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000
1000
흰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대답한 태영준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적을 향해 세 발씩 끊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걸 보며 빠르게 전방을 살핀 혁권은 무기와 함께 챙겨서 나온 헤드셋 무전기로 저격수인 김선호를 호출했다.
“김선호, 어디야!”
-이제 막 2층 객실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살펴봤지만 조명이 다 꺼져 어두운 데다가 저격수의 특성상 모습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숨겨서인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혁권은 맞은편에서 쉴 새 없이 번쩍이는 총구 화염을 쳐다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RPG 사수부터 찾아서 처리해!”
-알겠습니다.
총성 때문에 들리지 않을까 봐 악을 쓰듯 소리를 친 혁권은 어둠 너머에 있는 적을 향해 가차 없이 자동소총을 쏴 댔다.
차가운 발코니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김선호는 L129A1 샤프슈터 라이플에 달린 적외선 망원스코프로 차분하게 목표를 찾았다.
그러다가 재장전을 끝냈는지 발사기를 어깨에 맨 채 로켓탄을 쏘려고 엄폐해 있던 픽업트럭에서 모습을 드러낸 RPG 사수를 발견하고는 나직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빙고.”
조준선 안에 상대가 들어오자 김선호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제법 묵직한 충격이 개머리판을 대고 있던 어깨를 때리는 것과 동시에 막 로켓탄을 쏘려던 RPG 사수가 피를 뿌리면서 뒤로 넘어갔다.
“일단 하나 잡고.”
총구를 천천히 옆으로 돌린 김선호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머리를 조준하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재차 저격총을 쐈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RPG 발사기를 집어 들려고 달려오던 적이 썩은 통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지며 망원스코프에서 사라졌다.
그때서야 저격수의 존재를 알아차린 김인철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 생각하고 달리 상황이 자꾸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가서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 김혁권의 얼굴에 총알을 박아 넣어야 되는데, 정원조차 뚫어 내지 못하고 정문에서 막혀 이러고 있으니 열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엄폐해 있는 차량 보닛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친 김인철은 광기에 찬 눈을 번들거리면서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쳤다.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저것들을 다 쓸어버려.”
하지만 용병들은 예상외의 격렬한 저항과 정확하게 날아오는 저격수의 총탄에 머리도 함부로 내밀지 못한 채 타고 온 차량을 엄폐물 삼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 병신 같은 것들이!”
잔뜩 화가 난 김인철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걸 옆에 있던 로페즈가 황급히 붙잡았다.
“위험합니다. 이대로 계십시오.”
“이거 놔. 엉덩이를 차서라도 돈값도 못하는 것들을 움직이도록 해야 될 거 아니야!”
“저격수의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작스럽게 날아온 총탄이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사륜구동 차량 지붕을 때렸다.
황급히 상체를 숙인 김인철을 보며 로페즈가 빠르게 말했다.
“일단 저격수부터 잡고 움직여야 됩니다!”
“제길!”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신경질을 내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럼 말만 하지 말고 어서 저격수를 처리해!”
“알겠습니다.”
로페즈가 용병들을 향해 뭐라고 크게 외치자 우락부락한 얼굴의 사내가 RPK 경기관총을 픽업트럭 보닛에 올리고는 저격수가 은신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위치에다가 총탄을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탕!
리드미컬한 총성이 연달아 울릴 때마다 약실에서 튕겨져 나온 황색 탄피가 요란한 쇳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져 쌓였다.
퍼퍽! 퍽! 쨍그랑!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2층 유리창들이 일제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옆의 벽도 망치로 두드린 듯 벌집처럼 움푹 파이며 총탄 자국이 만들어졌다.
“크윽.”
몸 위로 유리 조각과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고 총탄이 머리 위를 지나가 객실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자 김선호는 더 버티지 못하고 저격총을 챙겨 포복으로 발코니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저격의 위험에서 벗어난 용병들이 다시 엄폐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는 아군을 강하게 몰아붙이며 압박했다.
매캐한 화약 연기가 진동하는 가운데 총신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방아쇠를 당긴 혁권은 탄창을 빼내고 새 걸 꺼내 갈아 끼웠다.
30발짜리 탄창을 하나 다 비웠지만 야간인 데다가 상대가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에 한 명도 맞히지 못했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는데 벌써 교전을 시작한 지 꽤 됐지만 별다른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기습을 저지하고 이렇게 적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건 좋았지만 시간은 혁권의 편이 아니었다.
경기관총과 RPG 발사기까지 가진 상대가 화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데다가 무엇보다 이곳은 적지나 마찬가지였기에, 자칫 잘못하면 김인철이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반군들을 더 끌고 올지도 몰랐다.
그 전에 나름 충분히 준비를 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탄약을 마구 소모시킨다면 얼마 있지 않아 총탄이 다 바닥나 버릴 터였다.
상대를 이기려면 빨리 승부를 봐야지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결론을 내린 혁권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태영준!”
벽돌을 쌓아서 만든 화단 뒤에서 사격을 가하고 있던 태영준이 옆을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연막탄하고 수류탄 가지고 있는 거 있지?”
“저한테 한 개씩 있고 다른 팀원들도 몇 개 있을 겁니다.”
“좋아. 측면으로 돌아서 놈들의 옆구리를 칠 테니까 연막탄을 터트려서 엄호를 하도록 해!”
그 말을 들은 태영준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어차피 여기 있어도 안전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야.”
단번에 내뱉듯이 말을 쏟아 낸 혁권은 태영준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하킴과 다른 부하들을 이끌고 상체를 숙인 채 움직였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꼴이 된 태영준은 ‘이런.’ 하고 낭패한 얼굴로 중얼거리곤 황급히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보스가 측면으로 돌아갈 거니까 연막탄을 있는 대로 다 터트려!”
전투조끼에서 깡통 캔처럼 생긴 연막탄을 꺼낸 태영준은 안전핀을 뽑을 뒤 있는 힘껏 앞으로 집어 던졌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 바닥에 쇳소리를 내며 떨어지자마자 푸시식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흰 연막을 피워 올렸다.
다른 팀원들도 그를 따라서 연막탄을 가지고 있는 대로 다 투척하자 삽시간에 리조트 앞마당이 희뿌연 연막으로 가득 채워져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태영준과 팀원들은 몇 개 되지 않았지만 가지고 있던 수류탄까지 모두 던져서 터트렸다.
콰쾅! 쿠쿵! 쿵!
그렇게 시선을 끌어 주는 사이에 혁권은 부하들과 함께 신속하게 건물을 가로질러 왼편 담장 밑에 도착했다.
아래쪽엔 정원을 손질하는 데 쓰는 도구인 듯 길쭉한 가위와 양동이 같은 것들이 있었으나, 한동안 관리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녹이 슬어 있었다.
게다가 반쯤은 버려진 곳이었는지 정체 모를 고철이나 솜이 터져 나온 의자처럼 한때 리조트 비품이었던 물건들도 이리저리 쌓아 두었는데, 그런 잡동사니들 가운데 비죽 튀어나온 사다리를 발견하고 혁권이 손짓했다.
부하들이 사다리를 끌어내어 담장에 기대자 혁권이 먼저 발판을 성큼 올라갔다.
다행히 바깥에는 적이 없었기에 재빠르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 담장 너머로 넘어간 혁권은 부하들을 이끌고 우거진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몸을 낮추고 빠르게 달리는 동안 튀어나온 나뭇가지들이 옷과 피부에 마구 달라붙고 상처를 내었으나 일행 중 누구도 발을 늦추는 사람이 없었다.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적이 눈치를 채기 전에 측면으로 돌아나가야 했기에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수풀을 헤치며 어두운 숲속을 한참 달려간 혁권은 주먹을 쥔 채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는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거친 숨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호흡을 고른 뒤, 조용히 하란 뜻으로 손가락을 세워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잠깐 눈빛이 오간 뒤, 혁권은 소리 없이 수풀을 헤치고 살금살금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서 타고 온 차량 뒤에 숨어서 아군하고 교전을 벌이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혁권과 부하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와 우회한 걸 눈치채지 못한 분위기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충 확인한 적은 얼추 스무 명 남짓, 반면에 자신까지 다 합쳐도 이쪽은 네 명뿐이었다.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단번에 상대를 쓸어버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거꾸로 당할 수도 있었다.
그때 한쪽 손에 권총을 든 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욕설을 퍼부으면서 용병들을 다그치고 있는 김인철을 발견했다.
“역시 여기 있었군.”
싸늘하게 말을 내뱉으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 옆에 있던 하킴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직이 그를 불렀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여기서 흥분해서 일을 망칠 만큼 멍청이는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
애써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하킴과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회는 단 한 번이야. 내가 먼저 총을 쏘면 그걸 신호로 단번에 놈들을 다 쓸어버리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바로 시작하자고.”
탄창을 전부 새 걸로 갈아 끼운 부하들이 양옆으로 자리를 잡자 그는 한쪽 무릎을 흙바닥에 댄 채 HK416 자동소총을 들어 김인철을 겨냥했다.
총열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쪽 손으로 단단히 받치고는 피카타니레일에 부착한 EOTech 553 홀로그래픽 사이트로 김인철의 머리를 정확하게 조준했다.
거리는 약 50미터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맞히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그대로 숨을 멈춘 혁권은 조준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요란한 총성을 울리면서 날아간 총탄은 김인철을 스치듯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지나가 바로 뒤에 있던 픽업트럭을 맞히며 번쩍 불똥이 튀었다.
“젠장!”
무슨 이유인지 마지막 순간에 자세를 바꾸는 바람에 총탄이 빗나가고 말았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혁권이 연달아 사격을 가하자 놈이 한쪽 어깨를 부여잡은 채 픽업 차량 뒤로 사라졌다.
비틀거리며 처박히듯 쓰러지는 모습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치명상을 입힌 것 같지는 않았다.
바로 끝장을 낼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치자 욕설이 튀어 나왔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지시한 대로 하킴과 부하들이 몸을 드러낸 채 자동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총탄 세례에 적들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으아악!”
“크흑.”
자리에서 일어난 혁권도 총구에서 불을 뿜으며 공격에 가세했다.
타타탕! 타탕! 탕! 탕!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십 발의 총탄에 리조트 정문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픽업트럭 두 대가 온통 벌집이 된 채 타이어가 터지면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피를 뿌리면서 쓰러지는 용병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그 상태에서 리조트 안에 있던 태영준과 팀원들까지 엄폐물 밖으로 나와 적을 가운데 두고 협공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