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자네가 어쩐…….”
“할 말이 있습니다.”
“…….”
뭐 이런 뜬금없는 방문이란 말인가?
딱히 회의나 중요한 안건에 대해 고민하는 중은 아니었으나 난데없는 명진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술 듯 세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명진이 갑자기 힘차게 다가와 명현의 앞에 좌정하고 열의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노려본다.
“양의심공을 주십시오.”
“…….”
다짜고짜?
설명도 없이?
자네 혹시 도포 입은 강도인가? 라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 그런데 자신의 사제인 명진이 이렇게 앞뒤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지 않던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명진의 행동에 명현은 눈을 끔벅거리며 그에게 닥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이보게. 뭐라도 설명이라도 좀.”
“…….”
열의에 불타 행동한 명진이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달래는 명현을 보며 그제야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버릇없게…….”
“아닐세. 허허, 자네의 이런 반응은 십수 년 만에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일세. 아, 아니구먼. 그때 고기 먹고도 그랬군.”
“…….”
명현이 명진을 다독이며 푸근한 미소를 짓자 그가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자, 이제 차근차근 다시 말해 보게. 양의심공을 어찌 달라는 겐가?”
“그것이…….”
명진이 붉어진 얼굴로 진무의 바람과 운공이 밝힌 청무의 이야기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랬군. 양의심공의 후반부에 대한 것은 나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있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니…….”
“알고 계셨던 일입니까?”
“이 사람, 내 아무리 선대에게 정식으로 승계받지 못했다고 하나 무당의 장문인일세.”
명현의 말에 명진은 자신의 행동을 더욱 반성했다.
그가 장문인이 되었을 때, 선대는 이미 그 간악한 혁련무강의 침입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였다.
기나긴 무당의 역사에 유일하게 정식 승계를 받지 못한 장문인이 바로 명현인 것이다.
미처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명진이 다시금 고개를 깊이 숙였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명현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허허거리며 웃었다.
자신의 제자를 아끼는 명진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병중임에도 제자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두고 나선 그가 아니던가?
그를 일대제자로 삼고 싶어 했던 것도, 십계에 대해 항변을 했던 것도, 제자를 청양상단에 보낸 일도, 그리고 표주를 보내 달라 청했던 일도.
모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위엄 가득한 눈빛으로 그가 직접 나서서 의견을 피력한 일이었다.
그가 기력을 찾은 듯하여 도리어 흐뭇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진짜라고 해도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구먼, 백 년도 더 된 일이니.”
“예.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 아이가 무당의 규율 때문에 얻지 못했던 양의심공입니다. 얻을 길이 생겨 표주를 나갔는데 그 또한 얻지 못해 실망할까 걱정됩니다.”
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대대로 양의심공은 무당 장문인에게만 전수되던 무공이 아니던가.
“흠, 하지만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장로 회의를 거쳐서 결정할 일이네.”
“압니다.”
“하나 걱정 말게. 양의심공이야말로 무당을 대표하는 무공이거늘, 익혀도 대성하는 자가 없이 절맥되어 모두가 안타까워하지 않았던가?”
“…….”
“이미 무당은 변하고 있음일세. 그리고 그 변화가 무당을 강하게 만들고 있음이야.”
명현은 진지한 어조로 눈을 빛내었다.
“그 아이, 어쩌면 하늘이 우리 무당에 내려 준 큰 복일세. 모든 것이 그 아이로 시작된 변화지. 그 아이가 더욱 큰 인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나 또한 자네와 다를 바가 없음일세. 회의는 거치되, 만약 장로들이 거부한다면 내 장문인의 독자적인 권한으로 행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장문인.”
“허허, 이 사람.”
명현이 흐뭇하게 웃으면서 명진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말일세. 다음부터는 좀 더 예의를 갖추게. 이제 자네도 번듯한 궁주의 위에 앉았는데 제자들이 욕이라도 할까 저어되네.”
“……예. 주의하겠습니다.”
명현의 주의 아닌 주의에도 명진은 마냥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진무가 돌아오는 날 양의심공을 안겨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참, 청상과 청우의 소식이 왔는데 보겠는가?”
명현이 막 생각난 듯 정무맹에서 도착한 따끈따끈한 서신을 내밀었다.
보낸 이를 보니 청상이었다.
진무와 달리 매번 열흘마다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하니 이 또한 흐뭇했다.
“쯧쯧, 진무 녀석도 이리 소식을 전해 주면 얼마나 좋을꼬. 그 녀석에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가 도움을 받은 문파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들뿐이니…….”
명현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명진이 서둘러 입을 떼었다.
“그러게요. 그게 다 제가 잔정을 보여 주지 못해서…….”
“쯧쯧, 이 사람아. 또 두둔하려는 겐가? 아까운 제자일수록 매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게야.”
“그래도, 그게 전부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라…….”
“허 참, 됐네, 됐어. 이거 뭔 말을 못 하겠구만.”
“…….”
명진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청상이 보낸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둘 다 그 많은 용봉관원들 중 여덟만 뽑는 갑무반에 들어가더니, 이번 시험에서는 청상이 무공으로 일등을 했다는군. 신통도 하지.”
먼저 서신을 읽은 명현의 말에 명진은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청우는 매번 기초 지식에서 낙방한다는구먼.”
“그러게요. 녀석, 좀 더 열심히 하지 않고. 한데 이번에 또 어딘가로 파견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이야. 그 궁에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자세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더구먼.”
“어쨌든 제 몫을 다하며 무당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그리고 청상이 맨 하단에 부끄러운 듯이 써 둔 것을 보게.”
“……예?”
“청상이 탄기를 깨달았다는구먼. 허허헛.”
“타, 탄기를요?”
명현의 말에 명진이 서신을 다시금 자세히 살피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단하군요. 이 또한 진무의 가르침이라니요.”
“그러게나 말일세. 떠나기 전에 깨달음을 일러 주었다 하니, 참으로 대단한 녀석이 아닌가?”
“암요. 암요.”
명진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진무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그리고 그 품에 스승의 선물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 * *
호북성 무한 정무맹.
차라랑.
햇살을 받아 빛나는 검날이 맑은 소리를 내며 횡으로 그어지자, 그 궤적을 따라 마치 산란하듯이 여러 개의 잔상이 생겨난다.
곧게 뻗었다가 빠르게 회수되고, 종횡을 오가며 휘둘러짐에 끊어짐 없이 자유롭고.
구름 밟듯 가벼운 걸음이 더해지자 마치 사방 천지가 검의 잔상에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검무(劍舞)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초식의 향연에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본다.
“합!”
짧은 기합성과 함께 검의 잔상이 하나로 모였다가, 집중된 한 점에서 푸른 선기와 함께 다시 피어났다.
날카로운 검날에 어린 선(仙)의 기운이 허공을 화선지 삼아 노니는 붓처럼 휘고 당겨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니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극이 바닥으로 내려지는 순간 허공에 구름을 그려 놓았던 푸른 선기가 먹구름에 머금어졌던 비처럼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하고.
“차압!”
두 번째 기합성과 함께 자세를 낮추며 두 손으로 당긴 손길을 따라 모든 기운이 빨려들 듯 검극에 모인다.
기운이 뭉쳐지기를 반복해 폭발할 듯 응축되는 순간, 세 번째 기합과 함께 검이 섬광처럼 뻗어져 빛무리를 만들어 냈다.
파아앙!
가죽으로 만든 북이 터지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극점에 달한 검에서 푸른 기운이 검과 연결된 꼬리를 끊어 내고 화살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쩌어엉!
쏘아진 기운이 한 아름 폭의 바위를 뚫고 그 모습을 감추며 거친 소음을 만들고.
콰류류류! 쩌저적! 콰아아앙!
표면의 모든 곳을 뚫고 나온 빛무리와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후우, 후우…….”
초식을 모두 끝낸 검객은 호흡을 가라앉히며 기운을 갈무리했고,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 위에 앉은 이들은 후학을 향한 대견함이었고, 단 아래 있는 자들은 놀람과 감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쁜 표정인 것만은 아니었다.
단 아래 있는 자들 중 일부는 자신보다 성취가 뛰어난 자에 대한 질투와 시기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검객의 이름은 다름 아닌 갑무반 무생, 청상이었다.
짝짝짝!
그의 시연이 끝나자 무당에 있을 때보다 살이 조금 더 찐 듯한 청우가 열심히 손뼉을 쳐 대었고, 제갈산산이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네.”
“예.”
가까이 다가선 용봉관 부관주, 용무 여월협이 어깨를 두들겨 주자 청상이 공손하게 포권을 하면서 물러났다.
갑무반의 대표를 맡은 청상의 검술을 끝으로 용봉관이 준비해 온 모든 시연이 끝났다.
시연이 열린 곳은 다름 아닌 정무맹의 대연무장.
한곳에 수천의 무인들이 자리할 수 있는 곳에 갑을병정으로 나누어진 무생들과 정무맹의 수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해 있었다.
갑무반의 여덟 무생들의 선발이 끝난 지 한 달여 만에 자리가 마련된 것은 모두가 단 위에 앉아 있는 무인들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정무맹의 수뇌라 불리는 장로들과 육대 무단의 수장들조차 자리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용봉관의 부관주인 여월협조차도 그 자리에는 앉을 수가 없었다.
맨 중앙에 앉은 검성 철지량을 비롯해 무풍개 양소방, 검혜 벽운영, 창천 남궁무휴, 광호 팽의방.
다름 아닌 당위와 풍환을 제외한 정무칠성.
절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정무맹이 창설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맹주님! 시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시연을 마친 갑무반의 무인들이 한 줄로 늘어서자, 여월협이 몸을 돌려 단위를 향해 포권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인사를 받은 철지량이 흐뭇한 표정으로 단 아래를 내려다본다.
“모두 고생하였소. 본 맹주는 각 반에서 준비한 시연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소이다.”
철지량의 웅혼한 외침이 사자후처럼 연무장을 채운다.
“이리도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각 반을 맡은 교두들의 노고가 많았음을 알겠소. 모쪼록 다들 준비된 연회를 즐겁게 즐겨 주기 바라오!”
철지량의 치하를 끝으로 시연회는 끝을 맺었고, 용봉관원들은 교두들의 인솔에 따라 반별로 마련된 연회장으로 향했다.
참관을 마친 정무칠성은 따로 안내되어 맹주의 거처 후원에 마련된 연회장에 자리했다.
정무칠성 외에 참가한 이는 용봉관주 등여평과 대군사 제갈협진뿐이었다.
산해진미와 각종 명주가 준비되었으나 모처럼 만난 그들의 자리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모두가 묵묵히 자리에 앉아 굳은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라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거 모처럼 만난 자린데 어찌 이리 다들 어색하시오. 자, 다들 술이라도 한잔합시다.”
참다못한 양소방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너스레를 떨며 웃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나 묻겠소.”
긴 침묵 속에서 맨 처음 입을 뗀 것은 다름 아닌 광호(狂虎) 팽의방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철지량을 대신해 제갈협진이 나섰다.
“용봉관 갑무반의 선발 기준이 뭐요?”
팽의방의 음성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