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93)
순식간에 스물이 열셋까지 줄었다.
사냥조장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이성민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오판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민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고수임은 알았으나, 사냥조원의 합공을 저렇게 쉽게 받아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냥조장을 포함한 이 숲의 사냥조는 전부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이다.
이 숲을 나가지는 않지만, 만약 숲을 나간다면 어지간한 대문파를 오시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있는데…….
상대가 안 된다.
이성민의 표정은 평온했다.
살의는 보이지 않는다. 살의를 내비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 자들이고, 죽고 싶지 않으니까, 죽어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쪽이 죽일 뿐이다.
그러한 행동과 마음가짐에 살의는 필요 없다.
광천마, 루비아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는 표출하지 않고 조용히 넣어두었던 일그러짐이, 다시 혼자가 되면서 드러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굴복시켜 둔 인외성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성민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주저할 생각은 없었다.
권존을 죽이려면 이 숲의 엘프와 대적해야만 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면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는 없다. 살려둬 봤자 엘프들은 이성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엘프들은 열셋. 모두 죽인다면 검존이 올까? 아니면 다른 엘프들이 올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모두 죽이면 될 뿐.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노라면, 계속된 살육에 엘프들이 겁을 먹고 알아서 권존을 바치는 것인데.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조장님.”
사냥조원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냥조장을 불렀다.
사냥조장은 말없이 이성민을 노려보았다. 초절정의 고수라고는 하여도, 사냥조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경험의 부족이다. 사냥조장을 포함한 사냥조 전원은 이 숲에서 태어나, 이 숲을 나가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권존은 유일한 스승이었다. 비무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무 상대로 권존은 너무나도 강했고, 엘프가 가진 강한 동족애는 사냥조원들끼리의 비무에서 손속에 너무 자비를 갖게 만들었다.
물론 여태까지 이 숲을 습격해 온 자들을 사냥할 적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단점이 되지 않았다.
노예 사냥꾼들이 고용한 용병이라고 해봐야 그저 그런 마법사와 그저 그런 용병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절정 고수만 되어도 용병계에서는 S급으로 취급되고,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면 SSS급의 최고 등급을 받는다.
노예 사냥꾼들이 고용하는 용병은 S급도 안 되는 일류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그런 질 낮은 하수들을 상대하는 데 경험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똑같은 초절정의 경지라도 급수는 크게 나뉘지만, 경험이 많다면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는 있다.
[익힌 무공이 아까운 연놈들이군.]허주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에 대해서는 이성민도 공감했다. 사냥조들. 도달한 경지는 꽤 높았으나 사용하는 것이 형편없다.
빠른 움직임, 날카로운 감각, 위력적인 공격. 그럼에도 빈틈투성이다. 싸움이 쉬웠다.
틈이 보이면 찌르면 된다. 그것으로 끝난다. 놈들 나름대로는 허초를 섞어 가며 변화를 만들었겠지만, 이성민이 선 위치에서 내려 본다면 놈들이 만드는 변화는 조잡할 뿐이다.
“열셋.”
이성민은 다시 중얼거렸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내공과 요기가 일렁거리며 이성민의 몸을 감쌌다.
늑대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사냥조원들은 창백한 얼굴로 이성민을 바라보았다. 후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이 숲의 사냥조였고, 영역을 침범하여 동족을 죽인 이성민을 죽여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사슬로는 잡을 수 없다. 석궁의 화살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맨몸으로 덤빌 수밖에. 사냥조장을 포함한 모든 사냥조원이 이성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련한 놈들.]허주가 껄껄 웃었다. 마침 딱 좋았다. 열두 명의 초절정 고수와 싸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요력과 내공이 제대로 조율되고서 이렇게 싸워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성민은 발을 앞으로 뻗었다.
무영탈혼은 묵섬광 백소고가 사용하는 유일한 무공이다. 그것은 견줄 것이 적은 뛰어난 보법이었고, 보법이기는 하지만 발재간이 전부는 아니다.
일보무흔은 최고경지의 이형환위다. 잔상을 만들어 상대의 눈을 속이고 공격을 피한다.
일보무영은 수십의 잔상을 만든다. 이보겁살은 걸음과 동시에 강기를 폭사하여 걸음이 나아가는 방향에 강기를 쏟아낸다. 이보유련은 몸을 침범하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을 흩어지게 만든다.
무영탈혼의 진가는 오식부터다. 삼보필살. 하나, 둘, 셋. 고작해야 세 걸음. 그러나 그 세 걸음이 모두 나아갔을 때, 삼보필살은 그 이름대로 필살의 공격이 된다.
한 걸음으로 강기를 부풀리고 두 걸음으로 주변 공간을 장악하고 세 걸음으로 강기를 폭발시킨다.
피할 수 없다. 이성민이 세 걸음을 걸었을 때 그의 근처에는 두 명의 사냥조원이 주먹을 뻗고 있었다. 위험하다, 라는 육감의 경고가 전해졌을 때는 이미 피할 수가 없다.
콰아아앙!
이성민을 중심으로 자색의 강기가 휘몰아쳤다. 휘말린 엘프의 몸뚱이가 분해되면서 피를 흩뿌린다.
창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삼보필살의 위력은 요력이 더해져 더욱 강했다. 열하나. 이성민은 연이어 발을 뻗었다. 현실에서는 사용해 본 적 없었던 무영탈혼의 육식이 펼쳐졌다.
사보광란(四步狂瀾).
폭발했던 강기의 흐름이 뒤틀린다. 삼보필살에서 한 걸음을 걷는 것으로 사보광란이 완성된다.
걸음만으로 폭풍을 만들어낸다. 이성민은 폭풍의 주인이 되어 강기의 폭풍을 휘둘렀다.
땅가죽이 뒤집히고 대기가 진동했다. 휘말린 세 명의 엘프가 죽었다. 남은 사냥조원은 고작해야 일곱이었다.
“아아악!”
절규 같은 비명이 울렸다.
크앙!
늑대는 겁에 질렸지만 호랑이는 겁에 질리지 않았다.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으며 이성민을 향해 뛰어들었다. 휘몰아치던 사보광란의 폭풍이 호랑이를 덮쳤다. 당연히, 호랑이는 죽었다.
“마을로!”
사냥조장이 고함을 질렀다. 살아남은 사냥조원들에게 향하는 외침이었다.
막을 수 없다.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함께 죽는 것은커녕 몰살당할 뿐이다. 그 뜻을 이해한 사냥조원들이 몸을 날렸다.
저주를 유지하는 권존을 부를 수는 없었으나, 검존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이성민은 사냥조원들이 몸을 빼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저들이 마을에 도움을 청해야만 권존이나 검존이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안 가나?”
이성민은 움직이지 않고 이쪽을 노려보는 사냥조장을 보며 물었다. 사냥조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말수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두 개의 단검을 내려 보았다.
“……후욱.”
숨을 마심과 동시에, 사냥조장은 단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단검의 칼날이 요동쳤다. 단검은 건틀렛이 되어 사냥조장의 양손을 감쌌다.
이성민은 성급히 달려들지 않는 사냥조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하다. 그것은 알고 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 수준은 이미 우습게 넘어섰다.
‘예전에는 구파일방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면 구파일방이라 으스대는 이들도, 명문세가라는 이들도 하찮게 보였다.
사냥조장이 먼저 달려들었다. 이성민은 창을 휘두르지 않고 발을 들었다. 순식간에 밟은 이보겁살이 사냥조장을 덮쳤다. 사냥조장은 피하지 않고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그녀를 덮치던 강기의 파도가, 그녀의 양손에 ‘잡혔다.’ 그러고는 사냥조장이 손을 움직이는 방향대로 찢겼다.
[오.]허주가 놀란 소리를 냈다. 이성민도 처음 보는 현상에 놀랐지만, 파고드는 사냥조장을 노리고 창을 움직였다.
푸확!
구천무극창에서 가장 빠른 절명섬이 사냥조장을 노렸다. 사냥조장은 급히 오른손을 움직여 절명섬의 궤적을 향해 집어넣었다.
손째로 꿰뚫을 수 있다. 이성민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쩌엉!
생각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사냥조장의 몸이 충격에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절명섬을 막은 그녀의 손은 뚫리지 않았다.
[용의 비늘이다.]허주가 말했다.
[이 몸이 용을 사냥했을 때가 떠오르는군. 어지간한 공격도 비늘로 다 튕겨내서 꽤 귀찮았었어.]‘저게 용의 비늘이라고?’
“그 건틀렛.”
이성민은 사냥조장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보이는데. 어디서 난 거냐?”
사냥조장은 답하지 않았다. 이성민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성민도 드래곤의 비늘과 뼈, 이빨은 넘치도록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공할 방법이 없어서 아공간 포켓에 박아두고 있다.
[제압해서 물어봐라. 어디서 났는지 말이야.]‘그럴 생각이야.’
창이 움직인다. 수십 개로 분영한 창이 사냥조장을 덮쳤다. 아까 전에는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야 아까 전과 지금 휘두르는 창은 불어넣은 힘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육감에 의존하여 최대한 방어를 취해 보지만 사냥조장의 몸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창이 찌르는 것이 더 빠르다.
그렇기에 거리가 잡히지 않는다. 타격하기 위해서는 파고들어야 하는데, 쉬지 않고 찌르고 휘둘러 때리는 창이 파고들게끔 만들어주지 않는다.
드래곤 비늘로 만든 건틀렛 덕에 치명상은 방어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가랑비가 몸을 적시듯이 사냥조장의 몸에는 상처가 늘고 있다. 이성민이 의도한 대로였다.
우선 지쳐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에 차분히 건틀렛에 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쉽지는 않겠군.’
이성민은 작게 혀를 찼다. 사냥조장과 싸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창로가 비틀린다. 사냥조장은 갑자기 비틀린 궤적에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성민의 창이 사냥조장의 다리를 꿰뚫기 전에. 무형의 참격이 이성민의 창과 충돌했다.
“그 아이는 권존의 딸이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성민은 사냥조장의 얼굴을 한 번 힐긋 보고서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짧게 자른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이성민을 응시하고 있었다.
“엘프는 번식이 힘들어. 권존도 아마…… 앞으로 더 자식을 볼 수 없겠지. 그래서 죽게 두고 싶지는 않구나.”
“검존?”
“그래.”
검존은 사냥조장을 힐긋 보았다.
사냥조장은 굴욕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엘프의 문제에 인간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는데, 가진 능력이 부족하여 이렇게 되어버렸다.
“권존에게로 돌아가라.”
검존이 사냥조장에게 말했다. 그녀는 뭐라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생각했던 반발을 입에 담기도 전에 싸늘한 살의가 사냥조장을 덮쳤다.
반론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사냥조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방해된다.”
검존이 내뱉었다. 이성민도 더 이상 사냥조장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검존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뭐냐?”
“이성민.”
“이성민…… 그래. 네 별호가 귀창이었지. 들어 본 적은 있다. 네가 위지호연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던 아이였지?”
“너는 암존보다 강한가?”
이성민이 불쑥 물었다. 검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암존은 뛰어난 무인이다. 강해.”
“너보다는?”
“서로 죽일 마음으로 싸운다면 아마 팔 할로 내가 이기겠지.”
“권존과는?”
“구 할.”
위지호연에게 이야기를 들었었다. 권존과 몇 날 며칠을 싸웠으나 이기지는 못했다고.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검존은 그런 권존을 상대로 구 할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즉, 검존은. 권존과 싸웠을 적의 위지호연보다 강하다.
“광천마 벽원패.”
이성민은 창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지. 잊을 만한 실력을 가진 무인은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잊을 만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도 아니었다.”
검존은 대답과 함께 허리에 건 검을 뽑았다.
“아마 10년 전이었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았다만, 10년이 지났음에도 광천마는 초월지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암존과 싸웠을 적에 광천마와 함께 싸웠었지? 광천마는 어디에 있나?”
“죽었다.”
이성민이 대답했다. 그 대답과 검존의 말을 들으면서. 이성민의 가슴 속에서는 어떤 감정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 끝내 초월지경에 도달하지는 못했군. 그럴 줄 알았다면 10년 전에 죽였을 텐데.”
검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에 쥔 검을 힐긋 내려 보았다.
들끓던 감정이 진해졌다.
“그보다…… 너는 놀랍구나. 암존에게 듣기는 했지만, 너라면 머지않아 초월지경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 원래라면 나는 너와 싸우되,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초월지경의 가능성이 있다면 죽이는 것은 아까운 일이고, 천외천에 들어오게 하겠지. 하지만 네가 천외천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아.”
“맞아.”
“게다가 네가 사용하는 힘도 미심쩍어. 요마의 힘을 사용한다지? 네가 도달한 경지가 순수하게 네 노력에 의한 것인지도 아닐 것 같고. 내가 널 살려 둘 이유는 없을 것 같구나.”
“암존도 그렇지만.”
이성민이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너희 육존자는 참…… 오만하구나.”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을 뿐이다. 네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겠지만, 아직 내가 있는 위치까지는 오지 못했어.”
검존이 검을 들어 올렸다.
“믿지 못하겠다면 증명해 주도록 하마. 영매가 말한, 권존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바로 널 말하는 것일 테니까. 천외천에 들어올 생각도 없고, 요마의 힘까지 사용하는 이상 나는 네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해.”
자하신공이 운용되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혈환신마공의 강기가 창을 휘감았다.
“광천마 벽원패의 무공이 무엇인지는 기억하냐?”
“아니.”
검존은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말하지 않았느냐.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
“혈환신마공.”
창을 휘감은 강기가 창끝에 모였다.
“혈환신마공이다.”
들끓는 감정.
살의가 날카롭게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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