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702
702. 공장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라고 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재성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정말입니까?”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는 없지만 CIA가 내부자를 통해 입수한 확실한 첩보입니다. 크램린궁에서 직접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재성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크라스니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이네요.”
너무나도 태연한 반응에 데렉 비서실장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생각보다 차분한 반응이시군요.]“호들갑을 떤다고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
[역시 젊은 나이에 지금 위치까지 오른 이유가 다 있는 것 같군요.]“미리 정보를 줘서 고맙습니다.”
[박 회장님은 저희 미국 입장에서도 보호해야될 중요한 분이시니까요.]자신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당장 유럽에 대한 에너지 문제가 꼬일 뿐만 아니라 브랜던 대통령과 약속한 엄청난 액수의 투자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듣기 나쁜 이야기는 아니네요.”
[CIA를 통해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막도록 하겠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경호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그러죠.”
통화를 끝낸 재성이 스마트폰을 집어넣자 권혁재 실장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소식입니까?”
“크램린궁에서 SVR에 날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네요.”
“……!”
담담한 말투와 달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권혁재 실장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크게 뜬 얼굴로 되물었다.
“암. 암살이라고요?”
설마 아니죠?
진짜면 저렇게 태평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권혁재 실장의 믿음을 깨부수듯 재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회장님!”
이 양반이 왜 남 얘기하는 것처럼 굴고 있어!
권혁재 실장은 바로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허둥거렸다.
“진짜 큰일이지 않습니까. 대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러게요. 크라스니 대통령이 화를 낼 줄은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열 받은 모양이에요.”
그야 당연히 열 받겠지!
하는 일마다 죄다 끼어들어서 망쳐놨으니 크라스니 대통령이 길길이 날뛸 만도 했다.
그래도 설마 암살 명령까지 내릴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권혁재 실장은 당장에라도 총탄이 날아올 것처럼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해외 공작 활동 및 각종 암살과 비밀 작전을 벌이는 SVR은 구소련 시절 악명이 높았던 KGB의 후신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최근까지 여러 가지 암살 사건을 벌인 의심을 받고 일부는 사실로 드러난 전적이 있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조직이 재성을 노리고 있다니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 염려하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SVR이 날 건드릴 순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태도에 권혁재 실장이 들썩이던 엉덩이를 슬쩍 내려놓았다.
“좋은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재성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국내외 언론에 러시아 정보기관이 날 암살하려 한다는 기사를 요란하게 때리도록 해요. 일단 판을 벌이면 스노우볼처럼 알아서 일이 점점 커질 거예요.”
이렇게 군침이 도는 먹이를 언론사들이 모른 체할 리가 없다며 재성이 단언했다.
엉뚱한 지시에 권혁재 실장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재성이 웃으며 재차 설명했다.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어 버리면 날 암살하고 싶어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지 않겠어요.”
“아! 그렇군요.”
뒤늦게 재성의 의도를 알아차린 권혁재 실장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만약 진짜로 암살 시도가 벌어지면 모든 의심의 화살이 러시아로 향할 테니 오히려 못 건드리게 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예요.”
재성은 머리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비난받고 있는 러시아 정부와 크라스니 대통령 입장에선 심히 부담스러운 일 아니겠어요.”
“회장님의 지위와 명성을 생각한다면 파급력이 엄청날 테니 분명 그럴 겁니다.”
연신 감탄한 표정으로 권혁재 실장이 말했다.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밖으로 드러내서 위기를 넘긴다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입니다.”
“러시아와 크라스니 대통령은 명색이 패권국을 지향하고 있으니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사람들의 눈을 모으는 것으로 크라스니 대통령의 발을 묶어 버리는 절묘한 수법이었다.
“그렇지만 분노한 크라스니 대통령이 앞뒤 안 가리고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권혁재 실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재성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경호 레벨을 최고 수준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해요.”
재성 역시 괜히 객기를 부리다가 총을 맞거나 독이 든 홍차를 마시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긴 싫었다.
뒤에 졸졸 따라다닐 경호원들을 생각하니 다소 불편해지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U 전쟁 자금줄을 끊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천연가스 수입 올해 안에 90%까지 줄이기로 발표!] [유럽 27개국 연말까지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합의!] [美, EU 러시아 동결 자산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보상금 사용 발표!] [백악관 미국 내 금융기관에 보관된 러시아 동결자금에 대해 IEEPC 발동! 첫 수혜 기업은 유니콘 에너지와 푸드.] [러시아 정부의 강제 국유화로 피해를 입은 유니콘 에너지와 푸드에 대해 미 법원 920억 달러 배상금 지급 확정!]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 동결자금 무단 사용에 대해 비난! 소송전 예고.] [백악관 러시아의 반발에 합법적 절차에 의한 집행이었다. 오히려 민간 기업 자산을 강제로 국유화한 러시아 정부가 잘못.] [美 보란 듯이 IEEPC에 이어서 우크라이나 대상 랜드리스 법안 통과!] [박재성 회장 데이터 센터와 테슬라 전기차 공장 그리고 최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 건설을 위해 미국에 500억 달러 투자 발표!] [박재성 회장의 대규모 미국 투자 발표에 브랜던 대통령 개인 SNS를 통해 “땡큐 미스터 박, 땡큐 유니콘 그룹”이라는 글을 직접 올리며 환영!]그리고 며칠 뒤.
러시아 정보기관이 재성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기사가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언론을 통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러시아 첩보기관 박재성 유니콘 그룹 회장 암살 음모!] [러시아 눈엣가시 박재성 회장 독살 계획.] [러시아에서 죽음을 뜻하는 “크라스니의 홍차” 이번 타겟은 박재성 회장.] [크램린 궁에서 직접 암살지시. “박재성 회장 암살 계획” 충격 확산.] [CIA 관계자 “첩보를 입수하고 현재 예의 주시중”] [브랜던 대통령 “잘못된 정보이길 바라지만 만약 러시아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
모스크바 크렘린궁.
크라스니 대통령이 집어던진 애플 패드가 퍽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깨진 액정 위에는 암살 관련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크라스니 대통령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연신 소파 팔걸이를 내리쳤다.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같으니! 감히 이런 개수작을 부리다니!”
크라스니 대통령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소파에 앉아 있던 이바노프 비서실장과 예브게니 SVR국장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화를 터트린 크라스니 대통령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힌 크라스니 대통령이 옆으로 눈을 돌렸다.
“예브게니.”
“예. 말씀하십시오.”
까득, 하면서 소파 팔걸이를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났다.
“박 회장을 암살하라고 한 거 취소하도록 해.”
그러자 예브게니 국장이 고개를 들었다.
“작전 계획을 다 세웠는데 중단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런 멍청이! 이렇게 시끄러워졌는데 박 회장을 죽이면 어떻게 되겠어! 누군 좋아서 취소하라고 하는 줄 알아!”
버럭 소리를 내지른 크라스니 대통령이 짜증 가득한 눈초리로 예브게니 국장을 노려봤다.
설령 완벽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와 비난이 러시아로 쏟아질게 불을 보듯 뻔했다.
가뜩이나 얼마 전에 정적을 독살하려 했던 것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른 전적이 있어 더욱 계획을 강행하기가 껄끄러웠다.
명령을 수행하는 예브게니 국장 역시 이런 상황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암살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서 쇼를 벌이는 게 아니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암살은 포기해야 됐지만 그럴수록 크라스니 대통령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바노프!”
“예.”
“예전에 박 회장이 우크라이나에 있는 UMZ를 인수했다고 그랬지?”
“그렇습니다. 야심차게 추진 중인 우주개발에 UMZ가 보유한 기술들이 상당수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크라스니 대통령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당연히 그랬겠지. 우리 러시아에서 훔친 기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한국 따위가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겠어.”
UMZ가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 만들어진 회사였기에 크라스니 대통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얄팍한 수작에 암살은 힘들어졌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눈을 매섭게 번득이며 크라스니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다.
“일리야츠 총참모장에게 당장 순항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UMZ 공장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 재성한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 * *
몰도바 인근 우크라이나 상공.
미군 E-3D 공중조기경보기(AWACS) 한 대가 높은 고도에서 초계비행을 하고 있었다.
미국과 NATO는 직접 참전을 하지 않았으나 무기와 보급품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여러 지원 가운데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공중조기경보기를 통한 전장 감시와 정보 제공이었다.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가 초록색 스크린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여러 개의 점들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들이 벌써 며칠째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러자 레이더 디스플레이 앞에 앉아 있던 오퍼레이터가 약간 지루한 표정으로 뒤로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을 받았다.
“한 달째 이렇게 죽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오데사 상륙은 우크라이나 기갑연대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발을 묶어 두려는 양동작전인 것 같습니다.”
대위가 팔짱을 낀 채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오퍼레이터가 스크린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러시아 군함과 상륙함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한 달째 악천후 속에 배를 탄 병력들이 정상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병력으로 상륙 작전을 벌인다면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죠.”
“그렇겠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저 상륙함대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3개 여단이 오데사에 붙잡혀 있었으니 어찌 됐건 러시아의 의도가 성공한 거라고 봐야 했다.
그때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던 오퍼레이터가 굳은 목소리로 대위를 불렀다.
“새로운 항공 표적이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북동쪽 하르키우 방향에서 드니프로 쪽으로 표적 3개가 빠르게 접근 중입니다. 고도와 속도로 볼 때 러시아 탄도 미사일로 판단됩니다.”
황급히 오퍼레이터 뒤로 간 대위는 레이더 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며칠 조용하더니 다시 시작됐군. 목표가 어디야?”
“날아오는 궤적으로 볼 때 드니프로에 있는 스타테크놀로지 공장이 목표인 것 같습니다.”
“스타테크놀로지 공장이라면 천궁Ⅱ가 배치되어 있지?”
“그렇습니다.”
“좋아. 탄도탄 경보를 해주고 요격 데이터를 보내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살짝 느슨했던 통제실 안에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대위는 시선을 떼지 않고 스크린에 띄워진 탄도탄 표식이 움직이는 걸 계속 주시했다.
* * *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도심 스타테크놀로지 공장.
애애애앵~~!
공습 사이렌이 길게 울리자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이 작업을 중단하고 질서정연하게 곳곳에 만들어진 방공호로 대피했다.
구소련 시절부터 로켓을 비롯한 군사무기를 생산하던 공장이었기에 대규모 방공호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공장 빈 공터에 자리 잡고 있던 천궁Ⅱ 포대가 곧바로 요격에 들어갔다.
“미사일 궤도 데이터가 다 확인됐습니다. 3발 모두 이곳을 노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천궁Ⅱ 운용병들은 국제군단 표식이 달린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모두 블랙가드 소속의 한국인 용병들이었다.
복잡한 대공 미사일 체계 사용법을 단시간에 교육하기 어려운 데다가 무엇보다 드니프로 공장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천궁Ⅱ 포대를 갖다 놓은 거였기에 한국군 출신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운용을 맡겼다.
물론 첫 번째 임무는 드니프로 공장 보호였지만 사실상 도시 전체에 대한 방공도 함께 수행하고 있었다.
다들 잘 훈련된 숙련병이었기에 실수 없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자.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왔다. 혹시 모르니까 탄도탄 한 발당 두 발씩 요격 미사일을 쏴!”
“예.”
잠시 뒤 거리를 두고 배치된 4대의 발사차량에서 6발의 천궁Ⅱ 대공 미사일이 쏘아 올려져 화염을 뿜어내며 하늘 높이 날아갔다.
천궁Ⅱ 미사일의 성능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마하를 넘기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탄도탄을 요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다들 긴장한 얼굴로 레이더 스크린을 쳐다봤다.
몇 초가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 순간 탄도탄과 요격 미사일을 표시하는 점들이 서로 겹쳐졌다.
“됐다! 전부 요격에 성공했어.”
“우와아아!”
“그렇지!”
숨 막히던 정적이 깨지며 통제 차량에 타고 있던 오퍼레이터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