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55
EP.155 잘못된 건 아니지 – 2
교회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그들 중 얼굴이 익숙한 수녀 하나를 잡았다.
“베로니카는 어디 있습니까?”
“아. 추기경님은 저기 안쪽에 계십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제사와 기도를 드리기 위한 본당의 건물이었다.
고딕 양식의 길죽하고 큰 건물 안에 들어가자 단상 위에 수녀복을 입은 은발의 아름다운 수녀가 차가운 얼굴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
“축성받은 은촛대의 위치가 틀어졌어. 로테빌. 왼쪽으로 좀 더 옮겨. 크라이머 신부님. 오늘 지낼 기도는 명계에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보일스턴 복음 3장 7절의 기도를 인용하도록 하지요.”
“예.”
“성가대. 추모의 노래는 준비되었나?”
“예!!”
“시작해.”
자리에 앉은 성가대가 엄숙하게 성가를 불렀다.
죽은 자들을 위한 노래.
죽음을 위한 노래.
채 꽃피지 못하고 세상에서 떠난 아기들을 위한 노래.
다양한 성가들이 신성력을 받아들여 본당에 울려퍼진다.
“사이스 수녀. 반음 낮게. 로텔리아 수녀. 목감기라도 걸렸나? 음이 갈라지네.”
“아. 죄, 죄송합니다. 콜록콜록!”
집중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만한 노래인데도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챈 베로니카는 차분하게 그녀를 돌려보내고 다른 성가대원을 자리에 앉혔다.
그 외에 장식이라거나, 오늘 기도에서 신께 바칠 제물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스스로 검수한다.
할 일이 많고, 복잡할 것 같은데도 베로니카는 그것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해내고 있었다.
“굉장하지요?”
“엇.”
내 옆에 다가 온 것은 허름한 사제복을 입은 회색 곰 수인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
과거 부모님을 잃은 베로니카를 데리고 교회로 온 사제이며, 현재는 교회의 교황이기도 한 베네딕트 3세였다.
세간의 평가 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꽤나 좋은 평가를 가진 그는 훈훈하게 웃으며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훌륭한 모습입니다.”
“흐음… 그렇죠.”
“베로니카 추기경은, 저에게는 딸과 같은 아이죠. 물론 성 베힌드 고아원 출신의 아이들 모두 제 자식과 같습니다.”
“예. 저도 들었습니다.”
베로니카나 13수녀회의 수녀들, 저기서 바쁘게 짐을 나르고 있는 성기사 몇몇 처럼 성직자가 된 고아들도 있지만, 고아원에서 나가 자신이 가진 청운의 꿈을 이우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교황은 말 그대로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하하… 저도 이제 많이 늙었습니다.”
회색 머리 여기저기는 새하얗게 새었고, 훈훈하고 인자한 곰 수인의 얼굴에는 노화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교황이라는 과분한 자리에 올랐지만. 저는 이미 노화하고 약해져 사실 이런 높은 자리에 있을 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딱히 그렇지는 않아보입니다만… 지금 당장 사람 하나는 간단하게 찢으실 것 같은데요?”
“하하하. 성직자가 어찌…”
“그게 악마숭배자라면?”
“그것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지요.”
쓱, 곰 수인 전용의 안경을 치켜세우며 그는 진지하게 말하다가 뜬금없이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그런데 참 연기 되게 못한다.
교황은 누가봐도 어색할 정도로 거칠게 기침을 하더니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톡톡 토닥여주었다.
“참… 좋은 아입니다.”
“예.”
“그거 아십니까? 교회는 성직자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것을?”
“알죠.”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다시 아픈 척 기침을 토해내더니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한 팔을 움직여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하루하루가 두렵습니다. 제가 신께 가기 전에… 저 아이가 웨딩 드레스를 입는 것을 한번이라도… 콜록! 콜록! 아아. 신께서 이 불민한 육체에게 얼마나 시간을 주실지…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난 그에게 정령의 씨앗을 보여주었다.
“만병치유약이면 노화도 어느정도는 잡습니다. 케루빔에게 요청하면 몇병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정 뭐하면…”
“….”
침묵.
교황은 난감해하며 내 손에 들린 정령의 씨앗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튼. 저희는 현자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당장 전대 교황… 아니,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악인에게서, 그리고 공국의 성 지하에 있는 악마에게서, 또한 수많은 악마숭배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마왕까지.”
“…..”
“현자님께는 정말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서로 돕고 사는거죠.”
“거기에… 베로니카에게 듣기로.”
그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부활… 하셨다지요?”
“예.”
“그렇군요… 죽은 자 가운데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라…”
교황의 시선이 좀 더 강해졌다.
“콜록! 콜록! 콜록!! 아아. 신이시여. 부디 이 노쇠한 몸이 조금이라도 더 버텨주기를…”
“아. 예.”
아무리 봐도 병 같은 건 없고, 몇십년은 거뜬하게 살 것 같은 거구의 곰 수인이 어설프게 아픈 척을 하는 걸 보니 웃기긴 하네.
“어… 현우야?!”
한참 냉정한 추기경으로서 능숙하게 지휘를 하던 베로니카의 눈이 우리에게 닿았다.
차가운 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보던 베네딕트 3세는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말했다.
“얘 이쁘죠?”
“…예.”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원래는 베로니카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명계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이며, 제사라는 이야기에 교황이 직접 나섰다.
난 약속했던 벨로피앙을 바쳤고, 교황은 특유의 훈훈하고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주었다.
그렇게 기도가 진행된다.
신자가 아닌 나는 가장 끝 쪽, 문 근처에 선 채 기도를 진행하는 교황과, 그를 보좌하는 추기경들을 흝어보았다.
당연하지만 베로니카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평상시에 내게 바보처럼 웃어보이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추기경의 모습을 그녀는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것을 응시하던 나는 뒷통수를 긁적거린 후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몸을 감싼다.
그것을 그대로 받으며 서 있던 나는 기도가 끝나고 사제들이 나오는 것을 보자 몸을 돌렸다.
“여기 있었네? 후후. 어땠어?”
“끝내주던데.”
“중간에 나갔으면서 뭘.”
“그냥 여기서 봐도 알아. 아무튼 고생했어. 생각보다 일이 커졌네. 교황님에 다른 추기경분들까지 참석할 줄은 몰랐는데.”
갑작스러운 기도회에 망자를 위한 제사였다. 하지만 나가는 추기경이나 다른 사제들은 딱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며 그저 조용히 나가고 있을 뿐 이었다.
“사제의 본분은 신께 기도하는 것이니까. 망자를 달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런?가?”
“오히려 네가 너무 이타적인 것이 문제야. 나… 아, 아니. 우리에게 부담 갖지 마. 네가 말하지 않았어도 했을 일이니까.”
“그래?”
“물론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얼마든지 보여도 좋아. 자. 날 칭찬해주렴.”
엣헴. 커다란 가슴을 쭉 내밀며 우쭐해하는 베로니카를 보던 나는 마주 웃어주었다.
“어이구.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최대한 장난스럽게 박수를 치며 칭찬해줬다.
그것마저도 기뻤는지 베로니카는 꽤나 좋아하고 있었다.
“아무튼. 고생했고… 나 좀 다녀올 곳이 있어.”
난 품에서 아까 낮에 받았던 의뢰서를 들어보였다.
탕녀 처치 의뢰서.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던 베로니카는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남자를 마구 유혹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그 탕녀?”
“어. 걱정할까봐 일단 말하는 건데. 나한텐 안 통해.”
사이론이 말한 것처럼 탕녀의 세뇌는 주술을 이용한 것이다.
즉, 같은 수준 이상의 주술을 사용할 수 있고, 일정 이상의 정신력을 가진 후 호부까지 보유한다면 그런 것 따위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난 호부를 들어보였고, 정신력을 상승시켜주는 장비들도 보여줬다.
아까 나갔을 때 구해 온 것들을 훑어보던 그녀는 떨떠름함과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보았다.
“그래도… 혼자 가?”
“왜? 같이 가게? 가주면 나야… 고맙긴 한데.”
베로니카의 실력과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얘가 옆에 있으면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같이 가는 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차피 그거 교회의 의뢰… 어. 음? 앗. 잠깐만. 내가 같이 가면 너 보상을 못 받는거 아냐?”
“교회의 규정을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
“내 앞에 계신 분이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현자님이니까?”
“…규정에 따르면 같이 가는 인원과는 큰 상관이 없어.”
“그럼 같이 가자. 남자를 세뇌시켜서 자기 멋대로 사용하고 죽여버리는 탕녀는 반드시.”
베로니카는 주먹을 꽉 쥐었다.
“파.괴.한.다.”
그거 참 든든하네.
“그런데 왜 네가 탕녀를 잡으러가?”
“그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히죽, 고양이처럼 장난스럽게 웃더니 길고 예쁜 손가락으로 내 코를 살짝 찔렀다.
“너 또 필요한 일이니까. 라고 하려고 했지?”
하하.
역시 오래 알고 지내긴 했군.
뭔 말 할지 단번에 눈치채는 걸 보면 말야.
결정을 했으니 시간 끌 필요는 없었다.
곧장 마차를 수배한 나는 베로니카와 함께 카일리 마을로 향했다.
카일리 마을은 왕국의 트랄만 영지. 즉 레이시가 다스리는 영지에서 아주 조금 떨어져 있는, 일종의 공유지나 다름없는 영역에 있는 마을이다.
그렇기에 마을 주변에서 발생한 문제에 레이시도 함부로 대응할 수 없었고, 결국 교회에 의뢰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단다.
“흐음… 그럼 레이시도 만나서 같이 가는 건가?”
둘이 꽤 친한가보다, 스스럼없이 레이시의 이름을 부른 베로니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말린 과일을 꺼냈다.
“먹을래?”
“아니.”
“그래? 냠.”
그리고 살짝 말린 과일을 입에 넣는다. 그러더니 눈을 치켜뜨며 날 올려다보다가 히죽 웃으며 풍성한 머리칼을 어깨에 비빈다.
영역이라도 표시하려는 고양이처럼.
그 모습에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때 마차가 멈췄다.
어? 아직 도착하려면 좀 남았는데?
난 마차에 있는 문을 열었고, 마부석에 있던 마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현자님. 바깥에 마물들이 있습니다요.”
기동성을 늘리기 위해서 다른 이들은 배제한 후 둘만 왔다.
그렇기에 전투 인력은 나와 베로니카 뿐.
베로니카는 마차를 지켜야 하니 결국 싸울 수 있는 것 나 뿐이다.
“축복 걸어줄게.”
베로니카는 내 손을 꼭 잡고, 내 이마에 이마를 가져갔다. 상당히 고급진 축복을 내리려는 모양이다.
“신께서 당신의 자식에게 승리의 길을 안내해주시길, 당신에게 닿는 모든 화살은 빗나갈 것이며….”
기도문이 끝나며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만큼 심장의 요동이 강해졌다.
“그럼 갔다올게.”
…빨리 탕녀를 잡아야겠군.
난 황급히 나갔고 마차를 발견한 마물들이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덩치에 흉측한 얼굴, 사람을 찢어 잡아먹는 마물. ‘오거’ 와 양 팔이 길며 오거와 비슷한 키이지만 체구는 더 작은. 하지만 재생력만큼은 오거를 훨씬 뛰어넘는 ‘트롤’ 둘.
게임에서도 고레벨일때 가는 곳이라 그런지 마물들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물론.
상대하기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난 저들이 오기 전에 잡으려고 마법을 쓰려다가 멈췄다.
“…어?”
마물들의 몸에 신을 모독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저거…
악마 숭배자들이 자주 쓰는 문양인데?
“베로니카!”
“어? 어… 뭐야. 저거.”
베로니카도 마물들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리고 금방 싸늘한 표정이 되어 메이스를 잡는다.
“…이곳에 쓰레기 같은 악마 숭배자들이 있네.”
“흠…”
인신공양을 통해 악마를 불러내려는 악마숭배자.
그리고 남자를 홀려 자신을 위하는 노예로 삼고, 사람을 주술을 위한 제물로 써먹는 탕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탕녀와 악마숭배자가 같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이벤트, 동주제강(同舟濟江)이 있었지.
기회만 보다가 서로 잡아먹으려는 승냥이 같은 것들을 보는 이벤트.
그렇다면.
어째 일이 더 쉽게 풀리겠네.
“…교회에 요청해 지원을 받아야겠는걸.”
난 베로니카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한쪽을 가리켰다.
“이왕 받는 거 다른 쪽에서도 받자고.”
내가 가리킨 곳은 트랄만 영지 쪽이었다.
그 쪽을 힐끔 본 베로니카는.
-쿠어어어어!!
사악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며 돌진해오는 오거를 향해 디바인마크를 내밀며 외쳤다.
“일단 이놈들부터 잡고!”
“하긴 그게 우선이지.”
나 역시 지팡이를 뽑으며 달려오는 두마리 트롤을 향해 겨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따가 만나요 ㅎ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