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27
◈ 327화 우정의 평행선 (1)
드발크 황성은 광활한 크기를 자랑한다.
건축가들은 드발크 황성을 보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거대한 규모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실용성.
드발크 황성은 넓은 부지와 공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하게도 황성 부지 내부에는 외부 손님들을 위한 기거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
현재 그 장소에 세오른의 학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와아. 진짜 끝내준다!”
“여기 조각상 봐! 이거 유명한 가비드의 조각이잖아! 책에서 봤어!”
“여기 그림도 봐봐. 이거 전부 다 진품이라더라. 이런 것들이 가득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학생들은 황성 내부를 돌아다니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오른의 학생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드발크 황성이 너무 넓다 보니 그 제약을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역시 제국의 황성이구나. 없는 게 없어.”
“솔직히 강제로 머무르게 됐을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아. 진짜 여기서 평생 살고 싶다.”
손님을 위한 숙소는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5성급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그 때문인지 학생들은 그 누구도 황성에 머무는 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밥도 맛있고, 침대도 푹신하고, 모든 생활 요소가 쾌적하다.
오히려 이곳에서 더 머무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
“……그래도, 언젠가 돌아가야겠지.”
“그렇지. 그리고 온갖 시험과 과제의 폭탄이…… 으으. 진짜 생각만 해도 싫다.”
세오른에 돌아가면 막대한 과제와 수업이 그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기억의 뒤로 미뤄 두었던 잔혹한 현실의 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을 철저히 즐기기로 했다.
본래 즐겁게 끝났어야 할 현장 학습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엉망이 되고 말았으니, 학생들의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
그래서 황실은 직접 나서서 학생들에게 마지막이나마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 주기로 했다.
최고로 편안한 숙소와 화려한 만찬, 황실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권한까지.
물론 황실이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지금 베푸는 이 모든 것들은 일종의 계산이 깔린 선물이었다.
세오른은 엑실리온 제국 황실의 개입을 받지 않는, 자유권이 보장된 별개의 조직.
그런 세오른에 나름 빚을 지게 하는 것은 훗날 세오른과 모종의 거래를 할 때 우위를 점하기 좋았다.
게다가 세오른의 학생들은 대부분 재능이 뛰어나다.
졸업한다면 향후 나라의 기둥이 될지도 모를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황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것은 일종의 미래를 향한 투자였다.
실제로 현재 황성에 머무는 학생들 사이에서 졸업 이후 황실에 오고 싶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아일린 1황녀가 계획한 의도는 제대로 먹혀든 셈이었다.
학생들은 황실의 그런 검은 속내를 전혀 모른 채, 그저 이 순간을 즐기느라 바빴다.
세디나 로쉔도 모처럼 업무를 훌훌 털어내고 휴식을 만끽하기로 했다.
세디나는 자연 경관이 조성된 공원으로 향했다.
절반이지만, 엘프의 피가 흐르는 세디나는 휴식을 취할 때 항상 식물이 있는 곳을 선호했다.
그렇기에 혼자서 사용하는 조교실을 온갖 식물이 가득한 자그마한 식물원으로 가꾸지 않았던가.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전부 루드거 선생님 덕분이야.’
세디나는 오늘도 루드거에게 어김없이 감사의 인사를 하며 공원을 거닐었다.
산책로에서 벗어난 곳은 그야말로 울창한 숲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 있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부담스러워서 오지 않을 곳이지만, 세디나에게는 오히려 집보다 포근한 곳이었다.
세디나는 호숫가 근처의 커다란 버드나무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머리카락 안쪽에 감춰진 귀를 쫑긋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을 느꼈다.
아아 좋다.
조금 더 편한 자세를 위해 세디나는 무릎을 껴안았던 손을 풀었다.
툭.
지면에 뻗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세디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손끝에 걸린 것은 바닥에 떨어진 버드나무 가지였다.
세디나는 그것을 쥐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호숫가 근처라 그런지 물을 머금은 가지는 상당히 말랑말랑했다.
세디나는 자연스럽게 가지 일부를 뚝 잘라 내서 목심부를 빼내고, 마법으로 구멍을 뚫었다.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리를 입에 대고 불자 삐리리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디나는 하얗고 가는 손가락을 움직여 버들피리로 연주를 시작했다.
무슨 곡인지는 세디나 본인도 몰랐다.
다만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불러 주셨던 음색을 따라 했을 뿐이었다.
세디나에게 있어서는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의 추억이기도 했다.
그렇게 버들피리를 부르던 세디나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피리에서 입을 뗐다.
“누구…….”
세디나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청록으로 가득한 숲의 색과는 명확히 이질적인 새하얀 백발이었다.
줄리아 플룸하트.
자신과 다르게 어른스럽고 의젓하며, 어딘가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
줄리아를 본 세디나는 황급히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또 도망칠 생각이야?”
그러나 줄리아가 던진 그 한마디에 세디나는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세디나가 천천히 줄리아를 돌아보았다.
* * *
황실의 비고(祕庫).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역사의 보물고라 불리는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발자취를 허락하지 않은 곳이다.
에렌디르가 말했듯 근 100년간 황실의 비고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오직 1명.
현 로열가드의 수장이자 당대 최고의 기사인 루터스 단장뿐이었다.
그런 곳에 지금, 루드거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만으로 평생의 안줏거리로 삼아서 대대손손 자랑해도 될 정도.
비고의 입구만 구경해도 감사하다며 절을 할 사람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루드거는 별로 들뜬 기색이 아니었다.
‘물론, 이 정도로 귀중품들이 가득한 것은 놀랍기는 하다만.’
비고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게 대단하다 추켜세워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
들어오면 들어온 거지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루드거는 비고의 전경을 빠르게 훑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찬란한 황금빛.
샛노란 색감의 조명이 비춘 금화의 빛이었다.
곳곳에 반짝이는 보석들이 내뿜는 광휘 때문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금화와 보석만으로도 그 가치가 천문학적인 수준.
그러나 비고는 고작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저 이 거대한 비밀 창고의 초입일 뿐이었다.
루드거는 내부의 구조를 살폈다.
비고는 창고라기보다는 거대한 전시 박물관과 같았다.
그리고 천장과 벽, 기둥 곳곳에는 화려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단순한 조각이 아니었다.
내부에 들어온 침입자가 혹시라도 수상한 짓을 하는지 지켜보는, 일종의 마법적인 구조물이었다.
게다가 넓기는 또 더럽게 넓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크기만 해도 세오른의 마법 경기장을 뛰어넘는 수준인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온갖 마법적인 방호가 걸려 있군.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탈출 루트를 짠다고 하더라도 못 벗어나겠어.’
루드거는 과연 자신이 이 안으로 몰래 침입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밀도 있는 마법 방호가 걸려 있다면 공간 이동도 무용지물이었다.
바깥에서 안쪽은 물론이거니와 안에서 바깥도 마찬가지다.
‘털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군.’
아일린이 비고를 개방해 준다고 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인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루드거는 금화와 보석의 전시관을 지나쳐 비고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노란색으로 가득하던 조명의 색감에 연해지고, 주위에 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이유는 이곳에 전시된 물건들을 돋보이기 위해서였다.
통로의 좌측에 주기적으로 전시된 물건들은 새하얀 조명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선명히 드러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었다.
‘여기서부터 진짜인가.’
루드거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티팩트를 눈으로 훑었다.
7가지 색의 보석이 박힌 왕관이었다.
막대한 마력을 품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등급의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손에 착용하는 장갑도, 어깨 위에 두르는 망토도, 지금은 입지 않은 전신 갑옷도.
최소 고등급 아티팩트, 혹은 그에 준하는 유물이었다.
루드거는 이곳에서 원하던 렐릭의 파편을 찾아야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렐릭이 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이곳은 전시된 물건을 파는 경매장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안내판이나 카탈로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원하는 걸 찾으려면 직접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확인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한다면, 각 전시된 물건 앞에 이름과 용도의 설명서가 있다는 건데.’
그마저도 태반은 이름 불명, 용도 불명이라 적혀 있었다.
아마 닥치는 대로 모으다 보니 용도까진 굳이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용도가 어떻든 귀중한 물건임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이 정도의 규모를 감안하면 내가 찾던 렐릭 말고도 또 다른 렐릭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루드거는 계속 비고 내부를 거닐었다.
언제까지 나오라는 말은 없었기에 굳이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시간도 많으니 여유 있게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때 루드거의 가슴팍 안쪽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건.’
전에도 한 번 겪어 본 반응.
근처에 이 렐릭과 상응하는 파편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루드거는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원하는 물건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새하얀 조명 아래 이름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드디어.’
루드거는 그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난 방지 마법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비고 안으로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루드거는 손에 쥔 파편을 빤히 응시하다가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여기서 만족하고 물러나도 되겠지만.
아직 루드거에게는 이곳에 있는 물건 중 2개를 더 선택할 기회가 남아 있었다.
‘고를 수 있는 물건은 앞으로 2개인가.’
사실 주된 목적은 렐릭의 파편이어서, 다른 아티팩트 중 무엇을 가져갈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그냥 맨바닥에 버릴 수만도 없는 노릇.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루드거는 비고 내부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아티팩트가 많아. 그것도 하나같이 뛰어난 것들뿐이지. 당장에 필요한 것은 없다 하더라도, 괜찮아 보이는 걸 챙겨 놓으면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고.’
루드거는 물건들을 잔잔히 살폈다.
지나치게 화려한 것은 우선 거르기로 했다.
보석이 박혔다거나 빛이 번뜩인다거나, 딱 봐도 귀해 보이는 것은 시선을 너무 잡아끌었다.
그것은 은밀함을 추구하는 루드거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저런 걸 가지고 있다면 적에게 대놓고 이쪽이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싸울 상대가 미리 아티팩트를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본래 효과를 내지 못해. 최대한의 효율을 뽑으려면 은밀성이 필수야.’
거기까지 생각을 한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자조하듯 웃고 말았다.
‘이런 곳에서 보물을 고르는 것조차 싸우는 쪽으로만 생각하다니. 나도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보군.’
하지만 다른 사용법을 떠올리려 해도 끝없는 안개 속을 누비는 것처럼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루드거의 지금까지의 삶은 전부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까.
그가 사는 울타리의 안쪽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어둡고, 춥고, 질척한 진흙으로 가득한 이곳은 오직 폭력만으로 굴러가는 세상이었다.
루드거는 그곳에 살고 있었다.
스승님에게 거두어진 시점에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예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러겠지.
그에겐 이뤄야 할 목표가 있지만, 거기까지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이후는 애초에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에 나에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이 모든 것을 전부 털어놓고 조용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평생을 싸움밖에 하지 않았던 자신이, 과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일하다.
그는 항상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았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사치라 생각했다.
‘그래도 만약에 이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나고, 이제 이런 일에 손을 씻고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의미 없는 가정이다.’
적적한 곳에 혼자 있다 보니 괜한 헛생각이 들었나 보다.
루드거는 괜찮은 물건을 찾자는 생각으로 주변을 계속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던 찰나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유독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유물인지, 혹은 그에 준하는 아티팩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2가지 중에서 하나는 찾은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