, 아무래도 고, 공작님께서 너무 어리셔서. 경, 공작님께서는 오, 올해 나이가 어, 어떻게 되셨죠?”
“복권 직전에 간신히 성년이 지나셨습니다.”
“어, 어머나. 어, 엄청 어리시네요. 그, 그러면 레, 레안드로스 경이 사, 삼촌 아닌가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제 생각에는…….”
두 사람은 나를 버려두고 쑥덕거리더니 나를 쳐다봤다.
“고, 공작님께서는 상단 가문의 따, 딸인 제, 사촌 동생이세요.”
“제가요? 영애의?”
“그, 그리고 경은 제 호위 용병으로.”
“레안드로스가요? 영애의?”
“원래 여, 여행객의 주체가 여자면 의, 의심을 더, 덜 받아요.”
“이해는 가지만 제 의견은 하나도 반영 안 되었잖아요.”
“그, 그럼 이제 다 함께 마, 말도 놓을까요?”
“저는 용병이니 의뢰주에게 말을 놓지는 않아도 되겠군요.”
“그, 그렇군요. 그럼 저도……. 앗, 고, 공작님. 저, 저한테는 말 노, 놓아도 돼!”
“아니, 제 의견이 하나도 반영 안 되어 있다니까요?”
액면가가 어리다고 이런 취급을 받다니?
이제까지 줄곧 가장 노릇을 한 건 난데, 지금은 또 동생 취급이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멜리아는 사촌 동생의 디테일한 설정을 궁리하고 있었고, 레안드로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자 낮은 웃음소리가 잠시 들렸다.
이 새끼. 이거 웃을 줄도 아네.
“웃지 마.”
“안 웃었습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토라진 모습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도련님.”
“내 맘이지!”
“공작령이었던 곳에 처음 발을 들이시는데, 언제까지고 찌푸린 표정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거 호칭도 막 바꾸네.
내가 도끼눈을 뜨고 보자 레안드로스는 저쪽 지평선을 턱짓했다.
화창한 날, 멀리 점처럼 보이는 작은 마을.
레안드로스가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글리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