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ess Doesn’t Want Love RAW novel - chapter (59)
악녀는 사랑을 원치 않아요 60화.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59/60)
60화.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2024.07.30.
“카리나 님!”
풀려난 미하일이 카리나를 찾아왔다.
“이제 몸은 좀 괜찮으신 겁니까?”
그의 잘생긴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나 때문에 감옥에서 너무 고생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굴뚝같았다.
“난 괜찮아. 오히려 내가 쓰러지는 바람에 네가 고초를 겪었지. 미안해.”
“전혀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카리나 님이 무사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미하일이 카리나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 미하일의 행동을 제레미아가 막아섰다.
“뭘 하려는 거지?”
제레미아가 인상을 구기고 물었다.
“카리나 님이 무사하신 게 기뻐서요. 표현도 못 합니까?”
미하일이 제레미아를 냉랭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주제넘게 굴지 마라.”
“내 주인은 카리나 님입니다. 주제넘었는지 아닌지는 카리나 님이 결정할 문제죠.”
미하일이 이젠 대놓고 카리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자 제레미아의 눈이 사나워졌다.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네놈 죄가 없어진 줄 아나?”
“그럴 리가요. 내 죄는 앞으로 더 철저하게 카리나 님을 지키는 걸로 갚을 생각입니다. 곁에서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미하일이 뻔뻔하리만큼 당당하게 받아쳤다.
“헛소리를 하는군.”
“헛소리라뇨? 전 진심입니다만?”
제레미아와 미하일의 시선이 부딪친 허공에서 불꽃이 튀는 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둘의 기 싸움으로 카리나는 머리가 아파 왔다.
“저기요? 저 아직 환자거든요? 싸울 거면 둘 다 나가줘요.”
“…….”
“…….”
카리나의 단호한 한마디로 둘의 기 싸움은 거기서 일단락되었다.
그날 오후.
“식사 시간이에요.”
미하일이 멀건 수프가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제레미아는 불편하다는 카리나의 축객령 아닌 축객령으로 방에서 쫓겨났다.
그게 아니어도 밀린 업무가 많아서 카리나의 곁에서 계속 있기란 불가능했을 테지만.
미하일이 쟁반을 침대 옆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카리나가 몸을 세워 앉을 수 있도록 부축했다.
“아직 뭔가를 넘기기 힘들어하실 것 같아서 묽은 음식으로 준비해달라고 했어요.”
미하일은 카리나가 깨어나고 계속 그녀의 곁에 붙어 있었다.
그녀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며 살뜰하게 그녀를 챙겼다.
“상처에 안 좋을 수도 있으니 너무 뜨겁지 않게 조금 식혀왔어요.”
미하일이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서 카리나의 입 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자, 아 하세요.”
카리나가 제 손을 힐끗 보았다.
신기하게도 손의 상처는 다 낫고 없었다.
깨끗한 손바닥이 보였다.
멀쩡한 손 놔두고 받아먹으려니 민망함이 몰려왔다.
“내가 먹을게.”
카리나가 미하일의 손에서 수저를 가져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수프를 저어 조금씩 떠먹었다.
딱 적당한 온도의 수프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맛이 어때요?”
환자에게 먹일 음식으로 만들어서 간이 세지 않았다.
“맛은 그냥 맹맹해.”
“환자에겐 그 정도가 딱 좋대요.”
미하일이 활짝 웃으며 카리나가 수프를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카리나를 보는 미하일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걸 느낀 카리나가 대뜸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괜찮아. 의원 말 못 들었어? 거의 다 나았다잖아.”
“…….”
“네가 직접 치유 포션을 구해와서 나한테 써줬다면서.”
카리나는 경과를 확인하러 온 의원이 옆에 있는 미하일을 보고 기적의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며 감탄하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도 네 덕분에 살았어. 이제 소원 한두 개 들어주는 걸로는 어림도 없겠는걸?”
피식 웃은 카리나가 미하일을 쳐다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도 소원권으로 평생 먹여 살려 달라거나 책임져달라고 하는 건 안 된다?”
카리나는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미하일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가 두 손으로 카리나의 손을 잡았다.
위아래로 카리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싼 미하일이 나긋한 목소리로 카리나의 이름을 불렀다.
“카리나.”
“……응?”
존대 없는 호칭에 놀랐지만, 자신이 예전에 말을 놓으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
미하일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미하일이 몸을 일으켜 카리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카리나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고 시선을 맞춰왔다.
“굉장히 중요한 말이야.”
루비처럼 예쁜 눈동자가 그 안에 카리나의 모습을 그대로 비췄다.
여전히 그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동시에 카리나를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어……?’
카리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미하일의 눈빛에 고인 애정의 종류가 지금껏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설마…… 아닐 거야.’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하일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으면, 도저히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카리나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너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강박적으로 아닐 거라 되뇌어도, 혹시나 미하일이 그런 얘기를 꺼낼까 봐 무서워졌다.
카리나는 미하일과 자신의 관계가 지금 상태에서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하일이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해도 자신은 그 마음을 돌려줄 수 없었다. 보답할 수 없었다.
카리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쓸모없고, 무가치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미하일이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카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하일.”
그의 이름을 부르는 카리나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심적 동요를 숨기며 뭐라 말할지 잠시 고민한 카리나가 말을 이었다.
“고마워. 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아니. 나는…….”
“내 호위로서 네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해준 덕분이지. 이 정도로 책임감 넘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내가 호위를 정말 잘 뽑은 것 같아.”
“…….”
카리나는 미하일이 대꾸할 틈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계속 내 호위로 있어 줬으면 좋겠어.”
“……?”
카리나의 말을 들은 미하일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 이 상태가 좋아.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어.”
“…….”
카리나가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웃었다.
“그렇게 해줄 수 있지?”
“…….”
미하일의 표정이 흐려졌다.
상처받았다는 게 여실히 얼굴에 드러났다.
도저히 그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수가 없어진 카리나는 시선을 내렸다.
미하일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의 관계가 최선이었다.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하찮은 감정으로 새롭게 맺은 이 관계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카리나에겐 미하일과의 관계가 그만큼 소중했다.
한편.
미하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백도 하기 전에 차였다.
지금 이 관계로 남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명백한 거절이었다.
실망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속이 쓰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애통과 서글픔으로 가슴이 죄어왔다.
카리나가 자신이 싫어서 거절하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카리나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였다. 자신에게만 있는 그대로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카리나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미하일은 카리나가 자신을 거부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아직 이혼하기 전이어서? 대공과 결혼 관계로 묶여 있는 상황이라서?’
하지만 이미 이혼을 결심하고 계획하고 당사자에게도 이혼하겠다고 선언한 시점에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더 근본적으로 이 관계가 변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미하일이 카리나의 표정을 집요하게 살폈다.
카리나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는 걸 기민하게 눈치챘다.
‘꺼린다기보단 무서워하는 것에 더 가깝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른 이유가 생각났다.
‘설마 그 자식 때문인가?’
미하일의 입매가 굳게 다물렸다.
카리나가 자신을 거절한 이유가 대공 때문이라면.
대공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고, 사랑을 불신하게 된 거라면. 그래서 자신을 거절하는 거라면.
미하일의 턱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다.
역시 카리나를 그놈 곁에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그녀를 데리고 떠나야겠어.’
이유를 짐작한 미하일이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했다.
상처받은 카리나에게 부담을 주고 자신의 마음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카리나 님.”
미하일이 부드럽게 웃으며 카리나를 불렀다.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자 카리나의 시선이 다시 올라왔다.
“전에 제 소원 들어주기로 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머뭇거리던 카리나가 대답했다.
“……응.”
“그 소원권, 지금 쓰고 싶습니다.”
“지금?”
카리나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고백을 받아달라는 데 소원권을 쓸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뭔데?”
“앞으로도 계속 카리나님 곁에 있게 해주세요.”
“응?”
“카리나 님이 이혼하시고 대공가를 떠난 후에도요. 그때 저를 같이 데려가 주세요.”
카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널 데려가 달라고?”
“네. 그 정도는 괜찮죠?”
“그건…….”
예상하지 못했던 소원인지 카리나의 표정에 고민의 기색이 역력했다.
미하일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시다시피 전 떠돌이잖아요. 딱히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
“카리나 님이 계속 저 데리고 다니면서 호위로 유용하게 써 주세요. 저도 편하게 놀고먹으면서 돈 벌게요. 괜찮죠?”
“음…….”
카리나가 고민하는 듯 말을 흐렸다.
“카리나 님. 이건 소원권 쓴 거니까 안 된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미하일은 카리나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강하게 주장하며 되물었다.
“설마 저 버리고 가실 생각은 아니죠?”
“버린다는 말은 좀 이상하지 않아? 너도 네 인생이 있을 텐데, 자유롭게 놔줘야지.”
카리나가 얼떨떨하게 반문했다.
“그러니까 자유롭게 카리나 님 따라가겠다고요.”
미하일이 입꼬리를 올리고 예쁘게 웃었다.
“안 데리고 가시면 그냥 제가 따라갈 겁니다.”
미하일이 집착 가득한 눈동자로 카리나를 제 시야에 가득 담았다.
안 데리고 간다고 해도 기어코 따라갈 생각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카리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때 정 갈 곳이 없다고 하면 데리고 가줄게.”
“저 데리고 가신다고 하신 겁니다. 잊으시면 안 돼요. 말 바꾸기도 없어요.”
미하일이 약속해달라는 듯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알겠어.”
카리나의 확답을 듣고서야 미하일이 안도하며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 * *
다음날.
카리나의 방에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카리나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는 제레미아와 미하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제레미아는 카리나가 깨어난 이후, 사건 보고를 받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에 3번씩은 꼭 그녀를 찾아왔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지?’
카리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올 때마다 미하일과 기 싸움을 하는 것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제레미아와 미하일 사이에는 묘한 적대감이 흘렀다.
‘혹시 여기에 싸우러 오는 건가?’
카리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싸울 거면 둘 다 나가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대놓고 그러진 않았지만 그래도 불편했다.
‘서로 안 좋아하면서 왜 굳이 얼굴을 마주치는 걸까.’
카리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저자를 계속 호위로 둘 생각인 건가?”
제레미아는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말했잖아요. 미하일이 내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고. 나에겐 그가 필요해요.”
미하일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제레미아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카리나가 꼭 미하일이어야 한다고 완강하게 나가자 호위 교체를 강제하지는 못했다.
“꼭 저여야만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옆에 있던 미하일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제레미아가 험악한 표정으로 미하일을 쏘아보았다.
미하일이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받았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날 선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설마 또 싸우려는 건 아니겠죠?”
카리나가 바로 끼어들었다.
“…….”
그러자 두 사람이 끝까지 서로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카리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끔은 아픈 것도 도움이 되네.’
둘 다 환자를 상대로는 좀 약해지는 모양이었다.
똑똑.
“전하. 접니다.”
마침 카리나의 방으로 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