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그분은 나와 친구라오 (1)
조손은 북동쪽을 향해 끝없이 이동했다.
충분히 쉬어가며 닷새간 나아간 끝에 강서성과 절강성의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곳의 어느 도시.
한적한 길거리의 노점찻집에서 둘은 마지막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니 좋구나.”
동부무림의 고수들과 조우하기 전에 심신을 최상으로 관리해둘 필요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음료를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턱을 괴고 있던 유설이 따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할배, 근데 풍운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반로환동을 두 번이나 했으니깐, 할배보다 쪼끄맣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근데 그게 왜 궁금해? 만나면 쓰다듬기라도 하려고?”
잠시 상상해 보던 유설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히히. 예뻐해 줘야지.”
“녀석 참. 그나저나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으응? 뭐가?”
유진산은 구름이 낮게 깔린 맑은 하늘을 지그시 응시했다.
“길었던 우리의 여정이 말이다. 앞으로 두 명만 더 꺾는다면, 이제 그녀를 만나게 해주마.”
우선 동부무림의 풍운자와 승부를 겨루고, 그다음으로 대초원의 위대한 전사라는 자와 대결한다.
그다음 마지막 차례는 가문의 원수이자, 정파의 하늘로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무림맹주?”
“오냐. 그 못된 비구니마저 이긴다면, 이제 우리 설이가 무림지존이 되는 게다. 그 어떤 무림인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지.”
“지존이 되면 뭐가 좋아?”
퉁명스럽게 묻는 손녀의 질문에 유진산이 쥐고 있던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뭐가 좋긴? 강호에서 지존은 황제나 다름이 없는 게다. 모든 무림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고한 존재이지. 그리고 그 영광이 우리 가문을 영원히 빛나게 해줄 게다.”
“그리고 또?”
“음. 검후의 당부도 있었잖느냐.”
검후의 얘기가 나오자 손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소소 언니 보고 싶다~ 또 만날 수 있을까?”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게다. 우리한테 부탁할 게 있을 테니까.”
유설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언니가 천축에서 오는 고수들을 같이 막아달라고 하겠지?”
이런 부분까지 유추해낼 줄이야.
나날이 성장하는 손녀의 모습에 유진산의 마음도 뿌듯해졌다.
“그래, 맞다. 이제 네가 세상의 정세를 읽을 줄 아는구나. 정말 대단해.”
“히히히. 언니한테 그곳에 무시무시한 애들이 많다고 들었거든. 근데 맹주한테 먼저 복수해도 돼?”
손녀의 질문에 유진산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 거기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더냐?”
사실 유진산도 계속 고민해오던 부분이었다.
천축에 맞서 싸우려면 최대한 많은 고수가 필요할 터.
하지만 가문의 원수를 언제까지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만큼은 생각만 해도 당장에 찢어 죽이고 싶었으니까.
어쨌거나 손녀 또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움이 끝이 없었다.
“나도 다 알아. 맹주가 먼저 죽으면 천축이랑 싸울 때 불리하잖아.”
“그동안 할애비가 설이를 과소평가했구나. 그래서 그 못된 비구니를 만나면 어떻게 하고 싶으냐.”
그 순간 유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눈에도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나랑 둘 중 하나는 죽어야지.”
손녀가 죽는단 얘기를 하자 유진산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껏 대적할 자가 없는 천하무적의 손녀였기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었다.
“이 녀석, 죽긴 누가 죽는단 말이냐? 할애비 앞에서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다.”
유설이 딴청을 피우며 곁눈질로 할아버지를 쓱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은근슬쩍 물었다.
“……그럼 나 죽지 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만약 네가 없으면, 할애비도 따라서 죽을 거다.”
“흠. 근데 그게 무슨 소리야~ 둘 중 한 명이 죽을 거라고 했지, 내가 죽는다고는 안 그랬잖아.”
그때 유진산은 손녀의 얼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아주 순간적이었지만, 분명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틀림없이 자신을 놀린 것이리라.
“어휴. 다신 그런 말장난 하지 말거라. 어쨌거나 네 의견은 천축보다 부모님의 복수가 우선이라는 게지?”
“응, 걱정하지 마. 맹주의 몫만큼 내가 더 강해지면 되니깐. 자신 있다구~”
유설이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며, 힘을 과시했다.
아까와는 달리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유진산은 그런 손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 그래. 할애비의 고민을 설이가 명확히 정리해주었구나.”
그때 거리를 두리번거리던 손녀가 은근슬쩍 물어왔다.
“할배, 내가 옷 사줄까?”
그러고 보니 남부에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이 지역의 그 누구도 이토록 짧고,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왜? 할애비가 이렇게 입고 있어서 창피해?”
“아니, 여기는 다 긴 옷을 입잖아. 나 아직 돈도 많이 남았어~”
“아무거나 입으면 되지 뭐. 봇짐에 있는 거 꺼내입으면 돼.”
유진산은 관심 없다는 듯 왼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그 틈에 손녀에게 팔목을 붙잡히고야 말았다.
“아니야, 빨리 가자. 내가 예쁜 거 골라줄게.”
유진산은 손녀의 힘에 못 이겨 시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별로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에게 결정의 권한은 없었다.
“괜, 괜찮대도…….”
* * *
금화현은 절강성에서도 무림인들이 특히 붐비는 지역이다.
그러나 요즘은 몇 배나 더 시끌벅적했다. 최근 새로운 화젯거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도 봉화객잔(奉化客棧)에는 어김없이 무림인들로 가득했다.
일 층에 마련된 여섯 개의 탁상이 모두 만석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그들은 새로운 소식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음양쌍괴란 자들이 곧 이곳에 도착한다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잘 들어봐. 내가 어제 새롭게 들은 얘기가 있어.”
“뭔데? 빨리 말해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잠시 후 검붉은 경장 차림의 무림인이 맞은편의 인물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음괴가 절대강자들의 머리를 다 깨부수면서 오는 건 알고 있지? 풍운자 어르신이랑 싸우기 위해서.”
“나도 그건 들었지. 남부무림의 최강자도 죽었다며.”
“근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장난이 아니더라고. 종남파와 아미파가 당했고, 당문의 고수들도 무너졌대.”
그 순간 객잔 안이 다시 술렁거렸다.
조금 전 거론된 세력들이 어디인가. 정파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구대문파 중 두 곳이었으며, 나머지 한 곳도 중원에서 위세가 대단한 가문이었다.
“에이~ 고작 두 명한테?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역시나 다들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 전까지는.
“모두 사실이오! 내가 음괴 대협께 직접 들은 얘기니까.”
남부지역의 옷차림을 차려입은 검객으로, 이 객잔에서 유일하게 혼자 온 손님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분을 직접 만났다는 얘기요?”
“그렇소. 사실 음괴 대협은 나랑 친구 관계라오. 남부에서는 며칠 동안 같은 객잔에서 지냈소. 식사도 두 번이나 함께 했고.”
“그 말이 정말 사실이오? 어떤 인물이었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남부의 무림인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적들에게는 야차나 다름없지만, 나와 같은 친구에게는 자비롭고 관대하신 분이오. 그러니 알아서들 처신을 잘한다면, 피해가 없을 거외다.”
그를 바라보던 무림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속닥거렸다.
“정말 친구 맞소?”
“아닌 것 같은데?”
이내 하나둘씩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그를 그저 허풍쟁이라 생각한 것이다.
“내 경고를 명심하시오. 그분이 마음만 먹는다면, 손짓 한 번에 이 객잔 안의 모두가 목이 잘릴 수도 있으니까.”
“어허. 그건 너무 과장된 거 아니오? 형씨는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소?”
분위기가 싸늘해지려 하자 누군가가 중재를 하고 나섰다.
“자자, 다들 신경 쓰지 말고 술이나 마십시다! 남부인들은 원래 허풍이 심하니 신경 쓸 것 없수다.”
남부에서 온 무림인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었기에 증명해 보일 방도가 없었다.
구석에서 조용히 술잔이나 기울일 수밖에.
‘빌어먹을 놈들. 기껏 조언을 해줬더니 나를 무시해?’
절강성의 무림인들은 다시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둘의 싸움이 정말 궁금하긴 하네. 아마도 세기의 대결이 될 텐데.”
“어쨌거나 풍운자 어르신이 이기겠지?”
“당연하지. 제아무리 음괴가 대단하다고 한들, 어르신한텐 일초지적도 안 돼.”
“아마 제자분이 나서도 상대가 안 될 것이오.”
“암, 그렇고말고. 소요산장의 장주님이시라면, 음양쌍괴 두 놈을 동시에도 상대할 수 있을 거요.”
그들의 대화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타앙-!
누군가가 식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헛소리들 마시오! 음괴 대협을 직접 본다면 다들 생각이 달라질 것이오.”
자신이 남부에서 왔다고 말한 무림인이었다.
그는 몹시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전의 대화 내용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도발에 동부의 무림인들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 이 사람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미친 거요, 형씨? 한 번만 더 입을 나불거렸다간 참지 않겠소.”
“그리고 우리는 남부의 촌놈들처럼 약하지 않아!”
오히려 망신만 당한 남부인이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것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계속 나댔다간 몹쓸 꼴을 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푸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소? 남부인들은 겁쟁이라니까.”
“형씨, 그렇게 계속 찌그러져 있으쇼. 혀를 잘못 놀렸다가 다치지 말고.”
객잔 안이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한편 남부의 무림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곳에 남아있어 봐야 조롱만 당할 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점소이를 불렀다. 이어서 계산을 마치려는 그때.
돌연 객잔의 문이 벌컥 열렸다.
콰앙-!
갑자기 객잔 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입구에서 단창을 움켜쥔 한 쌍의 꼬마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곳을 떠들썩하게 했던 음양쌍괴의 인상착의와 정확히 일치했다.
“천일호 아저씨~ 왜 여기 있어요?”
유설이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남부의 무림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음괴를 마주하게 된 천일호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음, 음괴 대협. 제 이름을 기억하신 겁니까?”
“당연하죠~ 우린 친구잖아요. 자리가 하나도 없는데, 같이 앉아도 돼요?”
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음양쌍괴가 그의 좌우에서 의자를 빼고 합석했다.
모두가 그 모습을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음괴 대협.”
“나두요. 근데 아저씨는 왜 이 먼 곳까지 왔어요?”
죽어가던 천일호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대협께서 풍운자를 때려눕히는 걸 구경하러 온 겁니다.”
그 순간 객잔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기어코 그가 절강성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사방에서 뿜어지는 지독한 살기는 점소이를 뒷걸음질 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설의 손짓 한 번에 그들의 기운이 전부 증발해 버렸으니까.
“알았어요. 내가 구경시켜 줄게요.”
말이 끝나는 순간, 돌연 주변의 무림인들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호흡이 가빠오는지 거친 숨까지 몰아쉬는 모습이었다.
음괴가 뿜어낸 압도적인 위압에 짓눌린 것이다.
몇몇 무림인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
“으윽.”
사실 유설도 객잔에 들어오기 전에 이곳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눈치챈 상태였다. 그렇기에 조금 혼을 내주려는 것뿐이었다.
이곳에서 멀쩡한 자는 유진산과 천일호뿐이었다.
곧이어 천일호도 지금의 상황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모두가 음괴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돌연 그가 갑자기 턱을 높이 치켜들며, 사방을 쓱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큰 목소리로 물었다.
“왜 다들 조용하오? 조금 전에 했던 말들 좀 다시 해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