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2
훈수 두는 천마님 201편
박현수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서 눈을 떴다.
이곳은 어디일까?
몰티에게 최선의,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패배를 직감한 몰티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직후 기억이 없다.
“여긴 뭐야?”
왜 이런 공간에서 눈을 뜬 걸까?
몸을 살펴보았다.
“팔이 박살 났을 텐데.”
몰티의 주먹과 충돌하면서 오른쪽 팔 전체가 박살 났다.
그런데 지금은 깨끗했다.
그냥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지난날들의 흉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새로운 태어난 것처럼 지금의 몸은 깔끔했다.
조심스럽게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 발동하지 않아.”
단전이 텅 비었다.
가득 찼어야 할 내공이 마치 무공을 익히기 전 상태로 돌아간 것처럼 한 톨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은 아니야.”
그는 몸 상태를 관조하자마자 현 상황을 간파했다.
“꿈속인가?”
아마 혼돈의 마왕과의 일전이 끝나고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꿈의 세계라는 것인지, 일종의 자각몽인 듯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한평생 자각몽을 꾼 적 없었다.
몸이 극도로 지쳐 강제로 이곳에 끌고 온 걸까?
“음.”
이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되는대로 아무 생각이나 했다.
박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무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만큼 광활했다.
인간의 다리로는 아무리 걸어도 똑같은 배경만 연속되었다.
내공을 쓸 수 있었다면 이런 곳 따위 쉽게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였다.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톤 자체는 평범하다.
불쾌한 것은 뇌를 마음대로 휘젓는 방식이었다.
전음이나, 텔레파시랑은 다르다.
그런 것들이었다면 불쾌하지 않았으리라.
“누구냐. 혼돈의 마왕의 부하냐?”
[크큭. 그놈의 부하 정도로 너의 정신에 침범할 수 있는가?]
“어림도 없겠지.”
아무리 약해졌어도 스승님인 천경이 바로 뒤에 있었다.
그분이 아니어도 격 낮은 정신 공격 따윈 절대 자신의 정신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몰티 이상의 존재라는 것인데, 박현수가 알기로 그보다 격 높은 존재는 전 우주를 통틀어 단둘밖에 없었다.
“…… 혹시 신입니까?”
[갑자기 말투가 정중하게 바뀌었구나.]
“맞군요.”
[그래. 내가 바로 신이다.]
“둘 중 누구입니까? 남자 목소리니까, 아버지라 불리는 라베녹스십니까?”
[글쎄.]
그 목소리엔 약간의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설마 장난이라도 치려는 걸까?
미안하지만 그런 기분이 아니었다.
[뭐, 그렇지.] “그건 꽤 악취미입니다.”
[악취미? 하하하하!]
박현수의 당돌한 말에 신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군. 네 말이 맞다. 이건 내 악취미다.] “그래서, 저를 왜 이곳으로 데리고 오신 거죠?”[말했잖나, 이건 내 악…….] “농담은 그만하시죠.”
[오우, 좀 진지한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신이란 작자가 깃털만큼 가볍다.
이런 게 신인 건가?
그전에 진짜로 신이 맞긴 한 건가?
[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진 않다만, 진짜 신이다. 애석하게도 말이야.] “정말 애석하군요…… 그들은 알까요? 자기들이 추앙하는 존재가 이렇게 가벼운 신이라는 걸?”
[모르겠지. 걔들한텐 항상 근엄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니까. 그마저도 꽤 오래됐지만.]
태초의 두 신은 언젠가부터 자신들을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것이 박현수와 모나미에게 발생했던 진화의 빛 때였다.
[간혹, 이 거대한 우주는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마치 나처럼 말이야.]
박현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문자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 몰티가 당신들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겁니까?”
태초의 두 신은 우주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고, 그들을 추종하는 종교의 종교 서에 적혀 있었다.
단순히 신화 정도로 생각했다.
신화란 믿는 자가 우상을 극도로 미화시켰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신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었다.
놀라운 점은 몰티 역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탄생했다는 거지만.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될 걸 괜히 빙빙 돌렸다.
본인의 위대함을 조금이라도 더 어필하고 싶은 걸까?
[흐흐.] “그 웃음은 뭡니까?”
박현수는 기분 나쁜 신의 웃음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너 같은 자는 처음이라서.] “어떤 점이?”[보통 나를 앞에 두면 불신자라도 고개를 조아렸다. 한데 너는 오히려 당당하구나? 내게 만든 법칙의 수호자인 주제에.] “수호자라도 제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사실 순환이란 게 추상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정하셨네요. 라베녹스 님이신 거.”
[그것도 참 웃긴 일이야. 아까 네가 물었지. 장난하는 거냐고. 한데 어째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뜬금없이 무슨 소리십니까?”
[왜 내가 둘이라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너만이 아니지. 왜 너희는 라베녹스와 메시아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예?”
이건 조금 놀랐다.
박현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두 신이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까?”
[너흰 언젠가부터 순환을 만들어 낸 신이 라베녹스, 선과 악을 만들어 낸 신이 메시아라고 구분 짓더군. 그게 재밌어서 꽤 오래 두 신의 행세를 했었지.]
“…… 정말 악취미십니다.”
오직 그의 재미 때문에 우주를 양분하는 두 종교가 만들어졌다.
그들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 겪어본 바로 나름대로 감정의 골이 존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야말로 우주 최고 신이라고 믿어 왔으니까.
한데 알고 보니 두 신이 하나의 존재란다.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때론 거짓말이 평화를 지키는 법이다.
그 거짓말의 규모가 전 우주를 아우르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절 이곳에 부른 이유가 뭡니까?”
불러 놓고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신과의 대화다. 조금 더 유익한 질문 같은 걸 한다면 받아 줄 의향이 있다만?] “딱히 당신에게 궁금한 건 없습니다.”우주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고, 신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순환을 만든 방법이라거나, 우주의 구조, 행성의 형성, 생물의 번식 등…….
전지전능한 그라면 모든 걸 답해 주겠지만, 애석하게도 박현수는 그런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신에게 물어볼 건 없었다.
[정말로 내게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그렇습니다.”
[크큭. 거짓말을 하는구나.] “제가 거짓말을요?”
[하고 싶은 질문이 있지 않으냐. 반드시 하고 싶은 질문!]
그런 게 있던가?
박현수는 한동안 고민에 잠기더니, 이내 몸을 크게 움찔했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곳에 아무도 없을 텐데도 마치 본능적으로 신이 있는 위치를 아는 것처럼.
“…… 지구를. 지구를 되돌릴 수 있습니까?”
[그런 질문이 아닐 텐데.]
“…… 저와 인연 있는 사람들을 다시 살릴 수 있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 잠가 두었던 유일한 소원.
불가능한 걸 알기 때문에 잊고 지냈다.
하지만 혼돈의 마왕에 의해 이번에도 많은 자가 죽어 나갔다.
그중엔 긴 인연을 맺어온 카본과 아이작도 있었다.
아니, 그전에.
킹의 군세에게 죽었던 수많은 지구인.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모두 살릴 수 있습니까?”
[가능하다.]
“정말입니까?!”
가능이란 말에 박현수의 눈이 뽑힐 것처럼 커졌다.
[하지만.]그러나 이어진 신의 말에 박현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내가 만든 법칙을 내 손으로 직접 어기는 일이다.]순환.
그것은 태초의 신이 아무것도 없던 우주에 만들어 낸 최초의 법칙.
단순히 언데드를 만들어 내는 역천의 술이 아니다.
완전한 부활이란 죽음을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셀 수 없을 정도의 생명이다.
우주 전체가 들썩이는 인과율의 폭풍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부활한 숫자만큼 생명이 사라질 터.
박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원한다고 하면, 그리고 정말 신이 이루어 준다면 박현수는 혼돈의 마왕과 비교할 수 없는 숫자를 죽이는 것이다.
그건 마왕이나 하는 짓이었다.
“저는…….”
이제는 가물가물한 부모님의 얼굴이,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그분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박현수는 자조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부모님이 나서서 하지 말라고 크게 혼을 낼 게 분명했다.
부모님의 원망을 사고 싶지 않았다.
“아닙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수를 써 가면서 천륜을 배반하는 짓은 할 수 없다.
[원한다면 들어줄 용의가 있다만.] “유혹하지 마십시오. 저는 결정을 내렸으니까요.”[훌륭하군.]
신의 목소리에 만족감이 어렸다.
물론, 깊은 실망감에 빠진 박현수가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많은 생명을 앗아 갈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무마할 방법이 있다.]
박현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 방법을 먼저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최소한의 자격을 시험한 것이다.]
“…… 제가 이뤄 달라고 했으면 어쩌셨을 겁니까?”
[이뤄 줬겠지. 무마할 방법은 알려 주지 않았겠지만. 그리고 네게 크게 실망했을 거다. 이래 봬도 선과 악을 구분 지은 건 나니까.]
냉정한 신의 말에 박현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은 그가 진짜 신이기 때문이다.
[…… 끝까지 일관적인 놈이로군.] “그래서 무마할 방법이란?”
[네가 내 자리를 이어라.]
웃음기 가득한 신의 목소리.
그가 즐겁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뻔하다면 뻔한, 그러나 뻔해서 더욱 충격적인 내용이었다.