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기밀누수
쭉 걸어가면 자루 끝이 붉게 칠해진 빗자루가 쓰러져 있는 세 갈래의 통로가 나온다.
빗자루가 쓰러져 있는 방향의 통로로 간다.
쭉 나아가면 6개의 통로가 보인다. 그 중에 직경 5.52m의 통로로 향한다.
…그렇게, 자그마한 등불을 들고 있는 남자는 손에 쥔 쪽지의 지시에 따라 어둡고 냄새나는, 습한 지하통로를 나아갔다.
“빌어먹을, 언제 끝나는 거야.”
희미하게 쥐새끼들이 찍찍거리고, 빛을 싫어하는 온갖 불결한 버러지들이 기어다닌다.
어깨 위로 시커먼 곤충이 흉측하게 긴 더듬이를 휙휙 움직이며 내려앉고, 신발 속으로 스며든 실지렁이들이 퍽퍽 터지며 불쾌하고 불결한 감각을 주입한다.
“씨발… 씨발!”
바닥에 쌓인 채 썩어가는 오물들이 빚어낸 악취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 역겨운 지하통로를 몇 시간째 헤매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 있다.
가지 않으면, 이런 지하통로를 돌아다니는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장미정원이.”
장미정원이 이 남자의 뒤를 추격하는 중이다. 배신자를 찾아내 그에 어울리는 최후를 선사하려 한다.
이 바보 같은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름드리 전당포의 근거지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래도 이게 있으니.’
지하에서 어디로 향해야 아름드리 전당포의 근거지로 향하는지 알 수 있는 쪽지를 받았다.
이 쪽지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면 안전해질 수 있다.
그 믿음 하나로 이 남자는 이 썩은내 풍기는 지하도를 시궁쥐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도착하기만 하면.”
제아무리 장미정원이라 해도 도시 지하, 그것도 아름드리 전당포의 본진까지 쳐들어올 수는 없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발걸음과 호흡, 중얼거리는 혼잣말 같은 것들은 소리의 형태를 띄고 어둡고 좁은 지하통로에 희미하게 울려퍼진다.
초하루의 심야처럼 검은 실가닥이 그 진동에 맞춰 미세하게 떨린다.
머리카락의 단면에 100개의 실가닥을 올려놓아도 실가닥을 더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남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가닥이 미세하게 떨린다.
미세한 실의 떨림은, 이내 그 검은 실가닥들의 주인인 세실리아에게 전달되었다.
“찾았다.”
그 순간,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것처럼 지하통로를 향해 뻗어지던 실가닥들이 모조리 회수되었다.
칠흑 같은 실타래들이 서로 뒤엉켜 검은 칼날을 가진 단검으로 거듭난다.
세실리아는 허벅지에 숨겨놓은 칼집에 단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찰칵, 하고 단검이 칼집 안에 밀어넣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퍼진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세실리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으… 아아아아?!”
도망치던 남자는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쌓인 오물 위로 엎어졌다.
“내 발등, 발등이!”
남자는 황급히 고통이 느껴지는 왼쪽 발목을 살폈다. 신고 있던 안전화는 밑창과 발등 부분에 강철판이 덧대어져 있는 물건이었다.
“?!”
안전화의 가죽은 잘려나갔다. 하지만 철판은 멀쩡하다. 힘겹게 신발을 벗자, 양말과 함께 잘려나간 발가락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다.
“이게… 이게…?”
발가락뼈는 조금의 손상도 없이, 멀쩡히 몸에 붙어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살점뿐이다.
사실, 발가락뼈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다.
뼈에는 조금의 손상도 없지만 골수, 골막, 그리고 거기에 이어져 있는 혈관을 비롯해 뼛속을 가득 채운 부드럽고 연한 조직들은 예외 없이 뭔가에 의해 절단되었다.
“안녕?”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남자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굳혔다.
“대표… 대표님.”
“그냥 세실리아라고 불러. 나, 적에게까지 존칭을 바랄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이 아니거든.”
세실리아는 지금 그녀의 앞에서 오물에 몸을 처박고 버둥거리는 남자를 적이라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번복될 일이 없다.
“제가, 제가 설명 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변명할 기회를 주신다면!”
“부모님이 많이 아프셔? 아니면 외동아들 학비가 부족해? 사기를 당해서 큰돈을 잃었어?”
세실리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웃었다.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했어야지.”
어차피, 이제 와서는 다 의미 없는 가정이다. 남자 또한 설마하니 장미정원의 대표인 세실리아가 직접 자신을 찾으러 올 줄은 몰랐다.
그녀가 직접 움직이기로 한 순간부터 이 남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예 없었던 거다.
‘잘못 판단했어.’
설사 배신을 하더라도 그녀가 직접 움직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단순한 내부고발자 추격에 그녀가 직접 움직일 리가 없다. 장미정원에는 유능한 조직원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대단한 정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으아아아아!”
죽음을 확신하자, 도리어 용기가 난다. 이렇게 병신처럼 오물 위에서 휘적거리다가 벌레처럼 죽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지와 함께 남자는 자신이 가진 배틀기어의 출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세실리아에게 쇄도했다.
“저런.”
세실리아 입장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남자는 실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에게 검은 단검을 쥔 채 다가갔다. 그리고, 자랑하듯 손에 쥔 단검을 남자에게 보여준다.
“예쁘지? 밤가시라고 해. 아주 가느다란 실 수천 가닥으로 변할 수 있는 단검이야.”
천천히, 단검의 칼끝이 남자의 가슴팍으로 다가간다.
“제발… 제발… 죄송합니다.”
“내가 그냥 용서해주는 건 우리 조직원뿐이야. 알고 있을 텐데. 혹시, 교섭할 가치가 있는 뭔가가 있는지?”
세실리아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어.”
다시금 밤가시의 칼끝이 남자의 가슴을 노리고 나아간다.
남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방검복을 챙겨입고 있었다. 지금 단검이 나아가는 속도만 보면, 절대로 남자가 입은 방검복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밤가시의 칼끝은 남자의 방검복을 뚫고 피부를 파고들어 폐를 찌른다.
입으로 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바라봤다. 방검복은 뚫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궁금해? 안 알려줄 거야.”
세실리아가 밤가시로 폐를 찌른 깊이는 실로 절묘했다.
남자는 아주 오랜 시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폐에 고인 자신의 피로 괴로워 할 것이다.
일단, 세실리아는 남자가 소중하게 꼭 쥐고 있던 쪽지를 회수했다.
아름드리 전당포의 지부 중 하나로 향하는 쪽지다. 이미 해당 지부의 위치는 세실리아도 알고 있다.
“새로운 경로네.”
하지만, 근거지로 도달하는 경로는 이전까지 본 기억이 없다. 아름드리 전당포에서 새로운 경로를 또 찾아낸 모양이다.
이 도시 지하는 신기하게도 계속해서 새로운 경로가 발견되고 있다.
아름드리 전당포가 지하에 자리 잡은 지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아직도 모르던 경로가 발견될 정도라니.
“하긴, 이러니 길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하에서 조난당해 굶어죽는 거겠지.”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구는 장미정원도 몇 개 알고 있다. 세실리아는 바닥에 엎드려서 그르륵거리는 남자를 보며 웃었다.
“걱정 마, 당신 아직 안 죽어. 여기서 죽어버리면 내가 손해잖아.”
아무런 보상 없이 시간만 날아가는 꼴이다. 당연히 그렇게 끝낼 생각이 세실리아에게는 없다. 이 남자의 최후는 세실리아가 그로부터 본전을 충분히 뽑아낸 다음 찾아 올 거다.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는 남자를 커다란 마대자루 안에 던져넣은 다음, 세실리아는 출구로 향했다.
“대표님! 제가 들겠습니다.”
세실리아가 출구로 올라오자마자 조직원들이 마대자루를 짊어진 그녀를 보며 기겁한다.
“보내주기로 한 곳으로 보내줘.”
마대자루를 내려놓은 다음, 세실리아는 마대자루를 신발코로 툭 쳤다.
“네, 이상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차를 통해 이동 중인 그 고고학자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멜빈 이스토반. 정보가 흘러나갔다면 당연히 아름드리 전당포에서도 그를 확보하고 싶을 거다.
사실상 대피소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잡이다. 세실리아는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멜빈 이스트반이 탄 기관차를 정거장에 멈춰두고, 녀석 주변을 조직원들로 감싸버리자.”
세실리아의 입에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기관차를 멈춰버린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기관차가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서 운행 지연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멈추는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다.
“언제까지 멈춰둘까요?”
“카이루스가 멜빈 이스토반이 머무르는 역에 도착할 때까지.”
카이루스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고, 멜빈 이스토반의 생존은 그의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다.
적극적으로 지키려 들 것이다.
“저희 정체는….”
“멜빈 이스토반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하자.”
범죄조직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멜빈 이스토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세실리아는 그 점이 걱정이었다.
기겁하면서 도망치려고 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협조하지 않는 대상을 보호하는 것은 다양한 호위업무 중에서도 난이도 최악을 달린다.
“카이루스에게는 접촉해서 상황을 알려둬.”
“알겠습니다.”
세실리아의 지시는, 카이루스가 시미드 캘로그에게 수장고 목록에 대한 연락을 마친 후 베넷 시로 향하는 기차를 타자마자 전달되었다.
“…이거 무서워서 어디 살겠나.”
식사로 제공된 음식 중 식전빵 안에 쪽지가 들어있었다.
“와, 그건 또 뭐야? 너 지령 같은 것도 받나 봐?”
일레나가 곧바로 관심을 보인다. 그녀 앞에서 내용을 살펴봐도 괜찮은 건지 잠깐 고민했지만, 카이루스는 이내 쪽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장미정원이 일을 그렇게 대충 처리할 리가 없지.’
일레나가 봐도 상관없는 내용이니 지금 이 시간대에, 빵에 넣어서 전달한 것이다.
“그렇구만.”
쪽지를 확인한 다음, 카이루스는 그대로 식전빵과 함께 쪽지를 씹어 삼켰다.
“으엑, 종이를 그렇게 먹는 건 몸에 좋지 않다고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어.”
“좋네. 오래 산다고 즐거울 거 하나 없는 인생이니.”
어차피 잉크랑 종이 좀 먹는다고 해봤자 사낭에서 유해물질은 다 걸러진다.
“넌 이런 거 신경 쓸 시간 있으면 티슈에 집중하지 그래.”
카이루스의 말에 순간 일레나가 손에서 뚝, 하고 뼈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노력 중이거든?!”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 그저 재능이 없을 뿐이지.”
“개새끼….”
일레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입 안에 빵덩어리를 구겨넣고 으적으적 씹으며 카이루스를 노려본다.
마치, 그 빵이 카이루스의 살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꼭 씹어먹어. 체한다.”
하는 말은 조롱이 가득하지만, 카이루스는 나름 성실하게 일레나를 가르치는 중이다.
그와 동시에 다나 왓슨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깨달음 또한 매일같이 곱씹고 있다.
‘대단한 사람이긴 해.’
사과의 의미로 받게 된 짧은 가르침이었지만, 그 단순한 가르침만으로도 카이루스는 며칠 동안 생각을 이어 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멜빈 이스트반과 합류한 다음 이동이라.’
일레나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거다. 카이루스가 다나 왓슨으로부터 배운 것을 완전히 소화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탄 기관차가 경유하는 역 중 하나에서 멜빈 이스트반과 합류한 다음, 그를 보호하며 베넷 시로 향하는 것이다.
“그 샌님, 지금 상황을 알면 오줌이라도 지리는 게 아닐까 몰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혼자 떠들 거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카이루스는 잠깐 고민했다.
‘알아두는 편이 좋겠지.’
지금부터 카이루스가 하게 될 일은 캘로그 가문과는 관련이 전혀 없다. 일레나가 알게 되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다.
아마, 오히려 그녀의 손을 빌려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말해주마.”
“오호.”
카이루스가 순순히 상황을 말해준다고 하자, 일레나가 곧바로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