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469
114. 미안하다
류지현은 사무실 입구에서 인터폰을 눌러 자신을 밝혔다.
“어서 와.”
류기현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안 바빠?”
문을 열어 주며 물어오는 표정이 밝다.
“내가 오늘 좀 여유가 있었어. 오빠는?”
경찰의 요청으로 찾아간 미팅은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얻지 못했다.
오늘의 미팅은 오후까지 시간 배정이 되어 있다.
너무 일찍 끝나서 최태영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오빠를 찾아온 것이다.
“나? 나는 일이 많지.”
“전보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돈 걱정이 없으니 그래. 앉아.”
오빠를 사장실로 안내를 했다.
그곳에는 평범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역시 평범한 회의 탁자가 놓여 있다.
류지현은 사장실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늘었어?”
“그래, 전에 월급을 못 줘서 그만두었던 직원들 중에 몇 명에게 연락했더니 다시 왔다.”
“그게 금방 되는 일이야?”
“다른 곳에 정직으로 간 것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거지.”
“잘되었네.”
“커피?”
“아니, 녹차로.”
“잠시 기다려.”
참 단출하다.
실 평수 20평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
사장실 겸 회의실 빼고, 직원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형식적인 파티션이 되어 있다.
“자.”
밖으로 나갔던 오빠가 쟁반 위에 머그잔을 받치고 들어왔다.
오빠가 머그잔과 녹차 티백을 내밀었다.
컵이 따뜻하다.
“그럼 지금은 뭐 해?”
“드론은 최 사장님이 터니엔디가 일을 시작하면 보내 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에어로 루트를 만들고 있어.”
“에어로 루트?”
“공장의 물류 이동용 에어 로지스틱 루트인데, 말 그대로 물류 항공 노선? 뭐 그런 거야.”
“어떻게?”
물류 항공 노선이라니, 무척이나 궁금했다.
“볼래?”
“보여 줘도 되는 거야?”
“주주님이기도 한데, 어디 가서 이걸 광고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네.”
오빠는 태블릿을 꺼내더니 손을 이리저리 놀리고는 툭툭 쳤다.
벽면 한쪽에 불이 들어왔다.
터니테크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초대형 앳윌플레이다.
그사이에 터니테크에서 보내 준 것 같다.
오빠는 태블릿에서 몇 가지 조작을 했다.
앳윌플레이 화면에 거대한 공장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중 한 지역이 줌인 되었다.
수많은 선과 점들.
점에는 각각 고유의 숫자가 있고, 선에도 숫자가 있다.
“와아…….”
“저 숫자는 모두 포트 번호와 노선 번호야.”
“노선 번호?”
“이게 시작인데, 일단 공장 물류부터 하자고 하더라고.”
“공장 물류라…….”
“최 사장님 말로는 초기에 개념을 말하면서 지상 도로망과 비슷한 형태의 공중망을 말했거든.”
“그래?”
“실제 도로 위는 공장 내부의 물류 이동망을 도로망처럼 만드는 거야.”
공장 내부의 물류 이동망?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튼 그게 이거야. 이걸 만들어서 에어로 포트와 연결하고, 드론에 짐을 싣고 에어로 포트 번호를 입력하면 드론은 이 루트대로 날아간다고.”
“조종사 없이?”
“공장 내부이니까 당연히 조종사는 없지. 그리고 기본 개념이 무인 드론인데.”
“사고 나지 않아?”
“사고는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더라구. 그리고 나중에 실내가 아닌 실생활에서의 화물 물류에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호, 혹시 그게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을 드론으로?”
“아직은 아니지만, 맞아.”
“와아, 대단하네.”
“그때, 루트를 도로와 같은 위치에 배치하지 않고 분리시켜서 자동차를 탄 사람이 떨어지면 어떡하느냐는 걱정도 해소하라고 하더라구.”
“응, 그런 걱정은 있겠네. 그런데 저기 귀퉁이에 보이는 건 뭐야?”
“아, 거기는 화물 물류를 생각하고 만드는 에어로 루트인데, 에티오피아와 몽골이야.”
오빠는 몇 곳을 가리켰다.
거기는 구역 표시만 있을 뿐이지만, 밝게 처리해 두어 바로 식별이 되었다.
“거긴 왜?”
“국내에서 일반 화물 물류를 진행할 때 규정과 법 때문에 지연되면 해외에 무상 시범을 할 대상을 잡아 보라는 거야.”
“그런데 왜 하필 그곳이야?”
“이게 참, 몽골은 최 사장님이 지정한 곳인데, 이유를 물어봤거든.”
“이유가 뭐래?”
“애증의 관계라고 하더라고.”
“애증의 관계?”
“그냥 웃으면서 더 이상은 묻지 말라고 해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고 있어.”
“그럼, 에티오피아는?”
“에티오피아는 가난한 나라이면서, 한국전 참전국이라는 이유.”
“한국전 참전국?”
알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전투 부대를 파병했고, 병력은 6천 명이 넘었다.
나라에서도, 민간단체에서도 그 많은 참전국들에게 보은의 뜻을 담아 지원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도 그중의 한 나라이다.
“그쪽과는 협의가 된 거야?”
“전혀. 우리 마음대로.”
“제안은 어찌하려고?”
“그 왜 코이카를 통하는 방법도 있고, 민간단체도 많이 있으니 그곳과 협의하면 될 거라고 하던데.”
“아무튼 일이 많아지겠네.”
“그래서 개발팀 충원도 하고, 해외 영업직도 충원해야 하고, 회사도 옮겨야 하고. 일이 많아.”
“사람을 충원하면 사무실이 좁아지겠구나.”
“그래, 최 사장님은 최소 5백 평 규모로 구하라고 했어.”
“크게 생각하네?”
“그런데 이거 성공할까?”
“왜 그런 걱정을 해?”
류지현은 최태영이 일을 벌여서 안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빠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이지?”
“그럼.”
“‘별이 되어’ 회장님이 국토부에 국장으로 계셨다고 하시더라구.”
“맞아.”
“회장님이 자문을 좀 해 주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반드시 될 거라고 하시면서 국토부에서 퇴직한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해 주시겠다고 했어.”
“그럼 좋은 거지, 뭐.”
“야, 근데 최 사장님의 정체가 대체 뭐냐? 아니, 그 전에 너하고 관계가 어찌 돼?”
“나와의 관계?”
“그래, 혹시 둘이 사귀냐?”
“이 미친 오빠가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
류지현의 언성이 격하게 올라갔다.
“아니면 그만이지 왜 벌컥 화를 내고 그래?”
“나이 차이가 무려 몇 살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초딩일 때 태어난 사람이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요즘 세상에 나이는 상관이 없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지.
“아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사귀는 것이 맞네.”
“뜨거운 녹차를 뒤집어쓰면 어떨 것 같아?”
류지현이 녹차 잔을 들고 살살 흔들었다.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다.”
***
~삐릭, 삐리리릭~
두 번 연속으로 비밀번호가 틀렸단다.
1월 1일에 이새봄이 외출했다.
이새봄의 집에 다녀왔다고 위니가 알려 주었다.
태영은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새봄이 외출을 하면 다시 들어오지 못한다.
이새봄은 그것을 알고 문을 나서기 전에 문간에서 10분쯤 망설이며 서 있었다.
결국 현관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나갔다.
태영은 바뀐 번호를 알지만, 모르는 것처럼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누른 것이다.
~삐빅~
~짤깍~
안에서 버튼을 누르며 도어 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당기자 현관을 비추는 전등이 켜졌다.
전등 아래 이새봄이 서 있다.
“어?”
그런데 복장이 그게 뭐야?
약재를 풀어서 이새봄이 잠들어 있다가 깨어날 당시의 복장이다.
급한 마음에 임시로 입혔던 그 옷.
“비밀번호 내가 변경했어. 알려 주지 않아서.”
“야, 그 옷 뭐냐?”
“왜? 무지 편한데. 진짜 편해.”
“어이쿠, 골치야. 네 엄마가 너 이런 꼴을 알아?”
“당연히 모르지. 엄마는 여기 없는데, 그리고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할 것도 아니고.”
“다 크긴, 내가 보기에는 애구만.”
“이렇게 큰 애 봤어?”
“그나저나 안 들어갈 거야?”
현관의 정중앙에 처음 보였던 그 모습 그대로 비켜 줄 생각을 안 한다.
“집에 사흘 만에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왜?”
“나 심심하기도 했단 말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비켜, 빨리 들어가.”
“어쩌긴, 이렇게.”
태영의 품 안으로 폴짝 뛰어 안기는 이새봄이다.
“아무래도 너 내쫓아야 할 것 같다.”
“아, 안 돼.”
“그럼 내려와.”
“히잉, 치사해.”
그제야 두 발을 내려 옆으로 비켜서며 눈을 찡그린다.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가라고.”
“아, 알았어.”
아이쿠, 골치야.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올 때마다 매번 저러면 진짜 골치 아프다.
집 안에서 풍겨 오는 음식 냄새.
거실에 옅게 음식 냄새가 퍼져 있는데 된장찌개다.
“저녁 안 먹었지?”
“먹었어.”
“된장찌개 끓여 놨는데.”
“누가 널 보고 그런 거 하래?”
“왜애~?”
“그냥,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알아서 해라, 좀.”
“비밀번호, 내 생일 두 번이야.”
거실로 들어서는데 옆에 와서 팔짱을 끼며 비번을 알려 준다.
“난 네 생일 몰라.”
“지금 말해 준다니까. 공삼이칠 두 번.”
대체 왜 현관 비번을 생일로 해 놓고, 왜 알려 준다는 것인지.
‘이 기묘한 동거를 어떻게 끝내지?’
방으로 들어가며 그 생각만 들었다.
***
“이게 뭐야?”
아침에 가벼운 차림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나오니, 또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저절로 침이 넘어가며 목울대가 꿀렁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새봄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음식 쟁반을 아일랜드 식탁에 옮기는 움직임이다.
“오빠, 아침 준비.”
“뭐?”
“냉장고를 보니 빵 조각밖에 없어서.”
아이쿠, 머리야.
이 생각은 전혀, 조금의 가능성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침밥을 준비해?
향긋한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것과 상관없이 ‘너 미쳤구나.’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
그래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왜애?”
어처구니가 없어 빤히 쳐다보자 상큼한 미소를 띠면서 물어온다.
태영이 야단을 치면 이런 상황이 오늘 아침으로 끝날까?
예감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해 준다.
그렇다고 저 애에게 마음을 열 수도 없고, 어떤 약속을 할 수도 없다.
“이새봄.”
“응.”
“나, 아침 먹을 시간 없으니까, 너 혼자 먹든지 알아서 하고. 나에게…… 아, 아니다. 나 바빠서 얼른 씻고 나가야 해. 그리 알아.”
“으……으응.”
인상이 급격히 흐려진다.
아, 먹고 싶다.
침샘에서 침이 흘러나와 입 안에 그득하게 맴돈다.
그래도 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으면 안 된다.
‘별이 되어’에는 오전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으니 시간이 바쁠 일은 없다.
그래도 바쁜 척했다.
샤워는 오래오래 했다.
외출복을 갈아입었다.
식탁 앞에 와서 냉수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끝.
식탁 위에 차려진 아침밥과 콩나물국이 마구 유혹했지만, 억지로 밀어냈다.
식탁에 기대선 이새봄.
기대와 원망과 약 오름이 뒤섞인 눈이 태영을 좇아왔다.
“나, 나가.”
“응, 다녀와.”
태영의 말에 입 끝을 삐쭉 내밀며 대답한다.
집을 나섰다.
“미안하다, 봄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오기를 기다렸다.
“또 죽는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자꾸 죽는다고 협박을 하냐고?”
“예쁘기는 그렇게 예뻐 가지고.”
혼자 중얼중얼하는 중에 엘리베이터가 왔다.
사람들의 미에 대한 관점이나 선호도는 제각각 다르다.
흔히 하는 드라마의 대사 중에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하는 말처럼.
물론 그 말은 작업 멘트이기도 하지만, 선호도가 다르다는 말도 된다.
사람을 미모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전역 후에 마주친 사람들 중에서 이새봄의 미모는 넘사벽이다.
“에이.”
마침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어 혼자 노려보고, 혼자 웃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그럼 이새봄이지.”
“내가 미쳐 가는구나.”
저렇게 목을 매기도 하는데, 당연하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 때 그때는?
만일 이새봄이 세상을 원한다면, 세상을 다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바이호르미어를 주사하기 전.
이새봄은 마치 자신의 혼을 담아서 하듯,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처 말을 마치지 못했지만, 또 한 번 그렇게 말했다.
깨어난 뒤에는 잊어버린 것처럼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미안하다. 네 사랑을 받아 주지 못해서.”
아직도 밖은 깜깜하다.
“이제 내 집에서 물 한 컵도 안심하고 마시지 못하겠네.”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궁리하는데 멀리 24시 콩나물 국밥집이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섰다.
“콩나물 국밥 주세요.”
자리를 찾아 앉으며 바로 주문했다.
전역한 지 오래지 않았을 때,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갔던 해장국 집.
콩나물 국밥을 먹을 때, TV에 태영의 얼굴이 나온 적이 있었다.
태영인 것을 알고, ‘편히 먹고 가세요.’라며 TV를 꺼 버리던 아주머니.
고마운 아주머니였는데.
집에 콩나물국을 끓여 놓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둔 이새봄.
입 안에서 침이 고이고 목이 꿀렁거렸지만, 먹지도 않고 나왔다.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차려 준 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그 밥을 차리느라 새벽부터 애를 썼을 것이다.
식당에서 서빙하면서 태영을 배려해 준 그 아주머니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그러면서 이새봄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걸 생각하니 새삼 고맙고 미안해졌다.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미안하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