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92)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92화. 처음부터 예뻤어(92/92)
#92화. 처음부터 예뻤어
2024.07.31.
작게 벌어졌다 닫히는 입술 사이로 달뜬 숨이 전해지고, 그를 따라 입을 벌리자 뜨거운 것이 안을 헤집어 왔다.
조금 초조한 듯한 그러나 결코 급하지 않은 속도. 강하게 밀어붙였다가 내가 버거워하며 숨을 헐떡이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그러다 다시 못 참겠다는 듯 격렬하게 맞붙였다. 열기가 가득 차올라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긴장 풀어.”
“그, 그렇지만…….”
“알아. 괜찮아. 적당히 할게.”
에던은 다정히 속삭인 후 다시 숨을 겹쳐 왔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다른 한 손은 천천히 등을 타고 올라와 어깨를 쓸고 목뒤에 닿았다.
에던은 자꾸 뒤로 밀려나는 내가 멀어지지 않게 적당히 힘을 주어 붙잡았다. 부드럽지만 거친, 이대로 잡아 먹혀도 좋을 것 같은 황홀한 기분. 달래듯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손길도, 문득 힘이 들어갔다가 다시 풀어지는 허리를 감싸는 손도.
모든 신경이 에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되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아찔한 접촉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며 에던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슬며시 입매를 끌어올린 에던이 기다렸다는 듯 재차 나를 밀어붙였다.
“너무 야하게 굴지 마. 참기 힘들어.”
치유력으로 인한 쾌락도 아닌데, 에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달콤했다.
방 안 가득 나와 에던의 숨소리가 차올랐다. 입맞춤일 뿐인데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힘든 하루였다. 몸은 아픈 데다 피곤했고 마음도 무척 서러웠다. 그랬는데, 그 지쳤던 순간이 모두 잊히는 것 같다.
대성녀로 살아가는 삶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에던을 치유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롯이 나뿐만이 이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에던에게 필요한 존재라서 기뻐.
좋아해. 에던이 너무 좋아.
가능하면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생.
그런 생각이 스친 찰나였다.
평생……?
가능해, 그게……?
“…….”
끌어안았던 팔의 힘을 빼고 숨을 고르자 에던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팠어?”
아니.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눈앞이 뿌옇게 흐리도록 한가득 차 있었던 눈물이 후드득 아래로 떨어졌다.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에던의 손이 풀어졌다.
“끝까지 안 해. 아픈 사람 붙잡고 그럴 생각 없…….”
“앞으로도 안 할 거잖아요.”
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스윽 손등으로 닦아 내도 또 한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무슨 말이야?”
진짜 너무 싫어.
“라티.”
잊고 있었는데, 정략결혼이 적힌 두루마리가 떠올라 버렸단 말이야.
“뭔데. 거슬리는 거 있으면 말해.”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슥- 슥- 눈물을 지워 냈다. 그리고 시큰거리는 코와 서러움이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결혼할 거예요?”
뺨을 어루만지려던 에던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췄다.
“뭐?”
“다 봤어요. 방에 숨겨 두었던 두루마리…….”
무심코 말을 하다가 몰래 훔쳐본 걸 들킨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치워 놓으라고 했었는데.”
루벤을 떠올린 듯한 에던은 짧게 혀를 차며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슥- 무심하게 내 눈가를 닦았다. 나는 그가 닦아 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내 손등으로 힘껏 비볐다.
“에던.”
“응.”
“시엘라 황녀님이랑 결혼할 거예요?”
몇 번이고 확인했던 에던의 사인이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에던 디트리히. 이미 서명을 한 것으로 에던이 정략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잖아. 그럼 나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안 한다고 말해 주면 안 될까? 내가 본 거 오해였다고. 아니라고 말해 주면 안 될까.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에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서. 빨리.
하지만 에던은 날 가만히 내려만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의미 없이 고개를 내리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하면?”
뭐?
쿵. 심장이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몸이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탓일까, 순식간에 마음이 난도질당한 기분이었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마주한 에던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벽난로에서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창 너머로 쏟아지던 달빛이 구름에 가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이 완전히 구름에 먹히고 그 찰나에 나는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싫어!”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말.
남의 속을 뒤집어 놓고 태평하게 날 바라보던 에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뭐?”
“싫다고 말했어요.”
하, 에던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고 목덜미를 쓸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제국 간의 필요에 의한 결혼이고, 황녀가 싫든 좋든 제국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난 결국 명령에 따라야 해.”
“…….”
“라티.”
“…….”
비겁하다. 그런 거 나도 알아. 그렇게 차갑게 전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에던은 황자님이고 정략결혼 같은 거 그에겐 반드시 해야 할 의무라는 거 안다. 그럴 수 있지. 있는 일이지.
이해해. 에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말이다.
최근 에던이 치유력이 아닌 그냥 나를 좋아해 주는 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했다.
솔직히 그런 줄 알았어.
왜냐면 너무 잘해 주니까! 치유력만 원하는 사람치고는 너! 무! 잘해 주니까!
마치 날 사랑하는 거처럼 굴었잖아.
토할 것 같다는 내 말에 치유도 거부할 정도로 배려해 주니 오해할 만하잖아. 상황이 그렇잖아.
……하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황자로서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어.”
방금 에던은 내 가슴을 칼로 찔렀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내 마음을 난도질했다.
에던은 투정도 부릴 수 없을 만큼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약 때문에 더 이상 상처는 아프지 않을 텐데, 복부가 아리고 욱신거렸다.
“그럼 해요.”
나는 눈을 내리깔고 에던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대신 축하는 못 해 줘.”
미안한데 나는 그 정도로 착한 여자는 못 돼.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축하 같은 거 절대 안 해. 그리고 평생 당신 안 볼……!”
“큭.”
……큭?
돌아서는 내 손가락을 감싸 쥔 에던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지금 내 말이 우스워요?”
기가 막혀. 날 만만히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놔요!”
나는 에던의 손을 뿌리쳤…….
“…….”
하, 씨. 뿌리치려 했는데 안 된다. 망할!
힘 더럽게 세네.
인상을 팍 쓰자 에던이 피식거리며 커다란 팔로 내 허리를 감싸더니 탄탄한 제 허벅지 위로 날 앉혔다.
“무섭네, 공주.”
“장난할 기분 아니에요. 놔요.”
“열 받았어?”
“열 받은 정도가 아니거든요?”
“좋아. 잘했어.”
이 남자가!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에던이 또 피식 웃었다.
“때리게?”
“못 때릴 줄 알아요?”
큭큭. 그리고 또 웃는다.
더는 안 봐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 내리쳤다.
“안 해.”
어?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다시 내 허리를 감싸 안은 에던이 날 자연스럽게 끌어 소파에 앉혔다.
내가 대답이 없자 에던이 다시 물었다.
“라티, 들었어? 결혼 안 해.”
반복된 말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거기 서명이…….”
“에던 디트리히?”
“네. 분명히 적었잖아요.”
“내 서명은 풀 네임이 아냐. 평소 나는 DT로 서명해. 굳이 말하자면 그 서명은 황후께서 미리 해 놓은 거지. 내가 동의한 게 아니야.”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그럼 방금은 왜 그렇게 말했어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는데 에던이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너도 내 기분 좀 느껴 보라고.”
“네? 무슨 기분요?”
“나는 너에게 다른 놈들 손끝만 닿아도 미쳐 버릴 것 같거든? 죽여 버리고 싶어져.”
말하면서 에던이 싱긋 웃었다. 반달처럼 휘어진 예쁜 눈웃음이었지만 살기가 담긴 눈빛은 서늘했다.
“그런데 너는 아니잖아.”
와……. 진짜 장난해? 네 주변에는 애초에 여자가 없잖아! 내가 질투할 일이 뭐가 있어?
“그리고.”
잠시 텀을 둔 에던이 말했다.
“누가 울어서.”
하,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네.
“내가 우는 거 싫어요?”
“싫어.”
“왜요?”
내가 물어 놓고서 눈치도 없이 심장은 미친 것처럼 두근댄다.
혹시 이번에는 좋아한다고 말해 주지 않을까? 이런 분위기에선 그런 말은 해도 되잖아.
내가 우는 게 싫으니까 결혼도 하지 않을 거고, 나한테 그런 달콤한 입맞춤도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날 보고 웃고 있으니까.
긴장감 속에서 에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던의 답은.
“예뻐서.”
그 말에 나는 바보처럼 입을 벌려 버렸다. 구름에 가려졌던 달빛이 드러나며 에던의 금빛 머리카락이 별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안…… 예쁘다고 했었잖아요.”
“예뻐.”
“…….”
듣고 싶었던 말이긴 한데, 나 지금 객관적으로 안 예쁘지 않아?
얼굴은 눈물범벅에 콧물은 물론 몸도 멍 때문에 얼룩덜룩한데. 멀쩡할 때 놔두고 이 순간에 예쁘다고 하는 건 반칙이잖아.
온갖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데 막상 할 말을 선택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예쁘다고, 라티.”
에던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리고 겨우 상황을 받아들인 내 얼굴이 빨갛게 물들자 그가 몸을 일으켜 목덜미 아래로 입술을 맞붙였다.
“세상에서 너 혼자 예뻐.”
귓가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에던의 목소리.
“처음부터 예뻤어.”
온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쪽. 잠깐 맞붙었다 떨어진 짧은 입맞춤이 서너 번 더 이어졌다.
“그리고 이깟 일로 울릴 수는 없지. 기대 중이거든.”
“뭘요?”
“네가 우는 거.”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까지 나 우는 거 싫어서 결혼 안 하겠다고 말한 남자가!
나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밑에 깔려서 울어도 안 봐준다고 했잖아.”
에던은 미리 예고장을 날려 준다는 듯 매끄럽게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아, 아니. 미친. 진짜 야한 게 누군데.
“안 울 수도 있잖아요!”
부끄러워서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털썩, 나는 소파에 눕혀졌다.
“아프다고 봐줬더니 막말하네?”
달빛을 등진 에던의 몸이 내 몸 위로 겹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