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50
1457화 함정 (4)
천사군에서 제작에 특화된 대천사 아그네스가 있다면.
우리 쪽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었다.
그간 보아온 것만 봐도 실력만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지.
이번 이동 포탈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천사 아그네스가 할 수 있는 걸.
마왕 헤르게니아가 못 할 리가 없었다.
물론 시간 관계상 완전히 똑같은 걸 순식간에 만들어 내거나 하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직접 쓸 수 있게끔 적절히 변형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설마하니 이동 포탈을 대천사인 자신도 없이 완전히 작동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대천사 앙겔스가 벙찐 표정으로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았다.
“왜? 놀랬어?”
“흠. 솔직히 놀랍군.”
대천사 앙겔스도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만한 기술자는 천사군 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테니까.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어디선가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마왕 헤르게니아.”
“이제야 눈치 챈 거야?”
자신을 알아보자 생글생글 웃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놀란 눈으로 보던 대천사 앙겔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대체 봉인에서 어떻게 나온 건가.”
“응? 넌 몰랐어?”
마치 전부 다 알고 있는데 너만 몰랐다는 듯한 늬앙스에 대천사 앙겔스가 다시 표정을 구겼다.
천사군이 에센시아 제국에 파견 올 수 있었던 표면적인 이유.
그건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헤르마늄 광산 내에 있던 봉인지에서 풀려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천사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조사할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되어 주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그들은 헤르마늄 광산 안을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로 쫓겨났다.
한 마디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떻게 풀려났는지.
그들은 전혀 모른다는 뜻이었다.
“우린 그걸 조사하러 온 거니까.”
대천사 앙겔스가 그렇게 말하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림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처음부터 나한테는 관심도 없지 않았어?”
“그건…….”
“애초에 헤르마늄 광산을 통째로 꿀꺽 하려고 연막 친 거잖아.”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에 대천사 앙겔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정말 내가 풀려난 방법이 궁금했었다면 에센시아 제국에 오자마자 내 행방부터 수소문했겠지.”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 수도성에서 처음 대천사들을 봤을 때.
그들은 마왕 헤르게니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조차도.
오히려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제국 황제와 눈치 싸움을 해가며 계약을 맺은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계속 몰라도 돼.”
“흠…….”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이번엔 대천사 앙겔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왔는지.
왜 다른 마왕들과 몰려와 에센시아 제국 수도를 점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자기 앞가림한다고 바쁠 테니.
그녀가 시선을 돌려 내게 말했다.
“일단은 이동 포탈을 단방향으로 조정했어.”
“대천사들이 이곳으로 넘어올 수 없다는 말이네.”
“응.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야?”
모두의 시선이 몰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딱 잘라 답해주었다.
“한 번 넘어가면 이 포탈을 통해서는 다시 못 돌아와.”
“그래?”
마왕 헤르게니아는 굉장히 우려가 섞인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 나나 챠밍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유저들은 이곳에 귀환 포인트를 지정해두면 바로 귀환할 수 있으니까.
뭐 전에 제물의 결계 같이 이동 스킬이나 귀환 포인트 사용 금지 같은 종류가 걸리면 난감하겠지만.
설마 요하스 성국 전체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반응이 그게 끝이야?”
“아. 뭐 그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돌아오는 건 알아서 할게.”
그러면서 챠밍을 가리키자 마왕 헤르게니아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 챠밍은 우수한 마법사니까.
그것도 마왕의 스태프를 들고 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빤히 보면서 물었다.
“나도 같이 갈까?”
“왜? 내가 걱정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확 인상을 구기면서 답했다.
“그냥 죽어버려.”
“……음.”
괜히 장난은 치지 말아야겠네.
두 번 장난 쳤다가는 정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지금 네가 죽어버리면 안 되니까.”
그래도 걱정하는 건 맞나 보네.
하지만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
지금 내가 가려는 곳은.
천사군의 거점인 요하스 성국이니까.
그곳에 마왕이 따라 간다?
이건 뭐…….
대놓고 죽여 달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따라가면 네가 먼저 죽겠는데?”
“나도 알아.”
모르고 물어본 건 아니었네.
“그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올 때 선물 하나라도 건져올 테니까.”
“선물?”
“지금은 나도 몰라. 요하스 성국에 뭐가 있나 한 번 둘러보고. 연구할만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오면 되려나?”
선물이라는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혹했는지 귀를 기울였다.
“아.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잘못하다가 천사들한테 쫓겨 다니기만 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런 상황이 오면 안 되겠지만.
이번 같은 경우엔.
최악의 수도 상정해야 한다.
“거길 꼭 가야겠어? 너무 위험한데…….”
“음. 그간 작업해놓은 게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안 가면 이 녀석. 목이 날아간다고?”
그러면서 대천사 앙겔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야. 지금 마왕이 대천사 목숨 걱정해줘야 해?”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대천사라면 이를 가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뭐 이번엔 걸린 게 크니까.”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을 그만큼 구해올 수 있으면.
당장 우리 팀 모두를 전신 무장 시킬 수 있는 양이다.
심지어 다 하고도 남을 정도지.
안 그래도 성력 관련된 무구가 부족했는데.
이번 기회에 죄다 채워 넣을 수도 있을 터.
그러니까 이건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조만간 성배를 중심으로 마왕들과 대천사들이 본격적으로 치고 박기 시작하면.
어중간한 등급의 무구들은 죄다 갈려나갈 테니까.
최소한.
최고의.
최강이라고 불릴만한 등급의 무구들만이.
그들을 직접 상대할 수 있다.
뭐 시간만 많다면.
우리가 보유한 헤르마늄 광산과 베르탈륨 광산에서 초고순도 광석들이 채굴되길 기다리면 되겠지만.
이쪽은 시간도 시간인데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그에 반해.
이번 작업만 잘 되면.
그냥 초고순도 광석들이 통째로 굴러들어오니.
목숨 정도는 내어놓고 갈만하지 않은가.
이젠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아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숨을 쉬면서 한 가지 문제를 꺼내 들었다.
“일단 대천사들이 넘어오는 건. 내 선에서 막을 순 있어. 지금처럼 이동 포탈을 조작해버리면 되니까. 그런데…….”
“그런데?”
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가?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천사 앙겔스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동 포탈을 타고 넘어가면 쟤는 몰라도. 넌 바로 죽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하려는 말이 뭔지 확실히 이해해버렸다.
챠밍 역시 눈치 챘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고.
대천사 앙겔스도 마찬가지.
아니.
이쪽은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이동 포탈을 타고 넘어가면 대천사들과 천사군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거지?”
“응.”
이동 포탈을 이쪽에서 조작해 천사군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대천사들과 천사군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정말 그들이 에센시아 제국으로 넘어오기로 마음먹었다면.
지금쯤 대천사 앙겔스의 신호를 기다리며 이동 포탈 앞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상황이 이런데 우리가 이동 포탈을 타고 요하스 성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눈에 훤하다.
대천사 앙겔스야 어차피 저쪽 편이니 바로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마왕군으로 가는 나와 챠밍은 그 자리에서 바로 포위당하게 될 터.
이건 적의 아가리로 잡아먹어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격이었다.
바로 대천사 앙겔스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이미 알고 있었죠?”
“음…….”
역시 모를 리가 없지.
그런데 그때.
대천사 앙겔스가 손을 저으면서 내게 말했다.
“어차피 너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감찰원에서 이미 자신이 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걸.
거기다 공화정에서는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다른 말로.
이대로 이동 포탈을 타고 돌아가면.
대천사 앙겔스 역시도 목이 간당간당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냥 쭉 지켜만 보고 있었다라…….
절대 그럴 녀석은 아닌데?
곧 짧게 한숨을 쉰 대천사 앙겔스가 품에서 뭔가 물건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건 뭐죠?”
“다른 이동 포탈의 좌표가 찍힌 마법 수정이다.”
다른 좌표?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이동 포탈의 도착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대천사 앙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하스 성국 내에는 이미 이동 포탈이 꽤 많이 설치되어 있다네. 이 마법 수정은 그 좌표로 조정할 수 있는 물건이지.”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도 알겠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거 줘봐.”
바로 가서 대천사 앙겔스에게서 좌표 수정을 받더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헤에. 이런 식으로 구동하는구나.”
“쓸 수 있어?”
“응. 조금 기다리면 바로 적용시킬 수 있을 거야.”
다시 대천사 앙겔스를 보며 물었다.
“이쪽 좌표는 안전한 것 맞습니까?”
“음.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그러자 내가 바로 반문했다.
“어차피 이 좌표 수정을 당신에게 준 것도 대천사 아그네스 아닌가요?”
전에 설정되어 있던 좌표나.
새 좌표나.
대천사 아그네스가 준 건 똑같다.
물론 다른 좌표에서 똑같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법은 없지만.
아무래도 불안하지.
“음. 그건…….”
역시 이 녀석도 확신하진 못 했다.
애초에 대천사 아그네스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그녀가 만약 모든 좌표에 병력을 배치해놨다면.
꼼짝 없이 죽은 목숨일 터.
물론 그럴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대천사 앙겔스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포탈을 지킬 이유 자체가 없으니.
흠.
좌표가 비어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바로 갈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바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잠시만.”
곧장 혼자 떨어져 나와 대천사 유니티에게 연락을 넣었다.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네. 아는 선에서는 대답해드릴게요.
그럼 혹시 에센시아 제국에 지원 올 대천사들이 어디에 대기하고 있는지 압니까?
대공이 그걸 어떻게 아셨죠?
역시.
예상대로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현재 요하스 성국의 수도성에 모여 있어요.
전부가요?
네. 대천사 베이넌에게서 연락이 오는 대로 투입될 예정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천사 유니티는 대천사 앙겔스가 이미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걸.
그러니 대천사 베이넌을 언급했겠지.
그렇군요.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죠.
대공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연락을 끊고는 돌아오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동 포탈의 준비를 마쳐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 역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조금은 의외의 말을 해주었다.
“전에 내게 말한 것 기억나?”
“어떤?”
“여기 지하에 재밌는 게 있을 거라고.”
비밀 연구소 말하는 건가?
“그랬지.”
“나 거기서 뭘 봤게?”
“글쎄. 뭘 봤는데?”
그리고는 속삭이듯 내게 말해주었다.
“타이탄. 그것도 한 대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