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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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저렇게 덥석 물어?’
리엘라는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제 생각대로 네멘테스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시작부터 이렇게 미끼를 잘 물어 버릴 줄이야?
네멘테스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돈의 무지막지함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크레이튼 씨가 돈 쓰고 오라고 했고.
‘아니, 이러면 내가 돈을 쓸 수 없잖아?’
남들이 들으면 그런 고민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땅을 칠법한 고민을 하며 리엘라는 무대 위 진열대에 놓여 있는 12세트의 보석을 보았다.
저 세트들이 테이블을 돌 때 카르디아의 보석술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보석들을 살폈다.
사라진 것은 에르첼라의 브로치였지만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알알이 흩어져 돌아온 보석들이다. 무엇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구분해야 했고. 그들이 살펴보는 사이 하운은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리엘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다음 걸고 있던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더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이번에 잘하면 카르디아 돌아가서도 걸고 있을게.”
물론 레티시아 왕비의 허락을 받아야겠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건 에르첼라의 목걸이와 레티시아 왕비 사이의 문제니까. 자신은 할 수 있는 것만 약속하면 된다.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거짓말한 건 아니야!
리엘라가 중얼거린 효과가 있었을까. 목걸이가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리엘라는 두근거리며 보석들이 테이블로 오기를 기다렸다.
경매장의 직원들이 고급스러운 손수레를 끌고 다가왔다. 첫 번째 세트가 리엘라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
리엘라는 손으로 목걸이를 톡톡 쳤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다른 에르첼라의 보석을 만났을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거지? 생각해 보면 제일 중요한 질문인데 한 번도 그걸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장 하운에게 물어볼까, 하는 순간 옆 테이블이 구매를 포기한 모양인지 생각보다 빨리 넘어온 2, 3번 세트가 함께 테이블 위에 놓였다.
“……!”
그 순간 리엘라는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위에서 대롱거리던 목걸이의 장식 부분이 쓱 목 뒤로 넘어가 버린 것을. 마치 만나기 싫어서 피해 버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리엘라는 눈을 크게 뜨고 2번 세트의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힘이 다해 잠든 보석들이라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주 조금 옆으로 움직인 것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그것 말고 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에 뚫어져라 살핀 리엘라만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거다!’
리엘라는 에르첼라의 컬렉션들이 어떤 관계였을지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 하운이 알려 주었던 형제석과는 조금 다른 관계였을 것이다. 에르첼라가 아끼고 아낀 보석들. 그리고 언제나 곁에 두었던 보석들은….
리엘라의 머릿속에 황금의 옥좌에 앉아 있는 에르첼라 왕과 그 옆에 앉아 매혹적인 웃음을 짓는 남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에르첼라의 보석들은 에르첼라의 자식들이 아니다. 전부 다 에르첼라의 총애를 두고 다투는 사이인 것이다.
등으로 넘어가 버린 장식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는 없지만 리엘라의 귀에 어쩐지 ‘나 저 자식 싫어!’라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물론 유리 진열대 아래에 있는 보석도 ‘나도 너 싫거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
어쨌거나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확실하게 어떤 것이 에르첼라의 보석인지 알려 주었다.
‘2번, 5번 11번.’
비슷한 보석들로 구성된 12개의 세트 중 에르첼라의 보석이 들어 있는 것은 세 세트였다. 전에 하운이 보여 준 에르첼라의 브로치 그림을 생각하면 분해되어 흩어진 보석 중 몇 개가 빠진 것 같았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가운데의 보라색 보석과 위에 붙어 있는 핑크 다이아몬드 그리고 아래의 붉은 토파즈는 찾은 것 같으니 이 정도면 나중에 레티시아 왕비도 뭐라 하지 않을 터였다.
리엘라는 하운을 붙잡고 몇 번이 에르첼라의 보석인지 알려 준 다음 다시 그에게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글쎄. 우리가 사려 하는 건 네멘테스가 목숨 걸고 덤벼들 게 확실하고….”
“음,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이건 어때요?”
리엘라가 고개를 숙여 보라는 듯 손짓했다. 하운이 상체를 접으며 그녀가 말하기 편하게 제 얼굴을 내렸다. 잠시 리엘라가 속삭이고 나자 하운이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쉽게 될까?”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제 돈으로 어떻게든 되찾아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시구요. 여차하면 플라워 컷 돌려주죠, 뭐. 그러면 뭐든지 좋다고 할 것 같던데요.”
너무나 쉽게 말하는 리엘라에게 하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플라워 컷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지?”
“네아에게 들었어요. 본관만 해서 1억 5천만 길더 정도라던데요? 정원과 부속 건물을 전부 다 합치면 3억 길더 정도구요.”
리엘라는 엄청난 숫자를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사실 정말로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게다가 크레이튼이 그 정도까지는 가능하다고 했고.
“만약 제 생각대로 되면 네멘테스는 큰돈을 날릴 것이고, 조금 전에 하운 님이 갖고 싶었던 그 루비도 받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두 번 다시 시비 걸지 않겠죠.”
리엘라는 웃으면서 하운의 손을 잡았다.
“호슨 공작님께서 생전에 저에게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뭐라고 했는데?”
하운은 조금 두려운 듯이 물어보았다. 리엘라는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이유 없이 미워하는 자가 있으면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 주라구요.”
사실은 이유 있이 미워하는 것이지만 그 이유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
리엘라의 계획은 복잡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보석상들에게 일부러 진짜 에르첼라의 보석이 아닌 세트들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면서 아직 호슨 공작의 재산 대부분이 다 묶여 있어 제 수중에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고, 카르디아 대표와 함께한 이유는 왕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편의를 위해 숙소로 플라워 컷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카르디아 대표들이 뭘 사든 관심 없지만 자신도 기념품 정도는 챙겨 가고 싶다며 탄식하듯 말하기도 했고.
‘이건 뭐 대놓고 뇌물 좀 달라는 거지.’
솔직히 저걸 주면 보석 판매를 생각해 보겠다는 뻔뻔한 요구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보석상인들은 충분히 이해했다는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리엘라가 예쁘다, 갖고 싶다고 말한 것들에 입찰했다.
그것을 본 네멘테스는 리엘라가 시켰다고 생각하고(정말로 시킨 것이긴 했지만) 입찰에 참여했고.
잠시 후, 200만에 시작했던 1번 세트는 1000만까지 가격이 올라갔다. 리엘라는 옆에 앉아 있는 카르디아 대표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1번 세트가 진짜 에르첼라의 보석이라고 일러 준 다음 저 다른 보석상이 대신해서 사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해 둔 상황이었으니까.
적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 하는 법. 카르디아의 보석술사들이 당황하자 네멘테스는 더더욱 확신을 얻었다.
정말 에르첼라의 보석이군!
***
1번 세트는 2210만에 낙찰되었다. 낙찰받는 데 실패한 상인은 오히려 후련한 얼굴이 되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미친 가격을 부르긴 했지만, 솔직히 저 가격을 한 번에 지불하기란 무척이나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리엘라 테니어는 흘리듯 말했을 뿐이지 보석을 꼭 판매하겠다는 각서 같은 것을 쓴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상인이 낙찰을 포기하자 갑자기 카르디아 쪽이 웅성거리며 손을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보석은 네멘테스에게 낙찰되었다. 그러자 하운이 책상을 내려쳤고, 다른 이들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네멘테스는 그 모습을 보면서 크게 웃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들었다. 반응을 보니 제가 제대로 산 것이 맞았다. 곧이어 2번 세트의 경매가 시작되자 하운이 손을 들어 가격을 불렀다.
“210만!”
네멘테스는 자신도 손을 들었다. 220만, 230만, 240만…. 그러던 가격이 400만을 넘어가자 하운이 힘차게 외쳤다.
“700만!”
이제 다른 이들은 다 떨어져 나갔기에 사람들은 네멘테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750만 정도 부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네멘테스는 손을 내렸다. 이 경매에서 빠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하운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모습에 네멘테스는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함정일 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보석을 손에 넣는 것에 실패하니 직접 뛰어들어 저를 낚아 보려는 수작이겠지. 하지만 자신은 무사히 그것을 피해 갔다. 그것도 한껏 낙찰가를 높여 놓아 하운에게 피해를 준 상태로.
***
하운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낙찰 증명서를 보고는 짜증 난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경매장의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모양새였다. 영락없이 순간의 호기에 휩쓸려 너무 큰돈을 지불하게 된 낙찰자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리엘라 역시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하운이 손을 움직여 리엘라만 볼 수 있도록 종이 위에 글씨를 썼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겠어.
***
경매는 하운의 말대로 끝났다. 카르디아의 다른 보석술사들은 이걸 어쩌냐며 흡사 초상집 분위기였고, 하운과 리엘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경매장에서 제일 신난 것은 네멘테스였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1번, 3번, 7번, 8번, 9번 세트의 낙찰 증명서가 놓였다.
하지만 네멘테스의 얼굴도 조금 굳어졌다. 밑에 적힌 숫자를 다 더하니 무시무시한 가격이 나온 것이다.
‘6370만 길더? 내가 언제 이렇게 썼지?’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미친 듯이 이어지는 경매에 제가 얼마를 썼는지 제대로 가늠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그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노력해 봤자 5천만 정도를 융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거의 1500만 가까이 더 써 버린 셈이다. 하운과 리엘라를 이겨서 즐거운 대가가 1500만이라니.
네멘테스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지? 어디서 1500만을 더 가져오지?
답은 하나뿐이었다. 제가 소유하고 있는 보석이나 그 외의 재산을 추가로 처분하는 것.
‘그 오팔 원석.’
경매장에 들어오기 전에 명령을 내려 둔 그 오팔 원석이 생각났다. 그것이라면 바로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500만이 뭔가. 잘만 흥정하면 1억 5천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네멘테스의 얼굴에 안도가 깃들었다. 조금 급하게 팔게 되겠지만 그래도 대금을 지불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때 경매장 뒤쪽의 문이 열리고 직원 하나가 들어오더니 관리자에게 다가가 뭐라 말을 전했다. 관리자는 굳은 얼굴로 네멘테스에게 다가왔다.
“네멘테스 님, 라자르 컷에서 사람이 온 모양입니다. 무척이나 다급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며 지금 이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는데 네멘테스 님께서 신원 보증에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누구라고 하던가?”
“이네나 님입니다.”
“이네나가?”
이네나는 네멘테스의 여동생이었다. 네멘테스는 어서 빨리 데려오라 말했다. 잠시 후, 뒤쪽의 문이 열리고 이제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자아이가 네멘테스를 향해 달려왔다. 누구와 싸우기라도 한 것일까. 얼굴과 팔 여기저기에 아직도 피가 묻어 있었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상처들이 있었다.
“이네나? 무슨 일이야? 얼굴은 왜 그렇고….”
네멘테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오자 이네나는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 본 다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빠, 큰일 났어. 오팔 원석을 도둑맞았어.”
“뭐?”
오팔 원석이라는 말에 네멘테스는 벌떡 일어났다. 분명 프레이에게 맡기려 했던, 경매의 마지막에 내놓으려고 했던, 팔아서 오늘 낙찰받은 대금을 치르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그것이 사라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