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비록 아버지를 어릴 때만큼 순수하게 동화책의 영웅으로 보진 않았지만, 가스파르는 절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의 아버지는 세상이 인정하는 위인이었고 아무리 이상해도 자신보다는 뛰어날 테니까.
베르게르는 자신이 집을 자주 비웠던 만큼 가족이 부디 평화롭길 바랐다.
가스파르는 우등생으로 남아 그 흔한 패싸움 한번 안 했다.
베르게르는 그가 사관학교로 진학하지 않길 바랐다.
가스파르는 파리 대학 법학과로 진학을 목표함으로 수많은 아버지 지인들의 기대의 싹을 없애버렸다.
평범함.
베르게르는 가장으로서 모든 것을 물려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평범함을 지켜주고 싶어 했다.
어렴풋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심상치 않았던 것을 기억하는 가스파르는 부모의 뜻에 자신을 잘 맞췄다.
평범한 삶을 추구했고, 나이가 들어선 어떤 어리광도 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해주려 할 테지만, 그게 절대 본심은 아닐 테니까.
그런 가스파르에게도 슬슬 탈선의 시기가 다가왔다.
시작은 작은 궁금증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세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
“그럼 아버지는 뭐 하고 싶으셨어요? 군인은 아닐 거 아니에요.”
매번 술 먹고 집에 올 때마다 이놈의 군대 언젠가는 때려치운다고 소리치는 모습만 10년을 넘게 봤다.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아버지도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았을까.
“돈 많은 백수…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내 어깨에 달린 게 많아서.”
“찾아가고 계시는 중이군요?”
“…그렇지?”
아들과의 진로 상담을 상상도 못 해본 베르게르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절대 답을 정해주지 않으셨다. 아마 본인도 모르거나, 적어도 본인은 정답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결국 그의 손으로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가스파르는 그간 생각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역시 전 아버지가 될 순 없어요. 전 도저히 전쟁이 어떤 것인지 감도 안 잡히거든요.”
“뭐, 경험의 차이가 있지.”
“그럼에도 알고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당장 전쟁터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겠죠.”
“그래서?”
“아버지, 저 불의 십자단 활동을 해보려고요!”
“쿨럭!”
베르게르는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숨을 제대로 못 쉬었지만 그의 눈과 손만은 가스파르를 향해 있었다.
“커억, 절대 안 돼! 너 거기가 어딘지 알고!”
“이미 지원서 내고 왔어요.”
불의 십자단이라면 퇴역 군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집단. 지금은 반쯤 베르게르의 손발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정보 수집, 청소, 다른 사조직 제거.
시간을 들여 불의 십자단 일부를 육군 정보국이랑 섞을 생각이었던 베르게르에겐 입대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150만 가입자에 걸맞은 스케일의 일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그 어느 집단보다 비밀에 부쳐진 채로 활동 중인 불의 십자단이다.
‘드라로크으으!’
다만 누구의 어린 조카에겐 빼고 말이다.
***
23년 전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는 지주, 부르주아, 교회 같은 기득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허나 너무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펼쳐서였을까, 리베라의 독재는 대공황과 함께 끝났다.
하루아침에 닥친 공황처럼 갑작스러운 독재의 빈자리는 스페인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제2의 리베라가 되고자 하는 군부 쿠데타가 끊이질 않았고.
알폰소 13세는 망명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함께 권력을 누리던 군부와 왕당파는 반목하였고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외쳤다.
다만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누구도 리베라의 대체재가 되질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 결과 리베라 이후 새로 들어온 공화국 내부는 분열을 넘어선 분단에 이르게 되었다.
공황으로 심해지는 계급 갈등.
극단주의의 대두.
단순히 좌와 우로는 이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갈등.
좌파가 들어서도 공황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우파가 들어와도 노동 탄압 외에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모로코에서 바라보던 프랑코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작금의 스페인은 홀로 일어설 능력이 없다.
기존 기득권층의 욕심도 과하지만 하루아침에 본인들의 이상향이 펼쳐지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민중도 멍청하다.
이건 설득의 영역이 아니었다. 다들 자기 말이 맞다고 외치지만 정작 보여준 것 하나 없지 않나.
‘그냥 너희들끼리 놔둘 바엔 내가 하겠다.’
리베라와 함께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떨친 자신이라면 자격이 있다.
프랑스가 도와준다면 내부를 평정하고 이탈리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비록 프랑스 또한 마냥 친하게 지내긴 두려운 이웃이었지만….
‘아서라, 애매하게 적대할 바엔 같은 편이 되는 게 나아.’
모헬 원수가 전쟁을 포기했다고?
그 인간이 진정 변하여 유럽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고?
‘웃기는 소리지.’
모르니까 뱉을 수 있는 개소리다. 왜 미국과 영국이 양보하는지만 봐도 알지 않나.
그들은 아는 거다. 모헬 원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이는 리프 전쟁을 함께 치른 프랑코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대화로 해결할 것처럼 다가가지만…. 만약 무력이 유일한 해결책임이 드러난다면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다.
그땐 전쟁이 아니다.
학살. 오직 학살만이 펼쳐질 뿐이다.
아직도 모헬 원수를 도덕이나 이념 따위로 해석하려는 멍청이들과 자신은 달랐다.
“서로 선만 안 넘으면 된다.”
모헬 원수는 본인의 지지자들에게 구애받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특정 신념의 틀 안에 남을 맞추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필요와 불필요.
아군과 적군.
참으로 간단하지만, 깔끔한 관계를 추구한다.
이탈리아가 프랑스가 주도하는 체제에 함께하지 않는다고 공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지원만 있다면 내전에서 패배할 리는 없다.
프랑스의 모든 병력이 대신 싸워주는 게 아니라면 내전의 주축은 어찌 되었든 자신이어야 한다.
프랑코의 가장 큰 기반은 모로코. 바로 본인의 군사가 몰려 있는 곳이다.
비록 바다가 떨어져 모로코만이 그의 기반이 아니었기에 프랑코는 거침없이 총독부와 항구를 점령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더 이상의 정치 폭력을 방관할 수 없다!”
“언제까지 빨갱이들 테러에 시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왕도 싫고, 군대도 싫고, 교회도 싫다고? 그게 반역도랑 뭐가 다른데?”
프랑코를 말 잘 듣는 개로 취급하던 공화 정부는 날벼락에 우왕좌왕했다.
다수의 병력이 모로코에 있으나 그들이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 심지어 본토에 있는 국방군도 통제를 벗어났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을 스페인 해군에게 달려가 당장 막으라고 지시해봤자 해군 측 답은 언제나 같았다.
“우리보고 모로코의 영웅을 죽이라고?”
“미쳤군.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나 하는 소린가?”
“어차피 모로코 아니어도 내륙에 있는 병력 때문에 우린 움직일 수 없소만?”
해군은 꿈쩍하지 않았다. 되려 가담하면 가담했지 빨갱이들의 명령에 총구를 전우에게 돌릴 만큼 그들은 미치진 않았다.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프랑코의 반란은 일견 스페인 내부에 국한된 이야기로 보였으나….
“이익! USSR에 연락해!”
“소비에트의 지원이라면 프랑코 따위 막을 수 있다!”
좌파들의 어머니, 소련이 한 발 걸치게 되며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버렸다.
소련이 움직였다는 의미는 외부의 개입이 시작되었다는 말.
소련의 지원 소식에 프랑코로서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프랑스에 연락하게.”
“알겠습니다.”
저쪽이 뒷배를 불렀다는 말은.
이제 프랑코도 모헬 원수를 불러도 된다는 의미였으니까.
***
스페인 내전의 소식은 달콤한 평화의 꿈을 꾸던 유럽을 일깨우는 소리였다.
‘스페인 내전?’
‘더 큰 전쟁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어떡하지? 프랑스가 가만히 있으려나? 이탈리아는 이미 개입을 택한 것 같던데?’
스페인 내부의 이념 갈등이나 사회 계급 갈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세르비아와 이중제국의 싸움이 전 유럽을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던 과거가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역시나 영국.
“국제 사회는 절대 군사적 개입을 해선 안 됩니다!”
“내정 간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치주의 원칙은 지켜져야만 합니다!”
옳은 소리. 언뜻 듣기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음, 이게 맞지.’라고 할법한 소리였으나 소련이 나서자 영국으로서는 할 말을 잃었다.
‘…하필 불러도 소련을.’
‘대놓고 빨갱이들의 지원을 받아? 혹시 고립되고 싶은 건가?’
더는 중립 표방에 다른 이들이 따라줄 것 같지 않자 영국은 나름대로의 수를 두었다.
‘둘 다 지원한다!’
‘누가 이기든 우리랑 틀어지지만 않으면 괜찮아!’
어차피 대영제국 입장에선 독재나 빨갱이나 둘 다 막장이긴 매한가지다.
그럴 바엔 합리적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반대로 겉으로 영국의 중립 표방에 따라주는 것 같던 프랑스는 소련의 개입에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오늘부로 난 좌파랑은 안녕이다.”
“멕시코도 공화파를 지원한답니다.”
“아직 병력 지원은 없지?”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도 병력 지원은 일단 미루고. 음, 압박 정도만 도와주자고.”
소련과 영국이 전쟁 물자 조달을 도와주고 있듯,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마치 예상한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물자 지원.
대신 뒤에서 몰래 양측에 조금씩 몰아주는 영국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와 함께 부담하는 프랑스는 통 크게 나가기로 했다.
군함 45척과 수송기 50대, 그리고 호위할 전투기 6대를 동원한 물자 지원.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처음부터 프랑코에게 올인을 외쳤다.
***
원래라면 나치-파시스트가 했을 법한 짓을 나와 무솔리니가 하고 있으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우리 둘에겐 아주 좋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반공.
즉, 소련 혐오다.
나야 오를레앙당 창설하며 본격적으로 극좌랑은 손절했으니 사이가 멀어졌고 무솔리니는 이념 자체가 그냥 반공이다.
정치적으로도 이리 빨갱이를 혐오하는데 공화파가 소련에게 지원을 외친 순간부터 선택은 끝났다.
“이탈리아 해군이 든든한 날도 오는군.”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투자를 많이 했으니까요.”
우리도 부랴부랴 초구축함 짓고 있지만 솔직히 말한다.
드레드노트만 판에 끼어주는 세상에서 프랑스 해군은 은퇴를 억지로 미룬 퇴물에 불과하다.
다행히 재정적으로는 괜찮은 상황이라 지원은 빵빵하게 해줄 수 있었다. 심지어 이탈리아와 반반 부담 중이라 더욱 괜찮은 상황.
그렇다고 장기전이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전 되면 골치 아파. 돈도 돈이고 전쟁 피로도가 너무 커.’
단기전을 선호하게 된 우리 프랑스군 입장에서 프랑코가 무한으로 물자를 빨아먹으면 좋게 보려야 볼 수가 없다.
이탈리아? 그쪽도 우리만큼 진심인 것 같다만 나와 달리 무솔리니는 준 만큼 본전 뽑으려고 할 거다.
그 과정에서 필시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우리 세 국가의 관계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가가야 한다.
셋 다 군국주의에 독재인 것은 둘째 치고 공통된 목적 자체가 없거든.
이탈리아는 그놈의 패권, 패권 거리고 있고 스페인은 국가 정상화부터가 최우선이다. 아마 자국 영토와 보유한 식민지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을 거다.
반면 우리 프랑스는… 아직 평화의 이미지를 벗어선 안 된다.
군국주의가 만연하고 점점 일당독재로 가고 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단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평화에 젖으면 안 되기에 언제나 그랬듯, 소극과 적극 사이의 줄타기가 참으로 중요하다.
즉, 명분이 아주 고프다고.
지금 내게 필요한 명분은 하나.
“제발, 제발. 공화파야, 소련 좀 더 크게 외쳐봐.”
“…군사적 개입을 생각하십니까?”
“그럼? 저것들끼리 한 4, 5년 치고 박게 놔둬? 깔끔히 정리해주고 빠지자고.”
“너무 과한 게 아닐까요?”
“아아, 그런 걱정 말아.”
내가 해줄 것은 딱 한 번, 막힌 변기 뚫어주는 게 전부일 테니까.
요즘 들어 우리가 평화를 외치니까 깝치는 애들이 많다던데.
이번 기회에 아직 우리가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홀로 저 내전을 정리해줘야 했다면 별로 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내겐 호구가 하나 있다.
그것도 자기 영향력 못 보여줘서 안달 난 호구가.
‘어서 너희의 패권을 보여줘!’
내전이 시작되고 1년.
스페인 공화당은 민병대에 불과한 군을 조직했고 심지어 본인들이 조직한 군대가 반란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온전한 소련 의존.
소련으로부터 모든 물자를 조달하고 탱크와 비행기, 그리고 군사 교관과 고문단이 국제 여단을 받아들였다.
국제 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 프랑코에 맞서기 위해 50여 개국으로부터 모여든 ‘자원병’ 부대.
어쨌든 실질적인 병력 지원이다.
곧바로 나도 저들의 여단 지원에 맞춰 병력 지원을 발표하였다.
“저희는 스페인 공화당이 수많은 국가를 끌어들여 전쟁을 확대, 확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저희 프랑스는 실질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
“그, 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원이라 하심은….”
“다만 지나친 개입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사단 하나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쪽도 여단이라면서 만 명이 넘는 사단급이던데.
우리도 비슷하게 가야 공평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