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골디바 (2)
봄달래의 조사에 따르면, 알렉시스 부부의 사이가 좋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게 금슬 좋은 부부가 범죄자라니.”
“그렇게 놀라운 조합은 아니야.”
노동교화소에는 10세 이하의 남자아이들만을 골라 눈알을 파서 피클을 담구다 잡힌 또라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 미친놈은 밤낮없이 어머니 걱정을 하는 효자이기도 했다.
사실 노동교화소에 잡혀가서 얼어뒈진 자식을 효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편 쪽은 뭐 하는 사람이야?”
“골디바 대학의 수학과 정교수라고 하던데.”
카이루스는 음? 하는 소리를 낸 다음 다시 한번 서류를 확인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젊잖아.”
이제 서른 초반 정도 된 사람이 대학의 정교수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어마어마하게 똑똑하거나, 아니면 뭔가 뒤에서 개수작을 부렸겠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경우에는 천재 쪽에 가까울걸. 알렉시스 가문에서 수학과 교수가 나올 리가 없잖아.”
“동감. 아마 데릴사위일 거야.”
카이루스와 일레나 모두 알렉시스 가문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기억이 있다. 기사나 장군, 치안대장이라면 몰라도 수학과 교수를 배출할 만한 가문은 아니다.
어떤 천재적인 일을 해내서 그 나이에 교수가 되었는지는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건 젊은 나이에 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될 정도면 싸움에는 재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납치하는 건 쉽겠네.”
집에서 노는 백수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출근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대학으로 향하는 길에 뒤통수를 때려서 기절시킬 수도 있고, 대학에서 식사할 때 약을 타 넣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카렌 알렉시스가 미친 척하고 남편을 포기하면?”
“그럼 협박한 내용을 실행하는 거지.”
일레나의 질문에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자고로, 협박의 완성은 실행에 있는 법이다. 협박은 어이없게도 상호신뢰가 굉장히 중요한 범죄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서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되고, 그럼 협박은 의미를 잃으니까.
“이건 기차 티켓이랑 위조신분증이다.”
“갑자기 삼남매가 되었네.”
노라의 말에 봄달래가 대답했다.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 세 명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노라 갈라테아 나이의 딸은 있을 수 없거든.”
그 대답을 들은 노라가 키들거리며 대답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아?”
가능하긴 할 거다. 문제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이 문제지. 그리고 루나시커인 노라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 방금 전 그녀의 질문은 그냥 봄달래를 당황시키려고 던진 거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마취제를 쓰는 건데.”
대학교는 어느 정도는 개방된 공간으로 쳐줄 수 있는 곳이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기억해야 할 의무도 없으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만히 듣고 있던 노라가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빙빙 감아올리며 말했다.
“오빠랑 언니는 납치 후를 생각해. 그 교수를 데려오는 건 내가 전담할 테니까.”
노라의 선언에 카이루스를 포함한 세 명의 시선이 노라에게 몰렸다.
“…그래, 우리가 골 싸매고 있는 것보다 네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편이 더 확실하겠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카이루스였다. 사람을 납치하거나 몰래 목 따는 일은 원래 루나시커 에이전시 전문분야고, 페더윙 가문인 이상 카이루스는 루나시커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
그 페더윙과 나란히 설 정도로 이름 높은 회사니까.
“믿어줘서 고마워, 눈물이 나려고 하네.”
사실상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카이루스였기에, 그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해라. 준비할 테니.”
봄달래 또한 빠르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납치 계획을 철회하고, 노라를 보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납치 후 이동 경로의 위협 요소 배제와 대상을 옮긴 후 경계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
“납치한 수학교수는 어디에 보관할 생각인데?”
카이루스의 질문에 봄달래가 대답했다.
“골디바 신민쉼터.”
“신민쉼터에 인질을 두자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라가 호기심을 보였다.
“신민쉼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어. 숙박 이용료는 물론이고, 모든 것들이 반 파인트 이하라던데.”
“돈 벌려고 지은 휴양 시설이 아니거든.”
일반적인 호텔과는 그 목적이 다른 휴양 시설이다. 귀족이 아닌 제국의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주기적으로 자기반성을 실시하며 생활한다.
이 과정에서 타의 귀감이 되는 생활을 한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범신민이라는 호칭이 붙는데, 신민쉼터는 그들이 사전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사실상 쓰지 못하는 곳이라는 거네.”
“어디까지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이지.”
황제는 자신의 충실한 신민들에게 이렇게 자비롭다. 그러니 너희도 이런 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하고 싶다면 항상 황제에게 충성하고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해라. 황제는 너희의 노고를 기억하고 포상한다.
“실제 이용객의 대다수는 귀족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와 명예를 쌓은 사람들 정도야.”
정말 신실하게 모범생활을 하면서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예약을 해봤자 1년에 한 번 정도 이용에 성공하면 운이 좋을 정도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왜 그런 곳에 인질을 숨기냐는 점이다.
“현재 시설 노후화로 인해 개축이 예정되어 있다. 꽤나 위험하다는 모양이야.”
봄달래가 해당 시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보고서를 몇 장 꺼내 보여주었다.
“아차 하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네.”
“인질이 여기에 들어가 있으면 대규모 전투는 불가능하고, 함부로 실력자를 보낼 수도 없지.”
싸우다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일개 수학자에 불과한 카렌의 남편은 생존이 장담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가 무너뜨려 버린다고 협박할 수도 있어.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으로도 충분히 붕괴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보고서의 판단이니까.”
인질을 일부러 위험한 곳에 두고,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밖에서 대기하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면 건물을 무너뜨려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거다.
“3년 전부터 이 상태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개축공사를 대기 중이라니.”
노라의 말에 카이루스가 피식 웃었다.
“신민쉼터는 돈이 나오는 구멍이 아니라, 돈을 쓰는 장소거든.”
이런 시설들의 개축 공사는 보통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면 더욱 좋다.
“위치 알아둬.”
“이미 기억했지롱.”
노라가 카이루스의 말에 대답한 다음 다시금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봄달래가 늘어놓은 자료를 살폈다.
“추천서가 한 장 필요할 것 같은데. 대단한 건 아니고 견학.”
“그런 걸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대답했다.
“멜빈 이스토반. 오빠는 같이 일했었잖아.”
아, 그 고고학자. 레잔틴 박물관에서 수장품 조사를 위해 일했으니까 그 실력은 확실하다.
“골디바 시 대학교에도 고고학 관련된 학과는 있을 거 아니야. 견학에 필요한 자격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멜빈과 함께했던 시간의 마무리가 영 개판은 아니었으니, 적절한 보수를 제안한다면 대학 견학에 필요한 서류 정도는 마련해 줄 것이다.
“들어간 다음에는 어쩌려고.”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일단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해.”
노라가 슥 윙크를 해보였다. 카이루스는 봄달래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장미정원에 보증을 받은 다음, 즉시 기차를 타고 골디바로 향한다. 멜빈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서류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줘.”
거기까지 카이루스가 전부 다 할 필요는 없다. 봄달래는 베넷 시에서 떠나지 않으니, 봄달래가 멜빈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것을 받아내면 된다.
“그러지.”
대화를 마무리 지은 다음,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미정원의 보증을 받았다.
이후 봄달래는 베넷 시에 남고, 나머지 세 명은 베넷에서 골디바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5일이나 타야 한다니.”
침대칸에 도착한 일레나는 곧장 침대에 털썩 앉아서는 어휴, 하는 소리를 냈다.
“급행이 아니니까.”
노라의 대학 견학에 필요한 서류를 확보한 봄달래는 그 서류를 급행기차를 통해 전달할 거다.
카이루스 일행이 탄 기차와 서류가 준비된 급행기차는 골디바에 도착하기 하루 전, 같은 역에 정차할 예정이다. 그때 필요한 서류를 받고 다시 골디바로 출발하면 된다.
“난 기차여행 좋은데. 세상에는 볼 것이 많아.”
노라 같은 경우에는 꽤나 신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로 기차를 타는 경험이니, 지루할 이유가 없다.
“그래, 좋을 때다.”
그런 노라의 반응을 보며 일레나가 한마디 하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뿌웨에엑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기차가 출발한다.
이번에는 네 명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침대칸을 사용했지만, 남은 한 자리는 사람을 시켜 표만 끊고 타지는 않게 했다.
“빵에서 신맛이 나.”
“호밀빵이라 그래. 참아.”
과도한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 평민들이 사용하는 침대칸을 이용했고, 그렇다는 말은 당연히 기차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식사의 종류도 제한된다는 뜻이다.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야. 아이란 공화국에서 파는 저렴한 빵 중에는 페인트를 섞은 것도 있었으니까.”
하얀 빵이 맛있다는 사람들의 상식을 기가 막힌 방식으로 활용한 거다. 톱밥이나 지푸라기 섞어넣는 정도는 제국에서도 있는 일이지만, 페인트를 섞어넣는 건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빵을 파는 놈들을 안 잡아가?”
“가격이 싼 건 이유가 있는 법이잖아. 수상할 정도로 저렴한 빵을 선택한 구매자에게 책임이 있는 거지.”
공화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제국 출신인 일레나와 카이루스에게는 다소 생소한 편이긴 하다.
“베넷 시에서도 그런 빵을 파는 사람들이 보이던데. 모르고 있었어?”
“나중에 꼭 알려줘라. 페인트를 먹고 싶지는 않으니.”
제국과 공화국 사이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기차는 계속 달린다.
며칠 뒤, 경유하는 역에 기차가 정차한 사이 카이루스는 이전에 요구했던 서류를 확보해 노라에게 넘겨주었다.
“단 걸 얼마나 퍼먹는 거야.”
서류를 건네준 다음, 카이루스는 기차칸에 굴러다니는 사탕봉지를 보며 노라에게 한마디 했다.
카이루스가 서류를 받으러 간 사이에 구매한 감초사탕 한 봉지를 다 먹어치운 거다.
“우리는 평상시에 단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교육받았어.”
실제로, 그렇게다 단 걸 퍼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라의 몸 상태는 멀쩡해보인다.
근육의 역수축과 360도 돌아가는 관절은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 루나시커 시술의 특징이지만, 실제로는 그것 말고도 몇 가지 시술이 더 있는 모양이다.
“단, 이걸로 필요한 준비는 끝났다. 내일 아침 즈음에는 골디바에 도착할 테니. 그 전까지 잘 쉬어두는 편이 좋아.”
“저 누나처럼?”
안대를 쓴 채 코를 골며 자는 일레나를 노라가 바라봤다.
“그래, 저 녀석처럼.”
공터에서 개고생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일레나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실제로 카이루스와 노라도 살짝만 졸음이 와도 곧장 눈을 감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으니까. 다음날 아침까지 기차에 탄 세 명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죽은 듯 잠과 식사를 반복하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