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62
웰컴 투 NBA 162화
#162. 말 한마디에
NCAA가 3월의 광란으로 한창 떠들썩할 시기.
NBA는 농구 외적인 문제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FOX 뉴스 앵커. NBA 슈퍼스타 공개 저격. ‘르브론, KD. 입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아. 드디어 올 것이 왔네.”
“으응?”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신시아가 내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Shut up and dribble 사건 말이야?”
“응. 언젠가는 NBA가 이 문제에 한 번쯤 단단히 엮일 것 같았거든.”
“흐응…… 하긴. 농구는 4대 스포츠 중 흑인 선수의 비율이 가장 높은 종목이니까.”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평소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해 온 르브론 제임스.
그는 자신이 ‘운동 선수 그 이상(More than Athlete)’임을 표방하며, 총기 규제, 흑인 권익 향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정치적 의견을 내며 흑인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르브론을 필두로 많은 NBA 선수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노선에 반대를 표명했고.
트럼프 행정부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흑인 선수들의 행동이 눈꼴사납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르브론. 우린 고무공이나 튕기는 일을 하며 연봉 10억 달러를 받는 사람의 정치적 식견에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입 다물고 드리블이나 하면 어떨까요? 당신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대통령은 과반수의 국민이 그들의 코치로 선택한 사람이니까요.]보수 성향의 의 백인 여성 진행자가 ‘머리가 텅 빈’ NBA 선수들이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조롱하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워리어스는 올해도 백악관 방문을 거부했다며?”
“응. 대신 흑인 인권 역사박물관에 방문할 예정이라더라.”
“우와…… 그건 대놓고 싸우자는 거잖아.”
혀를 내두르는 신시아.
지난 시즌의 NBA 챔피언이 백악관에 초청되어 미국 대통령과 시간을 갖는 것은 NBA의 오랜 전통이자 자랑거리다.
그러나 워리어스는 2년 연속으로 백악관 방문을 거절하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립각을 착착 쌓아 나가고 있었다.
“자기도 공개적으로 의사 표명을 할 거야?”
“내가? 왜?”
“자기도 일단은 사회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입장이잖아? 물론 나야 자기가 그런 문제에 엮이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아마 언론이 얌전히 놔두질 않을걸?”
“엄밀히 말하면 난 미국인도 아닌데 말이야.”
“어머, 자기야. 그런 걸 기자들이 신경이나 쓸 것 같아? 여긴 미국이라구. 표현의 자유가 선동과 날조의 자유와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는 곳이지.”
“끄응…….”
역시 그렇게 되려나?
나는 운전대를 꺾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동양인 운동선수가 되어 버린 이상, 나는 좋건 싫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동양계는 누구 편을 들건 여전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일 수밖에 없다는 거지.”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소수파는 어느 쪽 편을 들어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 반대쪽이 적이 되어 버리는데, 소수파의 체급으로는 그 여파가 감당이 안 되니까. 그렇다고 그쪽에서 우릴 보호해 줄 것도 아닐 테고.”
“……아항.”
납득한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흑인 커뮤니티의 의견에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음 날 미국 초등학교의 어떤 동양인 소년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반대로 ‘내가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만으로 집단 린치를 당할 수도 있고.
“일종의 가불기라니까? 답이 없어요.”
“그것도 그렇겠다. 한국 본토에서는 의견이 어때?”
“한국? 한국에서 운동 선수가 정치적 의견을 내는 건 사회적 자살이나 다름없어. 국민의 최소 절반은 적이 된다는 소리니까.”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50%의 지지만 얻어도 잘 먹고 잘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유X석, 강X동도 무사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NBA의 모든 현안을 블랙홀처럼 잡아먹고 있는 주제답게, 리그의 대표적인 동양계 선수인 내게도 정치적인 질문이 집중되었다.
찰칵찰칵!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자들이 몰려든다.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개떼처럼 몰려왔네.’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베드 엔딩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
그런 상황에서 내가 취한 전략은…….
“킴! 혹시 소수 인종의 정당한 권익 보장을 위해 지금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생각은 없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철저한 외면.
즉, 모르쇠 전략이었다.
“킴, 최근 FOX 뉴스 앵커의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외국인인 제가 미국 사회의 문제에 함부로 의견을 내는 건 적절치 못한 일 같네요.”
“외국인의 눈으로 본 미국 사회의 모습이 어떤지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네. 그건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게 여쭤보시면 되겠네요.”
“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아 몰라요. 몰라.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제가 뭘 알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코멘트를 얻어 내려는 하이에나들.
그러나 나는 PR 담당자와 신시아에게 코칭받은 대로 철저한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짜증이 솟구치는지, 한 기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친다.
“킴! 자꾸 그러지 말고 한마디만 해 주시죠!”
“내일 OKC전에서 꼭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응원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꾸벅.
‘동양인답게’ 정중히 고개를 90도로 숙이자, 기자들은 더 이상은 답을 추궁하지 못했다.
나는 이런 문제를 철저히 차단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아시아 머니를 끌어들이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고 있지만.
‘홍콩 사태가 벌어지면 난 양쪽에서 정치적인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거든.’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는 이미지를 미리미리 형성해 둘 필요가 있었다.
‘꼭 그게 아니라도 이 문제엔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본심을 말하자면, 난 NBA의 정치 세력화에 반대하는 입장이거든.
물론 운동 선수들이 진짜로 ‘모든’ 인권 문제에 대해 사회적 투쟁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건 리스펙할 수 있다.
‘문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거지.’
남들이 다 같이 욕하는 사람을 덩달아 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진정으로 more than athlete를 자처하고 싶다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상황에서도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강자에게 맞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 ‘진짜’ 사회 운동가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거고.
나?
난 차이나 머니가 무서운 슈퍼 겁쟁이라서 그런 용감한 발언은 못 하겠다.
‘그러니까 공평하게 이쪽 인권 문제에도 입을 닫아야지.’
그러니까 나 같은 외노자한테 자꾸 복잡한 정치 이야기 꺼내지 말라고.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시. 오케이?
그런 문제보다 난 내일 경기에서 어떻게 이겨야 할지가 더 걱정이었다.
“OKC…… 역시 장난이 아니네.”
덜컹!
훈련장에서는 내일 경기에 대비한 팀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날 발견한 CJ 맥컬럼이 손짓했다.
“킴, 이쪽이야.”
“좀 어떤 것 같아요?”
“글쎄. 릴라드가 없는 게 아쉽지만…… 홈경기니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지.”
러셀 웨스트브룩, 폴 조지, 카멜로 앤서니의 Big-3를 결성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즈.
시즌 초에는 조직력 문제에 시달리며 이게 어딜 봐서 Big-3냐는 조롱을 들었지만.
팀 내 노선이 정리된 지금은 연승 가도를 달리며 무서운 기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최근 10경기 전적이 7승 3패였지?”
“예. 그것도 3패를 당한 건 워리어스, 캐벌리어스, 로키츠가 상대였어요.”
OKC는 천재 단장, 샘 프레스티가 이끄는 작지만 강한 프랜차이즈다.
한적한 시골인 오클라호마에 위치한 팀이지만.
한때는 케빈 듀란트,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이라는 MVP 선수 셋을 연달아 드래프트할 정도로 귀신같은 안목의 프런트를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듀란트는 OKC의 전신인 시애틀 슈퍼소닉스 출신이지만.’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강팀이기도 하다.
나는 OKC와의 재대결을 고대하고 있었다.
OKC와 맞붙는 건 이번이 세 번째지만, 지난 두 번의 맞대결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거든.
‘1차전에선 OKC의 상태가 워낙 막장이어서 우리가 쉬운 승리를 거뒀고, 2차전에선 내가 경기를 말아먹었지.’
1차전 당시의 나는 릴라드, 맥컬럼, 너키치에 이은 공동 3옵션에 불과했던지라, 경기 내용에선 딱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2차전은 유타 재즈전에서 인생 경기를 펼친 반작용.
그리고 백투백 원정 경기였던 탓인지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 말았고.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우리는 내일 경기를 단단히 준비해 왔으니까.
“내일은 오랜만의 전국 중계지?”
“네. TNT라더라고요.”
“방송사도 놓치기 싫겠지. 사실상 내일 경기가 서부 3위 결정전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오랜만의 전국 중계에 우리 선수단의 의욕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March 10, 2018
Moda Center, Portland, Oregon.
[경기 전 기자회견] [To : Sion Kim] [Q. OKC와의 재대결인데, 경기를 앞둔 소감을 말해 달라.] [A. 떨리죠. 지난 시즌 MVP인 ‘Mr. 트리플 더블’ 러셀 웨스트브룩,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 중 하나인 ‘PG13’ 폴 조지와의 대결이잖아요? 지난 경기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Q. 릴라드가 결장하게 된 게 아쉽다. 완전한 전력끼리 맞붙었다면 시즌 하반기를 대표하는 명승부가 되었을 텐데.] [A. 데임의 공백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패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우리의 홈에서 맞붙는 거고, 장미 정원에서 우린 어떤 팀을 상대하더라도 승리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Q. 올스타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한 단계 스탭업한 게 느껴진다. 팀을 이끈다는 의미에서도 책임이 막중할 것 같은데.] [A. 딱히 제가 팀을 이끈다는 느낌은 없는데요? 그건 맥컬럼, 아미누, 너키치 같은 베테랑의 역할이겠죠. 그래도 팀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겨 준다는 건 기쁜 일입니다. 그만큼 동료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역시 완장은 일단 달고 볼 일이네요.]폴 조지와 카멜로 앤서니는 두 번째 삶에서 내 플레이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선수들이다.
여기에 ‘The 농구’ 러셀 웨스트브룩까지 있으니.
‘매력적인 팀이지.’
나는 OKC와의 선의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두 팀 사이에 별다른 악연이 없을 시기였으니 -아직 플레이오프에서 BAD SHOT 논쟁이 터지기 전이다- 더더욱.
따라서 내가 러셀 웨스트브룩, 폴 조지만 언급하고 카멜로 앤서니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건, 딱히 멜로를 ‘거를’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보니 언급하지 않은 것뿐이지.’
무의식적으로 내일 경기는 맥컬럼 vs 웨스트브룩. 나 vs 폴 조지의 맞대결 구도로 흘러가리라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최근 내 비협조적인 인터뷰 태도에 뿔이 난 어떤 기레기 하나가 떡밥을 생성하기 위해 대하소설 한 편을 쓰고 말았던 것.
[경기 전 기자회견] [To. Carmello Anthony] [Q. 카멜로, 이번에 시온 킴이 OKC전을 앞두고 한 인터뷰 내용, 들으셨나요?] [A. 그 루키 말입니까? 아뇨. 못 들었습니다. 왜요?] [Q. 지금 OKC에서 경계할 만한 선수는 웨스트브룩과 폴 조지뿐이라더군요. OKC에 올스타는 그 둘뿐이지 않느냐고.] [A ……그런 소리를 했다고요?] [Q. 뭐, 워딩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였습니다.]그리고 이번 시즌 내내 끔찍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언론의 등쌀에 시달리던 멜로가 그 발언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A. 가소롭네요. 지난 경기의 결과를 싹 잊었나본데, 뭐…… 좋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루키에게 알려 주도록 하죠. 감히 내게 건방을 떤 대가를.] [(속보) 카멜로 앤서니. 루키의 도발에 분노! ‘녀석에게 겸손을 알려 주겠다.’] [시온 킴, 카멜로 앤서니는 더 이상 경계 대상 아니다? ‘OKC에서 주의해야 할 건 웨스트브룩과 폴 조지 뿐.’] [SAS, 시온 킴의 의견에 동의. 지금의 OKC는 BIG-3가 아닌 BIG-2…… 멜로는 더 이상 올스타 레벨의 선수 아냐.] [OKC는 과연 BIG-3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루키가 쏘아 올린 뜨거운 논쟁거리.]“……아니 X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나는 뉴스란을 읽으며 골머리를 부여잡았다.
OKC 대 블레이저스.
내가 본의 아니게 쏘아 올린 장대한 라이벌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