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170)
1170화 재앙은 바다에서 왔다. (6)
급히 파리로 돌아온 사자에게서 이공 후작의 대답을 전해 들은 샤를 8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항복?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답이라고 했다고!”
* * *
이 시기 유럽인에게 있어서 ‘항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아니, 개념이 조금 달랐다.
이 시기 유럽인들-특히 군주들-에게 있어서 ‘항복’은 곧 ‘멸망’, ‘망국’이라 할 수 있었다. 항복하면 항복한 국가의 군주는 자신의 자리를 승자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하지만, 패전국의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항복은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 대한 지배권 보장을 담보로 군주에게 층성을 맹세했던 것이 시작이었던 덕분에 귀족들은 군주가 바뀌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백년전쟁 시기를 봐도 자신과 영지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를 오간 프랑스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고.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전(停戰) 또는 종전(終戰) 협상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영토를 떼어 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종료했다. 그래야만 군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년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프랑스, 프랑스인’이라는 소속감과 동질감이 싹을 틔웠고, 이후 단단히 자리를 잡아가는 프랑스라고는 해도 아직은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 * *
이런 배경 때문에 샤를 8세는 ‘항복’이라는 단어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항복? 항복하라고! 지금이 무슨 로마제국 시절인 줄 아나?”
샤를 8세가 길길이 날뛰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항복하게 되면 샤를 8세는 왕관을 내려놓아야만 할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항복을 거부한다면 프랑스의 항구는 모조리 폐허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국왕의 머리 하나로 끝내는 것이 더욱 확실한 이익이기는 해.’
정전 안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입을 여는 순간, 바로 목이 달아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샤를 8세는 강경 대응을 선택했다.
“살아남은 모든 전함을 모아라! Coule ou nage(죽기 아니면 살기)! 모든 것을 걸고 저 야만인들에게 한 방 먹여! 육군의 모든 포병대를 해안에 집결시켜 포대를 축성하라!”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재고를!”
“네 이놈! 제국에 충성하는 것이냐! 이자를 끌어내라!”
“폐하! 폐하!”
결정의 재고를 간언하던 신하를 끌어낸 샤를 8세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의는 용납하지 않겠다! 당장 명령에 따라 움직여라!”
“명을 받듭니다.”
신하들과 귀족들은 분분히 예를 취하고는 정전을 빠져나갔다. 귀족들과 대신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샤를 8세와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만이 남았을 때, 샤를 8세가 본심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아니, 더욱 왕성한 전의를 보여 주면 제국 놈들도 한 발자국 물러나겠지. 남의 가슴에 꽂힌 대 못보다 제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놈들이니까.”
샤를 8세의 본심에 루이 12세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한번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의 가시가 제대로 박힐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여 줘야 하오.”
샤를 8세는 지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지금 제국에 무릎을 꿇으면 귀족들의 기가 다시 살아날 것이오. 그것만은 막아야 해.”
귀족들의 복권(復權)을 염려하는 샤를 8세의 말에 루이 12세가 현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가 않습니다. 지금 제국놈들에게 박살 나고 있는 지 역의 귀족들은 우리에게 충성하는 귀족들입니다. 귀족들만 아닙니다. 상인들도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끄으응…..”
루이 12세의 지적에 샤를 8세는 앓는 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 * *
샤를 7세의 치세부터 시작했던 왕권 강화 정책은 루이 11세를 거쳐 샤를 8세의 치세가 되면서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적극적인 대외교역이었다.
수에즈를 이용한 동방무역, 테라와 글로리아의 식민지 경영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들어오면서였다. 이런 적극적인 대외교역의 최대 수혜자는 항구를 낀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과 상인들이었다.
농업을 주력으로 한 보수 귀족 집단이 왕권 강화를 경계하는 것에 반해 이들은 왕권 강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그들에게 더욱 큰 이득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브롤터를 시작으로 제국과 본격적인 ‘무력 분쟁’에 들어가면서 이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지중해 지역이 틀어막히면서 운송 비용이 몇 배나 증가한 것이 문제였다.
툴롱 지역이 봉쇄당하면서 오스만이나 다른 중동으로 보내지는 화물들이 모조리 이탈리아를 경유해 이탈리아 소속의 화물선에 실려 운반되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이탈리아의 선주들은 운임에 바가지를 씌워 버렸다.
이어서 수에즈 운하 건설에서 쫓겨난 것이 두 번째 타격이었다.
지브롤터 분쟁이 발생하자마자 수에즈 주둔 제국군은 공사 현장을 장악하고 봉쇄해 버렸다. 현장에서는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동원하는 인력들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국이 의도하는 바는 확실했다.
-이번 분쟁에서도 제국이 승리할 것은 확실하다.
-이런 공사는 계속 진행하는 쪽이 멈추는 쪽보다 확실히 이득이다.
-공사비? 나중에 프랑스 주머니를 털어서 해결하면 된다.
-닥치고 진행해!
그리고 지금 상황은 제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국의 징벌이 시작되면서 프랑스의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스만으로 가는 물류가 동맥경화에 걸리면서 오스만에서 취하는 이득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지브롤터에서 벌어진 전쟁에 투입되는 군자금이 정신없이 늘어났다.
-주요 항구들이 파괴되면서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해안 지역에서 피난한 주민들이 도시로 모여들면서 치안과 경제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다.
* * *
이런 상황을 지적한 루이 12세는 샤를 8세에게 간청했다.
“지금 이 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보수 귀족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제국에게 머리를 숙일 수는 없지 않소!”
“귀족들에게 머리를 굽신거리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제국은 이미 영토에는 관심이 없다고 천명했습니다. 지금 저 병력을 잃으면 반란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루이 12세의 말에 이어 프랑수아 1세가 말을 덧붙였다.
“귀족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합스부르크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더 이상의 병력을 잃는다면 애써 얻은 로렌은 물론이고 저지대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후우,”
루이 12세에 이어 프랑수아 1세까지 협상을 주장하고 나서자, 샤를 8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 * *
파리에서 샤를 8세가 ‘굴종이냐 반란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에스파냐는 더욱 안 좋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세비야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국경 인근까지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 제국군과 스위스군은 방향을 돌려 세비야 동쪽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지가 난장판이 될 위험에 처했거나 되어 버린 귀족들은 당장 바야돌리드로 달려가 페르난도 2세를 압박했다.
압박을 받은 페르난도 2세가 알바 후작에게 압박을 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좀 해 봐라, 쫌!
서한을 가득 채운 우아한 문체에 가려진 내용을 파악한 알바 후작은 서한을 구기며 분통을 터뜨렸다.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병력과 물자 모든 것에서 다 밀리는데!”
계속해서 밀리는 가운데 에스파냐군 사이에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고 있었다.
-승리는 창고에서 나온다.
자신들의 국토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제국군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박살 내고 있을 뿐, 약탈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물론, 박살 낸 다음에 은식기라든가 몇몇 귀중품들을 챙기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약탈하기 위해 난장판을 만드는 일은 절대 없었다.
“저런 상황에서도 군기를 유지한다는 상황부터가 더욱 무서운 일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칼같이 군기를 유지한다는 말은 그만큼 냉정하다는 소리였으니, 이런 제국군에 더욱 몸서리를 치는 에스파냐군들이었다.
“하지만, 병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저들도 곧 한계가 올 거야.”
이런 에스파냐군의 갸냘픈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에서 대규모의 추가 병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승리가 확실한 상황이니 스위스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보내고 있었다.
스위스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역시 제국 대사관을 통해 은밀히 제안을 건네고 있었다.
“혹시 병력이 필요하지 않소? 우리가 지원하겠소! 우리 군이 필요한 물자는 모두 우리가 자급자족하겠소!”
대사관을 통해 이탈리아의 제안을 들은 이체 공작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신을 작성했다.
-귀국의 제안에 매우 깊은 감사를 표하며, 심사숙고해 가부를 결정하겠다.
답신을 봉한 밀랍에 인장을 찍으며 이체 공작은 참모들을 돌아봤다.
“이탈리아야 뭘 해도 이득인 상황이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프랑스에서 오스만으로 향하는 물류들을 수송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보는 이탈리아였다.
여기에 에스파냐까지 박살이 나버린다면 지중해의 경제권에서 이탈리아가 차지하는 지분은 더욱 늘어날 것이 확실했다.
“그나저나 정치까지 해야 하다니…. 이거 하는 일에 비해 급료가 너무 적은 느낌이야. 한번 징징거려 볼까?”
그렇게 농담을 뱉은 이체 공작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며 손사래를 쳤다.
“잠깐 잠깐! 방금 말한 것은 기억에서 지우게!”
‘내가 아는 그분들이라면 당장 본국이나 신지로 끌고가 야근을 시킬 사람들이야!’
향까지는 잘 몰라도 완과 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아는 이체였다.
-일이 힘들다고? 그래? 그럼 그 자리 내놓고 이쪽에 와서 일 좀 해라!
하지만, 이체가 몰랐던 것은 향이었다.
-아, 그래? 그러면 내가 가지. 손자가 힘들다는데 가서 도와줘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 말과 동시에 짐을 싸서 움직일 향이었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어쨌거나 몇 번이고 참모들의 입을 막는 이체였다.
* * *
이탈리아가 움직인다는 소식에 에스파냐 정가는 다시 한번 출렁거렸다.
하지만, 진짜 큰 충격이 서쪽 국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포르투갈이 움직이려 한다!
그동안 프랑스로 향하는 징벌함대에 함대를 추가한 것이 전부였던 포르투갈이었다. 지상전 부분은 에스파냐 육군의 규모에 밀려 제자리만 지키던 포르투갈이었다.
하지만, 세비야 지역을 중심으로 에스파냐 남서 지역이 난장판이 되면서 포르투갈은 다시 열심히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다.
-세비야에서 말라가 지역만 손에 넣어도 지금 영토와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손에 넣을 수 있다.
-해당 지역을 손에 넣으면 지브롤터의 배후 지역도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다는 소리다. 지브롤터의 배후가 안전해지는 것은 제국에게도 이득인 일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협조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 계산을 끝낸 주앙 2세와 신하들은 빠르게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스파냐도 계속해서 버틸 수 없는 것은 확실하오! 그 전에 우리가 끼어들어야 하오!”
“그렇사옵니다!”
“즉시 육군을 출병하겠습니다!”
종막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한 포르투갈은 빠르게 부대를 편성해 세비야 방향 국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첩보가 바야돌리드에 도착했을 무렵, 포르투갈의 선봉 부대가 국경을 넘었다.
-제국의 동맹인 우리 포르투갈은 제국의 징벌에 동참한다! 이미 해군은 징벌함대와 동행하고 있고, 이제는 지상이다!
이것이 포르투갈이 내건 명분이었다.
그리고, 바야돌리드에서는 비극이 벌어졌다.
“서거(逝去)?”
“그렇습니다.”
알바 후작은 전령이 가져온 급보의 봉인을 급하게 뜯고 내용을 읽었다.
몇 번이고 내용을 확인한 알바 후작은 서한을 내팽개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무책임한 자! 하필이면 지금 뒈져 버리다니! 참으로 무책임하구나!”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던 알바 후작은 옆에 있던 술병을 열고는 병째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선임 참모가 전령에게 물었다.
“자결하신 것인가?”
“아닙니다.”
전령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바 후작이 고함을 질렀다.
“차라리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