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vitably Levelled up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에필로그 (2)
* * *
옥토끼가 평화롭게 노니는 어느 달동네.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야, 내 신발 훔쳐 간 토끼 새끼 당장 나와! 자기들은 신발 신지도 않으면서 맨날 신발만 훔쳐 가!”
“뀨웅. 뀨웅.”
평화로운 하루였다.
찌뿌둥한 몸을 풀면서 어슬렁거리며 일어난 이안은 이내 신발 찾는 건 포기한 듯 맨발로 돌아다녔다.
“복실아, 오늘 아침은 뭐야?”
“뀨웅!”
“응, 오늘도 달떡이야?”
이곳에 온 이후 하루 삼시 세끼 빠짐없이 달떡만 먹었으면 묻지 않아도 알 법한데, 이렇듯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어보는 이안이었다.
이안은 먼 곳을 향해 냉소적인 시선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 기분이 어떤지 알겠어.”
“뀨우웅!”
언제나 그렇듯 복실이는 질리지도 않고 달떡을 맛나게 먹었고, 어서 먹으라며 이안에게도 권했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이토록 오랫동안 매일 먹게 되면 미각이 마비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복실아, 이제 슬슬 정리된 것 같지?”
“뀨웅. 뀨웅.”
이안은 잠든 옥토끼가 베고 있던 자신의 신발을 뺏어 신으며 말했다.
핵 코어를 삼키면서 시스템 관리자가 되는 데 성공한 이안.
하지만 관리자가 되었다고 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말이 관리자지 지속해서 유지보수해야 하는 수리공 같았다고 할까…….’
특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한 직후는 심각했다.
검은 안개에 삼켜진 수많은 세계가 파편 조각으로 흩어져서 그걸 수복하는 데만 제법 고생한 것이다.
걱정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돌아가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좋았어! 이제 지긋지긋한 달떡하고도 안녕이다!”
“뀨우우우우……!”
신성한 달떡을 모욕하지 말라고 불평하듯 복실이가 길게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에 들떴다.
그러더니 허공에 대고 혼잣말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립지? 아닌 척해도 다 알아.”
복실이는 익숙한 일인 것처럼 혼잣말하는 이안을 내버려 두고 귀환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복실이의 귀환 준비란 최근 옥토끼 세계에서 ‘핫템’으로 떠오른 최신형 절구라든가, 최신형 절굿공이, 101가지 달떡 조리법 등등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혼잣말을 끝내고 돌아온 이안이 복실이를 품에 안았다.
“복실아, 가자!”
“뀨웅!”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아온 이안이지만 원래 세계로 귀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지 알 수 없었다.
몇백 년이 흘렀을 수도, 몇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었다.
이안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살아 있기를 바라며 귀환 길에 올랐다.
* * *
꿈을 먹는 자가 돌아왔다.
어느 날 새로운 꿈 안개가 나타났고, 거기서 꿈을 먹는 자가 나오는 걸 봤다는 목격담이 퍼지면서 세간은 발칵 뒤집혔다.
– 가짜 목격담이 하루 이틀이야? 관종들아, 제발 그만 좀 하자.
– 희망 고문도 정도껏 해야지. 아직도 꿈먹자 기다리는 리아가 불쌍하지 않냐?
– 이번엔 진짜 신빙성 있는 목격담 같던데?
└ 네, 본인 어서 오고.
그렇다 보니 동료들은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숱한 거짓 제보와 목격담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예, 지금 당장 그쪽으로 사람들 보냈습니다. 목격자도 찾았고요. 리아가 거짓말이 아니란 걸 밝혀냈습니다. 상세한 인상착의도 일치하더군요.”
통화를 끝낸 장대호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다르다. 이안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은 가슴을 졸였다.
“대호 아저씨,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나가서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왜 다들 모이라고 한 거예요?”
그러자 라티 샤키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본인이 돌아온 게 맞으면, 돌아오자마자 어디로 갈까요?”
“그거야 당연히 우리한테… 아!”
비록 일 년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왔을 땐 장난친답시고 병원부터 입원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장난기 넘치는 사람이어도 그런 장난을 두 번이나 치는 건 인성을 의심할 만한 일이었고, 이번엔 그때와 상황 자체가 달랐다.
“그럼 우리는 이대로 그를 기다리는 겁니까?”
“괜히 찾겠답시고 흩어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다 함께 환영하는 게 훨씬 기쁘지 않을까요?”
동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고 있을 때 구석에서 조용히 눈치 보며 침묵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금수지였다.
그녀는 잔뜩 얼어붙은 채 아델라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저, 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 맞아요?”
“괜찮아요. 이안이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사람인데 괜찮은 게 당연하죠.”
“우우… 정말 그가 맞았으면 좋겠어요.”
금수지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세계와 역사가 바뀐 것을 체감하지 못했으나, 아델라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워했고, 이안이 만들어 준 삶의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
이윽고 초조한 동료들은 하나둘씩 침묵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확실하게 이안이 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일어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쨍그랑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졌다.
* * *
“하하!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뀨웅! 뀨웅!”
무언가의 습격이라고 생각해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고 경계 태세를 갖췄던 동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창문을 깨부수고 스파이더맨처럼 멋지게 안착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이안과 복실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긴 했지만, 막상 몇 년 만에 나타나자 곧바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어… 여러분? 제 말 들리세요?”
“뀨우우우우?”
오랜만이니만큼 놀라게 해 주고 싶다,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실은 문을 열고 평범하게 들어가는 것이 왠지 쑥스럽고 어색했다.
그래서 창문으로 들이닥친 것인데 다들 경직된 채 반응이 없자 이안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놀라게 했나? 다들 괜찮… 윽!”
“이안!”
마치 일시 정지가 풀린 것처럼 모두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특히 가장 먼저 뛰어든 아델라는 이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로 앞섬을 적셨다.
“왜,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하, 미안해요.”
“크아악! 커즌! 이렇게 멀쩡히 돌아올 수 있었으면서……!”
“으아앙… 보고 싶었다구요.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도 되구…….”
“이안 씨……!”
아델라뿐 아니라 크리스에 리아, 심지어 장대호까지 이안을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기에 그의 귀환은 그들에게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다친 곳은 없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죠?”
“후,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환영.”
불과 바로 전까지 조용했던 게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사방에 울음소리가 가득했고, 심지어 블라디미르마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비드 역시 매우 보기 드문 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핫, 이제야 제대로 환영해 주시네요! 이야~ 그동안 절 까맣게 잊은 줄 알았지 뭡니까.”
이안은 일부러 밝게 웃으며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눈물은 필사적으로 참을 수 있었어도 떨리는 목소리까진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리웠던 건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이안도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겨우 상황을 진정하고 나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집중적으로 추궁된 것은 이안이 곧바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럼 이제 전부 괜찮은 겁니까?”
“예. 애초에 시스템은 관리자 없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제 역할은 단지 사태를 수습하고 앞으로 시스템이 폭주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뿐이죠.”
문득 의문이 생긴 라티 샤키라가 이안에게 물었다.
“관리자라는 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관리자가 되면서 생긴 변화는 어떤 게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이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무기한입니다.”
“그럼 죽을 수 없단 뜻인가요?”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다들 당황하면서 이안을 쳐다보았다.
“엣? 죽을 수 없다니요? 그럼 브라더가 영생을 얻은 거예요? 와 대단하잖아요!”
눈치 없이 기뻐하는 크리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얼핏 영생이라고 하면 좋은 것처럼 들릴지 몰랐다.
그러나 영원한 삶이란 건 일종의 저주였다.
소중한 이들을 계속 떠나보내며, 영원히 혼자서 떠도는 고독한 삶.
“하하, 실은 저도 그것을 계속 고민하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벗어날 방법이 하나 있더군요.”
“정말인가요?”
“그게 뭐죠?”
다들 안도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이안은 조금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후손에게 관리자 권한을 넘기는 겁니다.”
뜻밖의 대답에 다들 멍한 표정이 되었다.
“후손이란 건 브라더의 유전자를 이은 후손을 말하는 거예요?”
“어. 아무래도 내가 그… 새로운 종족 ‘한국인’으로 진화했잖아?”
“진짜! 또 그때랑 같은 농담을! 이제 재미없거든요?”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명칭 설정할 때 서두르느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불러서 그래!”
겨우 농담하는 게 아니란 걸 이해시킨 이안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특정한 유전자 정보를 갖춘 자에게만 넘길 수 있는데, 아무래도 진화하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종족이 됐더니 그걸 가진 게 저밖에 없더군요.”
“그렇다는 건…….”
“에이, 해결됐네요! 열심히 힘내서 자손을 잔뜩 늘리자구요! 그렇죠? 아델라 누님!”
“나, 나?”
갑자기 자신에게로 화살이 날아온 아델라는 화들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누님은 분명 순산할 수 있어요! 파이팅!”
딱!
크리스는 이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이안은 어색한 얼굴로 아델라와 금수지를 바라보았다.
한바탕 동료들과 회포를 풀던 이안은 어느새 한 사람씩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고 있단 걸 눈치챘다.
그렇게 남은 건 이안과 아델라, 그리고 금수지였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안이 먼저 말을 꺼냈다.
“두 분에겐 정말 미안한 게 많아요. 좋은 사람은 만났어요?”
이안의 물음에 아델라와 금수지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났는걸요.”
“예, 다 이안 씨 덕분이에요.”
“…제 덕분이라고요?”
단순히 비꼬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안은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뭐야, 거절한 건 나였잖아. 좋은 사람 만나란 소리까지 해 놓고.’
두 사람이 싫어서 거절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호감을 품은 상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단지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미련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단 건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은 씁쓸함을 느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두 분 모두 축하드려요. 언제 한번 소개해 줘요.”
“소개라면 필요 없어요. 이안 씨도 아는 사람인걸요.”
“제가 아는 사람?”
이안은 누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상큼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완벽한 남자.
“윌리엄인가요?”
“에이, 눈앞에 있잖아요! 눈앞에!”
“어… 설마.”
설마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두 명의 여인이 서로 눈 맞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이안은 당황했다.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기분을 느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추, 축하드립니다. 아, 딱히 편견은 없으니까요. 잘 어울려요.”
그렇게 말하고 쓸쓸히 돌아서던 이안의 양손이 붙잡혔다.
그가 놀라서 돌아서자 한 손씩 붙잡은 아델라와 금수지가 도발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했지,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었어요.”
“어때요? 셋이서 조금 복잡하고 특별한 관계를 시작할래요?”
뜻밖의 제안에 잠시 놀라던 이안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요. 한번 끝까지 가 보죠.”
그때 이안의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 양손의 꽃이라니, 부럽기 그지없군. 그럼 이제 윤희를 만나러 가자고.
‘시끄러워. 난 그녀의 삶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어.’
– 그건 너지. 난 윤희와 다시 시작하고 싶거든? 야, 윤희랑 만날 때만 잠깐 몸 좀 빌려줘.
‘닥쳐! 그녀에게 어떤 민폐를 끼치려고? 그것도 내 몸으로?’
– 어차피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 정도는 양보하라고. 나도 좋아서 네 몸에 있는 거 아냐.
‘그럼 썩 꺼져! 셋방살이 주제에 무슨 요구가 많아.’
세계 통합을 이루면서 생긴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같은 세계관에서 분기한 두 개의 세계.
그것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중인격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안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일수록 다른 세계의 인격이 나타날 확률은 높았다.
– 운명이란 게 참 얄궂지? 그냥 업보려니 하고 받아들여.
‘흥, 대신 만나서 대화만 해. 이상한 짓 하면 평생 밖으로 못 나올 줄 알아.’
– 하핫, 그럴 줄 알았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안은 또 다른 자신을 받아들였다.
일방적으로 모든 희생을 떠안은 채 절망해야 했던 자신의 그림자.
덕분에 운명을 바꿀 수 있었으니, 적어도 미래는 함께 누리며 조금이나마 보답받기를 바랐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투덜거린 이안의 얼굴엔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