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91
491화
【에필로그 2.독립】
“흐. 몰골이 말이 아니군.”
솔리아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든 나를 내려다본다. 그가 나를 보듯이, 나 또한 오랜만에 솔리아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솔리아도… 예전하고 조금 다르시네요?”
승천자의 외형은 르암인과 비슷하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다른 부분이 많다. 전체적인 이목구비나 골격근의 구조, 피부색과 내장 등등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솔리아와 라온은 누가 봐도 르암인이라고 할 만한 외모를 했다. 그것을 지적하자 솔리아가 스륵하고 머리를 쏠어넘겼다.
“이때를 위해서 만들어준 강림체(降臨體)가 종족별로 몇 채씩 있지.”
“강신체요?”
“그래. 본신은 바쁘니까.”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라고 말을 끊은 솔리아. 그가 피식피식 웃으며 땟국물투성이인 키더루프를 바라보았다.
“삼사드… 아니, 지금은 뭐라고 부르면 되겠나.”
“키더루프입니다. 편하게 킨이라고 불러주십쇼.”
“그래 킨. 흐음……”
솔리아가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골똘히 내려다보았다.
“지저분하군.”
“보셨으니 아시지 않습니까? 고향이 좀 많이 거지 같아서.”
“그래. 그것도 그렇고…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뭐, 삼사드보다 건강하진 못하죠.”
“아니다. 굳이 삼사드가 비교 대상이 아니더라도…네 건강은 르암인의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솔리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내 몸을 조사했다. 나는 가만히 내 몸을 훑는 여러 색의 광선에 몸을 맡겼다. 한참 내 몸을 조사하던 솔리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것 참. 알 수가 없군. 네 몸은… 무언가 저주에 라도 걸린 듯이 허약한 상태를 강제로 유지하고 있다. 나조차도 쉽게 풀 수 없겠어.”
“역시. 그랬습니까.”
그랬다. 말했듯이, 키더루프는 어릴 때부터 병을 달고 살았고, 지금도 몸이 허약했다.
그저 허약하기만 할 뿐이 아니다. 나는 전생과 비교해서 모든 능력이 전체적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신체능력을 포함해서 성력과 초능력마저. 전부다.
강물처럼 넘실대던 성력은 개천 수준으로 줄었다. 넘쳐나는 초능력은 첫 번째 삶의 나보다 미약한 수준까지 감소했으며, 복잡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정신계 초능력이나 신체 변화는 꿈도 못 꾼다.
승천자의 감각도 사라졌다. 더 이상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남의 무술을 흠치는 건 불가능하고,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전체적인 지적능력, 특히 기억력이나 연산능력도 어마어마하게 감소했다.
세상에! 한 달 전에 산책하면서 힐끔 본 나무에 달린 나뭇잎 개수가 헷갈린다니! 이거 완전 저능아 아냐? 돌대가리에 빡대가리가 되어버린 나였다.
“이유는 알고 있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두가 죽기 전에 그의 본질을 일부 찢은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전생하며 쌓아올린 능력치가 사라지지 않았나 예상하고 있죠.”
“본질을……! 미친 짓을 했구나.”
말만 들어도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예상한 듯 싶다. 솔리아가 말그대로 미친놈을 바라보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매에서 그의 키보다 커다란 스태프를 꺼냈다.
“이거. 이대로 가다간 스무 살도 못 살고 죽을 것 같군. 기다려봐라. 내가 조금 치료해주지.”
스태프에서 흘러나온 빚의 실이 먹이를 감싸는 거미줄처럼 내 몸을 둘둘 말았다. 나는 빛에 둘러싸여 내 몸을 침투하는 기운을 구경했다.
나는 티끌만큼도 파악할 수 없는 기적의 영역에 들어선 마법이 내 몸을 씻겨준다. 백색 빚 무리가 세포 하나하나에 침투하고, 성력이 키더루프의 영적 유전체계마저 뒤바꾸어 주었다.
“이제 예전보다는 건강하게…… 흠? 킨, 왜 그러지?”
후루룩! 하고 빛의 포박이 풀리고 드러난 내 얼굴. 부루툼한 표정의 키더루프를 보자 솔리아가 살짝 인상을 굳혔다.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군.”
“아닙니다. 치료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킨. 숨기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솔직하게 해라. 우리는 네게 ‘이러한’ 말을 듣고 제안을 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세계로 온 것이니.”
나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솔리아를 바라보았다. 화난다고 쇼콜라를 몇 번이나 죽인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까 후환이 두렵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다.”
“화 안낼 거죠?”
“안 낸다.”
“진짜로 진짜?”
“닥치고 말하기나 해.”
“알겠습니다. 그러면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내 말에 솔리아는 물론이고 라온조차 살짝 긴장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후 그들에게 가장 큰 불만거 리를 토해냈다.
“아니, 왜 르암인은 항성이고 저는, 삼사드는 소항성이었죠?”
“…뭐?”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는지 솔리아의 얼굴이 멍해졌다. 버스만큼이나 거대한 쇳덩어리에 등을 기대고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라온도 얼굴에 미미한 파문이 일었다.
뭐야? 반응이 왜 저래? 설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그래? 이렇게 어이가 없을 수가.
나는 화딱지가 나서 솔리아를 강하게 쏘아붙였다.
“소항성! 삼사드 사형식 때, 사형식장이 인공 소항성 위에 지어졌다면서요!”
“어. 으…….어, 그, 그렇지. 분명.”
“그리고 저 위에 있는 천지성은 승천자가 르암인 감시를 위해 남겨둔 항성이고요!”
“그, 그렇다만…“
“그렇다만이 아니죠! 왜 르암인은 진짜 항성입니까!”
“하아?! 무, 너, 뭐… 뭐라고?”
초월자가 당황하고 말을 더듬는 진귀한 장면을 다 보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저는, 삼사드는 전설상의 ‘그 올가’였잖아요! 그러면! 천지성이 항성이면 삼사드 사형식장은 최소한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 위에 지어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극대거성이거나!”
내가 르암인보다 못 한 게 뭐가 있다고! 르암인이 항성이었으면 당연히 삼사드도 항성이어야 격에 맞지!
세상에서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단 한 번뿐인 경험은 사형식이다. 내 한 번뿐인 사형식이 이 원시인들보다 못하다니! 오또케 그럴 수가 있어!
내 지적이며 변명의 여지 없는 완벽한 항의에 솔리아도 면목이 없는지 입을 떡 벌렸다. 그가 눈썹을 꿈틀대다가, 휙! 하고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온은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솔리아가 손바닥을 들어 안면을 덮었다.
“너는……”
“예. 말씀하시죠. 저는 이 차별대우에 단호하게 항의합니다.”
‘하아니’ 하는 긴 한숨 소리와 함께 솔리아가 변명했다.
“네 시체는 항성째로 블랙홀에 집어 던졌잖아.”
“아하.”
그렇구나! 내가 죽은 이후의 일이라서 잘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지. 뭐니뭐니해도 항성보다 블랙홀이지. 좋다! 만족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거 말고 또 다른 건?”
슬쩍 벌린 손가락 사이로 솔리아의 눈이 보인다. 당황하고, 어이없고, 지쳐 보이는 눈동자 속에 세상을 집어삼킬 심연이 자리 잡았다.
세계보다 드높고 행성보다 커다란 정신. 그것이 솔리아라는, 초월자라는 존재였다. 나는 초월자의 앞에서 대체 불만을 가질 게 뭐가 있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했다.
“딱히 없습니다만?”
“…정말로 없나?”
“제가 승천자에게, 여러분에게 불만 가질게 뭐가 있나요. 거기서 배운 기술 잘 써먹고, 잘 살고 있는데.”
솔리아가 괴상망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마음을 다잡은 그가 화제를 바꾸었다.
“알겠다. 없으면 다행이고, 여기 온 목적을 말하지.”
“말씀하십시오. 새겨듣겠습니다.”
“음. 킨, 우리와 함께 가자. ‘그것’이 너를 원한다.”
“그것… 이요?”
내 질문에 솔리아가 가만히 위를 가리켰다. 저 하늘 위 밝게 빚나는 천지성을.
“아……. 신의 알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솔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반응에 생각난 것이 있어 질문했다.
“그래서 다두의 시체를 회수한 거였군요. 삼사드의 흔적이 묻어있는 다두가 허락받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다. 딱히 그것만이 아니라 사후처리 적 관점에서도 그래야만 했지.”
“사후처리요?”
“다두처럼, 우리와 깊게 연관을 맺은 존재는…살아있으나 죽어있으나 불편한 관심에 노출된다. 특히 시체는 더하지.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승천자 관련자는 살아있을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면밀한 관리를 받는다.”
이상한 실험에 쓰이거나 죽어서도 성인이랍시고 방부제 잔뜩 먹인 후에 노출쇼 벌이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 그리고 네 말대로 확인하기 위해 다두를 데려가자마자 신의 알에게 기이한 신호를 받았다.”
“앞서 말씀하신, 저를 원한다는 그거 말입니까?”
“그렇다. 신의 알이 허락했으면 더이상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다. 승천자여, 우리에게 와라.”
솔리아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짓과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그는 승천자는 나를 인정했다. 나는 다시 승천자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꿈과도 같은 말이다. 나는 몇 번이고 승천자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으며, 르암인의 거지 같은 신체능력과 재능에 매일같이 좌절했다.
“킨의 육체도 승천자의 그것으로 교체해주지. 다두의 실수를 되돌릴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며, 네게 해줄 모든 지원이 준비되어 있어.”
하지만. 솔리아의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기울었다. 나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솔리아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솔리아.”
“아니다. 네가 우리에게 해준것……”
“아니, 그게 아니라. 롤랑 등의 도움이요.”
“…뭘 말하는 거지?”
롤랑을 포함한 승천자 부대원은 솔리아가 남긴 표식으로 나의 위치를 특정하여 나를 지원하러 왔다.
순수하게 내 위기를 알아채고 나를 지원하기 위해 남긴 표식은 아니겠지. 아마 ‘나쁜 쪽의 만일’을 대비하여 나의 위치를 알아내고자 남겼을 확률이 더 높다.
어쨌든 도와준 건 도와준 거니 감사하게 받도록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의문이 존재한다.
바로 어째서 그렇게 빠르게, 그리고 신호를 받자마자 수백 명이 넘는 전투원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투복을 갖추곤 지원을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또한 롤랑이 한 말에 답이 있었다.
“승천자가 파악한, 음… 하위 문명? 승천자보다 기술력이나 전투력이 명백하게 뒤쳐진 종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승천자의 업무 중 하나였군요.”
“…바로 맞혔다. 어떻게 알았지?”
“롤랑이 한 말이 힌트가되었습니다.”
외계지원 파견부대. 롤랑이 두 번째로 했던 말에 포함된 단어다. 승천자가 ‘외계’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멀리 떨어진 문명이 있을 리가 없었다.
승천자는 그들이 사는 은하계를 사실상 점령했다. 승천자의 은하에서 적수가 될 만한 존재는 투혼 말고는 단 한 종족도 없었다.
즉, 승천자에게 은하는 더 이상 ‘외계’가 아니고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는 은하가아닌 다른 은하. 승천자 시간으로도 수천 년 전, 상차원의 장벽을 넘어 여러 문명과 만났던 다른 차원의 은하야말로 ‘외계’라는 단어를 써야 올바르리라.
“그렇죠? 당신들은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전투원을 보내 최소한의 간섭으로 여러 문명을 도와주고 계시겠죠. 아마 삼사드가 죽지 않았으면 그 또한 롤랑과 비슷한 임무를 맡았을 겁니다.”
“솔리아. 제가 틀렸습니다. 당신들은 르암인을 버리지 않았고, 르암인을 비롯한 여러 저는 모르는 여러 수많은 문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승천자는 외계를 넘는 위험한 임무를 도맡으면서 까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수천 년이 넘게 비밀스러운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솔리아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솔리아. 감사합니다, 승천자여. 그러니 이 이상 배려해주지 않으셔도 되요. 저는 당신들이 지켜보는 세상 속에서, 저 나름의 삶을 살겠습니다.”
솔리아가 우묵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그러고는 한참 후.
“하……!”
수천 년의 고된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솔리아가 쥐어짜듯이 말했다.
“….네가 바라는 목표가 한없이 멀어질 거다.”
“알고 있습니다.”
“또 죽을수도 있어.”
“각오한 바입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언제였나. 누구한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죽음을 찢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되돌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꿈이겠지. 아마. 지금이 처음 말하는 걸 거다. 나는 꿈속에서, 워낙 상황이 난장판이어서 자세히 하지 못한 말을 이 기회를 빌려 솔리아에게 털어놓았다.
“솔리아 그리고 라온. 저는 당신들을 존중합니다.”
나는 내게 가해진 모든 의미있는 존재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는 나를 함정에 빠트려 죽인 쏜을 존중한다. 죽여서라도 나를 말리고자 했던 피오드를 존중하며, 종의 생존을 위해 삼사드를 처형한 승천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면 나 또한 나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다. 그러니 나는 다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로 말미암은 책임 또한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했다.
되돌린다? 잘못된 선택을, 망가진 인연을 고치고 완벽한 정답만을 고른다? 이 어찌나 군침 도는 말인가.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다두는 그가 저지른 실수를 되돌릴 수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되었다.
“설령 몰라서 그런 거라 할지라도, 그것이 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상 저는 제 선택을 물려선 안 됩니다. 이건 오롯이 저의 것입니다.”
제 것을 빼앗아 가지 마십시오. 라고, 그에게 감사와 더불어 경고를 한다.
내 거절의 말을들은 솔리아가 다시 한 번 벙찐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뒤에서, 쿡쿡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솔. 내가 안될거라고 했지.”
대화에 끼어들지 않던 라온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솔이라고? 내가 아는 솔이 한 명 더 있긴 한데. 이런 우연이 있을수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첫인상과 달리 활발한 어투로 라온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다. 킨. 내가 알려준 건 잘 익히고 있나?”
친한 옆집 형처럼 말을 건넨다. 삼사드 사형식 때 보았던 무뚝뚝한 어투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랬던 것 같았다.
지금은 부담 없이 본래 성격을 드러내는 걸 테고. 그에 답해, 나 또한 활기찬 어조로 답했다.
“그럼요. 잊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습하고 있습니다.”
“말 만으로는못 미덥군. 어디 확인해보지.”
차앙! 하고, 라온이 손을 들자 금속 조각이 순백의 검으로 재탄생했다. 검 두 자루를 만든 그가 한 자루는 그의 손에, 한 자루는 내게 집어 던졌다.
나는 내게 던진 검을 잡았다. 내 신장과 체중에 딱 맞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나만을 위한 숏소드. 숏소드를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자마자 다짜고짜 내게 돌진해왔다.
한 걸음. 라온의 몸이 사라지고 색도, 소리도 없는 선이 내 목을 노리고 들어온다. 나를 배려하여 아무런 힘도 담기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힘의 우열이 의미 없는 공간 그 자제를 베는 법칙이 선에 담겨있었다.
점과 선의 공격.
나는 히죽 웃으며 검을 가볍게 털었다. 떨림과 함께 검신과 검끝이 허공을 조각했다. 검이 그리는 마나의 선이 부드러운 곡선, 반원, 나선, 회전 등등을 표현했다.
중중첩첩(重重量量). 겹겹이 겹쳐진 유수화접의 흘리기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법칙을 그렸다.
원과 곡선. 흐릿한 곡선이 공간을 베는 베기를 흘렸다. 라온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고,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나 또한, 점과 선. 20 미터 이상 떨어진 라온을 향해 검을 찌른다. 내 검에는 오러는커녕 검풍조차 일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맞춘다는 확신이 있었다.
찌르는 점은 상대를 향해 치달리는 선이 된다. 나와 상대를 잇는 선을 구체화할 수 있다면, 거리의 의미는 없었다. 나는 라온을 향해 점을 찔렀고 점은 곧 선이 되어 그의 목을 노리고 쳐들어왔다.
‘완벽해.’
깔끔하게 들어갔다. 웨일처럼 재능에 깃댄 일격이 아니다. 자기처럼 목숨을 바쳐 완성한 공격이 아니다. 일상처럼 언제 어느 때나 꺼낼 수 있는 완성된 공격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라온의 그것이 태양이라면 나의 그것은 반딧불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점과 선에 확실히 닿았다.
씨익.
라온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내 점을 검신을 흔드는 것만으로 튕겨낸 그가 상단세를 취했다.
자세가 바뀌고, 기세가 바뀐다. 나는 라온의 몸이 흐릿해지며 세상으로 녹아드는 듯한 환상을 목격했다. 아니, 그가 녹는 게 아니라 세상이 녹으며 라온이 세상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와…… 우.’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
라온의 발이 땅이 되었다. 그의 머리는 하늘로 녹았다.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와 수천 성좌(星座)의 법칙이 검을 쳐든 그의 몸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빼곡하게 채웠다.
호흡법, 밤바람에 떨리는 피부에 인 잔털, 혈액의 흐름. 그 모든 것이 교접하며 세상 그 자체를 형상화했다. 라온이 세상이 되었고, 그의 검은 우주에 걸려있었다.
스욱- 천천히, 검 끝에 걸린 우주가 내게 내려온다. 은하수가 내 몸을 갈기발기 찢어버리기 위해 힘을 투사한다.
이건 죽는다. 아니, 죽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행성에 발붙여 살아가는 인간의 목숨 따위 행성의 탄생과 소멸 앞에선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나는 실로 무의미(無意味)한 존재가 되어 그의 검에 사라지…….
“이런!”
라온이 혀를 차며 공격을 중간에 멈췄다.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그가 보여준 우주검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허…억……!”
가쁜 숨을 토하며 호흡을 고른다. 라온은 내가 마음을 고를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다가 툭, 하고 말을 꺼 냈다.
“우주검은 아직 부족한가 보군. 앞선 둘은 시작점을 지났는데 우주검이 미완인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 그… 그것이 뭡니까?”
“경험부족이다. 킨, 더 많은 무술을 익혀라.”
“아니……!”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열심히 이것저것 익혔습니다만……”
션이 창안한 검술, 검법만 100개가 넘는다. 전생하며 익힌 무술의 개수도 그에 비견된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내 항변을 듣자 라온이 어림도 없다는 둣이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다. 더 익혀라. 더, 더 익혀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학을 익히고, 그것들을 자기류로 승화시켜라. 그리곤 네가 익힌 무학의 수만큼 새로운 무술을 개발해라. 그래야만이 겨우 입문할 수 있는 것이 우주검이다.”
으아… 듣기만해도토 나몰 것 같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초월이다. 인간의 지식을 한몸에 익히지 못한 자가 감히 인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 말이 되겠나?”
인간을 초월하기 위해선, 최소한 어느 한 분야에서 만큼은 인류 전체를 합한 것만큼의 지식과 실무 능력을 쌓아야 한다. 는 것이 라온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여전히 듣기만 해도 토 나온다. 나 그냥 신 포기할까?
“으아……”
내가 징그러워하자 라온이 후련하게 그리고 약간의 안도가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솔리아의 어깨를 툭특 두들기며 내게 인사말을 했다.
“열심히 살아라. 언젠가 네가, 너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라올 그날까지 기다리겠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하”하고, 솔리아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스태프를 흔들며 내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괜한 배려를 했군. 미안했다. 킨.”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만 떠나마. 너는 네 인생을 살아라. 나는, 승천자는 더 이상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으마.”
“두 분도 다시 만날 그날까지 보증하십시오.”
그러며 떠날 준비를 하는 솔리아와 라온을 배웅한다.
나는 빛 무리에 휩싸이는 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키더루프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 마나를 느끼기까지 반년이나 걸렸고, 지금의 경지는 기껏해야 마나 유저 상급에 불과하다.
성력과 초능력도 줄어들어 더 이상 백업을 받을 수 없다. 솔리아가 치료를 해주었다지만 허약한 체질을 고쳐준 게 전부일 뿐.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였다.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며 내게 주어진 여러 제한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아니, 도움을 준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딱 도움까지였다. 그 이상은 불필요한 배려였다. 나는 그리 다짐하며 떠나려는 솔리아와 라온을…….
“아, 잠시만요.”
차원에 간섭하는 마법을 준비하던 솔리아가 급히 마법을 멈춘다.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굳이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면 두 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씩 있습니다만.”
그래. 이래야지. 다른 누구가 아니라 승천자 씩이나 되는 분이 도와준다는데 잘난 척 하면서 거절하는 건 나한테 맞지 않는다.
주는 건 다 받는다. 나는 둘에게 하나씩 간단한 부탁을 했고, 두 사람은 거절하지 않고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게,승천자와의 만남이 끝나고 진정한 의미로 키더루프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