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001
1001
자동소총 개머리판을 오른쪽 어깨에 단단히 견착시킨 혁권은 총구를 앞으로 향한 채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면서 사격을 가했다.
타탕! 탕!
정면에 있던 용병이 마치 춤을 추듯 이리저리 몸을 흔들면서 뒤로 넘어졌다.
지체 없이 총구를 살짝 옆으로 돌려 다른 적을 찾았다.
피슝!
순간 관자놀이 옆으로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오렌지색 빛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고는 총탄이 날아온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흙먼지가 튀어 오르자 그를 노리고 총을 쏜 용병이 황급히 픽업트럭 뒤로 몸을 숨겼다.
그걸 본 혁권은 시선을 쫓아가며 탄창을 한 번에 전부 비워 버릴 기세로 총탄을 마구 난사해 버렸다.
줄줄이 날아간 예광탄 줄기에 우박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픽업트럭 철판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관통한 총탄에 맞았는지 비명이 들리면서 타이어 아래로 시커먼 인영이 하나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탄창에서 쇳소리가 나며 노리쇠가 뒤로 젖혀졌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밀어붙여!”
재빨리 주머니에서 새 탄창을 꺼내 갈아 끼우며 양옆에서 사격을 가하고 있는 부하들을 독려했다.
그러고는 다시 총구를 들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자동소총을 쏴 댔다.
“끄윽.”
요란한 총성 사이로 아득하게 비명이 들리면서 시커먼 인영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 차량 보닛 위에 늘어졌다.
고함과 총성이 난무하나는 가운데서도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귀에 잘 들어왔다.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면서 응사를 해 오고 있었지만 처음보다 확연히 기세가 꺾인 것이 느껴졌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가운데 귀에 꽂아 둔 무전기 이어폰에서 태영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저희도 반대편에서 돌입해 들어갑니다!
“카피. 오인 사격을 하지 않게 조심해서 접근하도록 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김인철이 현장에 있으니까 절대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
곧이어 반대편에서 총성이 더욱 격렬해지자 혁권은 살짝 머리가 드러난 적에게 대여섯 발을 쏘고는 옆에 있는 하킴과 부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들었지. 밀어붙여서 전부 조져 버려!”
“옛!”
타타탓!
그를 보호하듯 하킴이 앞장을 서고 라미와 아미르가 양옆에 서서 삼각 대형을 만들고는 자동소총을 쏘며 적에게 다가갔다.
빗발치는 총격에 픽업트럭을 엄폐물 삼아 숨어 있던 용병 두 명이 두 팔을 휘저으면서 뒤로 널브러졌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이제 저항하는 적도 몇 명 남지 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 확신이 들 때 거친 엔진 소리가 들리며 전조등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쏟아진 불빛에 혁권은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앞을 가렸다.
부아아앙!
콰직.
픽업트럭 짐칸에 범퍼를 부딪친 벤츠 G바겐은 육중한 덩치에 걸맞게 약간 휘청거리다가 이내 중심을 잡고 앞으로 달려 나왔다.
사람을 쳐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속도를 올려 돌진하는 것을 보고 혁권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몸을 굴렸다.
거의 종잇장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간 순간, 뒷좌석에 타고 있는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인철임을 바로 알아본 혁권은 얼른 자세를 바로 해 자동소총을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놈이 도망친다. 빨리 막아!”
붉은색 안개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사륜구동차를 향해 자동소총을 쏴 댔다.
퍼퍼퍼퍽!
차체에 총탄 구멍이 뚫리고 뒤의 유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지만 사륜구동차량은 멈추지 않고 더욱 속력을 높여 달아났다.
“이런 썅!”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사륜구동차량 꽁무니를 사납게 노려보면서 부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이대로 내가 놓칠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던 혁권은 적이 타고 온 픽업트럭 가운데 비교적 멀쩡한 걸 발견하곤 곧장 달려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보스, 어딜 가시는 겁니까?”
하킴이 다급하게 묻자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핸들 옆에 꽂혀 있는 자동차 키를 한쪽 손으로 잡아 돌리면서 말했다.
“놈을 잡으러 가야지.”
끼리릭. 끼릭.
하지만 급한 마음과 달리 몇 번을 돌려도 엔진 시동이 걸리긴커녕 병에 걸린 노인네처럼 새된 소리만 뱉어 내었다.
“이건 또 왜 이러는 거야!”
혁권이 성난 목소리로 쿵, 하고 핸들을 내리쳤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점점 멀어지고 있을 김인철을 생각하니 속이 미친 듯이 타들어 갔다.
끼이이익.
그때 브레이크 잡는 소리를 내면서 볼보 사륜구동차 한 대가 바로 옆에 멈추어 섰다.
“보스, 이쪽입니다. 어서 타십시오.”
운전석 차창을 내린 라미가 그를 돌아보면서 외치자 혁권은 망설임 없이 픽업트럭에서 내려 볼보 조수석으로 옮겨 탔다.
그러자 하킴과 아미르도 얼른 따라서 차에 올라탔다.
“갑니다. 꽉 잡으십시오!”
부아아앙.
튀어 나가듯이 앞으로 달려 나간 볼보는 먼저 도주한 김인철의 뒤를 맹렬히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돼. 더 빨리 달려!”
“금방 따라잡을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자신 있게 대답한 라미는 혀로 입술을 살짝 핥고는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엔진 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RPM 계이지가 붉은색 구간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어두운 숲길을 시속 100킬로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 두려운 마음이 들 만도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무슨 짓을 해서라도 김인철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탄창을 빼내 총알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확인한 혁권은 다시 결합을 시키고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초조한 얼굴로 어두운 전방을 주시했다.
그렇게 얼마쯤 달려갔을까 멀리서 빨간색 자동차 안개등 불빛이 희미하게 시야에 잡혔다.
“저기 보입니다.”
“더 가까이 붙어.”
“예.”
노리쇠를 뒤로 당겨 총알을 장전한 혁권은 차창을 아래로 다 내리고는 상체를 밖으로 완전히 내밀었다.
열기를 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트리며 거친 소리와 함께 스치고 지나갔지만, 혁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앞에 보이는 사륜구동차량을 겨냥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숨을 들이쉰 뒤에 호흡을 멈추고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퍼퍼퍽! 퍼석.
총탄이 날아와서 차체에 박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 유리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깨져 나갔다.
“제기랄!”
본능적으로 시트 아래로 상체를 숙인 김인철은 와락 얼굴을 구긴 채 욕설을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몸 위로 떨어진 유리 조각을 털어 낸 김인철은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는 차량을 노려보며 신경질을 냈다.
“거머리 같은 놈들!”
“금방 떼어 낼 테니 잠시만 그대로 엎드려 있으십시오.”
“빨리 처리해!”
무릎에 올려 둔 AK47 자동소총을 집어든 로페즈는 천장에 달린 선루프를 열고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륜구동차 지붕 위로 시커먼 인영이 올라오는 걸 발견하고는 라미가 옆에 있는 하킴을 돌아보며 다급히 말했다.
“저기 선루프 위를 보십시오!”
“나도 봤어.”
먼저 총을 쏴서 쓰러뜨리려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어느새 총알을 다 쐈는지 탄창에서 빈 쇳소리만 났다.
“하필이면 지금.”
인상을 찡그리는 것과 동시에 정면에서 오렌지색 총구 화염이 번득이더니 총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흐윽.”
우박이 떨어지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체에 번쩍이면서 불꽃이 튀고 앞 유리창은 거미줄처럼 쫙쫙 금이 갔다.
끼이이익. 끽.
라미가 머리를 숙이면서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자 타이어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귀에 가득 울렸다.
차체가 휘청거리면서 뒤로 쭉 밀려 나가자 조수석 시트에 몸을 부딪친 혁권이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 하며 외쳤다.
“멈추지 말고 계속 쫓아가!”
“예.”
쩍쩍 갈라져 금이 가 있는 유리창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위험했지만 입술을 질끈 깨문 라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꾹 눌렀다.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엔진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가속하자 이내 벌어졌던 거리가 조금씩 좁아졌다.
“끝장을 내 주지.”
새 탄창을 꺼내서 갈아 끼운 혁권은 김인철이 탄 사륜구동차를 노려보며 잇새로 말을 내뱉고는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자동소총을 마구 갈겨 댔다.
이번에는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하킴과 아미르도 가세해서 일제히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타타타탕! 타탕!
묵직한 충격이 잇달아 어깨를 두드리고 오렌지색 예광탄 줄기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 도주하는 사륜구동차에 그대로 꽂혔다.
철판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전조등 커버 플라스틱이 깨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적도 총을 쏘며 반격했지만 세 명이 쏘는 거라 화력은 이쪽이 더 우세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크게 흔들리는 차체 때문에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어 상대한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효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총탄 세례에 적이 주춤하는 사이에 바짝 따라붙어서 어느새 옆에 나란히 서서 달려가게 된 거였다.
“니미럴!”
쌍욕과 함께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김인철은 권총을 들어 올려 볼보 승용차 운전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시트 헤드레스트를 관통한 총탄 두 발이 대시보드에 틀어박히자 라미가 운전대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황급히 머리를 숙였다.
하마터면 머리에 바람구멍이 날 뻔한 라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이내 눈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다들 꽉 잡으십시오!”
뭘 하려는지 알아차린 혁권과 부하들이 재빨리 위에 달린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라미가 이를 악문 채 운전대를 옆으로 확 꺾었다.
꽝!
방향을 튼 볼보 차량이 사륜구동차 옆구리를 그대로 사정없이 들이받아 버렸다.
철판이 우그러지는 소리를 내면서 두 차량 모두 크게 휘청거렸다.
“한 번 더 갑니다!”
중심을 다시 잡은 라미가 악에 받힌 목소리로 외쳤다.
“아주 작살을 내 버려!”
성난 황소처럼 빠르게 달려가면서 다시 한번 옆에 있는 사륜구동차를 세게 들이받았다.
콰직!
백미러가 부서져 떨어져 나가고 철판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순간적으로 두 차량 사이에 시뻘건 불꽃이 튀었다.
그러자 상대도 지지 않고 방향을 틀어 부딪쳐 오면서 마치 황소가 서로 뿔을 마주 대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연이어 충돌을 일으켰다.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몇 번이나 자동소총을 들어 쏘려고 해도 좌우로 흔들리는 충격 때문에 총구가 흔들려서 조준을 하기는커녕 몸을 가누고 있기도 어려웠다.
김인철 또한 똑같은 상황이라, 입으로 시발 하며 욕을 내뱉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혁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앞쪽 보닛을 노려서 개자식들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 버려!”
그가 가리킨 곳을 힐끔 쳐다본 라미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곤 결연한 얼굴을 하며 뒤로 몸을 기대고는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그러고는 바로 운전대를 옆으로 꺾었다.
“씨팔! 어디 이것도 한번 버텨 봐.”
사선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서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 실어 상대 차량의 앞 보닛하고 부딪쳤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파가 온몸을 강타하면서 대시보드를 비롯해 차량 내부에 설치된 에어백들이 전부 터졌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다 가려지고 숨을 턱 막힐 만큼 충격이 컸지만 라미는 가속페달에서 끝까지 발을 떼지 않았다.
통제를 잃고 비포장도로를 벗어난 두 차량은 타이어가 날카롭게 마찰하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다가 흙길을 따라 벽처럼 늘어서 있던 아름드리나무를 박고서야 엔진룸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멈추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