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83
(83)
안 그래도 자신에게 가르쳐 줬던 것과 달라 의심하고 있던 차에 자릴 비켜달라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만약 유니콘 클리닉에서 연수받고 있을 때라면 자릴 비켜 줬겠지만 여긴 자신이 과장으로 있는 병원이었다. 조금 뻔뻔스러워도 되는 것이다.
“아닙니다. 스미스 교수님이 제 환자를 치료해 주기 위해 여기까지 오셨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가 있겠습니까?”
“닥터 성의 업무까지 방해할 생각은 없는데…….”
“제 스케줄은 이미 조절했으니 이리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뭐 스케줄 조절까지 했다면야.”
스미스 교수가 다시 치료에 집중하자 성병욱 교수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스미스 교수는 대략 한 시간 정도 환자를 치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호자는 스미스 교수가 얼마나 정성을 들여 자신의 딸을 치료하는지 봤기 때문인지 연신 허릴 굽실거리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닥터 성, 이 환자는 제가 당분간 치료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싶은데 그래도 됩니까?”
“당연히 되죠.”
“그럼 내일 오늘과 비슷한 시간에 오겠습니다.”
“아, 네. 제가 내일은…… 아닙니다. 내일 오늘과 비슷한 시간에 오십시오.”
성병욱 교수는 내일 휴무지만 다른 교수와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내일 출근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치료를 마치고 나와서 조금 걷고 있던 중에 성병욱 교수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스미스 교수님, 오늘 임혜리 환자를 치료하는 걸 보니 그 기법이 예전에 저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근골격을 교정하고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는 것 위주였는데 오늘은 신경이나 림프절을 마치 마사지하듯 만졌었다.
스미스 교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되나 잠시 고민했다.
‘닥터 리에게 오늘 새벽에 배운 것을 환자에게 적용시켜 봤다고 하면…… 탐탁지 않게 여기겠지.’
이민호의 실력이 뛰어난 것을 자신은 알지만, 성병욱 교수는 고작 다른 병원의 레지던트 일 년 차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냥 내가 그동안 연구해서 발전한 것이라고 둘러대야겠군.’
“아! 닥터 성도 아시다시피 카이로프랙틱 기술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계속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몇 년 전과는 많이 다른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럼 지금 연수받는 의사들에게도 조금 전과 같은 기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겁니까?”
“아니요. 아직 연수생들에겐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닥터 성의 시간을 많이 뺏은 듯한데……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니, 벌써 가시려고요. 병원 근처에 생선구이 잘하는 집이 있는데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아닙니다. 제가 오늘은 갈 곳이 있어서 식사는 다음에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스미스 교수가 바삐 사라지자 성병욱 교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 교수님, 성병욱 교수님!”
그때 임혜리 환자의 보호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자신을 찾았다.
“네, 혜리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혜, 혜리의, 혜리의 어눌한 발음이 엄청 많이 좋아졌어요!”
“네? 혜리의 발음이 좋아졌다고요?”
순간 성병욱 교수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보름간 호전 반응이 멈춰 버렸던 환자인데 고작 스미스 교수에게 한 번 치료를 받았다고 갑자기 저리 호들갑을 떨 정도로 발음이 좋아졌다니?
* * *
“허어! 도통 믿기지가 않는군!”
스미스 교수는 성병욱 교수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민호에게 배운 대로 치료하긴 했지만 치료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니 과연 호전 반응이 멈춘 지 보름이나 지난 환자의 호전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미심쩍어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폭발적인 호전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이 반응이 일회성일까 아니면 다음에 치료했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날까?
기대와 염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이민호가 치료법을 가르쳐주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치료술은 기공치료술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치료술이에요. 물론 대체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기존 치료법보단 월등히 나을 거예요.]문득 이민호가 자신이 봤을 때는 도저히 교정할 수 없을 것 같았던 S자형 척추측만증을 고작 한 달 만에 정상에 가깝게 교정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거기에는 아직 자신이 모르는 진짜 기공치료술이 사용되었으리라.
절로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대단한 사람에게 치료술을 배우고 있는지 깨달아졌다.
‘어쩌면 펑이첸 노사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군!’
* * *
‘어? 최덕준 치프하고 도일호 교수님이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저리 심각하게 하고 있는 거지?’
최덕준 치프는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고 도일호 교수는 뭔가를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이민호가 그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신희철이 고개를 돌려 봤다가 살짝 혀를 찼다.
“쯧! 보아하니 도 교수님의 구애 대상이 이번엔 최 선생으로 바뀌었나 보군.”
“구애 대상이요?”
“다음 달 초에 전문의 시험 있잖아.”
“그렇지요. 신 선생님도 이번에 GS(외과) 전문의 시험 보시잖아요.”
신희철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만 가지고 있기에 외상외과 전문의를 하기 위해서는 외과 전문의 시험을 올해 통과해야 했다.
“크윽! 시험 볼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진다.”
“입맛 없는 사람치고는 너무 잘 드시는 것 아니에요?”
“내가 먹는 양은 네가 먹는 양의 절반도 안 돼.”
“…….”
“뭐, 아무튼 밥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몇 년째 도 교수님이 담당하고 있는 소아외과 전문의 시험을 본 펠로우가 없다는 것 알고 있지?”
외과는 위장관, 간담췌, 유방, 소아, 외상 등의 세부분과로 나뉘는데 전문의가 세부분과 전임의 2년을 거친 후 세부분과 시험을 치러 합격을 하면 세부분과 전문의가 될 수 있었다.
“네. 아! 그래서 지금 도 교수님이 최 선생님에게 소아외과 전임의로 오라고 구애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지. 도 교수님 정년퇴직이 몇 년 안 남은 상태인데 후임이 없으니 저리 애를 태우고 계시는 거야.”
“만약 계속 지원자가 없으면 소아외과가 없어질 수도 있겠네요.”
“지방 병원들 소아외과는 거의 다 없어졌으니 그 추세가 서울까지 이어진다고 봐야지. 전국에 있는 소아외과 의사가 40명도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라는 우리 병원의 소아외과도 없어질 위기에 놓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지원자가 없으면 결국 없어지는 거지. 사실 우리 과도 극악이라고 하지만 소아외과보단 낫잖아.”
신희철이 피식 웃자 이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고소, 고발에 조금이나마 덜 시달린다는 정도가 그나마 나은 거라 할 수 있었다.
“의료수가 때문에 GS 선생님들이 소아외과를 기피하는 거예요?”
“의료수가도 형편없지만, 그보다 더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보호자들이 아이가 죽은 책임을 소아외과 의사에게서 찾기 때문이지.”
“다른 과도 고소, 고발에 시달리는 건 비슷하지 않아요?”
“비슷한데 그래도 중간에 취하하는 경우가 많거든. 하지만 소아외과 쪽 보호자들은 대부분 끝까지 가.”
“아이가 죽으면 그만큼 마음이 아프기 때문일 텐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착잡하네요. 살려 보려고 수술해 준 의사에게 책임을 묻다니.”
“얼마 전에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목에 탯줄을 감고 있다가 배 속에서 죽은 케이스 있잖아. 그 아이의 보호자도 담당 의사를 고소했다고 하더라.”
순간 이민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는데 담당의를 고소했다고요?”
“아이가 뱃속에서 목에 탯줄을 감고 있는 것은 흔한 케이스잖아.”
거의 네 명 중 한 명 꼴이다.
“그렇지요.”
“담당의는 흔한 케이스라 목에 탯줄을 감고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 부모는 아이가 뱃속에서 죽고 나자 탯줄이 아이의 목을 조르기 전에 제왕절개수술로 출산을 했다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 태아가 코로 숨쉬는 것도 아니고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데 목 졸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에요? 혹시 탯줄이 꼬여서 통로가 막힌 것 아니에요?”
“맞아, 사산해서 보니 탯줄이 지저분하게 꼬인 상태로 막혀 아이에게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끊어져 죽은 케이스였어.”
“탯줄 꼬인 것은 초음파로 봐도 알기 힘든데…….”
“의사가 그런 설명을 해 줬는데도 부모는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묻겠다며 검찰에 고소했어.”
“책임질 일이 없는데 무슨 책임을 묻겠다는 건지? 답답하네요.”
“우리가 이 정도로 답답한데 담당 의사는 얼마나 답답하겠냐? 하지만 아무리 답답해도 검찰이 부르면 가서 조사를 받고 와야 하지. 요즘은 지방의 산부인과도 차츰 없어지는 추세이니 한 십 년 후면 산모들이 애 낳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야 할 거다.”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요?”
“소아외과는 뭐 지금처럼 폐지 위기에 놓일 줄 알았겠냐? 지금 같은 추세로 수십 년 후쯤 소아외과 산부인과 다 사라지고 나면…… 에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선생님 말대로라면 수십 년 후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그리고 심지어 저희 과도 사라지겠네요.”
“어쩌면 그리 될지도 모르지.”
“설마 그렇게까지 되려고요.”
“국가와 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들에게만 지원금을 주고 있는 건 알지?”
“네.”
“그것 때문에 형평성이 어긋난다며 다른 과에서 말들이 많아.”
“아니,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릴 한단 말이에요?”
“자기들도 고생한다 이거지. 어쨌든 이런 말들이 많아지면 결국 지원금이 사라질 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지원금보고 외과 계열을 택하던 사람들도 사라질 거고. 근본적으로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외과들은 결국 사라질 거야.”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외과가 사라지면 자신들이 아팠을 때 수술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걸 아는데 사라지게 놔두겠어요?”
“사라지게 놔두고 있잖아.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방의 소아외과 거의 다 사라졌는데도 뉴스 한 줄 나오는 거 봤냐?”
“못 봤어요.”
“정치인이 시장 가서 떡볶이 사 먹는 거나 연예인이 결혼하는 건 뉴스에서 대서특필해도 소아외과 사라지고 있는 건 안 나와.”
“신 선생님 말을 듣다 보니 심각하단 생각이 들긴 하네요.”
이민호는 고개를 돌려 도일호 교수 쪽을 다시 바라봤다.
최덕준 치프가 죄송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 후 자리를 뜨고 있었고, 도일호 교수는 긴 한숨을 내쉬며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정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 소외받는 세태는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여전하구나!’
* * *
“치료하고 있는 환자는 좀 어때요?”
땀을 뻘뻘 흘리며 오금희를 수련하고 있던 스미스 교수는 이민호의 질문을 듣고 약간 들뜬 표정을 지었다.
“첫날 급격한 호전 반응이 나타난 걸 보고 혹여 일회성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염려도 했는데 놀랍게도 꾸준히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오 일째 치료한 건가요?”
“네. 아직은 발음이 약간 어눌하긴 하지만 이제는 타인과 대화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됐고 손으로 동전 집는 것도 제법 잘합니다.”
스미스 교수는 이민호가 가르쳐 준 치료법의 효과가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기에 마음이 한껏 고무되어있었다. 만약 펑이첸 노사를 찾아갔다면 이런 치료술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