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5
◈ 165화 새로운 약 (2)
처음에 루드거가 과감하게 모든 재료를 한데 뒤섞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느낀 감정은 경악이었다.
‘저걸 정제도 하지 않고 그냥 통째로 사용한다고? 미치기라도 한 건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지켜보던 조교는 말릴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어정쩡하게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 낸 그 순간, 조교는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루드거가 무언가를 더 했기 때문이다.
‘저건 아까 으깨서 즙으로 만들었던 폴리탄 수액?’
온갖 마력초를 한데 뒤섞은 루드거가 거기에 폴리탄 수액을 부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력초에 깃든 독성이…… 빠지고 있다?’
동그랗게 뭉친 마력초는 수액 아래에 잠겨 있었고, 수액의 표면 위로 마력초의 독성이 두둥실 떠 있었다.
마력초의 가장 큰 위험이라 할 수 있는 독성을 완벽하게 분리한 것이다.
‘폴리탄 이파리가 해독 작용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저건 대체…….’
단순히 수액으로 저런 효과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다른 마법적인 처리를 한 것이다.
‘저 재료에 저런 효능이 있었나?’
루드거는 수액 위에 말린 이파리를 얹었다. 그러자 표면에 떠다니던 독성이 잎에 흡수됐다.
녹색의 잎이 검게 변색됐다.
그렇게 독성을 모두 제거한 루드거는 소독된 집게로 안에 뭉쳐 놓은 마력초 덩어리를 꺼내 큰 병에 담았다.
그 모든 과정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크리스 베니모어는 홀린 듯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몰래 본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로 뚫어져라.
‘뭐냐 대체. 저 방법은 뭐냔 말이냐.’
루드거가 한 짓은 약제학에 지식이 있는 크리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하나만 제대로 다루기 힘든 상급 재료와 약초, 마력초를 무려 10개나 사용했다.
‘분명 실패해야 하는 게 맞다.’
그냥 실패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저 약초에 깃든 마력이 혹시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되기라도 한다면, 연금술도 아니고 약제실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테니까.
하지만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혹시 모를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루드거가 저 무수한 약초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약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분명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저것이 제대로 약으로서 효력을 발휘하는지는 알 수 없다.’
때마침 루드거가 정제한 알약의 타정 작업을 끝내서 완벽한 약을 만들었다.
크리스는 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 약의 표면이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만들어진 알약은 표면이 매끄럽고 고르지만, 실패한 알약의 경우에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거나 갈라지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루드거가 만든 알약은 완벽하다고 부를 정도로 깔끔했다.
‘성공, 했다고?’
그런 위험천만한 재료들을 가지고 제대로 만들었단 말인가?
게다가 딱 봐도 평범한 약이 아님을 증명하듯, 반투명한 알약 안에는 은은하게 마력의 빛이 맴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물어보려던 크리스는 가까스로 참아 냈다.
자존심이 차마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저 인간이 먹던 알약도 시중에서 파는 것은 아니었어.’
설마 그 알약이 전부 본인이 직접 만든 거였단 말인가?
자기가 먹을 약을 자기가 처음부터 만들었다고?
“이, 이건 뭡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조교가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주위에서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던 대학원생과 졸업 준비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루드거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
“마력을 회복하기 위한 물건이다.”
“마력 회복약이군요.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아서라.”
곧바로 마력약의 상태를 알아보려던 조교는 루드거의 만류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사용하려 했다간 마력 폭주가 일어날 거다.”
“예, 예?”
“오직 마력만 회복시키기 위해, 다른 효과는 일절 고려하지 않은 물건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만 제거했을 뿐이지.”
평범한 마법사가 먹으면 그대로 마력 폭주가 일어날 거다.
마나를 모두 고갈시킨 상태에서 먹어도 차고 넘치는 힘에 견디기 힘들 터.
경고를 들은 조교는 루드거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위험한 마력초들을 섞은 것은 맞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
상황을 지켜보던 크리스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 남자의 말이 맞다.”
“크, 크리스 베니모어 선생님?”
크리스는 이곳에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조교와도 나름 안면을 튼 사이였다.
조교는 설마 크리스 베니모어가 루드거를 두둔하고 나설 줄 몰랐는지 꽤 당황한 눈치였다.
“들어간 재료만으로 추정해도, 마력이 바닥난 상태의 몸을 마나로 가득 채우다 못해 망가뜨릴 정도겠지. 자칫 잘못하면 전신의 마력 신경계가 모조리 타 버릴 거다.”
“제대로 보셨군요.”
“흥. 그런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얼마나 위험한 알약인지도.”
약에 들어간 재료의 손실률이 80퍼센트 이상에 육박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20퍼센트만으로 사람을 망가뜨리기 충분하다.
효과, 위험도, 효율성.
약을 제조할 때 신경 써야 할 3가지 요소 중에서 오로지 [효과] 하나만을 극대화하고 나머지 2개는 내다 버린 극단적인 약.
독기를 제거했다 하더라도 독보다 위험한 물건.
루드거가 만든 약은 그런 것이다.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랬으면 이렇게 많이 만들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뭐지? 정말 사용하려고 만들었다고?”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쪽을 응시하는 루드거의 눈빛에 크리스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모든 행동, 말투, 어조까지.
단순히 허세를 부리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진심인 거냐?’
그가 평소 마력 부족에 허덕인다는 사실은 그날 연회장에서 약을 섭취하는 걸 우연히 발견했기에 알고 있었다.
만성적인 질병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루드거도 이젠 이 사실을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들통났으니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 정도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평범할 리가 없다.’
단순히 마력 폭주를 겪는 수준이 아니다.
고위계 마법사도 먹으면 마력이 차오르다 못해 몸 안에서 폭주해서 흘러넘칠 텐데.
아무리 세오른의 교사라 하더라도 저 약 효과를 완전히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면, 마력 방출량이 말이 안 될 정도로 높다거나.’
마력이 물탱크 안에 담긴 물이라면 방출량은 그 물을 뽑아내는 통로다.
마법사에게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것은 당연히 마나의 양이다.
마나가 부족하면 사용하고자 하는 마법을 제대로 펼칠 수 없으니까.
하지만 2번째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방출량이다.
마나는 많지만 방출량이 낮으면 그 방대한 마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
방대한 댐에서 한 번에 퍼낼 수 있는 물이 고작 바가지 하나라면, 그 많은 양의 물은 사실상 의미 없는 셈이다.
마나가 많아도 방출량이 부족하면 마법사로서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마나가 적어도 방출량이 많으면 마법사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10의 마나를 지녀도 1씩 사용하는 사람보단, 5의 마나를 지녀도 3씩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마법사로서 더 나으니까.
‘하지만 보통 마법사는 방출량이 아무리 높아도 자신의 최대 마나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다만 방출량은 인간의 근육처럼 수련을 통해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숙련된 마법사라면 출력을 올릴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방출량은 20%를 넘기기 힘들다.
가끔 특이한 케이스로 30%가 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걸 저 녀석이 가능하다고?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루드거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마나 방출량이 상당히 높다는 것은 대련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무슨 지병을 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나가 상시 부족한 상태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저건.
저 약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조교. 확인은 다 끝난 거 같은데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아 있나?”
“아, 아닙니다.”
조교도 더 이상 루드거에게 뭐라 물어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호기심을 완전 억누르지는 못했는지 이쪽을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크리스는 주변 사람들을 슬쩍 보다가 루드거에게만 들리게끔 말했다.
“꾸준히 약을 섭취해야 하는 것은 지병 때문인가?”
만들어 낸 알약을 적당한 약통에 담던 루드거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계속 마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건, 실시간으로 마나가 소모되고 있다는 건데. 나는 그런 병이 있다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들어 본 적이 없는 게 맞을 겁니다.”
애초에 이건 지병이라기보다는 체질의 문제였다.
그러니 모를 수밖에.
“그보다 의외로군요. 크리스 선생님이 이런 걸 궁금해하시다니.”
“뭐가 의외라는 거지?”
“애초에 이런 부분을 노려서 대련에서 수를 쓰지 않았습니까.”
“…….”
루드거의 지적에 크리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와서 동정심이라도 든 겁니까?”
“……어차피 믿지 않을 건 안다. 하지만 미리 말해 두겠는데, 그 제안을 먼저 한 것은 휴고 부총장님이셨다.”
루드거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휴고에게 알린 것은 크리스가 맞다.
하지만 남몰래 교무실에 들어가 약을 훔쳐 가는 짓을 저지를 거라고는 크리스도 생각지도 못했다.
귀족으로서 자부심이 있는 크리스는 그런 짓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후우. 안다. 결국 다 핑계겠지.”
설마 휴고가 데비안을 시켜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어쩌면 그에게 루드거의 약점을 알려 줘서 휴고의 눈이 뒤집히게 만든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내게 잘못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내 의도는 없었을지언정, 귀족답지 않은 짓을 했어.”
크리스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답지 못한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다.
그것이 부끄러운 짓이라는 것까지도.
솔직히 말하면.
그는 아직도 루드거가 싫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특화 분야를 빼앗아 갔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몰락 귀족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니, 안 그래도 가세가 기울어 예민한 크리스로서는 큰 위협처럼 느껴진 것이다.
건방진 몰락 귀족.
루드거를 향한 평가는 딱 이게 전부였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루드거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루드거는 몰락 귀족인데 가문에 연연하지 않고 휴고의 제안을 걷어찼다.
귀족들과 커넥션을 늘려 가문의 위세를 지키려던 자신과는 반대였다.
그는 새로운 마법을 창안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가문의 비기를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던 자신과는 반대였다.
늑대인간 사건 때 학생들이 위험에 처하자 솔선수범 나서서 놈을 처리했다.
휴고의 주장에 범인이 학생이라 속았던 자신과는 정반대였다.
루드거는 모든 것이 그의 대척점에 선 사람 같았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크리스의 역린을 건드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꼴사납게도 이 남자를 질투하고 있다는 걸.
“받아라.”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기에, 크리스는 루드거에게 시약병 하나를 툭 던지듯 건넸다.
허공에서 약병을 가볍게 잡아챈 루드거는 이게 뭐냐는 시선을 보냈다.
“우리 가문의 특제 마나 진정제다. 그 알약을 통째로 먹으면 몸에 탈이 날 테니, 함께 섭취하면 좀 더 낫겠지.”
그렇게 말하던 크리스는 괜히 무안한지 칫 하고 혀를 찼다.
“정말 주시는 겁니까?”
“그러면 가짜로 주는 것도 있나?”
“이렇게 쉽게 베풀 사람으로는 안 보였는데.”
“……지금 싸움 거는 건가?”
“순수한 감탄입니다.”
“흥.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베니모어 가문 사람이다.”
베니모어 가문은 예로부터 약물을 만들어 왔다.
사람을 고치는 약을, 병을 치료하는 약을.
비록 세월에 뒤처졌다 할지언정, 그들이 바랐던 것은 사람을 위한 헌신이었다.
크리스가 루드거에게 약을 선뜻 넘긴 그런 이유였다.
아무리 질투 나고 미운 놈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면 기꺼이 약을 건네준다.
“말해 두겠는데, 나는 아직 널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미친 짓을 벌이려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는 성격도 아니야.”
루드거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크리스를 응시했다.
그는 크리스가 준 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잘 알았다.
‘마력 안정제는 비싸고 귀한 건데.’
마나 폭주를 겪는 마법사에게 급한 불을 끄게 해주는 치료제에 가까운 약품이다.
일반 사람들이 먹는 것이 아닌, 오직 마법사만을 위한 제품이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고, 그만큼 비싸다.
그런데 크리스 베니모어는 그걸 선뜻 넘겨줬다.
이 정도는 그냥 줄 수 있다고 잘난 척하듯 말했지만, 분명 지출은 지출이다.
‘적어도 마냥 자존심만 세우는 귀족은 아니었나.’
물론 그래 봤자 크리스 베니모어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재수 없는 귀족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입만 산 귀족보다는 조금 더 진짜 귀족 같았다.
“주셨으니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죠. 잘 쓰겠습니다.”
루드거가 약병을 조심히 챙기자 크리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도 별말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잘 써 준다고 하니 내심 만족한 모양이었다.
볼일도 끝났겠다 크리스도 슬슬 자신의 약을 만들려고 하는 순간, 루드거의 돌발 행동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루드거는 마력초의 독기를 빨아들인 이파리를 말려서 잘게 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부순 가루를 한데 모으더니 조심히 쓸어 담는 게 아닌가?
“버리긴 아깝지 않습니까.”
무미건조한 어조로 대답하는 루드거의 모습에 크리스는 할 말을 잃었다.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는 있나?”
“알고 있습니다.”
“뭐?”
“그리고 사실 이게 진짜입니다.”
“…….”
루드거는 지금 저 마력초 덩어리에서 나온 독성마저도 버리지 않고 사용할 생각인 것이다.
크리스는 처음으로 루드거에게 짜증 이외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순수한 경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