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24
523화 생사첩(生死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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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후가 여포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여포 역시 가후에 대해 알았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면 여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전장에서 피칠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가후의 장기는 귀계가 아닌가. 뭔가 어마어마한 일을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후의 귀계를 들을 수 있었다.
“장군, 조 대인, 단목 대인.”
가후는 여포, 조충, 단목영을 차례로 불렀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말을 이었다.
“만드시지요, 생사첩(살생부)!”
가후의 말에 세 사람은 눈을 부릅떴다.
그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조충이었다. 자신은 그저 여포에게 명문회와 교섭할 필요성을 역설하려던 것 뿐이었다.
동탁이 언제까지 여포와 긴밀하게 도움을 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권력의 특수성을 잘 아는 조충에게는 동탁이 마음을 돌렸을 때의 후폭풍이 걱정되었다.
왕도파라는 자들이야 하 태후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자들이 아닌가. 동탁과 하 태후가 연수를 맺고 있는 이상 여포는 명문회라는 보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포의 군사 가후는 자신보다 한 수 너머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사첩······. 생사첩이라니······!”
조충은 가후에게 두 손을 모아 들며 말을 이었다.
“노부 역시 궁에서 일 평생을 살며 온갖 음모와 술수를 당하고 또 행했었소. 온갖 귀계에 두루 능통하다 생각했지만 이토록 큰 규모의 귀계라니······. 실로 탄복, 또 탄복했소이다. 경의를 표하오.”
“당치도 않습니다. 조 대인께서 차리신 밥상에 젓가락을 올려놓은 것 뿐이지요.”
가후는 공을 조충에게 돌리고는 단목영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생사첩을 만들자면 단목 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게도 할 일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래, 뭘 도와드리리까?”
단목영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가후는 백우선으로 부채질을 두어 번 했다. 깃털로 만든 부채를 흔들어봐야 몸의 열을 식힐 만큼의 바람이 날 리 없었다.
이는 잠깐 동안 시간을 끄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은 단목영에게 암시를 주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질 자신의 말이 어쩌면 단목영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는 얘기라는 의미랄까?
“영보 상단이 조정과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명절마다 찔러주는 뇌물의 액수, 그리고 받은 자들의 명단.”
“그걸 왜······?”
“하동 호족들에게서 얻은 장부와 비교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으레 인사치레로 주는 것과 이권이 오가는 뇌물의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지요.”
* * *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여포가 끼어들었다.
“나도 내가 털어서 티끌 하나 안 나올 깨끗한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소. 하지만 가 선생, 다른 사람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건 아무래도 나와는 맞지 않소.”
“그러면 다 쓸어버리시겠습니까? 칼자루를 동 상국에게 쥐어주겠느냐 이 말입니다.”
“굳이 나쁠 거 없잖소?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니까.”
여포는 동탁이 구태를 척결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맡긴다면 조정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충이 여포에게 물었다.
“여 장군이 기대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충은 대답에 앞서 죽간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이 죽간에는 의외의 이름이 있소. 누굴까?”
“설마 동 상국이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얘기는 아니시겠지요?”
“직접은 아니지.”
조충의 대답에 여포는 그의 손에서 죽간을 낚아채 펼쳐들었다. 그의 눈이 죽간을 위아래로 계속해서 훑어댔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동민? 동 상국의 동생이······?”
죽간에 분명히 쓰여 있는 이름. 바로 동탁의 동생, 동민의 이름이었다.
“동민 뿐이겠소? 영채에서 소실된 장부에는 어쩌면 더한 이름도 숨겨져 있을 수 있소.”
“우선 동민만해도 충격입니다. 과연 동 상국에게 이를 알린다고 해도 설마 동생을 벌할지 모르겠군요.”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고, 피는 물보다 진하지. 어떻소? 지금도 칼자루를 동탁에게 쥐어주면 그가 제대로 칼을 휘두를 거라 여기오?
이에 여포는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이 큽니다. 동 상국은 나라를 경략할 그릇이라 여겼는데 집안 단속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장군이 천하를 얻으면 다를 것 같소? 사람은 결국 다 똑같지. 권력에는 선악이 없소. 욕망은 다들 가지고 있지. 다만 다른 것은 이를 실현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오.”
조충은 속내를 다 까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후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조 대인, 만약 동 상국은 이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칩시다. 혹시 동민이 배신할 가능성도 있겠군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요.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 음모와 술수가 빠질 리 없소. 동탁이 만약 동생 동민을 벌하려 한다면 아무리 형제 간이라고 해도 동민이 앉아서 칼을 받지는 않을 테지.”
단목영이 거들고 나섰다.
“하 대장군의 일을 생각한다면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하묘를 보십시오. 비록 아비는 다르나 한 배에서 태어났음에도 하 대장군과는 척을 졌고, 탁류의 편에 서기까지 했습니다.”
여기까지 얘기가 나오자 가후가 생사첩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생사첩을 만들어 취해야 할 자와 버려야 할 자를 나누는 겁니다. 다만 동 상국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함구하는 걸로 하시지요. 괜히 벌집을 건들어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러자 조충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가후를 바라보았다.
“혹 동탁이 자멸하길 바라는 게 아니고?”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한 동안은 여 장군을 도와줄 세력으로 남아있을 필요는 있다 봅니다.”
“개혁가의 말로는 실로 비참하기가 이를 데가 없지. 고금의 역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소. 동생이나 자식의 칼에 죽는다면 그것도 나름 그림이 나쁘지 않소.”
가후와 조충의 대화를 들으며 여포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조충의 말을 마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권력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으며 한 평생을 보낸 자의 생생한 증언이며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후도, 조충도 놓치고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 * *
세상 모든 일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다. 모든 결과에는 그 원인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개혁가의 말로는 비참하다. 하지만 왜 비참해지는가. 비참하게 만드는 검은 손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이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 자가 개혁가를 비참하게 몰락시켜버리니까.
당금에 있어서도 그 역할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었다.
패국 초현. 조조의 고향.
조조는 원소에게 대패하고 장막에게 의탁했었다. 하지만 장막과 힘을 합쳐도 진류를 지키지 못했다. 장막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진궁이 있는 하남윤 중모현으로 몸을 피했다.
조조는 패잔병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부 조등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천하의 부귀영화를 누려온 그였으나 세월의 흐름을 비켜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은 세월의 풍상에 늙고 병들었다. 이제 정말 조등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만! 아만!”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조등이 눈을 뜨자마자 조조를 찾았다. 조조는 조등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할아버지, 소손 조 아만이 여기 있습니다.”
“조 아만아, 네가 원소와 싸워 대패를 했다지?”
“면목 없습니다.”
“당금 천하에 관동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와중에도 조등은 조조의 일을 걱정했다.
“소손의 생각대로 일이 맞아떨어지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재기해서 다시 원소와 자웅을 겨루겠습니다. 그 때는 반드시 설욕을······.”
“군력이 강한 자와 싸울 때에는 정면으로 승부를 걸지 말라하지 않았더냐? 네 어찌 내 가르침을 번번이 어겨 내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시킨 일은 어찌 되었느냐? 경사의 일 말이다.”
조등이 묻자 조조의 표정이 밝아졌다. 원소에게는 졌으나 조등의 명은 완수했기 때문이다.
“이미 동탁의 사람들과 친교를 쌓아두었습니다.”
“경사의 그 가짜 방사는 만나보았고?”
“신병을 확보해두었습니다.”
조조의 답을 듣자 조등은 애써 그의 손을 굳게 붙잡았다. 잠깐 숨을 헐떡이던 조등은 간신히 다시 말문을 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 저승에 가기 전에 네게 세 가지 보물을 선물로 준비해두었는데 그 가짜 방사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과 쌍을 이루는 것이니 중히 아끼도록 해라.”
“세 가지 보물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조 아만아, 역시 너는 내 손자로다.”
조등은 조조가 대견하게 여겨졌다. 조등은 비록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조조의 할아버지가 아닌가. 그런 그의 임종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실상은 조조 자신이 취하게 될 것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학을 배운 자라면 조조의 행실을 두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하지만 조등의 입장에선 달랐다. 자신이 조조에게 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가르쳤으니까.
“여봐라! 내가 준비하라 명한 것들을 가져오너라!”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조등의 목소리에는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등의 수하들이 몇 개의 상자를 가져와 조조 앞에 내려다 놓았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아만, 너를 위해 준비해둔 것이다. 위로는 한실의 자손들부터, 아래로는 미관말직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받아먹은 뇌물에 관한 비밀이 기록된 장부들이다.”
“이걸 어찌 소손에게 주십니까?”
“그들의 목줄을 틀어쥐면 경사의 주인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조등은 한동안 거친 호흡을 거듭하다가 간신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 할애비는 병법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지. 최고의 병법은 적들이 서로 싸워 상잔하게 만드는 것, 적들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지.”
조등의 말에 조조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설마 동탁을······?”
“그래, 아만아! 내 이제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구나. 북망산에 내 묘를 쓰되, 다른 곳에 가묘를 써서 남들이 내 무덤을 찾지 못하게 하라.”
조등은 그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수십여 년 동안 천하를 암중에서 지배했던 절대자. 하늘은 그에게 죽는 순간까지도 복을 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정신 차리십시오. 이리 가시면 안 됩니다. 아직 소손은 할아버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조조가 조등의 시신을 연신 흔들었다. 하지만 반응을 보일 리 없다.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이 어찌 다시 움직일 수 있겠는가.
조조의 아비, 조숭은 조조를 말렸다.
“그만하거라. 그 쯤 하면 되었다. 지금은 눈물은 보이지 말고. 조문이 시작되면 네 몸에 피까지 몽땅 마를 정도로 눈물을 쏟아야 하니까.”
피가 이어지지 않았으나 조숭 역시 조등처럼 비정했다. 하기야 그는 조숭의 양자가 아닌가. 친아비가 죽은 것도 아니니 슬플 리 없었다.
조조 역시 마찬가지. 다만 더 이상 조등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으니 아쉬울 뿐이었다.
조조는 조등의 수하들에게 명했다.
“너희는 즉시 조부의 시신을 염한 후에 북망산으로 모셔라.”
그러자 조등의 수하들은 조조를 향해 오체복지 했다. 이제부터는 조조가 자신들의 주인이니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조등의 시체가 치워지고, 조조는 그가 남긴 장부를 살펴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조숭은 조조를 힐긋 보고는 넌지시 한 마디를 던졌다.
“아만아, 너는 어르신이 세 가지 보물을 선물로 남긴다하셨는데 하나 밖에 얻지 못했다. 나머지 두 개가 뭔지 아느냐?”
분명 양자이건만 조숭은 조등을 ‘어르신’이라 부르며 확실히 선을 긋고 있었다. 조조가 자신의 아들이라지만 조등이 조조에게 남긴 선물에 대해서는 탐내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된 말이기도 했다.
“하나는 알겠으나, 나머지 하나는 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