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08화(207/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녹색 빙벽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모두 그렇게 놀라시더라고요. 좀 더 가까이 가서 보셔도 돼요.”
카일이 유클레드에게 짐짓 상냥하게 권유했다.
관광객(?)에게 보이는 의례적인 친절 같았지만, 그의 성격을 아는 내 눈에는 속셈이 그득해 보였다.
유클레드 녀석은 순진하게도 카일의 말을 듣고 녹색 빙벽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다가 그는 돌연 뭔가에 깜짝 놀라서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뭐야, 방금? 저 안에 있는 뭔가랑 눈이 마주쳤는데?”
“숲과 함께 봉인된 마수들입니다.”
레예스가 설명했다.
한겨울에도 눈부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얼어붙은 숲은 몹시도 아름답고 신비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흉측한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우거진 초목 사이로 포효하고 있는 마수들이 그곳에 통째로 박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마수들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얼음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그 모습은 생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담이 작은 사람은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얼음 속에 생동감 있게 봉인된 마수들을 보고 놀라서 경기할 만했다.
아버지도 유클레드를 따라 빙벽 가까이 몇 걸음 더 다가가다가, 안고 있는 나를 의식한 듯이 멈춰 섰다.
나는 몸이 기울어질 정도로 손을 쭉 뻗어서 앞에 있는 유클레드를 잡아당겼다.
언제 마수를 보고 깜짝 놀랐냐는 듯이 녹색 빙벽 안쪽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던 유클레드가 그제야 내 존재를 의식한 듯이 나를 돌아봤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
나는 못마땅하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카일은 유클레드가 빙벽을 보고 꼴사납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기대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다가 내가 유클레드를 말리는 걸 보고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카일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피식 웃으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3황녀님은 귀여우시네요. 녹색 빙벽은 위험하지 않아요. 전부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는걸요.”
“카일, 건드리지 말고 너도 이쪽으로 와.”
“뭐 어때서 그래?”
레예스가 카일을 말렸으나, 그는 녹색 빙벽에 다가가서 숲과 마수를 가둔 차가운 얼음을 노크하듯이 장난스럽게 툭툭 두드렸다.
“보세요, 아주 단단하죠? 바스티온의 기온이 전보다 따뜻해졌다고는 해도, 이 빙벽이 어떻게 되려면 최소 100년은 지나야 할…….”
쩌저적!
바로 그 순간 눈보라 사이로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카일의 손이 닿은 곳에서부터 하얀 실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진 빙벽 조각이 카일의 발밑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카일은 당연히 돌이 된 것처럼 굳었고, 다른 사람들도 말문이 막혀서 입만 쩍 벌렸다.
“녹색 빙벽…… 부서졌는데?”
“부서졌군요.”
짧은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유클레드와 레예스가 한마디씩 했다.
“이, 이럴 수가……! 여신의 은총이자 바스티온의 자랑인 녹색 빙벽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이작이 뭉크의 그림 속에 있는 절규하는 사람 같은 얼굴로 꽥 소리쳤다.
그는 허겁지겁 달려가서 깨진 녹색 빙벽 조각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털썩 주저앉아 여신님을 부르짖었다.
녹색 빙벽을 지키는 보초에게 보고를 들으러 잠깐 일행과 떨어졌던 가넷 바스티온도 아이작의 절규에 소란이 일어난 걸 알고 다가왔다.
“카일, 설마 내 대에서 녹색 빙벽을 때려 부순 자가 나올 줄은 몰랐구나.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들이 말이다.”
“어, 어머니! 저, 전 진짜 살짝만 쳤는데! 이, 이 정도면 친 것도 아니고 접촉한 수준이었다고요!”
카일은 ‘그렇지?’ 하고 도움을 요청하듯이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특히 그는 나한테 동조를 바라는 것처럼,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나는 기꺼이 그를 위해 발언했다.
“파괴 왕…….”
“……!”
내 중얼거림에 카일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입술을 벙긋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나한테 이런 말을 들은 게 심히 억울한 모양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예고 없이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카일을 감싸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빙벽의 표면에만 금이 가 부서진 것이니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그러던 중에, 어째서인지 아버지가 퍼뜩 말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봤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퍽! 퍽!
머리 위에서 뭔가가 둔탁하게 부딪히고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곧바로 새까만 뭔가가 눈앞에 후두둑 떨어졌다.
“이, 이게 뭐야?!”
“갑자기 웬 새가……!”
어디선가 날아든 새가 빙벽에 머리를 박고 추락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 마리로 끝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서 꼭 검은 폭풍이 눈보라를 가르고 밀려드는 듯했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빙벽을 향해 겁도 없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급히 팔을 들어 나를 감쌌다.
묵직한 털 외투에 온몸이 다 가려져서 나는 그 직후의 일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다만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터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와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 또 사람들의 당혹감 어린 아우성 등으로, 아버지의 외투 밖에서 지금 일어났을 일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귓전을 때리던 소리가 얼추 멈추자 싸늘한 침묵이 일대에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나를 외투 밖으로 꺼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몰래 옷자락을 벌려 밖을 슬쩍 내다봤다.
그리고 수십 마리의 새가 머리가 깨져 죽어 있는 걸 보고 얼굴을 굳혔다.
흰 눈밭이 온통 까맣고 빨갛게 물들여 있는 모습이 불길함을 자아냈다.
“……전에도 바스티온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지금이 처음입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가넷 바스티온이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새를 서릿발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며 답했다.
나는 아까 바스티온의 성안에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심각해졌다.
“보초에게 오늘은 밤새 녹색 빙벽을 지키게 해야겠습니다.”
가넷 바스티온이 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보초에게 명령을 내린 뒤 아직도 충격과 비탄에 빠져 있는 아이작을 돌아봤다.
“아이작.”
“예, 예?”
“새들이 죽은 것은 흉조이니, 지금 이곳을 정화해 주겠나?”
“알겠습니다…….”
아이작이 비실거리며 일어나 가넷 바스티온의 말을 따랐다.
나는 그가 거의 훌쩍이면서 몰래 깨진 빙벽 조각을 소중히 주워 들어 품에 감싸는 모습을 목격했다.
설마 저걸 가지고 가려는 건가?
얼음 덩어리를 저렇게 안고 가면 추울 텐데?
하지만 아이작은 덜덜 떨면서도 빙벽의 파편을 갓난아기라도 된 듯이 소중히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그냥 한번 혀를 찬 뒤 못 본 척했다.
녹색 빙벽을 떠나기 전에 나는 새들의 참사가 일어난 곳을 한번 뒤돌아보았다.
흰 눈보라 사이로 보이는 여전히 이질적인 초록빛.
그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사악한 존재와 착각처럼 한순간 눈이 마주친 듯했다.
* * *
“황녀님, 큰일 났습니다! 황녀님의 애완동물이…….”
바스티온의 성으로 돌아온 뒤에도 달갑지 않은 사건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바스티온의 고용인들을 따라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황녀님! 오셨어요?”
“피오는? 괜찮아?”
“바스티온의 의사가 처방해 준 진정제를 먹고 지금은 안정됐어요.”
마가렛의 말처럼 피오는 푹신한 방석 위에 기운 없이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꼬마 주인아…….]나를 본 피오가 평소답지 않은 가냘픈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흰 족제비를 조심스럽게 들어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면서?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정확히 말하면 복도의 창틀 위에 쓰러져 있었는데……. 창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사이에 끼어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나 봐요. 체온이 떨어졌는지 의식이 없는 걸 란타나 가문의 영식과 영애가 발견했어요. 황녀님이 안 계신 동안 제가 더 신경 써서 잘 돌봤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해요.”
마가렛이 면목 없다는 듯이 침통한 얼굴로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마가렛이 아니라 피오를 쳐다봤다.
내 시선을 받은 피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야……! 절대로 내 뱃살 때문에 창문 밖으로 못 빠져나가서 낀 게 아니라고!]뱃살 얘기는 지금 아무도 안 했는데…….
혹시 란타나 남매나 다른 사람들이 족제비가 통통해서 창문에 낀 것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했나?
그리고 피오가 다음 순간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친 말을 듣고, 나는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누가 날 습격했단 말이야! 이 성안에 있는 누군가가 뒤에서 내 목을 졸라서 죽이려고 했다고! 그러고 나서는 내 숨이 끊어진 것 같으니까, 사고인 척하려고 창문틀에 끼워놓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