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6)
◈ 26화. 초유림의 기지
정가장주 부자는 조금 마른 것을 빼곤 건강했다.
갇혀 있던 무인들까지 모두 구출한 진무립은 그들과 함께 동굴을 벗어났다.
무려 두 달 만에 달빛을 본 소장주 정유명은 감격에 벅찬 얼굴로 진무립의 손을 잡았다.
“소공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정가장의 식솔들은 길바닥에 나앉았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주 정필군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고맙소. 소공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려.”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뭘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면 식사나 한 상 거하게 차려주시지요.”
“물론이오. 밤새도록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니 서둘러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십시다.”
그들을 가까운 백하촌까지 데려간 진무립은 유대하와 함께 관제묘로 향했다.
어제 당한 후유증에서 회복한 유대하는 제법 빠른 속도로 진무립을 따랐다.
“소공자.”
“뭐야.”
“동굴을 지키고 있던 놈 말입니다. 누구였습니까?”
“음야살귀라더라.”
“역시.”
상대는 자신의 예상대로 천하삼흉의 일인이었다.
쇳소리가 들린 시점부터 진무립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일각.
고작 일각 안에 놈을 죽였다는 것이 된다.
유대하는 진무립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자신과 비슷한 나이, 무림의 기준에서 후기지수에 속하는 인물 중 천하삼흉을 단신으로 때려잡을 만한 무인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소천무군(小天武君) 단자룡.’
천하제일인 단소룡의 아들이자 약관을 지나기 무섭게 무림 칠경에 오른 고수.
그는 머지않아 십대고수에 오를 거란 평가가 지배적인 천하가 인정한 천재였다.
유대하는 왠지 뿌듯해졌다.
‘화령에 단자룡이 있다면 마도림엔 진무립이 있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소공자에 미치진 못할 것이다.’
문득 진무립이 무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졌으나 기다릴 셈이었다.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해줄 때까지.
유대하가 계속해서 히죽거리자 진무립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혹시 그놈한테 머리를 심하게 맞은 거냐?”
***
관제묘의 싸움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무려 두 시진이나 이어진 싸움.
사방을 포위한 광룡대원들은 손에 땀을 쥔 채 혈투를 주시했다.
무게감 있는 용추가 전방에 나서고 날렵한 두 여인이 측면을, 몇 걸음 떨어진 조장들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십대고수에 준한다는 소문에 걸맞게 혈천수라의 혈해마검(血海魔劍)은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어지간해선 상처를 입지 않는 용추의 몸조차 채찍으로 때린 것처럼 붉은 선이 가득할 정도였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전투,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혈천수라를 상대하던 이들은 조금씩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용소협이 너무 많이 당했어. 이대론 버티기 어려워.’
단려화의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정작 급한 것은 좀처럼 우위를 점하지 못 하는 혈천수라였다.
‘대체 이 년놈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거냐!’
상대는 고작 셋이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후기지수.
쉰 명의 광룡대는 나서지도 않았는데 발이 묶여있으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초전에 들이마신 독분의 기운도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가까스로 일장의 공간을 확보한 혈천수라는 숨겨둔 삼 할의 내력까지 모조리 끌어올렸다.
한층 더 짙어진 혈광.
오싹한 사기를 토해내는 혈천수라의 주변으로 검붉은 운무가 피어올랐다.
“본좌의 무명에 혈천(血天)이 붙은 이유를 알려주겠다.”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을 맴돌던 불길한 운무가 혈천수라의 몸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그의 발이 살짝 움직인다 싶은 순간, 일 장 밖에 있던 혈천수라의 신형이 용추의 코앞에 나타났다.
“네놈부터다. 덩어리.”
짙은 혈광이 번뜩이며 혈천수라의 검이 용추의 가슴을 찔러 갔다.
급하게 몸을 비튼 용추의 어깨에서 시뻘건 피가 튀었다.
“큭!”
금영무단경(金影武鍛憬)을 익힌 용추는 금강불괴와 다름없는 신체, 하지만 혈천수라의 검은 단단한 용추의 육신을 찢어낼 만큼 날카로웠다.
곁눈질로 주변을 빠르게 훑은 용추는 망설였다.
‘할까?’
무기는 조장들의 것을 빼앗으면 된다.
사천 무림에서 그 무공을 알아볼 자도 거의 없다.
하지만 강남에서 왔다는 여인들이 마음에 걸린다.
망설이는 용추의 머리로 두 번째 공격이 쏟아졌다.
“물러나요!”
다급하게 외친 연소정이 용추를 밀어냄과 동시에 자세를 낮춰 혈천수라의 다리를 찔러 갔다.
단순히 다리 하나를 뒤로 빼며 공격을 피한 혈천수라가 광소를 터트렸다.
“냄새나는 계집이 내 바지를 벗기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으하하하!”
혈천수라의 도발에도 연소정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하단을 노렸던 그녀의 가슴으로 시뻘건 검광이 쏘아졌다.
우측으로 미끄러지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회피한 그녀가 재차 하단을 노려갈 때, 어느새 후방으로 이동했던 단려화의 검이 혈천수라의 머리를 찔러 갔다.
상하, 앞뒤의 날카로운 협공.
“흥!”
콧방귀를 뀐 혈천수라의 신형이 비스듬히 떠오르더니 맹렬하게 회전하며 두 검을 쳐냈다.
카캉!
두 여인의 팔이 크게 벌어지는 순간, 한쪽 다리로 지면을 박찬 혈천수라가 전방으로 치달았다.
“아, 안 돼!”
세 사람의 화려한 싸움에 넋이 나가 있던 조장들은 뒤늦게 의도를 알아채고 몸을 날렸다.
“막아라!”
혈천수라의 진로에 두 명의 광룡대원이 있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창과 도를 휘둘렀으나 혈천수라의 검은 가볍게 그것을 튕겨 냈다.
카캉!
검에 담긴 육중한 위력에 두 사람의 신형이 크게 휘청이는 순간, 순식간에 포위를 뚫고 나간 혈천수라가 정인령 모녀 앞에 나타났다.
급히 내력을 끌어올린 정인령은 딸을 지키고자 일장을 쏟아냈으나 혈천수라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턱.
가볍게 장력을 피한 혈천수라가 왼손으로 정인령의 목을 낚아채더니 초유림의 목에 검까지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싸움이 중단되며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고개를 살짝 돌린 혈천수라는 어깨너머로 씩 웃어 보였다.
“움직이지 마라. 숨 쉬는 소리라도 들린다면 두 년의 목숨은 없다.”
단려화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했구나.’
심상치 않은 기세를 쏟아내길래 승부를 내려는 줄 알고 집중했건만 놈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아직 무림의 경험이 일천한 탓에 벌어진 실수였다.
모두의 움직임이 멈추자 혈천수라의 눈은 정인령과 초유림을 번갈아 봤다.
‘두 년 다 데리고 튀기엔 힘들겠지. 누굴 죽이고 갈까?’
함정에 빠진 걸 생각하면 두 년 다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독이 퍼지고 있는 이상 추격을 뿌리칠 자신이 없었다.
‘가벼운 년을 데려가야겠군.’
정인령의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단려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쫓지 않을 테니 그만두세요!”
“크크크. 네년을 어찌 믿고?”
그때 초유림이 혈천수라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나를 인질로 삼아. 그럼 이들은 추격하지 못할 거야.”
혈천수라는 의외라는 얼굴로 초유림을 쳐다봤다.
‘어린 년이 제법 강단이 있구나.’
씩 웃은 혈천수라는 정인령을 놓고 초유림을 옆구리에 끼웠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갔던 정인령은 시뻘건 얼굴로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안됩니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
혈천수라는 단호하게 그녀의 가슴을 걷어찼다.
“아악!”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는 그녀를 광룡대원들이 받아냈다.
초유림의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졌다.
“무슨 짓이야!”
“입 닥쳐라. 한마디라도 더 하는 순간 몇 놈 죽여버리고 갈 테니까.”
초유림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혈천수라가 정인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달하지 마라. 나는 다시 돌아온다. 감히 나를 함정에 빠트렸던 네놈들을 전부 죽이러 돌아올 거다.”
말을 마친 혈천수라가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단려화는 추격하려는 용추와 조장들을 가로막았다.
“안 돼요. 자칫하면 아이가 다칠 수도 있어요.”
풍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저대로 보내잔 말이오?”
“당연히 보내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부턴 나 혼자 추격합니다.”
당황한 연소정이 단려화의 소매를 잡았다.
“아가씨!”
고개 돌린 단려화의 입술이 작게 열렸다.
[내 스승님이 누군지 잊었니?]그 말을 듣고 흥분을 가라앉힌 연소정은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검황 대협의 소완공(消完功)이라면······. 추격이 가능하다.’
검황 천영의 장기는 쾌검이었지만 은잠술 또한 강호 일절이었다.
입술을 살짝 깨문 연소정이 전음을 보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절대 혼자 싸우셔서는 안 됩니다.] [흔적을 남기고 갈 테니 이각의 시간을 두고 따라와. 그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 절대 서둘러선 안 돼.] [알겠습니다.]단려화는 조장들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먼저 출발하겠어요.”
사조장 후영이 미간을 좁혔다.
“정말 혼자 가겠단 거요?”
고개를 끄덕인 단려화는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거 참. 미치겠군.”
이조장 한경이 답답한 듯 가슴을 매만지자 연소정이 말했다.
“아가씨께서 흔적을 남길 겁니다. 우린 이 각 뒤에 출발하죠.”
시선을 교환한 조장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수라와 싸우던 단려화의 무공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각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관제묘에서 벗어난 혈천수라는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이를 가는 소리가 초유림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혈천수라의 악귀 같은 얼굴을 힐끔 쳐다본 초유림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방법이 없을까?’
고작 열한 살의 어린아이가 오줌을 지려도 모자랄 판국에 포기하지 않고 살아날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눈알을 굴려 혈천수라를 다시 살핀 초유림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으으.”
제법 고통스러웠는지 신음이 새어 나오자 혈천수라가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두려우냐?”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초유림은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날 죽일 거죠?”
“크크크. 내 말 만 잘 들으면 살려주마.”
“······.”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일차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본녀가 귀한 피까지 떨궈주는데 못 따라올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겠지? 설마 아버지가 그 정도로 바보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초유림의 목적은 이동 경로에 흔적을 남기는 것.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피는 충분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초유림의 의도는 누군가에겐 확실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은잠술을 펼친 채 전개하는 신법은 평소보다 속도가 확연히 떨어진다.
더불어 전력으로 달리는 상대를 들키지 않고 추격하려면 엄청난 심력도 소모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예리한 감각을 지닌 단려화는 초유림이 남긴 핏자국과 혈향을 감지한 덕분에 수월하게 추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설마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겠지.’
진실을 모르는 그녀는 괜한 노파심에 신법에 박차를 가했다.
은밀한 추격이 이각 정도 흘렀을 무렵.
오감에 집중하며 추격을 이어가던 그녀가 별안간 발을 멈췄다.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멈췄다.’
숲속의 한복판에서 놈이 멈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