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에필로그 1.나 아직 안죽었다】
다두가 죽은 이후에 일어난 일을 하나하나 정리하자.
다두에 관해선 할 말이 별로 없다. 이미 죽고 없는 인간을 설명할 게 뭐가 있을까.
단지 하나, 더 이상 다두 아와흠이 아니라는 것만 말하고자 한다.
승천자 다두. 그것이 다두의 이명이다.
승천자는 다두의 시신을 거둬들여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마호프 오먼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무의미했다.
그렇게 다두는 승천자와 함께 사라졌고, 악신의 못자리는 3,000년 만에 천족이 강림한 성지(聖地)로 이름이 드높아졌다.
다두가 승천자의 주요 인물임이 확인되었으니, 그와 함께 대륙에 사건 사고를 저지른 동료들 또한 별 탈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불안하지. 해서, 나는 동료들이 다두 사망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조사했다.
먼저 이종족 연합지역부터.
이종족 연합지역은 별일 없었다. 젤 포이만과 르데앙 옥시아는 큰 소요 없이 받아들여졌고, 본래의 자리로 복귀했다.
다만, 젤 포이만의 권력이 꽤나 많이 축소되었다. 얼마나 많이 축소된 지는 나도 잘 모른다. 지금의 나는 외국 핵심 인사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서 말이지.
그러나 다두 사망 이후, 몇몇 의원들이나 대중에 노출된 유명한 무인들의 인사 변동 기록을 살펴보면 대강은 알 수 있었다.
젤 포이 만의 끄나풀이 많이 끊어졌구나, 예전처럼 암중에서 국가를 쥐고 흔드는 어둠의 지배자 같은 건 힘들겠구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옥시아는 잘 모르겠다, 원래 그녀는 숨겨져 있던 고위 마법사였으니, 사건이 끝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연구에 매진하던지.
르데앙은 여전했다. 그녀는 이종족 연합지역을 뿔뿔대며 돌아다녔다. 아니, 어느 시점부터 이종족 연합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국적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다두 이후부터 검사로서는 거의 은퇴한 거나 다름없는 행보를 보여주는 그녀였다. 아니 다두 이전부터일 것이다. 르데앙이 검사로서 은퇴한 시기는.
르데앙은 내가 해피의 재능과 비견된다고 평가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그 나이 먹도록 익스퍼트 최상급을 못 벗어나는 게 말이 안된다.
아마 다두 이전, 어느 시점부터 검술은 손을 놀았겠지. 타성에 젖어, 하던 훈련만 반복했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익스퍼트 최상급인 것부터가 그녀의 재능을 증명하지만, 아무래도 마스터는 힘들 것이다.
세상은 재능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재능 이상으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라로아가 마스터가 되고, 르데앙이 익스퍼트 최상급에서 멈춘 것처럼 말이다.
뭐, 르데앙이 만족하면 그걸로 되었다. 세상은 검술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녀도 그녀 나름의 행복을 찾으면 되는 거겠지.
‘그리고 트라칸.’
트라칸과 라코아 부자, 마호프 오먼은 쏠트리먼으로 돌아갔다. 트라칸이 이번 일을 미끼로 삼아 쏠트리먼을 크게 부흥시키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것이 기록에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 먹을 때까지 쏠트리먼 소식이 안 들리는 걸 보면, 여전히 시골 촌국가로 남아있는 듯했다.
‘쉘리 반데스.’
쉘리 반데스도 이스마일 반데스와 함께 게리소님으로 돌아갔다. 그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반데스 영지에 처박혀서 마법에 전념했다. 이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이 좋다. 큰 사건이 있건 없건, 변화가 적거든.
아, 다른 점을 찾으라하면 이스마일이 있었다. 이스마일은 악신 처단에 큰 공로를 세운 것을 인정받아 쉘리 반데스 다음가는, 그리고 다음 세대의 대마법사로 인정받았다.
그 때문인지 여러 나라에 불려가서 강의를 하고,새로운 제자도 받으며 정력 넘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생활도 시들어졌는지 오래 못가 반데스 영지로 돌아와 쉘리 반데스와 함께 마법 수련에 매진했다.
이스마일이 쉘리 반데스 다음가는 대마법사인지는 나도 아직 모른다. 사람이 소식이 없어서 말이야. 하지만 그가 쉘리 반데스 다음으로 8결에 다다를 마법사임은 확신한다.
이스마일이라면 그럴 능력이 있었다.
참고로 소니아는 여전히 독신이었다. 얘네들 진짜 왜 이러냐? 내가 아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독신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겠지. 소니아는 게리소님의 여왕이다. 수십 년 째 게리소님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 내가 뭐가 잘났다고 여왕님을 걱정하냐. 내 앞가림이나 잘 해야지.
‘게리소님은 이쯤에서 끝내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뮤온 보트라. 일언 반독재라는 별 해괴한 정치체계로 중앙 대륙 통일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그는 통일 제국으로 돌아온 뒤, 정무(政務)에서 손을 놔 버렸다. 아예 방관하고, 밑의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내 욕심을 끝을 보았다. 이제는 되었다.’
그것이 뮤온 보트라가 정무를 손에 넣은 이유의 전부이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부하들이 그 말로 납득을 할 것 같아? 천만의 말씀이다. 당연히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다고 한다.
뮤온 보트라 혼자서 감당하던 수많은 일을 갑자기 아무런 상의도 없이 밑의 사람들에게 분배하니 나라에 난리가 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통일 제국에는 능력자가 많았다. 뮤온 보트라를 보필하며 업무를 도와주던 세계대전의 패배자들.
황제 밑에서 숨죽이며 다음 기회를 노리던 야심가들, 살벌한 처단에서 살아남은 빛의 수호자 후예들.
그들이 들고 일어서서 뮤온 보트라의 업무를 하나하나 대신 처리했다. 뮤온 보트라의 업무를 먹으며 그들이 가장 노리던 것, 황제의 권력을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이 ‘뜯어먹기’ 과정 중에 통일 제국에 2차 혼란기가 찾아왔다. 이 업무는 내 조상 것이었네, 이 업무는 내 선조가 맡던 것이네…하며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인 것이다.
물론 대놓고 날뛰진 못한다. 뮤온 보트라는 업무만 손을 놓았을 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으니까. 그의 말이라면 목숨도 바칠 충신도 바글바글하니 내전까지 번지진 않았다.
이 짧고 굵은 혼란 끝에 통일 제국은 여러 개로 쪼개졌다. 참고로 여러 ‘국가’로 쪼개진 것이 아니다. 여러 ‘개’로 쪼개져서 하나의 통일 제국을 지탱했다.
그러니까, 이걸 설명하자면… 통일 제국은 이종족 연합지역의 다원제를 벤치마킹했다. 아니. 이종족 연합지역보다…으음…….이걸 뭐로 예를 들어야 하지?
그래, 첫 번째 삶. 지구에서 가장 강하던 국가. 미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맛있는 햄버거와 피자를 개발한 국가라는 것 말고는 미국에 관해 아는 지식이 거의 없지만,그래도 몇몇 개는 알고 있다.
주(州)라고 하나? 주 맞지? 미국이 지역을 다스렸던 단위 있잖아. 그거 주 맞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 맞을 거다. 여하튼 통일 제국은 통일 제국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나라를 몇 개의 주로 나뉘어 독자적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완전히 독자성을 유지하진 않는다. 뮤온 보트라 밑에서 지내며 통일 제국이라는 하나된 힘을 깨달았으니 통일 제국을 죽어도 포기하기는 싫다.
그리하여,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사정 끝에, 중앙 대륙은 여러 개의 주가 모여 하나의 연방을 이루는 국가로 재편되었다.
연방이니 당연히 연방 의장도 있다. 일종의 바지사장, 연방의장 뮤온 보트라. 그렇게 뮤온 보트라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연방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천족강림(天族降臨)사건의 연관자이자 승천자 다두와 동료였다는 사실 덕분에 뮤온 보트라는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했다.
그게 아니어도 예전부터 뮤온 보트라가 쌓아왔던 입지도 있고 말이지. 그러니 그가 있는 이상 통일 제국은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이렇게 동료들의 사후 사정은 조사가 끝났다.
‘다행이야.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네.’
아, 나는 죽었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아냐고? 어? 나 영원히 죽은 거 아니냐고? 무슨 기억에도 없는 개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죽어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나는 영원히 살 거다. 내가 영원히 죽는 걸 받아들일 날은 죽을 때까지 오지 않는다.
그래. 나 아직 안 죽었다. 나는, 다두는 죽고 이세계에 다시 태어났다.
나는 산탈라라는 국가의 키 더루프라는 아이로 태어났다.
산탈라는 게리소님과 이종족 연합지역 중간에 끼어있는 약소국이다.
남쪽의 게리소님, 서쪽의 이종족 연합지역 사이. 대충 자의 모서리라 생각하면 된다. 그 모서리에서 어느 국가에도 흡수당하지 않고 남서쪽 귀통이를 악착같이 지키고 있는 나라.
산탈라는 그 귀퉁이 끝자락에서 J자처럼, 왼쪽으로멀리까지 툭! 튀어나와있는 여러 개의 제도(諸島)를 통칭하는 국가다.
또한 산탈라 인근 해역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류와 남쪽에서 올라오는 난류가 만나 조경 수역을 형성한다. 수심이 얕은 지역이 많아서 초대형 해상 몬스터의 걱정 없이 풍부하고 다양한 어족 자원 획득이 가능했다.
그 덕분에 다른 어떤 해상 인접 국가보다 아득히많은 어획량을 자랑하는 해상무역의 신흥강자, 산탈라!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산탈라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서서히 국가가 망가졌고 지금은 쫄딱 망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니, 망해간다는 표현도 점잖은 묘사다.
‘대륙의 쓰레기장’
그것이 산탈라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이유는과거에 어업으로 막대한 수입을 남겨주던 조경 수역 때문이었다. 추가로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급속도로 발달한 마법 공학과 산업화가 가져다준 어두운 이면 탓이다.
마법으로 만든 녹슬지 않은 철. 썩지 않는 나무토막, 삭지 않는 그물과 부표. 그것들이 산탈라를 망쳤다.
마법 물품 참 좋지. 그래 다 좋다. 물건 하나 사서 오래 쓰면 얼마나 좋나.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마법으로 내구도를 늘려도 소모성 물품은 언젠가 기능을 다하기 마련이고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사람들이 그 쓰레기를 어디에 버리겠냐. 대부분 땅에, 그리고 바다에 버린다. 이중,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가 산탈라의 국가 붕괴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 위에서 버리는 해상 쓰레기가 내려오고 밑에서 버리는 해상 쓰레기가 올라온다. 두 쓰레기 산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 수역, 산탈라에 뭉쳤다.
그렇게 산탈라라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버리는 수천만, 수억 톤 단위의 쓰레기로 뒤덮여 버렸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쓰레기라는 이름의 다리로 연결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산탈라는 아등바등 저항했지만, 감히 소국이 대국의 쓰레기 정책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일 단위로 몰려드는 수천 톤의 쓰레기를 버티지 못하고, 어느 시점부터 국민은 대부분 국가를 떠났다. 정부는 붕괴했다. 남아있는 자들은 다국적 지원군과 죽지 못해 사는 이들뿐이다.
그 쓰레기 산더미. 그곳에서 나, 키더루프가 태어났다.
키더루프라는 이름은 알테어에서 개발한 (그리고 산탈라의 쓰레기 산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식, 부패 방지 마법이 걸린 고분자 합성수지 물품 중 하나인 지퍼백의 상호명에서 따왔다.
킵 더 루프(keep the loop). 눈도 못 뜬 어린아이가 킵 더 루프 지퍼백에 고인 빗물을 쪽쪽 빨아먹으며 억척스럽게 살아남아서 지퍼백의 이름을 고스란히 차용했다.
쓰레기 산에 어떻게 사람이 살고 키더루프가 태어났냐고? 사람의 적응력을 얕보지 마라. 이러한 막장 국가지만, 여전히 산탈라에는 사람들이 산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뒤지고, 누군가는 과거의 찬란한 바닷가를 되찾기 위해, 또 누군가는 과거를 버리고 도피하려고,그리고 누군가는… 산탈라를 버린 어미처럼 사람을 버리기 위해.
그렇게 막장 군상들이 모여들어 조금씩이나마 인구수를 늘려가는, 붕괴한 3세계 국가. 산탈라. 나는 그곳에서 살아갔다.
* * *
“콜록!”
또 기침이 나온다.
키더루프는 어릴 때부터 병을 달고 살았다.
딱히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쓰레기 국가 산탈라에 사는 이들은 여러 화학물질, 변화량이 극도로 적은 마법 쓰레기 등에 노출되어서 폐병이나 피부병, 호르몬 부조화, 암 발생률이 극도로 높다.
산탈라는 인체에 치명적인 병의 발병률이 평범한 곳보다 최소 열 배는 더 높다. 다른 국가에서 사망률 1~2위가 몬스터에 의한 사망이라면, 산탈라는 1위부터 5위까지가 모조리 병사(病死)였다.
장애아의 비중도 무지막지하게 높다. 어렸을 때부터 플라스틱 쪼가리에 노출되고, 기괴한 마법 파장을 내뿜는 마법 도구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으니 정상아가 태어나기 힘든 환경이다.
산탈라의 아이들은 작게는 피부,손톱, 체외조직 기형부터 심각하게는 내장이나 신경계 이상까지 크고 작은 장애를 달고 태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지.”
그나마 키더루프는 몸이 허약할 뿐, 치명적인 장애가 없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아이다.
부스럭-! 부스럭-!
아니, 그 때문에 쉬지도 못하니 불행한 걸까? 나는 쓰레기 산을 뒤지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허약하다고 보살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산탈라는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도 쓰레기를 뒤지지 않으면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가혹한 삶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니 두 팔, 두 다리, 두 눈과 두 귀가 멀쩡한 키더루프가 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나는 해가 뜨면 쓰레기 산으로 출근해 팔 것, 재활용할 것 등을 찾고, 해가 지면 집으로 복귀했다.
오늘도 그러했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열심히 쓰레기 산을 뒤진다.
파삭!
“아!”
와우. 쓰레기 산에서 대박이 하나 걸렸다. 거의 멀쩡한 마법총이 나왔다. 분해해보니 마나석까지 실한 녀석이 담겨있다.
마나석까지 달린 마법총 한 정이면 일~이주일은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간이 끈을 만들어 마법총을 등에 지고는 쓰레기 산을 뒤졌다.
후드득!
키더루프의 키보다 30배는 큰 쓰레기 산을 무너뜨려서 안에서 깨진 하급 마나석 한 개를 찾는다.
바사삭!
쓰레기 바다를 뛰어다니며 보존 마법이 걸린 보따리를 찾는다. 분해해서 재료로 쓸 수 있는 마법 무구도 몇 개 더 찾는다.
오늘의 수확은 이게 끝. 해가 지기 전에 짐을 정리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첨벙! 첨벙!
등실등실 떠다니는 쓰레기가 얼굴과 팔다리를 때렸지만 이 정도야 일상이다. 한참을 해엄쳐서 집으로 돌아와 대모(大母)에게 오늘의 수확을 건네주고 허름한 텐트로 돌아온다.
널찍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텐트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서 수십 명 이상! 알테어의 션 시절이 연상되는 삶이다.
아니. 이건 션보다 못하지. 어떻게 된 게 하루에도 수천 대가 넘는 비행정이 돌아다니고 대륙간 지하철이 뻥뻥 뚫린 시대에 사는데 산탈라는 구세대 알테어보다 가난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산탈라의 삶이었다.
나는 구석진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는 마나 호흡법을 운용했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가 끝이 났다.
째각째각. 시계처럼 반복되는 나날이 며칠이나 이어졌을까?
바스락.
한밤중. 나는 잠에서 깨어 났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정 리하고, 조용히 텐트 밖으로 나갔다.
“킨? 어디로 가?”
내 동생(혈연은 아니다. 산탈라는 같은 텐트에서지내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다들 형제라고 불렀다) 직사가 잠에서 깨서 나를 부른다.
킨은 내 아명(兒名)다. 키더루프의 어디에서 니은 받침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만,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 어느새 킨으로 아명이 굳어졌다.
“쉿.”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직사에게 몰래 숨겨놓은 사탕을 건네주며 입을 다물라고 부탁했다. 직사가 뭉개진 외눈을 빛내며 시시덕거리며 사탕을 쪽쪽 빨았다.
그렇게 직사의 입을 막고 밖으로 나와 해변으로 걸어간다.
저벅저벅.
달이 휘영청 뜬 날. 밤. 달밤을 맞는 해변은 꽤나 운치가 있었다. 나는 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쓰레기 산을 바라보았다.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 무리. 산탈라를 이루는 수십 개의 섬을 모조리 연결해버리는 기염을 토한 쓰레기들. 낮게는 10미터, 높게는 30미터 이상 쌓인 쓰레기 산.
그 쓰레기 산 위에 두 명의 인영이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고는 쓰레기 산에서 가볍게 발을 굴렀다.
타앗.
제비처럼 날아올라, 눈송이처럼 부드럽게 하강한다. 그야말로 경신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두 인영이 쓰레기가 널린 해변에 착지했다.
해변에 착지한두 사람이 망설이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까이 올수록 환히 빛나는 달빛이 그들의 외형을 내게 또렷하게 전달해주었다.
낯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외모. 늘 해지고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산탈라 인과 다르게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복장, 그리고 노동일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은 것처럼 티 없는 피부. 다국적 지원군도 저 둘만큼 복장이나 외모가 깔끔하지 않으리라.
산탈라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고 키더루프 생에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저 둘을 알았다.
나는 두 사람이 내게 다가오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솔리아.”
승천자 삼사드의 사형식을 담당했으며 쇼콜라와 함께 멸망한 우주를 여행했던 초월자 솔리아.
그리고…….
“저번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라온님이 맞으신지요?”
마찬가지로 삼사드의 사형식을 담당한 초월자. 나에게 신이라는 목표의식을 심어주었고, 세 개의 도달점을 알려준 검사 라온.
그 둘이 키더루프를 만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계(下界)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