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45
145. 아시나요(2)
한서윤이 처음 보인 행동은 딸꾹질이었다.
태영은 웃음이 나왔다.
“놀랬어?”
태영보다 먼저 정하연이 물었다.
서윤의 동공은 갈피를 못 잡고 요동을 치다가 정하연을 향했다.
“그, 그게, 그게.”
“대장님이 가지고 계신 물건들이 이상하지 않았어?”
“무, 물론 전에도 본 적 없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이긴 해요. 그런데 그게 그렇다구요?”
시선이 태영에게 돌아왔다.
“맞아.”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네…….”
“그건 나도 몰라. 그걸 알아보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알아내지 못했고.”
“그럼, 총도?”
너무 황당할 경우에는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총은, 원래 내가 살던 시대의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개인 화기일 뿐이야.”
“이, 이것은요?”
서윤이 손으로 테르를 가리켰다.
“그건 테르라고 하는데, 나와 함께 온 물건이 아니야.”
“그럼?”
“나와 함께 이곳으로 날아온 사람들 중에 내가 도착한 미봉산이 아닌, 송나라의 명주 지역으로 흐르는 전단강 상류 어느 지점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 홍수에 시신이 떠내려 온 것을 송나라 군에서 발견하고 묻어 주었나 봐. 그래서 혹시 생존자가 있나 하고 찾으러 갔어.”
“대장님이 그들을 찾으러 갔다가 생존자는 찾지 못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총과 몇 가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 안에 저 테르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가지고 오신 거야.”
대답은 이미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는 정하연이 해 주었다.
“테르는 지금으로부터 1200년 후의 세상에서 왔어. 하연과 서윤이 한 개씩 가지고 있는 스피릿과 함께.”
“하아, 1200년…….”
태영의 말에 정하연도, 한서윤도 손으로 스피릿을 한 번씩 만져 보았다. 그러면서도 입에서는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긴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아니, 미쳤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지금 서윤을 제외한 두 사람이 그렇다고 한다.
그다음부터 한서윤이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놀라운 반응과 진정하는 행동과 말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정하연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서 다행인가?
처음에 정하연에게 이 비밀을 말할 때는 정말 어려웠는데, 태영을 대신해서 정하연이 많은 설명을 곁들여 주기에 조금 나은 것 같다.
“서윤아.”
“네, 서방님.”
대답하면서 바라보는 서윤의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되었고, 얼굴엔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리도 많은 질문과 답을 들어도 여전히 마음 한쪽 구석에 의문점은 남아 있을 터이다.
정하연의 경우를 놓고 돌아보면, 결국 시간이 약이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알아 가자. 우리에게 시간은 많아.”
“……네.”
“그래, 동생. 나도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 받아들이기까진 제법 오래 걸렸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럴게요, 성님. 서방님, 천천히 조금씩 알아 갈게요.”
저 대답이 나오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물론 놀라운 일투성이였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자, 그럼 아시나는 처음에 영어로 말할 테니 질문지를 만들고, 영어 연습을 좀 해야 해.”
“영어?”
“응, 영어. 잉글랜드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야, 그걸 또 설명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니까 우선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내가 없을 때, 서윤이가 아시나를 불러서 깨어났고, 무언가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때 한 말이 영어일 거야.”
“네.”
태영은 종이를 준비해 와서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것을 정리했다.
우선, 라일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아시나가 반응한다고 했으니, 서윤을 라일리로 인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외에는 스마트 워치에 대한 내용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영상 분석 기술에 의한 안면 인식이나 영상 추적 시스템 같은 것이 이미 태영이 살던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되고 있었으니, 그보다 훨씬 기술이 발달한 라일리 시대의 기술이란 것을 상기하면, 서윤이 라일리가 아니란 것을 바로 알 것이다.
그럼 서윤이 라일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대답을 거부하거나 접근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후쿠오카에 있을 때 하연이 한 이야기로는 몇 번을 불러도 깨어났다고 했으니, 특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앱인 아시나에게 서윤이라는 이름을 여러 번 말했다고 했으니, 그것이 어떤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질문지를 만들었다.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갈 수도 없고, 영어를 가르쳐서 아시나를 부를 수도 없으니 질문지라도 만들어서 시도해 봐야 한다.
그리고 태영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시나는 분명 한국어로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개발자가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테르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은 언어 설정을 한글로 선택하면 완벽한 한글로 표시되고, 일어를 선택하면 완벽한 일어로 나타난다.
그 정도로 완벽한 번역 품질을 제공한다면, 통역 또한 비슷한 수준에서 가능할 것이고, 대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많은 질문 내용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기는 했지만, 중요하다 생각되는 내용을 다 쓰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 몇 가지로 줄였다.
질문지는 서윤이 읽을 것이니 영어의 발음을 한글로 썼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읽으면 되는데, 이게 말하는 거라서 연습이 좀 필요해.”
“네.”
태영이 먼저 말하듯이 읽고 따라 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다.
발음을 교정해 주려고 애를 썼지만, 마치 딱딱한 원고를 읽는 것 같을 뿐, 대화하듯 되지는 않았다.
영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에 대화하듯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자, 시작해 볼까?”
정하연도, 한서윤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 전에 아시나를 부를 때 태영이 없었으니 상황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테르를 사용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던 정하연마저도 조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태영은 테르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아시나.”
서윤이 아시나를 불렀다.
비잉~
영상이 나타남을 알리는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Hi Rylie.”
아시나는 영상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인사를 하는데, 역시 태영의 예상대로 아시나는 서윤을 라일리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본 태영은 깜짝 놀랐다.
라일리.
라일리라니?
영상으로 나타난 아시나는 태영이 기억하고 있는 라일리의 모습이었다.
참, 미치겠군.
“It’s a nice day. Do you have any plan today?”
태영이 눈앞에 나타난 라일리를 보고 잠시 멍 하는 사이에, 아시나는 서윤을 향해 마치 오랜 친구가 하는 장난처럼 질문을 하고 환한 웃음을 보였다.
라일리의 저 웃음에 심장이 쫀득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결국 그 웃음의 정체는 서윤의 웃음이었다.
그런데 소녀처럼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는, 저 통통 튀는 듯한 어투의 질문을 듣는 순간, 여태 만들었던 질문지의 내용 중에 두 줄 외에는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영은 첫 번째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캔 유 스피커 코리언?”
“Yes, of course. Do you want to speak Korean?”
서윤이 태영이 가리키는 첫 줄의 문장을 읽자마자 아시나가 다시 물었고, 태영은 재빨리 두 번째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케이, 렛츠 스피커 인 코리언.”
“아, 그래? 라일리, 그럼 나도 이 시간부터 한국어로 말할게.”
라일리, 아니 아시나는 바로 한국어로 말했다.
“헉.”
“흐윽.”
아시나가 한국어로 말하자마자 한서윤과 정하연은 펄쩍 뛸 만큼 놀라서 입 밖으로 놀란 숨소리가 크게 튀어나왔다.
휴. 역시 맞았어.
아시나는 억양에서 조금 어색한 감은 있지만, 그 정도는 아주 낮았고, 무척이나 세련된 느낌이 드는 발성의 한국어로 말했다.
“그런데, 라일리 정말 궁금해. 중요한 작전이 있는 거야? 왜 얼굴을 변화시켰어?”
얼굴을 변화시켜?
아시나는 지금 서윤을 라일리로 인지하고 있고, 얼굴을 변화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변화시켜야겠다. 그래도 되지?”
태영이나 정하연, 한서윤 모두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시나는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영상 속의 얼굴인 한서윤의 모습으로 변했다.
정하연이나 한서윤은 거의 경악에 찬 표정으로 변화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시나를 바라보았다.
“허.”
서윤의 모습을 복제한 것처럼 완벽하게 변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잠깐.
아시나는 분명 인공 지능이다.
인공 지능이 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태영이 알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만들어진 지능이라는 것이다.
그 지능은 수많은 정보와 인간과 컴퓨터가 만들어 내거나 만들어진 것을 가공해서 이룩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지금 보여 준 것처럼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서윤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외형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한서윤을 스캔하여 3D로 형상화하는 장치가 붙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그 작업을 모두 끝냈다는 것이다.
그런 인공 지능의 아시나가, 서윤이 라일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까?
테르는 대략 382 년 만에 깨어났지만, 그때도 테르에는 배터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음을 아시나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생각을 좀 해 보자.
왜 아시나의 반응이 이럴까?
분명히 라일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대답하지 않거나 인증 코드를 입력하라고 했어야 정상이다. 대체 라일리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고, 라일리가 남겨 둔 것 중에 니펜트는 전략 무기라고 했다.
그런데 고장이 났다고 했지만, 일반인이 전략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안이 해제된 것이군.”
보안이 해제되었다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말에 아시나의 시선이 태영에게 돌아왔다.
“라일리.”
시선을 돌린 아시나가 서윤을 라일리라고 불렀다.
“그분은 태영, 내 남편 최태영이야. 그리고 이쪽은 하연 나의 언니.”
눈치 빠르게 태영을 소개했다.
“태영? Your husband? Really?”
서윤이 정하연에 대한 소개를 채 끝내기도 전에 태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근데, 분명 한국어로 하겠다고 해놓고 남편이냐며, 정말이냐며 묻는 것은 왜 영어?
서윤이 알아듣지 못하는데.
그리고 대체 눈이, 아니 카메라가 어디 있기에 태영을 바라보는 거지?
“아시나, 난 태영, 최태영이라고 해.”
“하이, 태영.”
***
“무언가 잘 안 되었나 봐요?”
정하연이 태영에게 물었다.
바로 옆에서 한서윤과 함께 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잘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한서윤이야 이제 태영과 만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정하연이 태영과 함께 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21세기의 지식이란 것이 단순히 가르친다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거나. 알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니, 인공 지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을 수밖에 없고,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태영은 인공 지능과 바둑 시합을 두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 내는 것을 읽었고, SF영화에서도 봤다. 물론 SF 영화 속의 인공 지능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이다.
“그건 아니고, 내 기대가 과했던 모양이야.”
“무엇을 얼마나 기대하셨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SF, Science Fiction, 단어로만 해석하면 과학의 허구인지, 과학으로 만들어진 허구인지.
과거에는 공상 과학이라 번역했었고, 지금은 번역 없이 그대로 SF라고 하지만, 결국은 상상력이 빚어 낸 허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SF 영화에 나온 수준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래, SF 영화 속의 인공 지능이야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할까?
거기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보안이 해제되었다는 것.
그것은 기밀문서의 열람을 위한 보안 등급의 제한이 사라졌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정말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저나 서윤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렇지만 뭔가 흡족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런 거죠?”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태영을 바라보았다.
태영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한 팔에 한 명씩 당겨서 안았다.
“그게 맞기는 한데, 그래도 실망한 것은 아니야.”
태영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에 ‘이 세상에는 네트워크가 없잖아요?’라고 질문처럼 던진 아시나의 말이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네트워크.
태영이 살던 그 시대 21세기.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는, 그것이 데스크톱의 모습을 갖추고 있거나 태블릿 형태이거나, 휴대폰이거나, 대형 컴퓨터의 모습을 갖추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거미줄처럼 전 세계를 촘촘하게 덮고 있는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었다.
태영처럼 보통의 사람들은 네트워크라는 용어보다는 그냥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느냐 하는 말로 보편화된 사항이지만, 거기에 관련된 전문가들은 모두 네트워크라고 했었다.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은 컴퓨터들은 오락기만도 못한 물건이다. 심지어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지 않으면 깡통 컴퓨터라고 말한다.
라일리가 살던 시대의 네트워크는 태영이 살던 때의 네트워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네트워크가 없다.
사람의 입으로 전하지 않으면, 글로 써서 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정보도 통하지 않는 세상.
여기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럼 된 거죠, 뭐.”
“자, 우리가 아시나를 만나 보느라고 벌써 새벽이야. 잘 시간이 훨씬 지났어.”
시계는 새벽 네 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네, 자요.”
“그래.”
본부의 회의실을 나와 마당으로 나가자 근무 중인 초병이 멀리 횃불을 뒤로하고 서 있었다.
대회의실을 나오면서부터 머릿속에는 셋이면 잠자리를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꽉 들어찼다.
서윤을 개경에서 데리고 온 후, 언제나 정하연과 함께 자던 침대는 정하연과 한서윤에게 빼앗기고, 그 옆방의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잔 뒤에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
“여기 오래간만에 왔더니, 이렇게 달라졌어?”
“충성! 어서 오십시오, 대장님.”
달구곶에 도착하자마자 권우석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그러고 보니, 보고서를 통해 달구곶의 일 진행 사항은 잘 알고 있지만, 지난가을 보고를 위해 사포에 왔던 이후로 얼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권우석이 이곳을 통치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었다.
“그래 반가워, 잘 지내고 있지?”
“네, 대장님.”
“어디, 저놈이 천운이야?”
낯익은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데, 제법 건강하게 잘 자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