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13
113
귀사령이 봉화를 피워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봉화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귀사령이 두렵지 않다.
그들이 눈앞에 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그들을 모두 당적해 낸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한두 명은 상대할 수 있다. 또 굳이 상대할 필요가 있나? 몸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이라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는…… 그 뒤에 운벽슬이 있다. 저들이 자신을 찾고자 하는 게 아니라 운벽슬이 찾으라고 했을 게다.
운벽슬은 비비를 쥐고 있다.
피하지 못한다.
운벽슬이 하는 일이다. 그녀가 자신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귀사령주를 등지고 물러나와서 만수를 만난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산속에 틀어박혀서 도장의 극을 본 것만으로 만족한다.
서쪽에서, 동쪽에서…… 사방에서 봉화가 피어난다. 그리고 봉화는 점점 자신이 있는 곳으로 향해진다.
‘그래, 와라. 와!’
그는 한 달 동안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동굴에 일별을 던졌다.
그러잖아도 떠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소협!”
“소협, 반갑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에워쌌다.
해과월은 낯선 사람들을 곤혹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일단의 무리는 삼십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무인이 아니다. 진기를 수련한 흔적도 없고, 무공으로 단련된 몸도 아니다. 하지만 체격들이 건장하고, 몸이 온통 근육질이다.
“소협, 여쭐 말씀이 있어서 찾아 헤맸습니다.”
얼핏 봐도 쉰이 넘어 보이는 중년인이 상전을 대하듯 최대한 공경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해과월은 말을 하면서 중년인의 전신을 훑었다.
무공을 수련한 자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온 몸이 근육으로 다져져 있다. 아주 힘든 일, 험한 일을 해온 듯하다. 더군다나 그의 두 손을 온통 굳은 살 투성이다.
장인! 도공들이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퍼뜩 스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흰 만수 어르신의……”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중년인이 말했다.
“소협이 그렇게 떠나신 후…… 온 산을 다 뒤졌습니다. 마을로 향하는 길을 모두 뒤졌죠. 산 아래 마을에서는 본 사람이 없다고 해서, 산 뒤쪽으로 뒤져나갔습니다. 소협께서 만수 어르신을 만나신 후, 한 잠도 자지 않고 헤맸습니다.”
중년인의 얼굴은 간절함이 가득했다.
이 심정, 해과월도 안다.
배우는 자는 땅에 그려진 문양 하나도 심상치 않게 보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가르침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하물며 최고의 장인을 만난 사람이 있다.
비오신장도 천수장도 만수를 만나지 못했다. 헌데 낯선 젊은이가 만났다.
그들이 횃불을 들고 길을 밝혀준 것은 그 후의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만수 어르신이 무슨 말을 하던가? 무엇을 얻었는가? 어둠 속에 길이 있기는 한 건가?
“소협……”
해과월은 손을 들어서 계속 말을 이으려는 중년인을 제지했다.
“배운 게 있습니다.”
중년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마치 꺼져가던 생명이 회광반조(回光返照)를 일으키듯이 울상이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배운 것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해과월이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이들은 만수 해달막의 후인들이다. 해달막을 믿고, 그와 뜻을 함께 한다. 지금도 낮에는 잠자고 밤에는 일을 하는 올빼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은 만수의 유전(遺傳)을 볼 자격이 있다.
해과월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보여드리죠. 한 분 빠짐없이 모두 모여 주십시오.”
나타난 사람들이 귀사령이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장인이라는 점에서 아주 홀가분했다.
만수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무인이 아니라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삼십 명은 곧 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 전부가 뛰쳐나온 모양이다.
“어르신은?”
“마을에 계십니다. 내려오시지 않으시겠다고 해서……”
중년인이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그가 노파를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듯하다.
마을 사람들이 한 달이 넘도록 온 산을 뒤진 것도 그가 선동했기 때문일 게다.
그런 점을 탓할 생각은 없다.
자신이 반대 입장이라면 이보다 더한 짓이라도 한다.
“다 모이신 겁니까?”
“네. 다 모였습니다.”
그들은 둥근 원을 그리며 앉았다.
날은 어두워 야밤이다. 하지만 그들은 낮밤을 바꿔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둠이 전혀 낯설지 않다.
“불을 피우겠습니다.”
중년인이 쌓아놓은 나뭇단에 불을 놓았다.
화악!
기름 먹인 나뭇단에서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이들은 어둠을 꿰뚫어볼 수 있다. 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이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지금 해과월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장인의 정수다. 하나라도, 손짓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중년인은 온갖 것을 다 가져왔다.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작은 화로에서부터, 철광석, 망치, 하다못해 담금질할 때 쓰는 물통까지 짊어지고 왔다.
마을을 떠날 때의 각오가 한 눈에 읽힌다.
해과월은 이 모든 것들을 물리쳤다.
“만수 어르신이 남긴 것을 보여드리는데 이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한 모습, 한 모습만 보시면 됩니다.”
그가 한 말은 모든 장인들에게 전달되었다.
한 모습!
그들은 그 한 모습이 무엇인지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시전합니다.”
그가 나뭇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풀었다.
“컥!”
그는 격하게 숨을 토해내면서 진기를 골랐다.
나뭇가지를 들고, 풀고…… 이것이 전부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뭘 했냐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헌데,
“아아…… 아……”
한 사람이 털썩 무릎을 꿇더니 격정에 휘감겼다.
“헉! 어헝!”
또 한 사람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사내답지 않게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익!”
중년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어둠을 꿰뚫어 보면서.
백여 명 중에 세 사람은 만수의 유전을 봤다.
‘이들이!’
오히려 놀란 사람은 해과월이다.
그는 아무도 이런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육양삼성을 수련한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니다. 육양삼성이 아니다.
청천맹에서 우연히 얻은 생사현관 타통!
그것을 이룬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은 알아봤다. 무공도 수련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들은 무인의 눈이 아니라 장인의 눈으로 만수의 모습을 봤고, 깨달았다.
‘이들이…… 이 정도였구나! 이 사람들, 이대로 버려서는 안 돼……’
해과월은 만수를 봤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4
무림에 폭풍전야의 고요가 흘렀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온하다. 너무 평온해서 바람 한 점 없는 바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표면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속삭임이 늘어간다.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수없이 눈에 띈다. 밀서를 받고 눈에서 불길을 토해내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무림에 거미줄이 쳐지고 있다.
한 곳에서 시작된 거미줄은 사방팔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곧 무림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거미줄이 쳐졌다.
그 줄에 역인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거미줄에 엮이지 않은 사람들도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도는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자신의 주위에 살기가 드리워진다.
편하게 마음속을 털어놓던 사형제가 무언가 숨기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기분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아미타불! 남의 밥을 얻어먹고 사는 중들이 어찌 이리 태만한가. 할 일 다 하고, 볼 일 다 보고…… 그리고 언제 수도를 하겠다는 말인가. 너희가 정녕 시주를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소림사(少林寺) 방장(方丈) 혜명(慧明) 대사(大師)가 일갈을 터트렸다.
시주를 받아먹고 사는 승려들이 불도에 정진하지 않는다며 매우 노여워했다. 불장을 내리치면서 노기를 터트렸다.
“용맹정진(勇猛挺進)을 할 것이다. 앞으로 백일동안 용맹정진을 할 터, 사문을 걸어 잠가라!”
혜명대사는 급기야 일시 봉문(封門)까지 선포했다.
징계성 용맹정진이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사문이 웬만큼 타락하지 않는 이상 이런 조처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럼 소림사가 그 정도로 타락했는가.
소림사 방장은 무림이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다. 무림에 쳐진 거미줄을 보지 못할 리 없다는 소리다.
소림사에도 거미줄이 드리워졌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슬그머니 기어들더니 소림승 중에서 거의 삼 할에 가까운 승려들을 꽁꽁 옭아 묶었다.
혜명대사는 용맹정진에 혜자(慧字) 배(輩) 승려 삼십여 명, 정자(丁字) 배(輩) 승려 오십여 명을 모두 포함시켰다. 더불어서 방장 자신도 용맹정진에 동참했다.
소림사에서 중진 이상으로 거론되는 승려들이 모두 포함된다.
소림사만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다.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들 대문을 걸어 잠그기에 부심했다.
영원한 봉문도 아니요, 폐문도 아니다. 무림에 적을 두면서 일시적으로…… 아니, 일시적인 봉문도 불가하다. 문밖을 나서지 않으면서 무림을 지켜볼 수 있는 현묘한 계책이 필요하다.
무림은 고요한 가운데 분주했다.
“관과 군에서 협조를 해왔습니다.”
무산 동호 태화관 지객실을 맡고 있는 문상이 말했다.
“호호호! 당연한 일.”
당연한 일이 아니다. 천문성 사마소가 청천맹 군사다. 많은 사람들이 그쪽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이쪽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문상이 발 벗고 뛰었다는 소리다.
운벽슬은 문상의 노고를 알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관군이 협조를 해온다면 좋지. 관도는 장악한 셈인가?”
“천문성의 발목을 차단한 셈입니다.”
“건방진 소리!”
“죄송합니다.”
“풋!”
운벽슬은 싸늘하게 웃었다.
관병이 관도를 장악하면 무인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발목을 차단하게 된다. 하지만 천문성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낼 게다.
사마소가 수학한 적산파는 무림과 인연이 깊다.
대문파는 물론이고 군소문파까지도 그들 손에 장악되어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각 문파에서 두뇌로 활용하는 참모, 군사라는 자들이 거의 대부분 적산파에서 수학했기 때문이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역시 무력이다.
적산파에는 힘이 있고, 옥천서원에는 머리가 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말이 있듯이 적산파 사람들이 눈 딱 감고 무력을 휘두르는 것, 그것이 제일 짜증난다.
무력으로 옥천서원 출신들을 암살 할 때는?
운벽슬은 그 점을 가장 경계한다. 사마소가 이를 악물고 검을 뽑는다면 많은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적산파보다는 아무래도 무림에 적을 두지 않은 옥천서원 학자들이 더 많이 다칠 것이다.
사마소도 그 점을 알고 잇다. 또 그 점이 바로 그의 힘이다. 사마소가 운벽슬을 견제하는 도구다.
까불지 마라. 너희 옥천서원 유생들…… 한 칼에 날려버릴 수 있다.
막말로 말하면 이런 식의 협박까지도 가능하다.
사마소가 궁지에 몰리면 틀림없이 이 수를 꺼내들 게다. 그 전에……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어쨌든 관부가 움직인다.
중원 무림의 모든 관도가 통행 제한된다. 이동하는 사람은 모두 검문검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상하다 싶은 사람은 관부에 끌려가서 특별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 속에 무인들도 포함된다.
원래 무림과 관부는 바다와 강물러럼 서로 침범하지 않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관부가 관도를 점거하면 무림은 자숙하는 게 관례였다. 관에 특별한 일이 생겨서 관도를 장악하는데 그 일을 끼어들면 시비가 일어나지 않겠나.
이런 일은 종종 있어왔고, 그럴 때만다 무림은 암묵적으로 예의를 지켜주었다.
관부와 무림이 충돌하면 전쟁이 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