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ways to be different from a tyrant RAW novel - Chapter 96
108화-
연분홍색 눈에 회색 하늘이 비쳤 다.
‘비가 오려나.’
깜박깜박.
몽롱하게 하늘로 향해 있던 눈동 자가 이내 정면을 향했다.
“가만 있자. 여기가……/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추임새를 넣 으며 그가 지도를 펼쳐 들었다.
한발 앞서 호수로 향한 길.
“아. 여기서 하루 보내야겠네.”
그가 있는 곳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리는 영지, 헤르반.
사실 여길 지날 것을 예상하지 못 한 것이 아님에도, 그는 비를 막을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
필요가 없었으니까.
습기는 그를 침범하지 못한다.
-여긴 나와 상성이 좋지 못하단 말이다. 빨리 지나가 버려. 이러라 고 준 능력이거늘.
“그게 그러라고 준 능력이 아니었 을 텐데……?
-시끄럽다.
전보다 더 자주 깨어 있게 된 그 의 신이 바르샤를 보챘다.
그가 종속되어 있는 신은 태양의 속성을 띠고 있어서인지 비를 좋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바르샤가 우산 같은 걸 들 고 다니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 지역의 비 오는 광경은 보고 싶었는데.”
헤르반의 비는 부슬비였다.
그저 세상을 끊임없이 적시기만 하는 비.
상냥한 비라서 그런가.
그 비를 맞을 때만 꽃을 피우는 신기한 약초가 있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라니. 약초꾼 에게 이건 너무 잔인한 일인데….”
아쉬움이 옅게 어린 목소리에 신 이 또 오두방정을 떨었다.
-잔말 말고! 어서……
그 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바
르샤는 생각했다.
‘그 약초가 있으면 애들한테 도움 이 될 텐데.’
스칼렛과 샤를레앙.
두 친구들은 친구인 동시에 애였 다.
그의 나이가 그만큼은 되니까.
‘애들은 모르겠지만.’
그 애들이 앞으로 마주할 적들은 바르샤의 그 책 창고를 가지고 있 었다.
사실 신의 뜻 때문에 그가 일부러
쥐여 준 것이기는 했지만……오
‘그거야 신의 뜻이고.’
친구로서 돕는 건 내 자유지.
비만 오면 피는 꽃.
활짝 피는 동시에 투명해져서 유 리꽃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옛 명칭은 유리꽃이 아니 었다.
‘달 꽃이었지.’
이제는 아는 이가 없는 이름이지 만.
스칼렛은 유리꽃 쪽을 더 마음에
들어 할 것 같기는 했다.
어쨌거나.
그 꽃이 있으면 그들이 흑마법사 들을 상대할 때 꽤 도움이 될 것이 다.
속박 같은 작은 술수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을 테고.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있 으면 편한 것. 준비해 주고 싶다.
‘책을 훔친 두 명은 몰라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놈은 좀 불안하 거든.’
세 혹마법사 중 마신과 직접 교류
하며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자는 무뚝뚝한 흑마법사였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나설 텐데, 지금의 샤를레앙과 스칼렛으로서는 조금 불안한 감이 있었다.
‘……마기와 달이 천적이었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바바는 그리 생각하며 맹한 표정 으로 어이쿠 하고 넘어졌다.
그리고 신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 다.
“발목을 삐었네.”
— 9 9 9 9^
생각하는 와중에도 얼른 이 습기 가득한 곳을 벗어나자고 구시렁대 던 신이 이상한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느끼며 바바가 맹한 목 소리로 국어책 읽듯이 말을 이었 다.
“이 척박한 곳에서 나는 참 운도 없지. 불쌍한 내 인생. 오래 살면 뭐 하나, 시키는 것만 하고 사는걸. 그냥 여기서 콱 죽어 버릴.”
-네놈 마음대로 해라……오
신이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습기 가득한 곳이니 그냥 잠이나
자겠다는 것이다.
히죽 웃은 바바가 신이 난 얼굴로 야영 준비를 했다.
‘그건 그렇고.’
달이 비치는 호수라.
이 세상에는 없는 달.
오래 전, 달은 마신을 봉인하면서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샤를레앙이 그 반지 형태 의 달의 신의 신물을 사용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달이 출현했다.
비록 물 그림자만이지만.
“그림자라도 달은 달이니, 뭐가 변하려나.”
몽롱한 어조에 점차 졸음이 깃들 었다.
꿈에는 그가 개인적으로도 몹시 흥미로워하고 있는 유리꽃이 나왔 다.
투명한 꽃은 이상하게도 거울처럼 그를 비췄다.
연분홍 눈이 탐구심으로 번뜩인 다.
문득 스칼렛이 그 무해한 척하는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던 것 이 떠올랐다.
‘봄빛이라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지.’
그의 눈동자를 보고 한 말이다.
책 속에서 있던 시간 중 피를 봐 야 하는 일이 생길 때 종종 하던 말이었다.
‘분홍색과 봄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대꾸하면 꼭 그냥 그런 게 있다면서 웃기만 했지.
그런데 꽃에 비친 그의 연분홍색 머리가 부슬비에 젖어 있었다.
젖은 것을 보고서야 그는 그의 신 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 다.
‘꿈이라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신의 뜻을 또렷하게 받기 엔 꿈을 빌리는 것이 더 용이해서 꿈에서는 더 확연하게 신을 느끼고 는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그때 젖은 그의 모습 뒤로 무언가 가 비쳤다.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을 정도의 짙은 혈향과 함께.
그리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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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가 번쩍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은 희게 질린 채 심각하 게 굳어 있었다.
꼭, 모든 것이 끝장나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입가에 핏기가 비쳤다.
편의상 무뚝뚝한 흑마법사라 표현 해 온 자.
그는 체를라 디엘과 달리 이름도 없이, 오로지 마신의 부활에만 모 든 것을 바쳐 온 자였다.
자신은 스칼렛 아르만과 라샤헬의 관계에 대해 조사할 테니, 체를라 에게는 폭군과 스칼렛 아르만의 약 혼을 깨지게 만들라고 했던 터였 다.
그가 조사하는 방식은 매우 은밀 했다.
수명 한 움큼을 바치고, 마기를 한계까지 받아들이며 마신이 그에 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고행한다.
스스로를 없애는 고행이었다.
혈향이 난무한 그 광경은 광기가 진득하게 어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의 소리가 닿았 다.
말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신의 의 사가 전달된다.
핏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르만이 아니라 라샤헬인 것인가.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아니면 지금 그녀는 반쪽짜리일 테지.
그게 아니고서야 성인이 될 때까 지 저리 건강하게 살아 있을 리가 없다.
“반쪽짜리라면, 위협적이지는 않 지.”
그륵거리는 소리가 섞여 나온다.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웅 소리와 함께 통신 구슬이 켜졌다.
-끝났나 보네?
“그래.”
-언제 들어도 거북한 소리야. 마 신님은 당신과 달리 아름다우시겠 지?
상대는 체를라 디엘이었다.
사람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목소 리로, 그가 물었다.
“넌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흐음. 당초의 계획은 확실히 파
기됐지. 미혹이 통하는 자가 아니 야.
“그래서?”
-이번에 둘이 같이 수도를 벗어 났는데, 목적지에 심어 둔 것들을 다 터뜨려 보려고.
한 번에 전부.
“둘 다 단숨에 끝낼 생각이군. 지 루해졌나?”
-그 반대.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체를 라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그려졌 다.
아주 즐겁고도 화가 난 상태일 것 이다.
그래, 마음껏 날뛰어야지.
그래야 그가 최후의 순간에 완벽 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 까.
“알아서 하도록.”
그가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올렸 다.
샤를레앙은 스칼렛 쪽을 못마땅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맨 앞에서 움직이는 그와 달리, 스칼렛은 요정들을 들킬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맨 뒤에서 따 라오고 있었다.
“기척을 감추거나 하는 건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제 신물도 안 통하 고. 이상하네.”
빌어먹을.
그는 저 요정들이 할 줄 아는데 이해를 못 한 척하는 것이리라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모습들이지 만, 스칼렛을 향해 보이는 요정들 의 독점욕은 범상치 않았으니까.
‘그냥 아기가 보호자를 따르는 것 과는 뭔가 다르단 말이지.’
특이한 것은 그들의 독점욕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독점욕은 샤를레앙 자 신의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저 강대한
기운은.
“ 루만.”
“예.”
느긋하게 말을 몰고 있던 정보부 장이 다가왔다.
“저들에게서 아무것도 안 느껴지 나?”
“ 저들이요?”
요정들. 작게 말하자 루만 백작의 눈이 반짝였다.
“느껴지지요! 그렇게 정순한 기운 은 정말이지 처음입니다!”
“그거 말고.”
“예? 그럼 뭐가 말입니까?”
순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꼴이 참.
못 느끼는 걸까?
그도 저 요정들에게서 요정석보다 도 더 정순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운이 그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대해져 있 는데.
그래, 엘프들 사이에서나 회자되 는 정령왕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셋이나 있었다.
그뿐이면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나는 예언을 기억하지.’
지하 감옥의 예언자가 스칼렛에게 주었던 그 불길한 예언이 떠오른 탓에, 신경이 쓰인다.
샤를레앙 자신이 폭풍이라서 주위 를 다 휩쓸고 움직인다는 바바의 말 때문도 있었다.
정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짜증이 나고 못마 땅한 것이 분명했다.
샤를레앙은 속살거리며 저들끼리 소풍 나온 것처럼 즐거운 기색인 스칼렛과 요정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런 거다.
몇 번이고 이를 갈며 되뇌면서.
폭군에게 차이는 10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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