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97)
◈ 297화. 버틸 수 있겠는가
쩌렁쩌렁한 굉음과 함께 장우기의 권영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장우기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진다.
“마, 막았어?”
도랑 도운수가 인상을 쓰며 장우기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소천무군도 못 당해내는 상대가 그 정도에 죽겠냐?”
도운수가 장우기를 끌고 물러나는 사이 비사령이 다가와 꿀밤을 때렸다.
쿵!
장우기가 이를 갈며 쏘아본다.
“악! 왜 때려. 할망구!”
비사령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웃으면서 하는 기습이 잘도 먹히겠다. 멍청아.”
흑사칠랑이 계획대로 물러나는 사이.
양무화가 사방으로 장력을 쏟아내 시야를 가리는 흑연을 걷어냈다.
“고작 이런 잡수로…….”
연막이 걷혀가며 잠시 멈췄던 백화무단이 움직이려 할 때였다.
검랑 서천휘와 함께 앞으로 나선 독랑 막월이 그들을 향해 시꺼먼 독장을 쏟아냈다.
쿠콰콰쾅!
확보했던 시야가 다시 캄캄해지자 양무화의 도신이 새하얀 빛을 토해냈다.
쏴아아아-!
일진광풍이 몰아치며 막월의 정면으로 눈부신 도광이 짓쳐 들었다.
“뒤로!”
서천휘가 번개같이 그의 앞을 가리며 허공에 일검을 내질렀다.
쐐애액!
날카로운 검극과 쏟아지는 도광이 충돌하는 순간.
콰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지축이 들썩이며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손목을 응시하는 서천휘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이자는…….’
일격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상대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솟구친 흙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내리자 몸을 돌린 서천휘가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빠져나갑시다. 독랑!]사전에 준비한 독낭을 던져 추격을 차단한 막월이 그와 함께 전선에서 사라졌다.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 멈칫한 백화무단원들이 사방으로 장력을 쏟아내 독연을 걷어냈다.
시꺼먼 구름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며 시야가 확보된 순간, 양무화의 두 눈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분명 흙먼지와 독 구름 너머에선 상대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야를 확보하고 나니 눈앞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당명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단주.”
후미에서도 이곳과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자신들이 연막과 백설하의 공격을 피해 잠시 물러난 사이 상대가 씻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가까운 전각 위로 훌쩍 뛰어오른 양무화가 주변을 둘러본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거리.
그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나뒹구는 시신과 흥건한 피가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전장이었는지 분간조차 못 할 지경이다.
무거운 정적 속에, 조용히 기감을 퍼트린 양무화의 눈이 부릅떠진다.
“땅속!”
사라진 적의 기척이 바로 발밑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지체할 것도 없다.
“감히 누구 앞에서 수작을 부리는가!”
지붕에서 뛰어내린 양무화의 도가 지면에 일직선으로 내리꽂힌다.
콰아앙!
성인 장정 두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암도.
컴컴한 어둠 속.
콰아앙!
지축의 강렬한 진동과 함께 암도의 벽이 무너질 듯 비명을 토해낸다.
고개 든 검신운의 날카로운 눈동자에 옅은 빛이 스며든다.
‘쇠에 현철을 덧씌운 암도가 이렇게 쉽게…….’
비록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구멍이라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이다.
검신운이 무인들을 독려했다.
“서둘러라!”
무인들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신법에 박차를 가했다.
비록 승리를 위한 계획이라곤 하나 눈앞에서 순식간에 이백여 명이나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고개 돌린 검신운의 눈에 피투성이가 된 단자룡이 들어온다.
“소영주.”
그의 우려 섞인 눈빛에 단자룡은 괜찮다는 듯 고개 저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가야 합니다.”
부친이 없는 지금 화령의 수장은 자신이다.
쓰러져도 이 전쟁을 끝마친 뒤에 쓰러져야 한다.
행보를 재촉하는 두 사람이 빠르게 달려나갈 때.
지상에서 검신운의 목소리를 들은 양무화가 도파를 움켜쥐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일사불란한 퇴각과 목적이 뚜렷한 움직임을 보면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따라와라!”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땅속으로 이동하는 상대의 기척은 느낄 수 있다.
부하들을 이끌고 기척을 따라간 양무화가 왔던 길을 돌아가 섬의 계단 위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건…….”
거칠게 흔들리는 일조장 경형의 눈에, 어느새 암도를 빠져나와 선천교를 건너는 화령의 무인들이 떠올랐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노인과 아이, 여인들이 다리 건너편에 있었고 자신들과 전투를 벌였던 자들까지 속속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육지로 통하는 곳은 다리 하나뿐.
만일 무인들이 모두 다리를 건너 하나뿐인 입구를 지킨다면 자신들은 섬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놈들은 상상도 못 했던 짓을 벌이고 있었다.
‘대체 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상대는 결코 의미 없는 행동을 할 자들이 아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양무화가 다급하게 외쳤다.
“다리를 사수해라!”
이유가 무엇이든 놈들이 하고자 하는 계획부터 저지해야 한다.
“예!”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화무단원들이 비조처럼 몸을 날려 계단을 내려간다.
인파 속에 섞여 있던 이하빈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생각보다 백화무단의 반응이 빠르다.
이대로는 후미가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잡히고 만다.
“도와야겠군.”
대별채주 송조광이 당부하듯 말했다.
“다치면 곤란하네. 더 큰 적이 남아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야.”
“알고 있다.”
담담하게 대꾸한 이하빈이 선천교를 향해 걸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인 중 하나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고 갸웃했다.
“어?”
문득 손을 쳐다본 그는 마침내 자신이 쥐고 있던 철창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내 창이…….”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순간.
패애앵!
전방에서 강렬한 파공성이 터져 나오며 한 줄기 섬광이 계단을 향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흑천비류창 일섬격관(一閃擊貫)의 초식이 일진광풍을 몰아치며 날아들자 양무화가 선두로 몸을 날렸다.
“비켜라!”
순식간에 갈라진 부하들 사이로 뚝 떨어진 도신이 가공할 빛무리를 쏟아낸다.
콰아아아!
백화참영 무주백참(武主魄斬)의 초식이 이하빈의 일섬격관에 충돌하는 순간.
쿠콰아아앙!
귓전을 강타하는 경천동지할 굉음과 함께 계단이 무너지고 기파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부르르 몸을 떠는 도신이 양무화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한다.
‘상천팔기까지 이 자리에 있단 말이냐?’
과거 팔황문의 창성, 반서련의 무공이었던 흑천비류창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무려 일 장 가까이 움푹 꺼진 계단 위로 허공을 가득 메운 화살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슈슈슈슈슈슈!
대별채주 송조광이 펼친 백화천궁(百華天弓) 연탄폭시(聯彈爆矢)의 초식이었다.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화살에 백화무단원들 각기 병기를 휘둘렀다.
콰콰콰콰쾅!
그들의 맹렬한 진격이 멈칫한 사이, 암도를 빠져나온 마지막 무인들이 순식간에 선천교를 건너버렸다.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백설하는 피투성이가 된 단자룡에게 달려갔다.
“소영주!”
단자룡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피를 닦아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머니.”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화윤이 대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화령의 소영주라면 이 정도쯤은 견뎌내야지.”
“물론입니다.”
당당히 가슴을 편 단자룡이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를 수습하고 대열을 갖춰라!”
“예!”
그에 화답하는 우렁찬 외침이 양무화의 귓속을 선명하게 파고든다.
선천교를 선점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대체 무엇을 위해 집을 비우고 다리를 건넜단 말인가?
자신들을 섬에 가두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대로 시간이 흘러 십이사령이 도착한다면 저들이 야전에서 승리할 확률은 없는 것과도 같다.
고심하던 양무화의 뇌리에 불현듯 벼락같은 생각이 스쳐 갔다.
‘설마?’
적을 눈에 담은 당명이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
“우리가 성동격서를 썼다는 걸 말입니다. 킥킥킥!”
당명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섬을 떠났던 검황 천영과 화령의 정예들이 곧 돌아온다는 것과 같다.
이대로는 상대의 계책에 역으로 당하고 만다.
적의 정예가 회군한다고 가정했을 때, 역으로 다리를 지켜 십이사령이 올 때까지 버티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상대의 안방.
자신들과 달리 배를 이용할 수 있는 상대인 이상 다리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다리를 건너 난전을 유도한다.’
천영을 비롯한 정예들이 대치현을 떠난 것은 확실하게 확인했다.
그들이 돌아온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릴 터.
그렇다면 그 전에 승부를 낸다.
결심을 내린 그의 두 눈이 섬뜩한 빛을 토해냈다.
“돌파한다.”
무너진 계단을 훌쩍 뛰어내린 양무화의 뒤로, 비장하게 눈을 빛내는 수하들이 뒤따른다.
마치 태산이 걸어오는 듯한 그 위용에 양삼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온다.”
곁에 선 우창이 쌍도끼를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막아야 돼.”
여기서 뚫리면 복령천을 뿌리 뽑고자 하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놈들이 다시 음지에 스며들게 둔다면, 천하는 언제 도래할지 모를 위협에 몸서리치게 될 것이다.
검신운이 말했다.
“다리를 지키겠습니다.”
선천교가 있는 위치는 화령도 주변에서 가장 수심이 얕은 곳이다.
쉽게 무너질 다리도 아닐뿐더러 무너뜨려 봐야 소용이 없으니 이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이하빈이 그보다 앞서 나아가려 하자 화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상천팔기가 나설 때는 아니오.”
이들은 만전의 상태로 십이사령을 상대해줘야 한다.
이하빈이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막을 수 있겠는가?”
화윤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때 둘의 뒤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주까지 당한 이상 지금 당장 양무화를 상대할 고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뱀 같은 눈빛을 보이며 싱글싱글 웃는 사내는 바로 백채륜이었다.
“채주는 걱정할 것 없소.”
촤르륵.
섭선을 펼친 화윤이 몸을 돌려 다리를 향해 걸어간다.
“내가 직접 나설 테니까.”
모두가 잠시 망각하고 있었으나 귀제(鬼帝) 화윤은 위사영과 함께 검황 천영의 뒤를 바짝 쫓는 무인이었다.
그의 등을 담은 백채륜의 눈매가 뱀처럼 가늘어졌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화윤의 무공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찌르는 가공할 살기와, 초목이 몸을 떠는 양무화의 기세가 너무도 강렬한 까닭이다.
백채륜은 슬며시 검파에 손을 올리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준비했다.
어느새 다리 반대편에 도착한 양무화가 섭선을 살랑이며 걸어오는 화윤을 확인했다.
양무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화령의 대군사 화윤. 모두 네놈의 짓이로구나.”
그와 달리 화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 흘렀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아라.”
상황이 이렇게 변한 이상 양무화는 사양하지 않고 물었다.
“우리의 계획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음.”
고개를 끄덕인 화윤이 느릿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십이사령을 이용해 본 령의 정예를 외부로 끌어내고 빈 집을 치려고 한 것은 잘 알고 있지.”
“그럼 그렇지.”
곁에 선 당명이 역시나 하는 얼굴로 히죽 웃었다.
위기에 몰린 상황임에도 불안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백화무단의 힘이라면 이런 난관쯤은 뛰어넘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윤이 그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걸 알려줘야겠군.”
“재밌는 거?”
“중소방파들의 멸문이 과연 십이사령의 짓일까?”
“응?”
당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운데 양무화의 눈이 점점 커진다.
“그건 무슨 말이지?”
백화무단을 바라보는 화윤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도 십이사령이 아니고 우리가 한 거다. 네놈들을 완벽하게 잡아내기 위해서 말이지.”
양무화의 손이 도파에 올라간다.
“정예들이 섬을 빠져나간 것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거지.”
당명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배에 탄 검황이 장강으로 나간 걸 확인했는데 말이야. 과연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
“버틸 수 있겠냐고?”
그때 화윤의 손가락이 섬에 가려진 호수 반대편을 가리켰고.
그 손끝이 닿은 곳에는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십여 척의 배가 있었다.
당명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대체 언제?’
선두의 선수에 당당하게 올라선 사내는 어젯밤 섬을 떠났던 검황 천영이었다.
“우리 안방에서 네놈들의 눈을 속이고 숨어있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
섭선으로 당명을 가리킨 화윤은 그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버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