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the Sacheon Dang's Swordsmaster-Rank Young Lord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
검초 섬은 무수한 검로를 익히고 통달한 검귀가 마침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완벽한 횡격을 찰나지간에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창안한 단일 검초다. 그리고 거기에 강력한 의념- 강기(罡氣)를 덧씌운 것이 바로 검초 섬강(罡)이니, 한때 무림에서 악명을 떨치며 활개치고 다니던 흡성삼흉조차 이 섬강을 막아내지 못하고 한날 귀천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들 중 무려 둘이 화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도.
다시 말해, 검초 섬강(殲罡)의 위력은 화경이나 극마의 고수가 펼치는 호신강기마저 쉽사리 갈라버릴 정도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오감은 물론이고 극도로 발달한 기감을 지닌 고수들의 감각은 예지의 영역에 이르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떠한 전조에서 이미 초래될 결과를 반쯤 예견하는 것이다. 물론 절세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예리한 감각과는 별개로 스스로에게 위협이 닥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회피를 염두에 둔다는 사실 자체를 마뜩잖게 여기는 것이다. 스스로 이룬 무위에서 묻어나는 오만이었다. 흡성삼흉 역시 그래서 명줄이 끊어진 게 아닐까.
‘…죽을 뻔했다.’
마교 좌사 공손태는 등골이 서늘하다 못해 전신이 차게 식는 감각 속에서 내심 중얼거렸다. 심력을 기울여 자아낸 소공폭마화가 단 한 수에 모조리 파훼된 것을 보고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살아남은 것은 그 덕분이었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당연명이 횡격 기수식을 취할 때까지만 해도 호신마화로 능히 막아낼 수 있다 여겼지만, 백색의 짧은 검신에 진녹색 불길이 어리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생각을 바꿨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수십 차례 울리는 것만 같았던 때문이다. 예지의 영역에 이르도록 갈고 닦은 기감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당장 피하라고.
긴장과 경계를 돋우고 있던 공손태의 판단은 빨랐고, 움직임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검푸른 불길로 이루어진 장벽을 세워둔 채 신법 마화연신을 펼쳤다. 빗살과도 같은 검초가 닿기 직전에,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검초 섬강(罡)의 권역에서 벗어난 것이다. 맞부딪치길 포기하고서.
결과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다. 지옥마화공의 공력으로 세워진 방벽은 당연명의 횡격 검초가 쏟아낸 강기가 닿는 순간 쩍 갈라졌다. 그 뒤에서 안심한 기색으로 서 있던 마교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녹색 섬광이 번뜩이며 만들어낸 일직선 그곳에서 울컥거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풍경이 절단난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운이 좋군.”
죽일 생각이었는데 당연명은 여전히 진녹색 불길이 매달려 있는 단검을 회수하며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검초로 마교도들은 물론이고 공손태까지 함께 죽일 심산이었다. 그래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대사.’
당연명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 전, 자운의 금강불괴지신이 파훼되면서 그의 육신에 혈선이 아로새겨지는 것을 보았더랬다. 마교 우사 혁련중선의 검공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더라니 기어이 변고가 인 모양이었다. 당연명은 오랜 도주로 지친 곤륜과 공동의 도사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전후좌우 사방에 있던 마교도들 대다수를 참살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사이에 자운은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오른팔과 오른다리 팔은 상완 중간부터 잘려 나갔고, 다리는 허연 슬개골(膝蓋骨: 무릎 뼈)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금강불괴지신이 깨지면서
허용한 일검으로 인한 것이었다. 명백히 치명적인 상처였다. 순간적으로 화경의 무위를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인에게 있어 신체의 결손은 그만큼 중차대한 문제였다. 사지 중 둘을 잃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승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물론 자운과 혁련중선, 두 사람 간의 얘기다.
당연명이야 설령 자운이 없다 하더라도 마교 좌우사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검귀의 무학을 제약 없이 펼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찰나지간에 검초 섬(殲)을 세 번 휘두르고, 패력이 실린 파장을 여러 번 중첩 발산해야 하는 검초 경(驚)을 시전했으며, 극강(極强)의 의념이 어린 섬강(罡)까지 구현했다. 이처럼 검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검귀의 무학을 연달아 펼쳤음에도 단검 백설은 건재했다. 과연 쉽사리 썩지도, 부러 지지도 않는다는 영성을 지닌 기물 용각(龍角)으로 만들어진 병장기다웠다.
그렇지만 자운을 죽게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화경의 무인으로서, 정천맹의 소중한 전력일 뿐만 아니라 육파의 중심적인 인물임에도 당연명에게 우호적이었다. 사실 당연명에게는 무력보다 이러한 호의적인 태도가 더욱 기꺼웠다. 정천맹주로서 육파의 인물들을 다루는데 있어 자운의 입김이 몹시 유용하게 작용했던 까닭이다. 또한 자운을 이곳까지 데려온 장본인이 바로 당연명 자신이었으므로, 이미 잘린 팔다리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갈 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빠르게 마교 좌사 공손태를 격살해야 한다 작은 신음 하나 없이, 불경 구절 같은 것을 중얼거리며 외다리로도 안정적으로 신법을 전개하는 자운을 일별하며 당연명이 생각했다. 분명 급박한 상황이지만, 공손태를 무시하고 자운을 도울 수는 없다.
만약 그리했다가 공손태의 손에 도사들이 당하기라도 하면, 자운의 팔다리가 날아간 보람조차 없어진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당연명은 곧장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상념은 제법 길었지만, 실제로는 촌각에 불과한 시간이 흘렸을 따름이다. 검초 섬강(殲罡)을 피해 마화연신을 펼친 마교 좌사 공손태는 여전히 검푸른 불길에 휩싸인 채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검을 회수한 당연명은 자세를 고쳤다. 이번엔 왼쪽 무릎을 낮추며 오른발을 뒤로 뻗는다. 그러고는 뒷발에 힘을 주어 땅을 밀었는데, 고랑이 생성될 정도였다. 그렇게 발을 박아 넣다시피 하면서 검을 뒤쪽으로 늘어뜨린다.
새로운 기수식이었다. 검초 관(貫) 검귀가 남긴 또 다른 검초가 펼쳐질 전조였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매망량 하나 만이 언젠가 흑사련주의 한쪽 팔을 날려버린 찌르기 검초가 곧 펼쳐지리라는 것을 직감할 뿐.
아니, 검초 관(貫)이 아니다. 아직 단검 백설의 검신에는 진녹색 불길이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으므로 내뻗을 검초에 의념이 어린다는 얘기다. 검초 관(貫)은 그저 더없이 완벽한 찌르기일 뿐이었다.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쾌속한.
순간적인 침묵 속에서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공손태는 직감했다. 이 한 수로 승패가 갈린다고. 날카롭게 버려져 예지의 영역에 이른 기감도 더 이상 피할 것을 종용하지 않았다. 회피가 불가한 공격이 닥쳐오는 까닭일까. 공손태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그저 일체의 잡념이나 번민이 뇌리에 스미지 못하도록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뒷 일을 생각할 여유 따위 없었다. 후회가 없으려면, 살고자 한다면 이 순간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내야 한다는 압박감만을 느낄 뿐이었다.
문득.
공손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더디게 흐른다는 것을 자각했다.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몰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지옥마화공의 최후 절초를 펼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공손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간 익힌 무학들을 되짚어보았다.
마화공손가(火公孫家)의 무학은 마기를 매개로 일으킨 불꽃 마화(火)를 다루는 무공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공손태가 익힌 지옥마화공( 地獄魔火功)은 역천의 술법 무학으로서, 수련자가 지닌 심상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었다.
어쨌건 공손태는 지옥마화공을 대성하고 극마지경에 오른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로서도 이제까지 지옥마화공의 최후 절초를 펼친 적은 없었다. 시전자의 생명을 불사르는 무학이었기에.
지옥마화공의 최후 절초는 두 가지였다.
마화태양(魔太陽)과 겁화(劫火).
생명을 불사른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만물이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순정한 기운 달리 선천진기(先天眞氣), 혹은 진원지기라 불리는 것을 소모한다는 얘기였다. 그나마 마화태양(魔火太陽)은 마기와 더불어 선천진기의 일부만을 사용하지만, 겁화(火)는 남은 선천지기를 모조리 소모하는 최후의 최후 절초였다. 시전하면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그야말로 동귀어진의 수.
그렇게 무리를 가다듬으며 각오를 다지던 공손태의 눈에 당연명의 손이 움직이려 하는 것이 보였다. 때가 된 모양이었다. 상대는 의념이 어린 필살의 검초를 시전할 터였다. 이쪽은 이쪽대로 필살의 한 수를 준비해야 했다. 이미 직전의 살벌한 검초를 보고 난 뒤인지라, 공손태는 상대가 어리 다고 해서 경시하거나 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린 뒤였다.
스으으ㅡ
공손태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검푸른 불길이 잦아든다. 호신마화에 할애할 여력조차 없는 것일까. 불길이 잦아든 것과 동시에, 공손태가 합장하듯 양손을 겹친다. 장심과 장심이 맞붙는다. 그 상태에서 다섯 손가락만을 붙인 채 장심을 떨어뜨린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생긴 둥그런 구멍으로 당연명을 겨냥하면서, 공손태가 중얼거린다. 마화태양(魔火太陽).
그러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공손태의 장심 한쪽에서는 검푸른 불꽃이 콸콸콸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반대편 다른 한쪽에서는 하늘빛 기운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더니 두 기운이 섞이며 공처럼 둥근 형체를 만들었다.
“…!”
지켜보던 곤륜과 공동의 도사들은 아연실색하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구체에서 막강한 화기와 술법의 기운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검푸른 불꽃과 하늘빛 기운이 섞여 만들어진 구체는 청염(靑炎)으로 화해 타오르고 있었는데, 처음엔 아이의 머리통만 하던 것이 한 차례 눈을 깜빡이자 순식 간에 장정 몇을 쉽게 집어삼킬 정도의 크기로 거대해져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에 떠 있는 청염의 덩어리는 정말로 태양처럼 보일 지경이었는데, 당장이라도 쏘아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 였다. 저런 것을 무슨 수로 막아낸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도사들의 낯빛이 암울해질 때.
당연명이 움직였다.
‘창천관일(蒼天貫日).’
푸른 하늘의 태양을 단번에 꿰뚫겠다는 심상으로 창안된, 검초 관(貫)의 완성형 무학이었다. 이제는 망해 버렸다는 점창파의 사일검법과 그 오의가 비슷하다. 해를 노린다는 점 말이다.
번쩍─!
어두워진 하늘이 조금 더 어둑해지며 빛줄기가 솟구쳤다. 청염의 마화태양마저 순간적으로 빛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푸른하늘도, 붉은 태양도 아니었지만 맹렬한 기세로 솟구친 빛줄기는 그대로 푸른 불꽃 덩어리를 관통했다.
관일(貫日)의 검초였다.
화경과 극마 절세 고수들 간의 대결이다. 당연스럽게도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안법을 필사적으로 동원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단숨에 일직선 진녹색 불꽃의 궤적이 죽 그어지는 정도로만 보였을 뿐이다. 엄청나게 쾌속한 검초였다.
“허…!”
“어찌 이런 검초가?”
뒤늦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완전히 안도한 기색.
그도 그럴 것이, 마교 좌사 공손태가 시전한 마화태양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사이로 당연명이 공손태의 심장에 눈처럼 하얀 단검을 찔러 넣고 있는 장면이 보였던 까닭이다.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이제 우사만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던 공손태의 입에서 짤막한 말이 새어나왔다.
“겁화(火).”
<18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