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nothingness? RAW novel - Chapter 209
73. 인외마경 (3)
유진이 엘프의 가슴을 쳐 멀리 날려 보냈다.
그러자 주변의 엘프들이 유진에게 활을 겨눴다.
수많은 화살이 유진의 머리를 노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활만 권총으로 바꾸면, 마치 암살자들의 싸움을 다룬 어떤 영화의 포스터 같았다.
“저건 마치 리아누 키브스…….”
박유원이 중얼거렸다.
영화의 주인공 리아누 키브스처럼, 유진은 수십 개의 화살이 그를 노리는 상황에서도 태연했다.
“나는 라이예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방해한다면 무력으로 뚫고 가겠습니다.”
[왜 라이예나 님을 만나러 가는 거지?]유진에 의해 날아갔던 엘프가, 입가의 핏물을 닦으며 물었다. 그의 흉갑이 찌끄러져 있었다.
[라이예나 님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나를 만나야 할 겁니다.”
[네가 뭐라고?]“내가 뭐냐니…….”
유진은 미소 지었다.
“나는 지구에서 온 인간입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당신들이 지구에 괴물들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유진의 말이 떨어지자, 엘프가 동요했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유진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자꾸 지구를 공격하니, 참다못해 내가 온 것이지요. 그런데 그냥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겠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엘프는 뻔뻔하게 나왔다.
[왜 우리가 지구에 괴물을 보낸다는 거냐? 마경은 본래 괴이한 곳이다. 온갖 이상현상이 일어나지. 우리도 마경에 의해 침식당한 피해자다. 지구를 공격할 생각은 없다. 그저 마경 스스로 행한 일이다.]“발뺌하는 겁니까?”
[정말이다.]“괴물들을 보내 지구를 마경화하고, 마왕을 지구에 떠넘기려는 것 아닙니까?”
유진이 사건의 전말을 모조리 밝히자, 엘프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유진이 말을 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말로 해결하러 온 게 더 대단한 일 아닐까요?”
유진이 혼원기를 일으켜 엘프들을 압박했다.
일부 엘프들이 주저앉았다.
[크윽…….]엘프들은 유진이 겁박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활을 겨누고 있는 건 그들인데도 도리어 자신들이 꿰뚫릴 것 같았다.
유진과 마주하고 있는 엘프가 입을 뗐다.
[인간. 너의 이름은?]“홍유진입니다. 당신은?”
[내 이름은…….]“아. 잠시.”
유진이 손을 들어 엘프의 말을 막았다.
“지나가게 해 줄 거면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이름을 말할 필요 없습니다.”
[무슨 뜻이지?]유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죽일 상대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으니까요.”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엘프가 이를 악물었다.
[네, 네가 감히…….]유진은 미소를 지었다. 의도한 바였다. 엘프는 다른 종족을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인간이 감히 그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니, 굴욕감을 느낄 터였다.
유진은 말을 이었다.
“자존심에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분명 너는 강하다. 하지만 너무 오만하군. 네가 우릴 죽이면, 군대가 와 너와 네 동료들을 모두 몰살시킬 거다.]“그래도 여러분은 죽겠죠.”
유진이 검을 뽑았다.
칼집 안에 감추어져 있던 서늘한 칼날이 드러났다.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보내줄 생각이 없나 보군요.”
[잠시…….]“나는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는 그렇다 쳐도, 네 동료들이 다칠 텐데?]“미안하지만, 여러분은 내 동료들을 다치게 할 실력이 안 됩니다.”
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일행 중에서는 나상철이 가장 약하다.
그런데 화경이다.
“내 동료들은 강합니다.”
화경이 어마어마한 고수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무림에서 무신으로 군림했던 그에게나 적용되는 기준이다. 나상철 정도면 충분히 고수라고 할 수 있으며, 현경에 든 제임스와 김비서가 함께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 그가 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두지 않겠지요.”
그는 예외적인 존재다.
지금은 생사경이며, 본래 이 정도면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으로 군림할 수 있다. 그가 혈교주를 꺾고 혈교의 발호를 막아냈을 때가 지금의 경지였다.
“그래서, 이름을 알려줄 겁니까? 아니면 이름 없이 죽겠습니까?”
유진이 혼원기를 일으켰다.
그의 기운이 일대를 짓누르자 엘프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인간이 이토록 패도적이고 흉악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다니…….]혼원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순간 유진은, 그가 아는 가장 파괴적인 무인의 기운을 흉내 내고 있었다.
천마.
정말이지 성격이 더러운 녀석이었다.
온화한 유진조차 폭력을 쓰게 만들 정도였다.
그 녀석을 떠올리니 새삼스레 노기가 치밀었고, 분노의 의념이 혼원기에 영향을 미쳐 흐름이 한층 파괴적으로 변했다.
엘프들이 덜덜 떨었다.
박유원이 뒤에서 말했다.
“혀, 형님. 저 친구들 울겠습니다.”
“그래?”
유진이 기운을 누그러뜨리고 엘프에게 물었다.
“어쩌실 겁니까?”
엘프가 입을 뗐다.
[내 이름은 모드마인이다.]“모드마인.”
유진은 미소를 지었다.
“엘프는 오래 산다지요?”
[그, 그렇다.]“그 이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유진이 모드마인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아예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그를 힘으로 끌어 동료들에게 데리고 갔다.
모드마인은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붙들려 있는 기분이었다.
“이 엘프 친구가 모드마인이랍니다. 인사합시다.”
유진이 동료들에게 모드마인을 소개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손길 때문에, 모드마인은 한 명씩 통성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차례로 악수까지 했다.
유진이 모드마인의 등을 치면서 말했다.
“친하게 지냅시다, 친하게.”
언뜻 친근한 몸짓 같지만, 그의 손에는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기운이 어려 있었다. 알아서 잘 하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모드마인은 속으로 탄식했다.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강력한 무인이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으나, 수뇌부가 지구라는 차원을 목표로 삼은 것은 그들의 무공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암암리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 지구에서 오는 인간들을 얕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고수가 나타났다.
멸시하던 상대에게 제압되는 것은 굴욕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엘프라는 종족 전체의 안위가 우려되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엘프들의 영웅인 라이예나.
[라이예나 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나?]“그렇다.”
[알겠다.]모드마인이 말했다.
[내가 안내하지. 라이예나 님을 부를 테니, 그동안 우리와 함께 기다리자.]“기다리라는 겁니까?”
[먼 여행이었겠지. 분명 힘들었을 테고. 우리가 너희를 환대하겠다.]“알겠습니다.”
[하지만…….]모드마인은 문득 엘라리오를 쳐다보았다.
노골적으로 그를 혐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르크는 허락되지 않는다.]“모드마인 씨.”
유진이 모드마인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견갑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아까 인사도 했잖습니까. 내 친구라니까?”
[아, 알았다. 알겠다.]“생긴 건 험악해도 얼마나 좋은 친구인데.”
그렇게 유진은 엘프들과 함께 마경의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이제는 완전히 평범한 숲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진 일행이 감탄했다.
“판타리아가 이런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괴물이 넘치는 무서운 곳이 아니었군.”
유진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이 중에서는 그나마 그가 마경을 자주 들렀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숲은 처음 보았다.
그가 겪은 마경은 괴이한 곳이었다. 평범한 짐승은 없고 흉측한 괴물만 살았다. 식물 또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람들을 위협했다. 마경 전체가 인간을 배척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는 그냥 숲이었다. 이따금 보이는 동물들도 평범해 보였다.
유진이 말했다.
“엘라리오 선생 말대로 마경에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끄는 힘 같은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차원의 무인들이 마경을 수없이 탐색했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숲은 목격한 적이 없습니다.”
유진은 노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했다.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기밀 또한 수없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경에 이런 숲에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엘라리오가 말했다.
[마경은 끔찍한 곳이니까.]엘라리오가 엘프들 특유의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자, 엘프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엘라리오는 담담했으나, 엘프들의 얼굴에는 혐오의 빛이 어렸다.
유진이 엘라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엘프들이 오르크를 아주 싫어하나 봅니다.”
엘라리오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엘프들은 엘라리오가 있을 때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숲을 걷고 나자, 병영 같은 곳이 나타났다.
규모가 커서 마치 마을 같았다.
모드마인이 유진에게 말했다.
[여기는 센티넬의 베이스캠프다.]“센티넬?”
[우리처럼 마경을 지키는 자들을 센티넬이라 하지.]모드마인은 유진 일행을 베이스캠프 안으로 안내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엘프들이 유진 일행을 경계했다.
모드마인이 말했다.
[여기서 편히 머물게 해 주지. 라이예나 님께 전갈을 넣겠다.]“라이예나는 언제쯤 만날 수 있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근처에 있습니까?] [그래. 북쪽 마경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데, 그 때문에 마경에 오신 걸로 안다. 마침 이렇게 되다니, 너는 운이 좋군.]
***
하진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천마는 미친년이었다.
천마는 직접 홍유진이라는 놈을 만나러 가겠다면서 곧바로 움직였다.
천마신교 낙양지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림맹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림맹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가 무림맹주의 앞에 섰다.
무림맹주는 운학이라는 무인으로, 하진운은 잘 모르는 자였다.
혈교가 무림에 있을 때는 그리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다는데, 단소천의 가르침을 받고 천하제일검이 되었다고 한다.
천마는 운학과 제법 가까운 듯했다.
“나 잠시 떠난다.”
천마는 다짜고짜 선언했다. 서류를 보고 있던 운학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알 것 없어. 예의상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온 거니까 캐묻지 마.”
“어디로 가는데?”
“그것도 알 것 없어. 말했으니 이제 간다.”
“아니, 야. 잠깐 있어 봐.”
“왜?”
“알려줄 정보가 있다. 얼마 전에 귀환한 종천대가…….”
“무림맹 이야기는 안 궁금해.”
그리고 그녀는 무림맹주의 말을 듣지도 않고 무림맹을 떠났다.
천마가 무림맹 정문을 나서자마자 무림맹 안에서 환호성이 들려 왔는데, 하진운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일반인들은 천마를 우러러보았지만, 고수다 싶은 무림인들은 죄다 그녀에게 치를 떨고 있었다.
“자, 궁패.”
무림맹을 벗어난 천마가 말했다.
“그 지구라는 곳에 가자.”
“바, 바로?”
“그래. 당장.”
“그래도 괜찮나?”
“뭐가 문제야?”
그렇게 해서 하진운은 천마와 함께 판타리아를 향했다.
그런데…….
“저건 뭐지?”
판타리아에 처음 와 보는 천마는 엄청나게 호기심이 많았다.
그녀가 데리고 온 마교의 호위들, 흑천대조차 당황했다.
“천마 님, 낯선 곳이니 조금 신중하게…….”
“시끄럽다.”
“천마천세, 만마앙복.”
천마는 씩 웃었다.
기이하게도, 그녀의 웃는 모습은 단소천을 닮아 있었다.
“저기 커다란 요괴가 있네. 죽이고 올게.”
그녀는 마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쪽에 뭔가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데.”
너무 멀어서 잘 느껴지지도 않을, 마경의 심처를 감지하기도 했다.
그 안에는 혈교가 기를 쓰고 얻으려고 하는 마왕, 그리고 마왕 세포의 존재가 있다.
거기 가겠다는 천마를 말리느라 하진운은 진땀을 뺐다.
“더 머물 시간이 없다. 어서 지구로 가자.”
“조금 더 구경하다 가자.”
“게, 게이트란 게 닫힐지도 모른다.”
“그런 말은 한 적 없잖아?”
결국 문제가 생겼다.
마경을 박살 내고 다니다 보니, 엘프들이 나타난 것이다.
“뭐야, 저 귀가 긴 녀석들은?”
엘프들은 처음에는 대화를 하려는 듯했으나, 혈교의 장로인 하진운을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시작했다.
하진운이 뭐라 하기도 전에 천마가 반격했다.
엘프들이 추풍낙엽으로 휩쓸렸다.
사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아…….”
하진운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교주님, 죄송합니다. 천마를 다루는 건 제 능력 밖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