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505
504화 (특별외전 6)
[신전 놈들은 대체 언제 꺼지는 거냐!]이그렐은 또 어딘가로 가버리고, 엘라가와 뮤트는 약혼식이 펼쳐지는 홀 2층 발코니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기분 나쁜 신관들을 피해, 또 뮤트를 숨기기 위해 선택한 장소였다.
멀리 가지 못한 이유는 헬무트가 자신의 시야가 미치는 곳에 있으라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내 동생의 약혼식…… 나도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네 동생 아니라니까. 그리고 개가 널 본다고 좋아하겠냐.]경사스러운 약혼식 날 어둠의 싹의 축하라니, 저주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역시 나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가.]뮤트가 우울한 듯 고개를 수그렸다.
[몸뚱이를 좀 키워서 인간처럼 바꿔 봐. 그럼 이렇게 숨어다닐 필요도 없잖아.]헬무트가 그랬듯 뮤트도 자신의 기운을 감출 줄 알았다. 그러니 모습만 인간처럼 보이면 그럭저럭 인간들 틈에 섞여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인간들처럼 살 수 없다.] [네가 번식도 못 하는 주제에 인간인 척 돌아다니며 암컷을 꼬시면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조용히 살면 무슨 문제겠냐.] [심오한 정체성의 고민이다. 본체에게 나는 그다지 쓸모없는 존재인 것 같다.]엘라가는 자기가 왜 뮤트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스러웠다.
마물 비슷한 거인 주제에 별생각을 다 한다. 마물은 그냥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존재. 되지도 않는 인간 흉내를 내고 있다.
[내 모습이나 원래대로 돌려놔. 그게 네 쓸모다.] [……노력하겠다.]드디어 임무를 다 마쳤는지 대신관을 비롯한 신관들이 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도 리노사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 이제 내려가 볼까.] [나는 조금 더 있고 싶다.]엘라가는 뮤트와 아래쪽을 번갈아 보았다. 아래서 뛰어오르면 닿을 만큼 가까운 장소. 잠시 혼자 두어도 별문제는 없으리라.
[그럼 넌 여기 있어. 난 갔다 오마.]엘라가가 자리를 뜨고 나자 뮤트는 홀로 남았다. 누가 그의 모습을 본대도 헬무트의 모습을 본 딴 작은 인형 장식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외로운 존재라니. 뮤트는 고독한 감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인간? 바로 걸어와 옆에 털썩하고 주저앉은 그 누군가가 평온하게 물어왔다.
“인간 세상은 어때.”
마치 여러 명이 하나의 질문을 하듯 섞여 들리는 목소리. 인형인 척하고 있던 뮤트가 움찔, 움직였다. 그제야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
[시안? 아니, 아니다. 너는…….]대지의 정령. 시안의 몸에 현신한 그것이 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평범한 상대인가.”
[……아니긴 하다.]뮤트는 긴장한 채 아래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음악으로 가득 찬 홀과 달리 이 위는 유리된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왜 나를 찾아왔지?]위험 요소를 제거하려고. 그 이유밖에 더 있을까? 죽음의 사자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하지만 대지의 정령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거든.”
[궁금한 거?]“너는 무엇이 되고자 하느냐.”
뮤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건 그가 가진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다.
“실체를 두지 않는 우리 같은 존재에게 존재를 규정짓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 혹은 선호.”
그렇기에 대지의 정령은 뮤트가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지 알려는 것이다.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근원으로 회귀할 것인가.”
뮤트의 근원은 마왕. 이건 세상을 파괴하는 존재가 될 거냐는 질문인가.
관조하듯 지켜보다가 이렇게 가까이 왔다. 뮤트는 자신의 대답이 대단히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가? 나는 인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마왕처럼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인간에게서 비롯된 존재니까.]하지만 의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헬무트는 오롯한 인간이 될 수 있었지.”
[본체는 원래 인간이었다. 나와는 달라.]“모르겠느냐? 너도 인간으로부터 비롯한 존재.”
그건 마치, 뮤트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경험과 시간은 뮤트를 자라게 한다. 힘이 성장하고 이지가 성장한다. 육체란 한계가 없기에 뮤트는 한없이 성장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어둠의 싹 태생이라는 한계를 벗어 버릴 수 있는 걸까?
마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이 세계에 속한 존재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까?
“꼭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쯤 어중간하게 발을 걸치는 존재도 괜찮겠지.”
마물도 인간도 아닌 그 무언가로. 다만 세상을 파괴하려는 의지에 휩싸이지 않는다면.
잠시 침묵이 이어진 뒤, 뮤트가 경계하듯 물었다.
[나를 없애려고 온 게 아닌가.]대지의 정령은 이 세상을 지키고 유지, 존속하는 사명을 가졌다. 루멘이 인간을 수호하기 위한 신인 것처럼.
뮤트는 분명 위험을 불러올 수 있었다. 어둠의 싹이란 결국 마왕의 조각이자 일부니까.
하지만 대지의 정령은 담담히 말했다.
“언젠가 그럴 수도 있겠지.”
뮤트가 이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면.
“이만 가야겠구나.”
그는 볼일을 다 마친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유히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안은 곧 정신을 차릴 것이고,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뮤트는, 그 덕분에 답을 찾은 듯했다.
[……도움이 되었다.]한 가지는 분명했다 . 지 금 여기가 뮤트가 속한 세상이었다. 뮤트는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아갈 것이다. 그 어떤 존재로든.
마왕의 조각도 어둠의 싹도 아닌 그저 뮤트로서, 가급적 평화롭게.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오래도록 생각해 볼 참이다.
그때 불쑥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얌전히 있었냐?]탁, 탁!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엘라가가 뛰어을라 옆으로 안착했다.
[그새 사고 친 거 아니지?]아마도, 혼자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외전 기다림의 끝
비틀린 공간 속, 한 여인이 있었다. 대기는 얼어붙을 듯이 추웠고 공기는 희박했다. 그녀를 제외한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텅 빈 장소.
여인은 그곳에 얼어붙은 채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영영, 그렇게 잠들어 있으리라.
그녀의 이름은 하이케.
최후의 순간, 아레아를 떠나보낸 그녀는 자신을 덮쳐 오는 충격 속에서 후방에 아공간을 열었다.
어떻게 성공했는지도 모르게 그 안으로 몸을 던져넣고 입구를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구잡이로 연 아공간은 극도로 춥고 어두웠으며 마력을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이케는 남은 마력을 끌어모아 자신을 얼리고 동면에 들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낼 때까지, 깨지 않는 잠이었다.
하지만 세계와 세계의 틈 사이에 존재하는 그곳은 무척 작았고,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이케는 그저 잠들어 있었다.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죽음이든 구원자든 변화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 면서. 그러던 어느 순간, 변치 않을 것 같던 그 공간에 빛이 새어들었다.
“하이케.”
친숙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고막을 울리고, 이내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하이케는 비로소 눈을 떴다.
“아레……아?”
정지해 있던 모든 것이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비걱거리는 몸이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나가요.”
내밀어진 손을 잡고 하이케는 아주 오랜만에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걸음을 내디뎌 바깥에 다다른 순간, 환하게 쏟아지는 햇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눈부시게 찬란한 그것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발이 디딘 수풀과 흙의 감촉, 살랑거리는 바람. 그 모든 것이 아득하도록 새로웠다.
“몸은 괜찮은가 보네요.”
아레아는 평온하게 말하며 그들이 빠져나온 입구를 닫았다. 다시는 발 들일 일 없도록 완전히.
자연스레 아공간을 다루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이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대마법사가 되었구나.”
“물론.”
고개를 까닥하며 대답하는 아레아는 세월의 흐름을 가늠케 하듯 이전보다 성숙해진 인상이었다. 앳된 티가 났던 예전과는 달리, 우아한 깊이가 생겼다.
하이케가 물었다.
“몇 년이나 지났지?”
“5년 좀 안 되었군요.”
하이케의 생존 가능성을 알게 된 이
후로, 4년을 꼬박 이 일에 매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구가 아레아를 대마법사로 거듭나게 했다.
“용케도 나를 찾았구나.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자신이 살아 있는지조차 모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건만.
“당신이 남겨 두고 간 흔적이 길을 알려주었지요.”
아레아는 은은한 빛을 내는 크리스탈을 꺼내 보였다. 하이케는 바로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그런 게 있었지. 학장도 잊지 않은 모양이구나.”
생사를 알리기 위한 물건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해 줄 줄이야. 아직 명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실 수 있겠네요.”
“그래, 네 자식을 보려면 더 살아야지. 그런데…….”
하이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5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결혼을 안 했단 말이니? 참 미적거리는 녀석이야.”
“그래도 대공가의 결혼식인데 신부 쪽 가족 한 명쯤은 있어야 구색이 맞지 않겠어요?”
“그거야 그렇다만……, ”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가족이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하이케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를, 용서한 모양이구나.”
“새삼스러운 말이군요.”
성기사들의 죽음도, 부모님의 죽음도, 하이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만약 신전이 아레아의 부모를 노릴 줄 알았다면 그녀는 목숨을 다해 지켰을 것이다.
신전은 용서 못 하지만, 하이케는 이미 그녀의 안일함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여전히 하이케를 미워했다면 찾지도 않았으리라.
“이제 돌아가요.”
아레아가 또 다른 문을 열었다. 빛을 휘감은 게이트 너머로 눈에 익은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라토나 왕성, 헬무트와 아레아가 머무는 바로 그곳.
“리노사로.”
그들이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이자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무심코 걸음을 내딛던 하이케는 마력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몇 년간 죽어있던 몸. 힘이 다시 온전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들 앞에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레아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미루어 두었던 것부터 치러야겠군요.”
미루어 두었던 일은 실상 하나뿐이었다.
저쪽에서 다가오는 그녀의 약혼자가 보였다. 검은 머리와 눈을 가진, 늠름한 청년이자 이제는 리노사의 주인이 된 남자.
헬무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레아.”
“헬무트, 나 다녀왔어. 하이케도.”
헬무트의 시선이 아레아의 옆에 선 하이케에게 닿았다. 성공했구나.
그렇게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이가 다시 돌아왔다.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듯 제자리로.
그리고 돌아온 그곳에서, 그들의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맞잡은 손은 부드러웠고, 헬무트의 기다림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