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Year-Old Top Chef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요리업계 슈퍼맨 (3)
“라스트 테이블!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
벌써 세 번째 녹화.
첫 방이 나가기 전 마지막 녹화였다. 이 이후의 촬영은 첫 방송이 나가고 난 뒤에 촬영한다고 했다.
물론, 내 계획대로라면 이 제작진들이 그 이후의 촬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스튜디오 전체에서 나 혼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심 찔렸다.
모두가 할렐루야를 외칠 때, 혼자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느낌이랄까.
“라스트 테이블! 세 번째 경연은 바로오!! 대한민국입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힘껏 외쳤다.
나를 포함한 열다섯 명의 셰프들이 박수를 치면서 녹화는 시작되었다.
“오늘 평가위원으로 세 분을 모셨습니다.”
첫 번째 촬영은 인도, 인도의 영화배우와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이 출연해 셰프들이 요리한 인도 음식을 맛보고 평가했다.
두 번째 촬영은 일본이었고, 나를 포함한 셰프들이 일식을 요리해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와 방송국의 PD, 그리고 소설가가 나와서 음식을 평가했다.
그리고 오늘은 대한민국이었다.
“첫 번째! 현재 메이저 리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류형진 씨를 모시겠습니다!”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엄청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류형진이 첫 번째 게스트였다.
이 프로그램에 예산을 꽤나 많이 집행했다고 하더니, 게스트가 빵빵하다.
저런 거물급 스포츠 스타를 움직이려면 출연료를 꽤나 많이 줬을 터였다.
“한국 음식을 너무나 먹고 싶었는데, 저희 구장 근처에는 마땅히 먹을 곳이 없었습니다. 헤헤. 특히 반유현 셰프님! 음식이 너무 궁금했어요. 저도 음식을 좋아해서 잡지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데,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안녕하세요! 반유현 셰프님!”
최근 가장 높은 몸값을 올리고 있는 화제의 메이저 리거,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외모를 가진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번째 게스트는! 이번에 할리우드에 진출하신! 영화배우 최민석 씨입니다!”
국민 배우라고도 불리며,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흥행작을 남긴 배우였다.
이번에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미국의 방송프로그램에 자신을 홍보하러 나온듯했다.
“여기 계신 셰프님들이 모두 훌륭하시겠지만. 우리 딸내미가 반유현 셰프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허허. 제가 일단 먹어보고 남으면 포장해가도록 하겠습니다.”
배불뚝이 옆집 아저씨같이 생겼지만, 카메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유롭게 너스레를 떠는 게 확실히 베테랑 배우였다.
“세 번째 게스트는!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계신! 엘른 조!”
첫 번째, 두 번째, 그래도 이 몸의 조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세 번째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에브리데이 그룹의 메뉴 개발 고문 아닌가.’
이 프로그램의 최대 광고주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셰프이자, 그 그룹의 직원인 사람이었다.
중년의 남자인 그가, 나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반유현 셰프의 음식이 가장 기대됩니다. 앞서 두 번의 경연에서는 그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고 하셨는데, 부디 한식만은…….”
지랄. 인도요리와 일본요리 앞선 두 경연에서도 게스트들에게 최고의 극찬을 들었던 나였다.
그의 말을 다른 셰프들도 흠칫했다.
분명, 당시의 분위기로나 게스트들의 반응으로나 나의 요리가 최고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놓고 촬영을 한다고?’
나는 그의 노골적인 언사에 앞선 두 촬영분이 어떻게 편집되었는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더군다나 이번 회차가 왜 한식으로 설정되었고, 저놈이 왜 게스트로 초대되었는지도 단번에 깨달았다.
‘아예 나를 깔고 가려는군.’
반유현이라는 셰프, 즉. ‘나’를 자신들이 미리 선정해 놓은 셰프들의 디딤발로 대놓고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국인인 나를 한식에서 이기고 간다면 그 셰프들이 더 부각될 것이니까.
물론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었지만, 대놓고 이렇게 나오니 기분이 좋지 못했다.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의 메인 PD인 브랜든을 쳐다보자, 브랜든은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보자, 오히려 안 좋았던 기분이 풀려버렸다.
내가 이 지루한 녹화에 참여해서 얻을 것들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것을 다시 되새겼기 때문이다.
‘나를 만만하게 본 PD 놈에게 엄청난 선물. 그리고 나를 향한 스포트라이트.’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버터의 전원을 켜고 칼을 잡았다.
***
한식이라 하면 내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영국인의 삶을 살았던 이전 생, 그리고 그전 전생, 내가 미슐랭 스타 10개 이상을 소지한 셰프로의 삶을 살다 보면 항상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두유 노 비빔밥? 두유 노 불고기?”
왠지 모르게,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음식에 자긍심이 넘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이 음식들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맛봤던 기억을 되살렸다.
‘독설을 내뱉었지.’
불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고기에는 사람마다 개인적인 취향은 있겠지만, 대게 미디엄(medium)이나, 미디엄 레어(mdium-rare)의 굽기가 가장 맛있는 맛을 낼 수 있는데, 내가 먹었던 모든 불고기들은 오버 쿡(overcook) 되어있었다.
고기의 익힘 정도를 지나치게 해 고기가 너무 질겨진 상태였다.
내가 먹어본 모든 불고기들의 고기가 얇은 이유이기도 했다.
“반유현 셰프, 어떤 요리를 하실 겁니까?”
“불고기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먹었던 불고기는 미리 양념에 재어 놓았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도 일으킬 수 없었고, 소고기 특유의 풍미와 육즙, 맛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오호! 불고기에서 소의 육즙과 맛을 살리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사회자의 질문에 내가 말하자, 스크린에 류형진과 최민석이 매우 기대가 된다는 식으로 박수를 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세 번째 게스트이자, 미슐랭 투스타 셰프인 엘른 조가 마이크를 잡았다.
“양념에 24시간 정도 고기를 재워 놓아야 그 맛이 고기 깊숙이 배어들 텐데, 이런 경연에서 불고기를 어떻게 한다는 말씀인지…….”
“가르쳐 드립니까?”
고기를 굽고, 레스팅 할 때, 미리 만들어 둔 양념에 고기를 넣으면, 수축했던 고기가 팽창되면서 그 양념을 빠르게 흡수한다.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라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알면서도 괜스레 물어보는 저놈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엘른 조는 나의 대답이 무안했는지, 대놓고 나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저는 차라리 그 앞자리에 계신 메이슨 셰프처럼 비빔밥이나, 그 옆에 있는 라두 셰프처럼 칠절판이 강력한 요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식의 특성을 보여주는 요리지요.”
메이슨, 라두.
지목된 두 명의 셰프가 나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무슨 요리를 하고, 무슨 짓을 하든지 저들이 이긴다는 눈빛이다.
방송사 FOX의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인 ‘에브리데이’에 소속되어 있는 셰프들이었다.
“불고기?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는 모르겠네. 큭!”
“야. PD님이 너무 대놓고 티 내지 말라 그랬잖아.”
“아니, 우리 회사 덕분에 이 프로그램도 생긴 거고, 다른 셰프들도 방송 탄 건데 왜? 푸풉!”
지금은 나를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즐겁겠지만, 그 즐거움의 대가도 결국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미림과 간장, 마늘, 파, 배 등을 넣고 믹서기에 갈아 불고기 소스를 만들었다.
“아, 그냥 설탕이 아니라 흑설탕을 넣으시네요?”
“흑설탕 특유의 맛이, 불고기의 맛을 올려 줍니다.”
해설자의 질문에 대답하며 만든 양념에는 방금 구운 큼지막한 크기의 고기를 넣었다.
불고기처럼 얇지는 않은, 한 입 거리의 찹스테이크와 가까운 크기의 고기였다.
어느 정도 레스팅(Resting)이 이루어졌고, 고기의 살에 양념이 배어 들어가자, 나는 양념과 고기를 다시 통째로 팬에 올려서 졸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양념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서, 육즙 가득한 불고기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
마지막 녹화를 끝낸 지, 2개월하고 절반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예고편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예고편은 각 셰프들을 한명 한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방영되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암전되더니.
[ 대한민국을 휩쓸고 라스베이거스, 파리를 휩쓸다. 천재 셰프! 반유현. ]한줄의 문장을 시작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와……! 불고기에서 이런 맛이 납니까? 씹을 때 육즙이 터지는 불고기! 저희 구단에 말해서 특별 셰프로 초청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 정도 요리라면 한식의 세계화는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내 불고기를 먹었던 메이저 리거, 류형진이 말하는 장면이 나왔고.
-너무 맛있는데요. 워낙 불고기가 유명하고 맛있긴 하지만, 이런 맛은……! 와우! 양념도 대단합니다. 오래 숙성한 게 아니라, 제한된 경연 시간 동안 요리하신 거잖아요? 최곱니다.
그 뒤이어 말하는 국민 배우 최민석의 말이 아주 짧게 영상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 장면 뒤로는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을 소유한 엘른 조의 독설이 담겨있었다.
-분명히, 주제가 한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리는 이름만 불고기이지, 한국적인 것이 전혀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흠. 맛은 그렇다 쳐도…….
나의 굳은 표정과 엘른 조의 독설이 교차 편집되어있었다.
-메이슨 셰프의 비빔밥이야말로 저절로 고향이 생각나는 맛입니다. 한식이라 함은 맛과 영향의 균형이 중시되는 음식이니까요. 반유현 셰프의 요리는 맛에만 너무 치중했습니다. 뭐,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셰프라면 요리의 테마와 건강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하나도……
되도 않는 독설을 해댔다. 현장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예고편이었다.
원래 예고편이란 게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많이 담는다지만, 못 봐줄 정도로 작위적이고 인위적이었다.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담았더라면, 이런 화면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고생 많았겠네. PD 양반.’
그런데, 그런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내 눈앞에 적힌 글귀는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 Michelin guide Paris. 2020 ]2020년 미슐랭 가이드 파리. 시상식.
역대 인생 통틀어 가장 빠르게 이 시상식에 자리를 차지했다.
당당하게 초대장을 받아 시상식에 도착했다.
조리복을 입고 있는 수많은 셰프들이 연회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으며, 나도 그 한자리에 껴있었다.
“떨리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루시앙과 올리버는 대체 몇 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고편 보셨습니까?”
내가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려, 핸드폰을 건넸다.
내가 엘른 조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담긴 예고편이었다.
“쯧쯧, 엘른 조? 이 친구 이거 큰일났구만. 오늘 자네가 미슐랭 스타를 수여하게 되면, 이 친구가 했던 말은 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 혹시라도 반 셰프가 엘른 조, 저 친구보다 많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되면……. 푸하하하! 참 웃긴 장면이 연출되겠습니다. 한국말에 그런 속담이 있다며!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루시앙과 올리버는 이미 내가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작위적인 편집으로 희생되었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오늘 이후에 저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러게, 마음을 정직하고 올바르게 써야지. 어쭙잖은 돈의 논리를 요리세계에 갔다 놓은 놈은 언젠가 몰락하게 되어있어.”
그때, 무대 위로 한 백인 남성이 올라왔다.
“미슐랭 가이드, 파리, 2020에 초대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올해의 미슐랭 스타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