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Undercover Professor RAW novel - Chapter 616
◈ 616화 전력을 다하여 (1)
기계 장치의 신을 마주한 루드거는 한 가지 질문과 마주했음을 직감했다.
저것은 일반적인 마법, 혹은 오러로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코어는 렐릭이며 육체는 철의 색 마법사의 것.
거기에 더해 세계수의 세포와 흑마법, 마법의 지식까지 총망라된 혼종이다.
온갖 것들이 뒤섞인 것을 키메라라고 부르지만, 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서의 완벽을 자아낸다면 그걸 키메라라 격하하듯 부를 수 있을까?
기계 장치의 신이 딱 그랬다.
‘내가 6위계 대마법을 얼마나 퍼붓는다고 하더라도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아.’
몇 번 교전해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우선, 기계 장치의 신은 아직 온전하지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녀석은 막 알을 깨고 나온 갓 태어난 아기 새다.
4개의 기계 팔을 다루는 지금은 보송보송한 깃털 정도는 달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위력.’
더욱이 끔찍한 진실은 녀석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점차 자신의 상태에 적응하고, 지식과 자아가 쌓이는 순간 놈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로 니콜라이의 말대로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지.’
그 전에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기계 장치의 신을 죽여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간이 필요했다.
기계 장치의 신을 없애려면 루드거도 나름의 준비라는 것을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저런 괴물과 전면전을 벌이며 마법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였다.
놈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생명체에게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놈이 눈치채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낸다.’
베롬과 로테론, 휘론에게 시간을 벌어 달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직도 싸움의 여파가 지속되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버텨 주고 있는 모양.
루드거는 그림자 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냈다.
온갖 독성이 가득한 식물을 꾹꾹 눌러 담은 파이프 담배에 손가락 끝으로 불을 붙였다.
쓰읍. 후우.
입 밖으로 내뱉는 연기에 짙은 마력이 섞여 푸른색을 띠었다.
몸 주위로 생성된 마력 안개.
루드거는 그 마력 안개를 제어해 하나의 마법으로 형상화하며 짜 올렸다.
일반적인 현대의 마법이 아닌, 오로지 믿음과 기적으로 발동시키는 고대의 마법.
지금까지 이 마법으로 마주친 적들을 전부 상대해 왔지만, 루드거는 이번만큼은 힘들 거란 느낌을 받았다.
‘더 나아가야 한다.’
신이 만든 물건, 렐릭.
그 렐릭을 바탕으로 한 기계 장치의 신은 어떻게 보면 신의 분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는 괴물이 돼야 한다고 했던가.
루드거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등한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와 동등한 힘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감했다.
‘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결국 이 힘을 써야 하는 거겠지.’
루드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에 애석해하면서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다.
츠츠츠츠.
루드거의 주위로 공기가 무겁게 변했다.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대다수가 거품을 물며 기절했을 것이다.
루드거의 머리 위로, 자그마한 검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여기는 내가 맡겠다. 가리엘, 너는 네가 할 일을 해라.”
* * *
갑자기 나타난 불상의 모습에 니콜라이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저건 또 뭐야.”
존 도우에게 저런 힘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 없었다.
교활한 존 도우라면 분명 자신의 힘을 일부지만 숨기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저런 것은 규격 외이지 않은가.
등 뒤에 아른거리는 황금색의 거대한 존재는 또 뭐고, 화면 너머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저 거대한 존재감은 또 무엇인가.
자신의 걸작인 기계 장치의 신이 오히려 조촐하게 느껴지는 격차였다.
다른 한쪽 화면에서는 자신이 보냈던 부하들이 모조리 전멸하고 말았다.
리네를 죽이기 위해 보냈던 부하들이 어디선가 나타난 영수의 먹잇감이 돼 버린 것이다.
“……울부르크 가문의 수호신이 여기에 나타나다니.”
영수와 함께 온 것은 차기 울부르크의 가주인 프로이덴 울부르크였다.
갑자기 왜 제국의 3대 공작 가문 중 하나가 이번 사건에 끼어들게 된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유일한 연관성이라면, 프로이덴과 리네가 같은 세오른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건데.
뭐가 됐건 간에 니콜라이는 자신의 계획이 계속 차질을 빚는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보는 눈이 없었더라면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주변의 물건을 때려 부쉈을지도 모른다.
“이거 안타까워서 어쩌나. 네가 계획하던 일이 족족 실패하게 됐네.”
가리엘은 싸늘하게 굳은 니콜라이의 표정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니콜라이는 가리엘의 모습을 보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화를 내려던 니콜라이는 이내 분노를 가라앉히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쩌면 이 또한 주어진 순리대로 흘러가는 걸지도 모르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나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또 무슨 개소리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장치지기의 뜻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거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의 등장은 그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전개일 거고, 그러니 이렇게 온갖 시련을 내리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이 미친놈.”
가리엘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는 니콜라이를 질린다는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니콜라이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가리엘을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너에게 멋진 광경을 보여 주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게 전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군. 더 이상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러니, 이만 슬슬 죽어라.”
니콜라이가 손을 뻗어 가리엘의 미간을 겨누었다.
그는 뒤에서 남을 조종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질로만 퍼스트 오더의 자리에 오른 건 아니었다.
니콜라이 또한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였으며 그가 퍼스트 오더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당연히 이런 실력도 뒷받침되었다.
“죽기 전까지도 네 그 모자란 운명을 탓해라. 그게 너 같은 쥐새끼의 삶이니까.”
손끝에 모이는 마력을 본 가리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어?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뭐?”
“바로 이런 거야.”
가리엘의 모습이 자리에서 순간 사라졌다.
그 직후 니콜라이는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검은 무언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황급히 머리에 뒤집어 씌워진 것을 치우려 했지만,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당기며 이쪽의 얼굴을 압박하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다급하게 뒤로 팔을 뻗어 마법을 쏘았다.
급하게 발현한 마법이라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붙은 사람을 떨쳐 내는 정도는 충분했다.
가리엘을 밀어내고 다급하게 얼굴을 가린 천 조각을 치운 니콜라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 쥐새끼가 감히!”
분노한 니콜라이의 몸 주위로 마력이 요동쳤다.
니콜라이는 가리엘을 씹어 먹을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대체 어떻게? 분명 마비 가스를 마셨을 텐데?’
니콜라이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은 뒤에서 들려오는 가리엘의 속삭임이었다.
“내가 왜 마비에서 풀려났는지 궁금해?”
니콜라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며 마력을 흩뿌렸다.
쩌저적!
얼음의 송곳이 아무것도 없는 실험실 외벽에 꽂혔다.
“독에 한번 된통 당했었거든. 그때 너무 무력감을 느껴서, 오기 전에 휘론 씨에게 도수 치료를 미리 받고 왔지.”
“이 새끼가!”
도수 치료라는 말에 니콜라이는 가리엘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리엘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마법을 쏘려던 니콜라이는 멈칫했다.
‘제길!’
하필이면 시간의 마법사와 같은 공간에 갇히고 말았다.
니콜라이는 곧바로 방식을 바꾸었다.
“아무리 네놈이라 하더라도, 이 공간 자체를 나의 마력으로 채운다면 어떨까!”
시간 마법사의 단점.
광범위한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부분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 알아.”
그 순간 니콜라이의 코앞으로 가리엘이 나타났다.
‘지금, 마법을 발동하는 데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접근해?’
니콜라이는 예상 밖의 행동에 아차 싶었다.
가리엘의 성향상 이렇게 겁을 주면 일단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서서히 공간 자체를 장악해 나가며 놈을 구석으로 몰아넣을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엇나간 것이다.
“나도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온 건 아니거든.”
철컥.
니콜라이는 팔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손목을 억센 와이어가 묶여 근처 테이블과 연결되어 있었다.
맥이 잘리듯 마력의 흐름이 끊기고, 마법의 발동이 취소되었다.
“이 자식이!”
니콜라이는 발을 들어 가리엘의 배를 걷어찼다.
쥐새끼가 자신에게 가까이 붙어 있다는 사실에 반사적으로 취한 행동이었다.
니콜라이는 그래서는 안 됐다.
가리엘이 시간의 마법을 해제하고, 다음 시간의 마법을 사용하는 데는 약간의 딜레이가 존재했다.
이제는 주어질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에 니콜라이는 발길질이 아니라 상대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오히려 발길질로 가리엘을 밀어내는 순간.
둘의 거리가 벌어진 걸 본 니콜라이는 너무나도 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말았다.
가리엘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니콜라이의 목에 굵은 와이어가 감겼다.
“끄그극!”
목을 강하게 조이는 와이어의 고통에 니콜라이가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의 흰자위로 새빨간 실핏줄이 균열처럼 일어났다.
니콜라이가 저항하려 하자 가리엘은 니콜라이의 등 뒤에서 그의 무릎 관절을 걷어찼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린 니콜라이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가리엘은 니콜라이의 목을 조르는 와이어를 더 강하게 당겼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리엘이 승기를 확신하려는 순간 니콜라이의 전신에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 충격파에 얻어맞은 가리엘은 손에 쥔 와이어를 놓치며 튕겨 나가고 말았다.
“쿨럭! 쿨럭! 이 쥐새끼가! 네놈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겨우 숨통이 트인 니콜라이는 침이 섞인 기침을 토해 내더니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가리엘을 노려보았다.
가리엘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비의 영향으로 아직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고, 조금 전 충격으로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 건지 뼈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도 멈출 수 없었다.
‘달려들어!’
가리엘은 스스로 세뇌하듯 마음속으로 외쳤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놀리며 니콜라이를 향해 가까이 달라붙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니콜라이는 마법을 미처 발동하기 전에 가리엘과 몸이 충돌했다.
쿠당탕!
두 사람은 서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가리엘은 아귀처럼 니콜라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싸움은 이게 고작 전부야.’
가리엘은 싸움과 담쌓은 삶을 살아왔다.
그런 가리엘이 니콜라이와 싸운다고 해서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루드거가 해 준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
-너는 애초에 싸움에 적합하지 않다.
루드거는 자신을 향해 냉혹하다 싶을 정도로 모질게 말했다.
-성향도 그렇고, 싸움을 해 본 경험도 없고, 오히려 기질은 겁쟁이에 가깝지. 싸움에 적합한 능력도 아니고 말이야.
가리엘은 그 말에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가 싸움을 못 하는 것은 자기 자신도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모든 것을 활용해라. 상대와 함께 진흙탕에 빠지려는 걸 망설이지 마. 최소한 너와 같이 싸움의 경험이 부족한 마법사를 상대로 한다면, 승산은 있다.
니콜라이는 가리엘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마법은 불가능.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마력을 운용하려는 순간 가리엘이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며 방해를 걸어왔다.
퍼억!
묵직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주먹질이 뺨에 꽂힌다.
니콜라이는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도 자존심에 새겨지는 상흔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뭐냐. 대체 뭐냔 말이다.’
이런 싸움은 난생처음이었다.
무슨 시골 어린아이들 싸움도 아니고, 다 큰 마법사가 바닥을 뒹굴며 싸우다니?
긍지도, 멋도, 명예도, 자존심도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주점에서 술에 취해서 보일 법한, 그야말로 밑바닥의 밑바닥에서나 볼 수 있는 처절하고 너저분한 투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지저분한 파이팅이 니콜라이를 더욱 혼란으로 몰고 갔다.
자신이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만 같아서.
니콜라이는 전에 없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 이 쥐새끼가!”
니콜라이의 손바닥이 불길에 휩싸이며 그대로 가리엘의 얼굴을 밀었다.
치이이익.
피부를 태우는 소리와 함께 니콜라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산채로 피부가 타는 기분은 어떠냐?
그러나 가리엘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놀랍게도 비명을 지른 것은 니콜라이였다.
“아아아아악!”
가리엘이 입으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린 것이었다.
불에 타는 고통 속에서도 가리엘의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니콜라이를 노려보았다.
“놔! 이거 놓으라고!”
니콜라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강제로 마력을 운용했다.
퍼엉!
끊기려는 흐름을 억지로 이으며, 불완전하게나마 순수 마력을 뿜어내 가리엘의 명치를 때렸다.
푸른 마력의 공이 가리엘을 뒤로 날려 버렸다.
상당한 타격이었는지 가리엘이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이, 이 빌어먹을…….”
니콜라이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피를 토했다.
“우웨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