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후우웅!
뽑아 올렸다.
마치 거목을 뿌리째 뽑아 올리듯이 끌어당긴 진무의 힘을 따라 검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파가가각!
검에서 이어진 푸른 강기가 채찍처럼 휘어져 수직의 반월을 만들고.
쿠아아아!
세상을 갈라놓듯이 쏘아져 나갔다.
서걱!
강기가 복면인을 관통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물살을 거칠게 헤쳐 가르며 날아간 강기가 절벽을 때리며 거센 폭음을 토했다.
쿠르릉! 쩌저저적!
지축이 뒤흔들리고 절벽의 중앙이 갈라졌다.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마치 거인이 도끼로 힘껏 내리친 것처럼 커다란 자국이 만들어졌다.
“구혼탈백검(勾魂奪魄劍) 월망혼(月亡魂).”
진무가 가장 좋아하는 무당의 검공이었다.
일단 이름부터가 너무나도 진무의 취향이었다. 혼백을 아주 그냥 털어 버린다지 않는가.
동귀어진을 펼쳤던 복면인은 진무를 향해 날아오던 그대로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바닥에 피와 내장이 쏟아지고 절단된 뼈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쳇, 그 노인네에 대해 물었어야 했는데. 뭐 상관없지. 나중에 천천히 찾아서 죽이면 되니까.”
진무가 처참하게 죽은 복면인의 시신에서 고개를 돌리는데.
털썩.
털썩.
복면인의 수하들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과 싸우고 있던 등여평 등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가장 먼저 차분히 상황을 파악한 것은 제갈선이었다.
독한 놈, 아니 독한 년이다.
육신이 짓눌리고 갈라져 터진 시신을 보면 토악질을 할 만도 한데 매우 차분한 표정으로 다가가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지(理智)가 제압당했습니다. 이들 모두.”
“뭣이?”
제갈선의 말에 등여평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저들의 눈동자에 초점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말을 한 것은…….”
제갈선이 진무에게 죽은 복면인의 수장을 힐끗 바라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진무가 만들어 놓은 광경은 너무 잔혹했다.
“저자뿐, 나머지는 이제껏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율평, 일단은 이들을 점혈하고 모두 포박하게.”
“예. 대공자!”
“사령들은 지금 즉시 절벽으로 올라가 다른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아라.”
제갈선의 말에 율평을 도와 청우와 청상이 쓰러져 있는 복면인들을 제압해 마차에 준비된 포승줄로 결박했고, 사령들은 절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참으로 희한한 자들이군.”
“예. 이런 자들이 있다는 말은 저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제갈선이 팔짱을 낀 채 손등으로 턱을 괴고 고심하다 청우와 함께 있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
저들이 쫓고 있었으니 무언가 아는 것이 있을 게 분명했다.
“얘야. 혹시…….”
하지만 제갈선은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아, 으, 아으, 으.”
“음.”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경련처럼 몸을 떨고 있다.
단단히 겁에 질려 있는 것이다.
눈동자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고 간신히 내뱉는 목소리로 추측하건대.
‘실어증? 너무 과한 충격을 받은 게로군.’
소녀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
다그친 것은 아니었으나 제갈선은 겁에 질려 있음이 분명한 아이에게 너무 갑작스럽게 묻지 않았나 하며 자책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꼬옥.
무릎을 꿇고 소녀와 눈을 마주친 제갈선은 포근하게 웃으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서로의 고개를 엇갈려 맞대며 등을 어르듯 도닥였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으어…… 아…….”
몇 번이나 참았을 숨이 끝내 토해졌을 때 소녀의 눈에 습막이 차올라 볼을 타고 흘렀다.
“흐읍…… 으앙!”
터져 나오는 울음.
제갈선은 더욱 따스하게 소녀를 안았다.
소녀는 하염없이 울었고 제갈선은 소녀의 얼굴을 당겨 가슴에 파묻게 하고 말없이 등만 다독였다.
“흠, 흠.”
아이의 울음이 너무도 서럽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등여평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진무를 향해 다가갔다.
“제갈가의 소저는 심성도 고운 듯하구먼. 저리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뭐, 그런 것 같기는 했다.
차분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인 줄로만 알았더니 제법 사람의 아픔을 보듬을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구만. 강의 경지를 넘어 탄강, 아니 반월강기라니.”
“…….”
진무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흔적. 절벽을 쪼개 놓은 반월형 강기.
등여평은 그것만으로도 진무의 무위가 입신에 달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다.
무당지검, 진무.
새롭게 등장한 무림의 강자.
“허, 참.”
등여평은 문득 눈앞의 약관의 청년이 앞으로 만들어 갈 역사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길을 어쩌면 자신이 함께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과 흥분이 생겼다.
“험험, 그나저나 자네 손속이 매섭군. 사람을 이리 토막 내 놓은 것은 처음 보네.”
반으로 갈라져 버린 복면인들의 수장.
처참했다.
“백로께서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진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이미 그의 말투와 성격에 익숙해진 백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참, 이들에 대해서 아는 듯하던데?”
등여평이 궁금증을 드러내자 진무가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무풍개께서 아는 눈치였소.”
“무풍개? 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소방 형님과 인연이 있었다 했지?”
형님?
백로와 무풍개가 서로 친분이 있었나?
어쩐지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은 게 비슷하다고 생각했더니.
“뭐, 조금.”
“흠, 하면 단순한 인신매매범은 아니란 말이군. 저 아이의 신변에 흉사를 일으킨 자들을 소방 형님이 쫓고 있다면, 이는 관에 넘길 것이 아니라 필시 맹에 고해야 할 일일세.”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다? 죽은 자들은 그렇다 치고 생포한 자들이 십수 명인데 줄줄이 꿰고 다닐 수는 없으니.”
등여평이 고심으로 미간을 찌푸리는데 소녀를 어느 정도 달랜 제갈선이 다가왔다.
이미 돌아온 사령들에게서 절벽 위에서 더 이상의 적이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보고를 들은 뒤였다.
“이미 의창에서도 열흘 거리입니다. 저희가 맹으로 데려가자면 꽤 먼 거리이니 인근 문파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인근 문파라. 하지만 이곳에 적당한 곳이 있겠는가?”
“개방의 도움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개방?”
“예. 지금 상황으로는 저희 쪽에서 흔적을 쫓아 흉사가 일어난 곳을 찾기에는 무리입니다. 추적술에 능한 개방이 적격이지요.”
“그렇군. 하면 속히 개방으로 가야겠구만.”
“음,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인근에서 제일 큰 형주(荊州)의 개방 분타에 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현장을 조사하자면 꽤 많은 인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고수들의 도움도 필요하구요. 분타에서도 그 정도 인원을 움직이려면 총타의 승인이 필수일 터인데.”
제갈선이 고심을 하다 진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뭐? 왜?”
“아니 무풍개 어른과 연이 있다고 하니 혹시나 개방과도 연을 맺지 않으셨을까 해서 물어보았소.”
이게 어딜 사람을 부려 먹으려고?
“그딴 거 없어.”
진무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리는데.
“저 사형, 혹 전에 무풍개 어른께서 사숙께 주신 징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청우가 조심스럽게 소곤거렸고 청상이 재빨리 진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진무는 제갈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목소리가 작았으니 못 들었겠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징표라니요?”
제갈선이 의아한 눈빛으로 청우를 바라본다. 젠장, 귀도 밝지.
“그게 실은.”
잠깐 청우 너 이 자식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진무가 막기도 전에 청우가 제 머리를 긁으며 입을 뗐다.
“사형, 말 좀 해 주세요. 전에 사숙의 명령으로 그 녹슨 동전을 씻어 오셨잖아요.”
“처, 청우야, 그건.”
청상이 난처해진 눈빛으로 청우와 진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녹슨…… 설마! 협전을 받으신 겁니까!”
제갈선의 외침에 등여평의 눈이 왕방울처럼 휘둥그레졌다.
잘도 알아 처먹는다.
이 여자 도대체 모르는 게 뭘까?
얼마나 똑똑한 거지?
“허! 자네 정말 협전을 받은 겐가? 이런, 내 소방 형님과 그리 친하게 지냈음에도 받지 못한 물건인데.”
망할, 모두가 답을 찾았다는 듯 밝은 얼굴로 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진무와 청상뿐이었다.
어쨌든 협전이라면 개방 분타쯤은 불러들이고도 남겠지. 하지만 진무는 절대로 협전을 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개방의 협전이라니. 더욱이 무풍개 어르신께서 직접 징표로 주셨다니.”
제갈선이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하하핫! 암요! 사숙께서는 저희 무당의 자랑이십니다. 무당의 검이 아닙니까!”
“처, 청우야.”
눈에 띄게 붉으락푸르락해진 진무의 얼굴에 청상이 사색이 되어 말려 보지만.
“그 대단하신 무풍개 어르신께서 연을 맺어 달라 사정까지 하며 주셨다니까요? 하하핫!”
사숙을 향한 칭찬에 한껏 자랑스러워진 청우가 눈치 없이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다.
하아, 이런 망할 놈이.
다시는 청우에게 비밀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겠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제갈선이 의사를 물어 왔다.
“허헛, 이 사람. 당연한 것을 뭘 묻고 있는가?”
당연하다니! 이 노인네야!
어찌 남의 것을 쓰려고 들면서 그렇게 당당한 표정을 하는 게야!
하지만 진무에게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명색이 무당지검이라는 감투까지 썼는데. 보는 눈이 한둘도 아니고.
무당의 체면이라는 게 있지.
“이, 이게…… 도움이…… 되겠어?”
진무는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품에서 작은 동전 하나를 꺼냈다.
어색하게. 최대한 느린 손놀림으로.
안 될 리가 없지만 안 된다고 했으면 좋겠다.
“오오! 정말로 개방의 협전이라니!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군요. 다행입니다.”
양손으로 협전을 받아 든 제갈선이 감탄하고.
“협전이라면 총타의 승인 없이도 형주분타 전체가 옮겨 올 걸세. 암!”
등여평이 확신한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등여평과 제갈선의 놀란 얼굴에 청우가 뿌듯해했다.
저게 진짜, 지 것도 아니면서.
휴, 청우야. 이 우직하지만 모자란 놈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올바른 일이다만…… 너는 아무래도 오늘 생명이 위태로울 것 같구나.
그리고 너는 오룡궁에서도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다.
이 민폐 덩어리 돼지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