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백룡의 마을 (3)
이강의 표정은 담담했다.
굽혔던 무릎을 펴고 몸을 세우는 그 짧은 시간에, 그는 떠올렸다.
말을 타고 달리던 도중 만났던 조그만한 이족(夷族) 꼬마아이.
집을 나온 새끼 산양을 쫓아 그 먼 거리를 왔다고 했나.
발은 퉁퉁 부어 있었고 지쳐 보였다.
그때는 그저 강단 있는 꼬마라고 생각했고, 이곳 사람들의 가축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징조는 여럿 있었다.
체링은 이강과 함께 말을 타고 돌아가면서, 저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에 무척이나 실망했던 것 같기도 했다.
마을로 와서는 어땠던가.
촌장 일가는 고아 꼬마들을 홀대하면서도 체링에게 집착했다.
그것을 애정이라고 생각했건만…….
이강은 문득 떠올렸다.
오늘 아침, 금창약을 발라 주었을 때 체링이 했던 말이었다.
만약 다음날 용의 산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라면, 금창약 따위는 단연 필요 없을 것이다.
이족 꼬마 소녀는 도망치려 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어린 산양 한 마리를 끌어안고 마을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말을 탄다면 순식간에 도착할 거리를 꾸역꾸역 걷다가, 마침내 발이 부르터서 주저앉아 있던 것이다.
원래라면 그렇게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강이 하루라도 늦었으면 독수리가 뜯어 먹고 남은 작은 시체만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강은 이족 꼬마를 만났고,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아이를 산 제물로 바치려는 촌장 부부에게 그녀를 다시 안겨 주었다.
‘저를 원망하지는 않더군요.’
「그렇더군.」
이강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에 원망과 미움은 없었다.
성숙해서가 아니라 체념해서일 것이다.
그 어린 것이 자신의 운명에.
이강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용의 분노를 사더라도 상관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가 똑바로 걸어가자 마을 사람들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의식이 진행되는 도중 난입하는 외부인의 행태에 경악했다.
촌장은 그것도 모르고 용소에 대고 고함을 질러 댔다.
“이 순결한 소녀의 이름은 체링! 백룡이시여…… 억!”
이강은 체링의 손목을 잡은 촌장의 돌칼을 빼앗았다.
“무, 무슨 짓이오!”
촌장은 화들짝 놀라서 이강에게 고함을 쳤다.
이강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 촌장의 어깨를 쿡 밀었다.
촌장은 전해져 오는 짜릿한 통증에 체링의 손목을 놓쳤다.
이강은 휘영청 넘어지려는 체링의 몸을 받아 들었다.
“이…… 먹여 주고 재워 줬는데 고마움도 모르고!”
촌장은 입에서 침을 튀기며 분노했다.
마을 사람들도 화가 난 듯 분분히 몸을 일으켰다.
이강은 차분하게 답했다.
“금자 한 냥씩이나 챙겼으면 밥값이야 충분히 치른 거겠지.”
“그 애를 내놔라! 배, 백룡님의 분노를 살 거다!”
마을 사람들이 이강을 향해 악다구니를 질렀다.
“외부인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촌장!”
“주술사와 한패일지도 모른다고!”
이강은 체링을 한 손으로 안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촌민들을 위협하는 데에는 날붙이만큼 효과적인 게 없을 것이다.
차가운 이강의 표정에 움찔한 촌장은 위협 대신 애원을 했다.
“진정하게, 그 아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순번이 정해져 있던 아이야. 부모 없는 아이를 우리가 왜 애지중지 길렀겠는가. 그 아이의 희생으로 1년 동안 마을이 풍족할 거라고!”
“순번? 매년 이랬던 건가?”
촌장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체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강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래, 인신공양을 벌였다는 것이지.”
인신공양(人身供養).
살아 있는 것을 제물로 바쳐서 높은 존재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
은주시대를 비롯한 고대에야 흔히 자행되었던 일이지만 지금은 절대로 금기시되는 잔인한 행위였다.
“그래! 그것이 우리 마을의 전통이다!”
하지만 촌장과 마을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중원에서는 최악의 사교(邪敎)가 벌이는 행위였는데, 이곳 서장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을까.
「그럴 리가 있는가. 포달랍궁과 달뢰라마는 인신공양을 금지한다.」
외따로 떨어져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랑아첸 마을의 풍습인 듯했다.
“놓으라니까는! 그 아이를 넘겨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마을 청년 한 명이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
이강은 고민했다.
손짓 한 번이면 인신공양을 일삼아온 이 마을 사람들을 도륙할 수 있다.
직접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한 손으로 체링의 눈을 덮고 있으면, 그의 등 뒤에 메여 있는 백아가 날아다니며 이 야만인들을 베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옳은 것일까.
단죄의 의미로 랑아첸 마을을 몰살시키는 게 맞을까.
그렇다면 홀로 남을 아이들은, 체링은?
이강에게는 그 어린 생명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이곳은 서안과는 한참 떨어진 오지였고, 이강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저씨…….”
이강이 흠칫 정신을 차렸다.
품에 안긴 체링이 눈물 맺힌 눈으로 이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강은 잠시 뜸 들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아저씨라니.”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다.
그리고 이강이 고민하던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격분해서 날뛰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고, 촌장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느, 늦었어…… 이제는…….”
용소에서 거품이 보골보골 올라오던 것이, 이제는 세찬 물보라가 되어 솟았다.
모든 인간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떠는 곳에 이강만이 당당히 서 있었다.
촤아악!
그리고 용소에서 ‘백룡’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새끼손톱보다 작았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아가리가 사람 하나쯤은 쉽게 삼킬 만큼 거대했다.
코에는 용답게 기다란 수염이 나 있었으며, 눈은 시퍼렇게 번쩍인다.
그리고 물에 젖어 흰색으로 반짝이는 그 몸체가 백룡이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격이 높은 영물이나 요괴만이 그럴 수 있을진대, ‘백룡’은 말까지 했다.
“누가, 내 제물을, 가로채느냐.”
이강은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굳어 있었다.
겁을 먹거나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당혹해서였다.
백룡의 정체는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그리고 달마는 당혹을 넘어 분노했다.
「이깟 놈이, 용을 참칭해……!」
이강은 고개를 오만하게 치켜들고 있는 ‘백룡’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거…… 장어 아닌가?”
아무리 봐도 거대한 흰색 장어였다.
연못의 주인에게도 새끼였던 시절은 있었다.
색소가 부족해서 희게 태어난 그는, 본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 이상으로 성장할 놈이 아니었다.
따듯한 숲의 계곡, 그곳에는 장어 새끼를 잡아먹는 천적이 드글드글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자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때아닌 폭풍이 숲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자신이 숨어 있던 계곡물을 통째로 빨아올린 돌개바람 탓에, 손가락만 한 흰 장어는 수십 마장(馬丈)을 한 번에 이동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새끼 장어가 도착한 곳은 산 위의 연못, 용소(龍沼)였다.
그 맑은 물에는 장어를 잡아먹는 천적이 없었다.
본디 성체가 될 수 없었을 장어는 고원의 정기가 잔뜩 모이는 용소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물이 몸을 에일 듯 차가워서 장어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계속 불렸다.
오십 년쯤 지나서였을까.
장어는 사람 장딴지만 한 두께로 자라났다.
마을 아래 살고 있는 인간 중 하나가 연못의 장어를 알아차린 것은 그때였다.
술에 취해서 산에 올라온 노인은 흰 장어를 보고 외쳤다.
‘용이다! 으흐, 백룡이 이곳에 있구먼!’
그는 장어를 낚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창처럼 꺾어 던져 댔다.
장어의 몸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낸 그 인간.
그 주정뱅이는 발을 헛디뎌서 깊고 차가운 용소에 빠졌다.
순식간에 뻣뻣해진 시신을 장어는 물어뜯었다.
분노에 차서 벌인 행동이었는데, 그 고기가 무척 달았다.
특히 노인의 딱딱한 골속에 들어 있는 부드러운 뇌(腦)는 어찌나 달콤하던지.
한낱 미물이었던 장어에게 영성(靈性)이 깃든 것은 그 순간이었다.
고원의 정기를 받아서 요괴가 된 장어는, 스스로의 이름을 백룡(白龍)이라 자각했다.
요괴는 본디 그리 탄생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우연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전이었다.
영성을 깨치고 신통력마저 갖춘 요괴는 이제 마을의 인간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용의 흉내를 내며 공양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처음 보는 인간.
그가 지배하는 이족의 촌민들과 달리, 화려한 옷을 입고 번쩍이는 검을 들고 있는 청년이 그리 말했다.
백룡은 분노했다.
“나는…… 백, 룡.”
“웃기는 소리 하는군. 누가 봐도 덩치 큰 장어인데.”
한낱 인간이 용을 모독하다니.
그것은 수백 년 삶에서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사실 고원의 랑아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장어를 본 적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으나…….
백룡은 그 이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장어였다.
“장어가 용 흉내를 내면서 인간을 잡아먹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구나. 이따위 것에 기만당하다니.」
이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속았다는 것에 분노한 달마도 투덜거렸다.
마을 사람들을 어찌하는 것보다 확실한 우선순위가 생겼다.
사람을 잡아먹는 흰색 장어를…….
“토벌해야겠구나.”
백룡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이강을 가만두지 않았다.
“죽어라!”
그는 연못의 지배자였다.
몸을 연못 안에 담그고 있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연못의 물은 숨 쉬는 것만큼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물보라가 거세게 솟더니,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서로 엉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 있는 이강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콰아앙!
그 근처에 있던 촌장마저 충격의 여파로 맥없이 날아갔다.
물의 채찍이 후려치고 지나간 곳은 꽤 깊게 파여 있었다.
백룡은 약한 요괴가 아니었다.
말을 할 만한 영성을 깨우친 만큼, 머지않아서 대요괴의 반열에 들었을지도 몰랐다.
“어……디.”
하지만 피떡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이강은 보이지 않았다.
백룡이 둔하게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는 이강이 허공에 체류 중이었다.
놀라운 각력으로 체링을 껴안고 뛰어오른 것이다.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백룡은 무척 당황했다.
이강은 아무 말 없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손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이강의 등에서 은빛 섬광 같은 것이 번쩍 튀어나왔다.
백룡은 뜨끔한 통증을 느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격통이었다.
이강의 백아가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촤아아악!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크 아아! 아악!”
대단한 요괴이며 물을 제 마음대로 다루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강의 이기어검술은 백룡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음, 생각보다 튼튼하군.”
하지만 이강은 불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예 모가지를 떨구려고 했는데 장어의 피부가 생각보다 질겼고, 몸통은 너무 두꺼웠다.
체링이 자신의 눈을 가린 이강의 손을 치우려고 했다.
“어디…….”
“보지 마라.”
이강은 손을 떼지 않고 다시 한번 장어를 베려 했다.
하지만 장어는 생각보다 겁이 많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공포에, 놈은 몸을 마구 솟구쳤다.
“으, 아 아 아!”
“이런!”
장어는 놀랍게도 그 거대한 몸뚱어리를 공중에 띄웠다.
그는 물에서 벗어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꿈꿔 왔다.
아직도 비행 능력은 완전치 못했지만, 적어도 당장은 몸을 피할 수 있으리라.
이강은 다시 한번 백아를 날렸다.
절세의 보검이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확실히 놈의 몸통을 동강 냈다.
서걱- 풍덩!
거대한 꼬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용소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어의 도주를 멈추지는 못했다.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덕택일까. 장어는 잘린 꼬리로 피를 흩뿌리며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이대로라면 놓칠지도 몰랐다.
그때,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장어를 내리친 것이다.
쩌저저정!
장어는 비행을 멈추고 못으로 떨어졌다.
퍼어엉!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튀었다.
이강은 우뚝 멈춰 섰다.
뇌신전동(雷神轉動)의 술은 이강의 주특기였지만, 저 벼락은 그가 부른 것이 아니었다.
그때, 거대한 짐승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 사람들이 아찔하게 외쳤다.
“주, 주술사다!”
곧 숲속에서 푸르고 흰 짐승이 휘익 뛰어올라 백룡의 몸통을 물어 챘다.
그 짐승, 여우의 등 위에는 가면을 쓴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어라.”
가면 사내가 가면을 벗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잡은 거 맞지, 이러면?”
담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